소설방/아하루전

<178> 29화 신성전투의 마지막 (1)

오늘의 쉼터 2014. 6. 13. 18:10




<178>  29화 신성전투의 마지막 (1)





"모두들 그간 수고들 많았소"

노기사가 막사 안으로 들어오며 무게를 잡고 맨 처음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노기사의 말은 안에 있는 용병 단장들은 그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그들은 삼삼 오오 친분이 있는 사람들 끼리 모여서 저마다 앞으로의 일들이나 
혹은 그간의 일들에 대해서 소곤 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아하루와 그의 용병단이 있는지 연신 힐끔 거리며 아하루와 그리고 
그의 곁에 바짝 붙어 앉아 있는 호르텝을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곤 하였다.

'탕탕'

노기사가 자신의 말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제멋대로 떠드는 용병단장의 시선을 모으기 위해 
자신의 뒤에 있는 커다란 판을 두둘겼다.

노기사의 그런 의도가 먹혔는지 용병 단장들이 하나 둘 잡담을 멈추고 앞으로 돌아앉기 시작했다. 
노기사가 용병단장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쑥쓰러운지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흐음. 그동안 여러분들 무척 수고 많았소. 
이제 여러분들이 나설 전투는 없지만 그래도 내일 있을 3차 전투까지 대열을 잃지 말기 바라오"

노기사가 좌중을 한번 둘러 보았다.
좌중에는 승리로 인한 기쁨에 넘치며 당당한 얼굴이 있는 한편 다른 한쪽으로는 
패배의 쓴잔을 마시고 구겨져 있는 얼굴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양 담담한 표정의 얼굴도 있었다.

그리고 아하루의 경우는 그 얼굴에 쒸여진 가면 때문에 그가 어떠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제길 가면이나 벗을 것이지."

노기사가 다른 사람이 안들릴 정도로 나직히 중얼거리고는 다시금 자신의 말을 이었다.

"제 3차 전투는 기사와 기사간의 결투로 맺음 될것이오. 
여러분들은 단원들을 이끌고 여러분들의 자리를 지켜주길 바라오. 
또한 전투가 모두 끝난 이후 여러분들의 그간 노고에 대해 치하가 있을 작정이오. 

그 자리에는 현 왕실의 높은 분들 뿐 아니라 
제국의 귀하신 분들 모두 나오게 되니 여러분들의 행동에 특히 유념해 주기 바라오.

비단 이때껏 용전분투 하고서도 마지막을 못넘겨 그 분들의 눈에 벗어나게 된다면 
그 다음 일은 상상하지 않아도 잘 아리라 믿소이다.

또한 모든 것이 끝나면 여러 귀족분들이 함께 여는 무도회에 각 용병단의 단장들도 
참석해주기 바라오. 
그리고 그에 대한 준비는 따로 여러분들에게 사람이 가게 될 것이오."

노기사가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여러분들의 용전분투로 인해 이번 전투는 거의 우리의 승리로 확정이 되었고 
그만큼 영토가 늘어나게 되었소이다.

내일 귀하신 분들께서 직접 치하하시겠지만 이 자리를 빌어 나도 여러분들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소. 이상이오"

노기사의 말이 끝나자 용병 단장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잠깐. 거기 허수아비 용병단장"

노기사가 급히 외쳤다. 
용병단장들이 노기사의 외침에 잠시 노기사와 아하루를 번갈아 쳐다보며 궁금함을 느꼈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밖으로 나갔다. 
아하루도 박으로 나가려다 노기사의 부름에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노기사에게로 다가왔다.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노기사가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가져온 종이를 건넸다.

"여기에 적힌 것이 진정 사실이던가?"

아하루가 노기사가 건넨 종이를 받아 들었다. 
그곳에는 어제의 전투시 아하루의 허수아비 용병단이 상대측 참새 용병단을 죽이지 않고 
살려둔 사실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그에 대한 판정이 따로 적혀 있었는데 그 판정은 자격 박탈로 적혀 있었다.

"이게 뭡니까?"

아하루가 다시금 종이를 건네 주며 물었다. 
노기사가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고는 아하루에게서 종이를 되돌려 받았다.

"적힌 대로지. 자네의 용병단이 어제 상대측 음..."

노기사가 다시 서류를 힘끔 쳐다 보았다.

