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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8 장 종말의 발단 2.

오늘의 쉼터 2011. 5. 15. 09:44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8 장 종말의 발단 2.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는 내가 인간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군인으로서의 의무와 공통적인 위험이 그들을 획일화시켰다 하더라도,
살아있는 사람들이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이거나
대단히 훌륭한 태도로 운명의 의지에 접근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많은 사람들,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공격할 때뿐 아니라
다른 때에도 목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으며
터무니없이 거대한 것에 대한 완전한 헌신을 보여주는
겸허하고도 아득한, 다소는 홀린 듯한 시선을 갖고 있음을 보았다.

설령 이들이 언제나 자기가 원하는 바를 믿고 있고 그렇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준비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며
그들은 소용에 닿는 사람들이었던 것이고 그러한 그들에게서 미래는 형성될 것이었다.

그리고 이 세계가 전쟁과 영웅주의를,
명예나 그밖의 낡아빠진 이상을 완고히 고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 보일수록,
표면적으로는 인간성의 모든 음성이 멀리서 들릴 듯 말 듯 울리면 울릴수록,
이 모든 것은 마치 전쟁의 외적이고 정치적인 목적에 대한 질문이
단지 피상적인 것에 불과한 것처럼 그렇게 피상적인 것에 불과햇다.
가장 깊숙한 곳에서 무엇인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었다.
새로운 인간성과 같은 그 무엇인가가. 나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그들 가운데의 대다수가 내 옆에서 죽어갔지만-
--그들은 증오와 분노도, 살륙과 파괴의 감정도
그들의 적에 대해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아니, 그들에게 있어서 적이란 그 목적과 마찬가지로 매우 우연한 것이었다.
가장 과격한 것조차도 본래의 감정은 적에 대해서 행해진 것이 아니었고
그 피비린내나는 행동은 내심의 방사이며,
새로이 태어나기 위하여 미쳐 날뛰고 죽이고 파괴하고
스스로 죽어버리려고 하는 내부에서 분열된 영혼의 방사에 불과한 것이었다.
거대한 한 마리의 새가 날에서 나오려고 싸우고 있는 것인데
그 알은 이 세계였고 따라서 이 세계는 산산조각이 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어느 이른 봄날 밤, 나는 우리가 점령한 농가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맥 없는 바람이 우울하게 간간이 불어왔고
플랑드르 지방의 높은 하늘엔 구름덩이가 흩날려가고 있었다.
구름의 뒤쪽 어딘가에 달이 떠 있는 것 같았다.
그날은 하루종일 왠지 불안했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근심이 내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나는 그 어두운 전초지에서 이제까지의 내 생활과 에바 부인과 데미안을 열렬히 생각했다.
나는 백양나무에 기대서서 움직이고 있는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남몰래 바르르 떨고 있는 하늘의 밝은 빛이 곧 커다랗게 솟아오르는 형상의 행렬이 되었다.
나의 먁박이 이상할 정도로 가냘프게 뛰고
바람과 비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피부의 상태와 선뜻선뜻 느껴지는 내부의 경각성에 의해
나는 지도자가 내 주위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구름 속에 대도시가 보였고,
그곳에서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의 광대한 풍경 속으로 떼를 지어 흩어져갔다.
그들의 한복판에 반짝이는 별을 머리에 단,
산맥처럼 거대하며 에바 부인 같은 표정을 지닌 한 사람의 힘찬 신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 모습 속으로 사람들은 마치 커다란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빨려 들어가서는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 여신은 땅바닥에 웅크리고 앉았다.
여신의 이마 위에 박힌 점이 환하게 빛났다.
마치 꿈이 그 여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신은 두 눈을 감았고 그 커다란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돌연 여신은 아루 날카로운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이마에서 별들이, 수많은 반짝이는 별들이 튀어나오고
그것들은 멋진 활 모양과 반원을 그리면서 어두운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그 별들 가운데의 하나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내게 쏜살같이 똑바로 날아오며 나를 찾는 것 같았다
---그러자 그것은 굉음을 내며 수없는 불꽃으로 작열했고
나를 솟구쳐 올렸다가는 다시 땅에 내동댕이쳤다.
우뢰와 같은 소리를 내면서 세계가 내 위에 무너져내렸다.

