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세상사는이야기

아이 엠 sorry

오늘의 쉼터 2011. 7. 7. 11:42

    아이 엠 sorry 며칠 전, 장애인 아빠와 정상인 딸의 이야기를 담은 ‘아이 엠 쌤’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시험 기간이었고, 시계는 새벽 3시를 향해 가고 있는 늦은 시간이었다. 만약 영화를 보지 않는다면 학교에 가기 전 까지 네 시간 남짓 잘 수 있었고, 당시에 나는 매우 피곤하고 졸렸었다. 피곤함을 이기고 영화를 끝끝내 보게 한건 다코타 패닝의 훌륭한 연기도 아니었고, 아빠역인 숀펜의 진한 부성애를 담은 장애인 연기도 아니었다. 보는 내내 내 가슴 속 어딘가에서 간질간질하게 울려오는 속삭임이 영화를 끝끝내 보게 했다. 여느 영화들이 그러하듯이 영화는 결말로 치닿을수록 더욱더 갈등의 양상이 깊어진다. 하지만 모두가 예상하고, 내가 예상했듯이, 결국 영화의 끝은 모두가 행복해지는 해피엔딩이었다. 감동과 여운을 남긴 영화가 끝이 나고, 내가 원하는 결말을 본 나는, 그들의 행복한 모습에 안심하며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 쓰고 몇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서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영화는 장애인 아빠라는 이유로 사랑하는 딸을 빼앗기는 아버지의 부정을 보여주며 그 이면에 우리의 잘못된 편견과 고정관념을 꼬집고 있었다. “샘 정말 당신이 충분한 사랑을 주며 부족함 없이 딸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상대편 변호사는 영화 내내 샘에게 이런 질문을 퍼부으며 그를 헐뜯고 비난한다. 상대편 변호사는 내 모습 같았고, 우리 모습 같았다.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공립학교다. 많은 장애인 학생이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수업을 듣고 밥을 먹는다. 소수의 학생들은 장애인 친구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며 똑같이 대해주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장애인 친구들은 자신과 전혀 다른 친구다. 우리 눈에 그 친구들은 가끔 해괴한 행동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떼를 쓰는 등 신체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불쌍한 친구들이다.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마음의 거리감이 있는, 우리에게 장애인 친구란 그 정도이다. 나 역시 1학년 때 같은 반에 장애인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나를 참 많이 좋아했다. 언제나 점심시간이 되면 “다솜아 밥 맛있게 먹어” 라고 인사해주고, 진심인지 빈말인지 모르겠지만 항상 나에게 “미스코리아 같아.”라며 예쁘다고 말해주어서 같은 반 친구들의 웃음을 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자만했고 영악했다. 몸이 불편하고 우리와는 약간 다른 그 친구에게 나는 편견이 없는 양 굴었지만 사실 친구들의 칭찬과 선생님의 흐뭇한 시선을 즐기며 불편한 봉사를 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친구의 반 도움이였다. 매달 한 번씩 학교에서 하는 비누 만들기 행사, 김치전 만들기 행사 등을 할 때에도 나는 그 친구와 함께 했고, 학교에서 체험학습이라도 갈라치면 그 친구의 담당은 나였다. 나는 다른 친구보다 훨씬 그 친구에게 잘해주었고, 누가 보더라도 매우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거리감은 분명 존재했다. 한번은 그 친구가 고맙다는 의미로 나를 꼭 끌어안으며 뽀뽀를 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질렀고, 그 친구 또한 많이 놀랐는지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그 뒤로 나에게 뽀뽀를 하거나 꼭 끌어않지는 않았다. 나는 당시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 이기적이고 오만한 내 자신이 부끄럽고

     

    그 친구에게 미안하다. 분명한건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 친구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고, 편견 또한 누구보다 심했다. 하지만 영악했던 나는, 사람들이 칭찬해주는 시선을 즐겼고, 오만했던 나의 생각이 누구에게나 평등한 ‘나’라는 존재를 만들었다. 나는 요즘에도 복도에서 가끔 그 친구와 마주치지만 먼저 인사하진 않는다. 이젠 같은 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한 번도 그 친구에게 밥을 먹을 때 맛있게 먹으라고

    먼저 인사를 건넨 적이 없다. 불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 속에 나오는 상대편 변호사와도 같은 인물이었다. 사회적 편견에 찌든, 장애인은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그런 보통의 사람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에게 들린 속삭임은 그동안의 양심이었고, 죄책감이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영화 속 대사가 있다. 쌤이 영화에서 조용히 읍조리는 대사다. “샘..그냥 샘이라고 부르세요.” 그는 장애인도 아니고 불구자도 아니고 정신 지체인도 아닌 그냥 ‘샘’ 이었다. 이제 나는 조금씩 마음의 벽을 허물려고 한다. 나에게 18년 동안 가진 편견과 마음의 거리감을 한순간 무너뜨리는 건 조금 버거우니 조금씩, 조금씩 좁혀가려고 한다. 그들을 장애인이 아닌 하나의 우리와 같은 인격으로, 친구로 바라본다면 멀지 않은 가까운 미래에 진정으로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장애인친구를 '진짜 친구’로 받아들일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사회도 그들을 조금씩 ‘샘’이라고 불러주었으면 좋겠다. 내일부터는 복도에서 마주치는 그 친구에게 내가 먼저 밝게 인사하고, 밥 맛있게 먹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샘, 아이 엠 sorry.' <수필가/ 명일여고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