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행의 꿈
오래 전의 일이다.
내가 영국에 갔을 때 버킹엄 궁전 앞에서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흑마들이 끄는 마차를 타고 등장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보고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주말과 주일을 빼고 버킹엄 궁전에 늘 상주하는 여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관광객들이 그 궁전 정문 앞에서 하루 종일 진을 치고 기다려도
여왕의 마차를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운 좋게도 그 날은 여왕이 마차를 타고 외출을 하기 위하여
그 궁전 밖으로 나왔다.
관광객들은 흥분된 마음으로 입을 딱 벌린 채,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 촬영을
하느라고 바빴다.
승용차들이 달리는 도로 위를 ‘대가닥- 대가닥-’거리는 말발굽소리를 내면서
여왕의 마차가 달리고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게만 여겨졌다.
내가 생전 처음으로 본 여왕의 마차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더 기분이 좋았던 것은 그 여왕이 뒤를 돌아다보면서 살짝 손을 흔들고
미소를 지었는데, 그 때 내 눈과 그 여왕의 눈이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쳤던 것이다.
온유하면서도 평강이 배어있는 따뜻한 미소였다.
영국에서 관광을 마치고 귀국한 후에도 미소 짓는 여왕의 얼굴이 내내 지워지지 않고
한 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금도 영국여행의 기억들을 더듬어보면 선한 여왕의 미소와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아담한 이층집들과 앙증맞은 정원의 빨간 꽃들과 오래된 건축물들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세계적인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영국을 다시 한 번 여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나에게 주어질 수 있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여행사의 코스대로 버스만 타고 눈도장을 찍듯이
그렇게 바쁘게 다닐 것이 아니라,
정말 가보고 싶은 곳들을 하나씩 찾아서 깊이 음미하고 즐기는 근사한 배낭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 기회가 언제 주어질 지 알 수는 없지만,
그냥 마음 설레는 소년처럼 긴 여행의 꿈을 꾸어본다.
<소설가/ 목회학 박사 김학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