"흠... 참새 용병단을 전멸시키지 않고 포로로 잡아들인 것에 대한 판정문일세"

아하루가 노기사의 말에 팔짱을 꼈다.

"그래서요?"

어느새 아하루의 말 속에는 약간의 삐딱한 감정 마져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런 아하루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노기사가 허허로운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그저 그런게지. 뭐 개인적으로는 나도 자네 용병단의 행동에 감명을 받았네. 
쯧쯧 하나의 생명이라도 소중하건만 저치들은 그걸 몰라.
하지만 규정은 규정 원래는 자네의 용병단 전체가 대신 목숨을 내 놓아야 했지만 
다행히도 대공 전하께서 자네들을 좋게 보셨는지 대신 자격 박탈로 마무리 짖게 되었다네"

아하루가 노기사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원래는 어느정도 위험을 감수 했던 일인지라 
노기사의 말을 어느정도 수긍한 듯 했다.

"그런데 여기 자격박탈이란 말은 뭡니까?"

아하루의 질문에 노기사가 더욱 허허로운 웃음을 지었다.

"그게 더욱 웃긴 얘기지. 그저 책상 물림들이 생각하는 것이니 
오죽하겠나만 앞으로 이 신성전투에 자네의 허수아비 용병단은 참가 하지 못한다는 게야. 
그러니 웃을 노릇이지.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뭐 두 세 번 참가 하지 않은 용병단이 없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대개의 경우 
한번 참가하고 나면 두 번은 질색을 하지. 
어차피 참가 한 것 만으로도 어느정도 이름세는 알려질테니 말이야.

뭐 자네가 앞으로도 계속 참가할 거라면 문제가 틀려지겠지만 말일세. 
그래 다음에 또 참가하려는 마음은 있는겐가?"

아하루가 고개를 저었다. 
노기사가 역시라는 듯 다시금 허허로운 웃음을 지었다.

"그럴줄 알았네. 그러니 여기서 나온 자격박탈 이란게 기실 아무런 가치도 없지. 
그리고 혹여 참가하고 싶으면 자네 용병단의 이름을 바꾸면 그만인 것을... 
아참 내 충고 한마디 함세"

"네?"

아하루가 의아한 듯 물었으나 노기사는 어느새 목소리 마져 낮게 깔기 시작했다.

"내일 대공께서 직접 수고한 용병 단장들을 직접 치하하실 거라네. 
이런 일은 이때껏 전례가 없었지... 
그 원인은 자네야. 
그러니 내일 처신을 잘하도록 하게"

"무슨 말씀이신지?"

"대공은 욕심이 많으신 분이지. 
자신의 맘에 들지 않으면 그저 죽으면 되지만 그분의 맘에 들면 그 또한 쉽사리 빠져 나가지 못하지. 
그러니 적당한 선을 유지하도록 하게나"

"왜 그러한 말을 저에게 하십니까?"

아하루의 눈이 어느새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노기사는 그런 아하루의 눈을 보지 못했다는 듯이 그저 허허롭게 굴 뿐 이었다.

"허허, 그런걸 말하는게 내 일인걸?"

노기사가 그렇게 말하고는 문득 머리를 긁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도 앞으로 전도가 유망한 용병단 같아 보이니 말일세. 
혹 나중에라도 만나게 된다면 살살좀 부탁하네"

노인의 말에 아하루가 쓴 웃음을 지었다.

"어디 감히 일개 용병단이 기사와 겨룰 일이 잇겠습니까?"

"글세 세상일은 모르는 것이니 말일세. 
그리고 이걸 받게나 이건 내가 신세진 이의 부탁도 있고 해서 주는게야"

노기사가 자신의 품안에서 작은 책자 하나를 건넸다.

"신세진 이요? 그리고 이건 또 뭡니까?"

노기사가 어리둥절해 하는 아하루를 보고는 살짝 미소를 흘렸다.

"자네 곁에 하렌가의 장녀가 함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네만?"

"그걸 어떻게..."

"자네 같으면 자신의 딸이 웬 못된 놈이랑 같이 어울려 다니는데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겠나? 허허"

노기사가 그렇게 웃으며 이야기 하자 아하루가 약간 쑥쓰러워 했다.

