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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 10.- 켄트 너번

오늘의 쉼터 2011. 5. 8. 17:11

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 10./ 켄트 너번

 

26. 세월의 무게

너의 인간에 대한 애정은 연장자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단다.
아이들처럼, 연장자들도 일종의 부담이다.
그러나 아이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어떠한 희망이나 약속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무거운 짐이자 걸림돌이요,우리 자신의 운명의 거울이기도 하다.
과거의 사실을 알아내고 연장자들이 제공했던 지혜를 아는 것,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그들의 삶에 경의를 표하는 것에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커다란 애정이 필요하다.
나는 네가그러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단다.

이런 문화 속에서는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을게다.
우리는 연장자들에 대한 느낌을 잃어가고 있다.
지긋하게 나이든 노인들,은퇴한 사람들처럼
그들은 삶의 무대 뒤에서 뿌옇게 가리워져 있으며
슬프고 회색빛이 감도는 존재이다.
그들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자신들에게 대해 두려워하거나,
혹은 부당하게 소외당하는 것을 묵묵히 참아낸다.
그들은 세월이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던 지혜를
더이상 사랑하거나 존졍하거나 추구하지 않는다.

연장자들로부터 너는 두가지 마음을 발견할 기회를 얻을 것이다.
어떤 이는 너에게 매료될 것이고,
너의 젊음이 자신의 노년으로 옮아 간 것처럼 느낄것이다.
다른 이들은 자신이 볼품없고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 때문에 너에게 위축당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너를 기쁘게 해주기를 간절히 원하며
너에게 아주 작은 것만을 요구하기 때문에,
너는 그들과의 만남을 대단히 즐겁게 느끼게 될 것이다.
설령 그들이 너에게 어떤 부담을 주던간에
너는 늘 조심스럽게 그들을 보살펴야 한다.
너는 그들의 과거의 모습이며,그들은 너의 미래의 모습이다.
바로 이 순간에도 너는 네 자신의 내부에
네 나이만큼의 씨앗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너를 보는 매순간마다 자신의 어린시절의 메아리를 들을 것이다.

너는 많은 노인들이 쾌적하고 즐거운 상태에
처해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바로 젊은이들이 그러하듯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너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자신들과
자신들의 감정들을 생각해 보라고 요구할 것이다.
네가 그러한 연장자를 만날 때, 그들에게 무례한 태도로 대하면 안된다.
어린이들처럼 연장자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의존하고 있으며,
사회적 지위의 상실을 매우 두려워한다.
그들은 죽음을 앞에둔 불확실한 미래에 살고 있으며,
그들이 열심히 일해서 창조했던 세계가
힘있는 다음 세대에 의해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을 괴로워하고 있다.
그들의 육체는 망가지고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동년배의 사람들 속에서만 자신을 찾으려 한다.
젊은이들은 그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추억 속에서 살아간다.
연장자들을 만날 때 너는 그들의 불쾌한 태도에 상심하지 말아라.
네가 지쳤을 때, 혹은 아프고 화가 나고 고통스러울 때
유쾌하지 못하듯이, 많은 노인들이 그런 상태에서 살고 있단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행동의 표면을 꿰뚫어 보는 지혜는
쉽게 얻어질 수 없는 것이란다.

그들이 비록 매우 단순하고 제약된 평범한 생애를 보냈다 하더라도,
그들은 세상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있다.
다른 어떠한 과거 세대도 너의 세대와는 거리가 있을 것이고,
그들의 어떠한 삶도 지금 시대와는 유사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그들을 지나쳐서
앞으로 질주해가는 너희들의 생명수가 담겨 있다.
네가 그들에게 말을 걸때에
너는 너를 배출한 이 세상에 좀더 가까와질 것이다.
그 점, 단지 그것만을 보더라도, 너는 그들을 존졍하고,공경하며,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연장자들을 대할때 동정심으로 치닫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보호한답시고 나서는 많은 이들이 연장자들을 어린애 취급하고,
후원이랍시고 그들의 인격을 얕잡아본다.
연장자들에게 큰소리로 말을 걸거나,
마치 얼간이를 대하듯 하는 경우도 있다.
연장자들이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걱정하는 것을
유치한 행위로 치부하고 그들의 행동과 태도에서
그들이 주었다고 주장하는 연장자에 대한 존경은 형편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런 사람들은 연장자들을 무시하는 만큼
그들 스스로도 손해를 입게 될 것이다.
그들의 행동을 보면서 연장자들은 그들의 자애심을 비춰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무기력만을 비춰주는 거울을 손에 쥔다.
진실한 걱정과 존경은 약함에게 봉사하지만
진정한 인간성과 강인함을 비춰준다.
돌보거라, 경청하거라, 웃거라, 심지어 도전하기도 해보거라.
연장자들은 항상 말과 행동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단다.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연장자들은 결점에서조차도 위엄을 추구하고 중요시 한다는 것을.
그들이 원하는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다른 젊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이 매우 귀중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며,
여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 것이다.
네가 진정한 마음으로, 즉 가식적인 존졍으로 그들을 무시하지 않고
동정심으로 그들을 마음 상하게 하는 일없이 다가갈 수 있다면,
또한 그들의 경험의 결과들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 비록 그 결실이 매우 단순하다 할지라도 -
너는 애정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너는 그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27. 세월이 남기는 지혜

지난 주에 나는 단 니담을 묻고 왔다.
단은 95살에 죽었다.
그는 레드 레이크(오지브웨이족)의 가장 연로한 세습 족장이었다.
몇 년전 구술역사연구를 하고 있었을때, 나는 그와 알게 되었다.