나는 흙에 뒤덮이고 많은 상처를 입고 백양나무 곁에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나는 지하실에 누워 있었고 포탄이 나의 머리 위에서 우르릉거리고 있었다.
나는 화물자동차 안에 누워서 황막한 벌판 위를 덜거덕거리며 지나갔다.
나는 대개 잠을 자고 있었거나 아니면 혼수상태였다.
깊이 잠들면 잠들수록 나는 무엇인가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고,
나는 나를 지배하는 어떤 힘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격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마구간의 짚더미 위에 누워 있었다.
몹시 머두워 누군가가 내 손을 밟고 지나갔다.
그러나 나의 내심은 더 계속해서 가려고 애썼다.
한층 더 강력하게 그것은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나는 다시 차 안에 누워 있었고,
그 후에는 들것인지 사다리 위에인지 누워 있었다.
점점 더 강력하게 그 어느 곳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고 있음을 느꼈고
마침내 나는 그곳에 가야만 한다는 절박감 외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드디어 나는 목적지에 도달했다.
밤이었고, 나는 완전히 의식을 회복하고 있었다.
바로 이 순간 나는 내 마음속에서 강력한 끌림과 절박감을 느꼈던 것이었다.

나는 내가 어떤 홀 바닥 위에 잠자리를 펴고 드러누워 있으며
내가 부름을 받은 바로 그곳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나의 매트리스 바로 옆에 다른 매트리스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 누군가가 누워 있었다.
그는 몸을 굽혀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위에 표지를 갖고 있었다.
그는 막스 데미안이었다.

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도 말을 할 수가 없었거나 하려고 하지를 않았다.
그저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머리 위 벽에 걸린 등불이 그의 얼굴을 비쳐 주었다.
그는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한히 오랜 시간을 그는 끊임없이 내 두 눈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천천히 그의 얼굴을 내 가까이로 가져와
우리는 거의 얼굴이 맞닿을 정도가 되었다.

”싱클레어!~” 그는 거의 속삭이듯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눈으로 그에게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는 거의 동정에 가까운 미소를 지었다.
”꼬마!”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의 입은 이제 나의 입과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그는 나직이 말을 계속했다.
”프란츠 크로머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나?” 그는 물었다.
나는 그에게 눈을 깜박여 보였다. 미소를 지을 수도 있었다.
”어린 싱클레어, 들어봐! 나는 떠나지 않으면 안 돼.
자네는 아마 언젠가 나를 다시 필요로 하게 되겠지.
크로머나 그밖의 일에 대해서 말야.
그때 자네가 나를 부른다고 해서 나는 이미 그렇게 쉽게
말을 타고 가든지 기타를 타고 가든지 할 수가 없을 거야.
그럴 때에는 자넨 자기 자신의 내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네.
그러면 내가 자네의 내부에 있음을 알게 될 거야. 알겠어?
---그리고 조금만 더!
에바 부인이 부탁했어. 만약 자네가 언젠가 나쁜 처지에 있을 때는
그녀가 나에게 주어 보낸 입맞춤을 자네에게 해주도록 말이네‥‥‥
눈을 감게, 싱클레어!”

나는 순순히 눈을 감았다.
그치지 않고 쉴새없이 피가 조금씩 흐르는 내 입술 위에
그가 가볍게 입맞추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다.
붕대를 감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마침내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자 나는 빨리 옆의 매트리스로 몸을 돌렸다.
거기에는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사람이 누워 있었다.
붕대를 감는 것은 몹시 아팠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이 아팠다.
그러나 나는 열쇠를 발견했고,
때때로 어두운 거울 속에 운명의 형상이 졸고 있는 그곳,
내 자신의 내부에 완전히 들어가기만 하면,
나는 단지 그 어두운 거울 위에 몸을 굽히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이젠 완전히 데미안과 같은,
내 친구이자 지도자인 데미안과 같은
내 자신의 모습을 거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ㅡ 끝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