"허허, 농담일세 그려. 그나저나 어쨌건 이건 비밀일세. 
그 노친네가 워낙 깐깐해야지? 
내가 그녀석 이름을 말했다는 것은 비밀일세"

아하루가 고개를 끄덕이자 
노기사가 아하루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래 그래. 자네는 모르겠지만 알게 모르게 자네를 지켜보는 눈이 많네 
항상 행동에 조심 또 조심을 하게나. 그럼 그만 가보게나"

"참 어르신의 이름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아하루가 묻자 노기사가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이 늙은 이의 이름을 알아서 뭐하려고?"

노기사가 그렇게 말하더니 웃는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알렉 미츠로비라고 한다네"

노인의 이름이 말해지는 순간 아하루가 깜짝 놀란 듯이 되물었다.

"알렉 밀츠로비? 진짜 알렉 밀츠로비 십니까?"

"어디서 어떻게 내 이름을 들었는지는 몰라도 그건 그저 허명인게야"

아하루가 급히 자신의 손에 들려워진 책자를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곤 더욱 놀라운 얼굴로 알렉을 바라보았다.

"알렉님 이..이건"

노기사의 살짝 고개를 저었다.

"별거아니네 그저 이때껏 내가 겪었던 일들에 대한 감상을 적어논 것에 불과하네. 
딱히 줄 만한 사람도 없고 말일세 아마 자네라면 이것을 잘 활용할 수 잇을게야.

아니지, 어쩌면 자네라면 이것을 더욱 완성된 형태로 만들어 놓을 수 있겠지."

"그래도 이런 귀한 것을..."

아하루가 다시 한번 뭐라고 말하려 하자 알렉이 아하루의 말을 잘랐다.

"됐네. 그만 가보게나."

알렉이 손을 들어 내?듯이 아하루를 향해 손짓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아하루가 깊숙이 허리를 숙여 알렉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곤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알렉을 뒤로 하고 막사 밖을 나섰다.

막사 밖에는 막사 안으로 들어 갈 수 없었던 훼리아와 소르엔이 
아하루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반가운 얼굴로 아하루를 맞았다.

"이제 나오십니까?"

아하루가 훼리아와 소르엔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떨떨한 음성으로 멍한 듯 
자신이 나온 막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알렉 밀츠로비..."

"네?"

아하루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훼리아가 의아한 듯 물었고 소르엔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정말 알렉 밀츠로비님이십니까?"

소르엔의 말에 아하루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 밀츠로비가 누구죠?"

훼리아가 궁금하다는 듯 묻자 
소르엔이 아하루의 손에 쥐여진 작은 책자를 힐끔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알렉 밀츠로비. 이전 아레나와의 3차 전쟁때 대 승리를 이끈 장본인이시죠. 
혹시 밀케의 기사란 이름은 들어 보셨나요?"

훼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님이 자주 그분의 이름을 언급하시는 것을 들었어요. 
그분 앞에 부끄럽지 않을 기사가 되는 것이 아버님의 꿈이라고 하셨지요."

소르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분의 본명이 바로 알렉 밀츠로비 님이십니다. 
과거 아레나와의 3차 전쟁때 처음 일개 기사신분으로 참전 하셨다가 그분의 부대가 
아레나의 기습에 말려 대패를 당하자 
오히려 병사들과 다른 기사들을 수습하여 승리를 거머쥐셨죠. 
또한 그 이후에도 아레나와의 전투시 여러모로 활약하여 끝내 전쟁의 승리를 이끌어 내신 분입니다. 

전후 그분에게 작위를 하사하려 했지만 모든 작위를 마다하시고 다시금 평기사로 모습을 
감추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이런 곳에 있었을 줄이야"

소르엔이 감탄한 듯 말하자 
훼리아도 그제서야 알렉이 누군지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저분이 바로 그분이실줄이야. 
그런데 왜 그 모든 작위를 반납하고 저런 생활을 하시는 거죠? 
제가 듣기에는 황실의 사부라는 직책까지 제시했다고 했던데..."

소르엔기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세요? 나름대로 무슨 사정이 있으시겠죠"

"일단 가지"

아하루가 소르엔의 말을 들으며 비로서 정신을 차린 듯 그렇게 말했다. 
어느새 알렉에게 받은 작은 책자가 그의 품안에 소중하게 간직되어 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