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전남기념물

전라남도 기념물 제41호 화순 정암 조광조선생 적려 유허비

오늘의 쉼터 2014. 5. 17. 09:19

 

 

종 목 전라남도 기념물  제41호 
명 칭 화순정암조광조선생적려유허비(和順靜菴趙光朝先生謫廬遺墟碑)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수량/면적 1
지정(등록)일 1979.08.03
소 재 지 전남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 174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한양조씨정암회
관리자(관리단체) 화순군
상 세 문 의 전라남도 화순군 문화관광과 061-370-1226
 
일반설명
 
적려란 귀양 또는 유배되어 갔던 곳을 이르며, 유허비는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히어 후세에 알리고자 세워두는 비를 말하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중종 때 이곳에 유배당한 조광조 선생의 옛 자취를 기록해 두고 있다.

조광조(1482∼1519) 선생의 호는 정암으로, 중종 10년(1515)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 사헌부감찰, 예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중종 14년(1519)에는 대사헌에 이르렀으나 기묘사화를 당해 이곳 능주 지방으로 유배되었으며, 그해 12월 20일에 사약을 받았다. 그는 기성세력을 축출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이루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그가 죽은 후 선조 대에 와서야 영의정에 추증되어 문묘에 배향되었다. 훗날 그의 학문과 인격을 흠모하는 후학들에 의하여 곳곳에 사당이 마련되고 서원도 설립되었다.

비는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받침돌은 자연석에 가까운 암석으로 거북의 형태이다. 비몸에는 앞면에 ‘정암조선생적려유허추모비’라는 글씨를 2줄의 해서체로 새겼으며, 뒷면에는 선생의 유배내력을 적었다. 머릿돌은 반달 모양으로 앞면에는 두 마리의 용이 엉키어 있고 뒷면에는 구름을 타고 오르는 용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비를 제작한 시기는 현종 8년(1667) 4월로, 당시 능주목사를 지내던 민여조가 건립하였으며,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송준길이 썼다.
 
 
 

화순정암조광조선생적려유허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