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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에게 보낸 편지 /앙드레 고르

오늘의 쉼터 2011. 5. 14. 15:46



83세의 앙드레 고르는 자다가 깨어나 82세의 아내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지난 9월 한 프랑스 철학자와 그의 아내가 동반자살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두 사람이 누운 침대 곁에는 "화장한 재를 둘이 함께 가꾼 집 마당에 뿌려달라"
는 편지가 남아 있었다. 프랑스 철학자의 이름은 앙드레 고르. 사르트르가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고 평가한 신마르크스주의 사상가이자
녹색정치의 창시자였다.

둘의 자살소식은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고르는 1983년 아내 도린이 척추수술 후유증으로 거미막염이라는 불치병에 걸리자
모든 사회활동을 접고 간병에만 매달린다.

고르는 아내의 죽음이 가까워오자
그들의 사랑을 글로 남기기 시작한다. 그 결과물인
'D에게 보내는 편지-어느 사랑의 역사'(학고재 펴냄)가 국내에 출간됐다.
책은 어느 부분을 읽어도 가슴이 찡하다. 고르는 글을 써야 하는 심정을 이렇게 밝혔다.

"우리가 함께 한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나는 많이 울었습니다.

나는 죽기 전에 이 일을 해야만 했어요.
우리 두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우리의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글을 대중들을 위해서 쓰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아내만은 위해 이 글을 썼습니다."

 

여든세 살의 철학자가 여든두 살의 아내에게 바친 편지는

그들의 동반 자살 이후 프랑스와 독일에서 최고 베스트셀러가 됐다.

 

책에 드러나는 한 지성의 아내에 대한 사랑은 눈물겹다.

"당신은 라 졸라의 드넓은 해변에서 바닷물에 두 발을 담근 채 걷고 있습니다.
당신은 쉰 두살입니다. 당신은 참 아름답습니다."


책의 마지막에는 그가 아내와 함께 죽을 것을 결심한 듯한 귀절이 있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관 속에 누워 떠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지 않을 겁니다.

캐슬린 페리어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그러나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젊은 날의 앙드레 고르 & 도린 케어"

 

자기 품에 안긴 그녀의 희고 매끄럽고 따뜻한 몸을 그는 오래도록 바라봤다.  

말 없이, 숨을 멈추고, 찬탄에 차서. 이곳은 1947년의 스위스 로잔.돈도 없고 나라도 없는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 앙드레 고르(Andr? Gorz·1923~2007)의 인생에 영국 여자

도린 케어(Doreen Keir·1924~2007)가 총총히 뛰어들었다.

남루한 셋방에서 처음으로 동침한 뒤 지난 9월 프랑스 시골마을에서 동반자살 하기 전까지,

꼭 60년간 그들은 한 쌍의 밤꾀꼬리처럼 정답게 살았다.

이 책은 84세의 남편이 스무 해 넘게 불치병과 싸운 83세의 아내에게 보낸 연애 편지다.

고르는 유럽의 대표적인 언론인이자 철학자다.

렉스프레스지(紙) 기자를 거쳐 누벨 옵세르바퇴르지(誌)를 공동 창간했고,

스승이자 친구였던 장 폴 사르트르가 별세한 뒤 그가 창간한 레탕모데른지(誌)를

이어받았으며, ‘생태주의’를 창시했다.

그는 비엔나에서 유대인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2차대전이 터지자 부친은 스위스를 여행하던 아들에게 “돌아오지 말라”고 명했다.

16세에 망명객이 된 고르는 로잔 대학에 다녔다.

전공은 화학공학이었지만 그를 사로잡은 것은 실존주의였다.

뿌리 잃은 자의 고독과 살아 남은 자의 환멸이 그를 짓눌렀다.

사랑이 그를 구했다.

발랄한 도린을 처음 봤을 때 그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청년들은 도린에게 귀엣말했다.

 “홀린 듯 당신을 보는 저 남자(고르)는 무일푼의 유대인”이라고.

그러나 그녀가 사랑하게 될 남자는 그들이 아닌 그였다.

둘을 이어준 것은 외로움이었다. 도린은 일찍 부친을 잃었다.

모친은 그녀를 대부(代父)에게 맡기고 가출했으며,
간간이 딸을 보러 올 때마다 돈 때문에 대부와 다퉜다.

전쟁 통에 도린은 배급 식량을 고양이와 나눠 먹으며 혼자 살았고, 종전 후엔 유럽을 방랑했다

로잔에서 고르와 만났다.

책에서 고르는 기억을 복기하며 생의 매 순간을 다시 살았다.
“당신을 사랑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젊은 날의 오만을 사죄하고,
“당신은 내게 삶의 풍부함을 알게 해 주었다”고 감사했다.

1974년 도린이 근육 위축병에 걸리자 고르는 신문사를 은퇴하고 그녀와 함께 은거했다.
그는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남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본질적인 단 하나의 일은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일세.”

고르는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고 고백을 맺었다.

1년 뒤인 올해 9월 22일, 부부는 소도시 보농에서 극약을 주사해 함께 목숨을 끊었다.

시신은 이틀 뒤 발견됐다.
유언에 따라 지인들이 재를 부부가 말년을 보낸 집 뜰에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