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그의 집으로 젊은이들을 데려가곤 했다.
그들은 거실에서, 수우족에 대항해 싸웠던 선조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대공황의 흉년동안 인디언들이 삶을 꾸려가던 것에 대한
그의 회상들을 들으면서 참을성 있게 앉아있곤 했다.

젊은이들은 언제나 주의해서 듣지는 않았는데,
단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젊은이들에게 과거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이 귀기울여 듣지 않더라도 듣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단은 항상 우리를 환영했다.
우리가 방문할 때면 항상 전통적인 복장을 차려입고
문까지 나와서 맞아주었다.
그는 결코 일찍 돌아가 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
그의 표정에 피곤한 기색이 완연할 때조차도,
그는 최선을 다해 젊은이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그들의 말에 열중했으며, 딴 생각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때때로 그는 지루하게 반복하거나
한 주제에 대해 너무 길게 얘기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 학생들은 서로를 쿡쿡 찌르거나
눈동자를 굴려대며 장난질을 하였다.
단은 그들이 흘깃거리는 것을 보았으나 전혀 모르는 체 했다.
그는 세월이 안겨 준 통찰력과 너그럽고 애정어린 유머로
젊은이들의 경솔한 태도를 못본 체 하였다.

지난 몇 년동안 단은 눈에 띄게 쇠약해져갔다.
여기저기로 진료소를 옮겨다녔으며,
침대 밖으로 나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 중에도 그는 항상 기꺼이 우리를 맞아 주었으며, 언제나 친절했다.
그의 몸이 망가져 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고,
결국 더 이상 살 가망이 없어졌을 때
기꺼이 그 자신을 미지의 세계에 맡겼다.
나는 꺼져가는 생애를 그처럼 평온하고 침착하게
받아들이는 이를 한 번도 보지 못했었다.

어느 누구도 그가 죽었을 때 금방 알아차리지 못했다.
단은 장수했으며그의 살아 생전에는 추억될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가 죽고나니,그와 함께 보냈던 많은 추억들이 밀려온다.
그의 용맹한 할아버지가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싸웠던
전투에서 돌아오던 당시의 일들을 얘기할 때, 그의눈빛은 불타올랐다.
그가 처음으로 Model-T(1908-28년 포드사가 개발한 자동차)를
타러 갔을 때를 얘기할 때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한 페이지의 글 또는 어린아이에게 해주는 동화보다
훨씬 더 생생한 이야기들로 그는 삶을 꾸려온 것이다.

그는 95년이라는 세월 동안에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태도와 숭고한 감각을 익혀온 것이다.
그는 세월이 지혜를 깨달았으며, 항상 과거와 접촉하고 있었다.
어떠한 것도 그것들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를 방문하던 젊은이들이 그를 잃은 상실감을 느끼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나빠진 시력과 점으로 얼룩덜룩해진 피부를 가진 노인이
거니는 시린 장면들을 그들이 보았는지도 의문스럽다.
그의 얘기를 듣기나 했는지,
주의를 조금이라도 기울였는지도 의문이다.
그들은 살아갈 미래가 있지만, 단은 과거 속에서만 살아 있었는데.....

젊은이들 중 어느 누구도 그의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다른 갈데가 있을 수 있고 또한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이 있다.
단이 착한 사람이었다고 말해진다면 다행일 것이다.
사람들은 모든 인간의 삶의 지속을 위해 명예롭게 죽고, 곧바로 땅에 묻힌다.

그러나 죽은 이들이 그렇게 쉽사리 묻혀버리지만은 않는다.
그들의 생명은 우리들 생활의 주변에닿아 있으며,
우리들이 지금의 우리이게끔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그들이 세운 세계 속에 살고 있으며
그들의 존재 속에서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

단을 방문했던 젊은이들도 곧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그들은 그의 이야기를 살아있게 할 것이며,
스스로 그 이야기들중의 하나로 되어 갈 것이다.
그들이 Model-T를 자식들에게 보여줄 때
친구와 함께 타러 가곤 하던 한 노인의 얘기를 들려줄 것이다.
그들의 아이들이 협정이 조인될 당시에 대해 물어올 때,
한 노인이 그 시기에 살았으며
그는 기병대가 대포를 오지브웨이족 캠프를 향해
조준하고 있을 동안에도 카드놀이를 즐기던 장면을
직접 보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말해 줄 것이다.

그들이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인생의 지혜를 쌓아감에 따라,
그들이 서로 속삭이고 낄낄대고 쿡쿡거리며 장난질할 때
은근히 미소만 지어주던 노인의 지혜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죽음이 닥쳐옴에 따라,
죽음에 근접해가던 그 노인의 평화로움과 침착함을 기억해 낼 것이며,
아마도그 기억은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줄 것이다.
그들이 늙을 즈음에, 그는 어느새 그들의 친구가 되어있을 것이며,
그의 발 언저리에 둘러앉아 얘기를 들을 때보다도
한층더 그를 가깝게 느낄 것이다.
그들은 지혜를 성숙시키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 것이다.

그것은 연장자들의 태도이다.
우리가 젊을 때는 그것이 다소 무기력하게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일정한 때가 되기전에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만남은 우리를 더욱 현명하게 만들어 주었다.
젊은이들이 단을 알지 못했어도,
아마 세월이 그들을 더욱 현명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단 니담의 죽음으로 우리는 좋은 사람을 잃게 된셈이다.
그러나 모든 죽음들이 우리 가운데 계속 남아있는 것처럼,
그는 우리 가운데 계속 살아있으며,
우리의 추억속에 남아 삶의 잊혀진 관심속에서 축적되어 있을 게다.
그의 죽음은 비통한 사실이지만, 그의 생애는 축복스러운 것이었다.
그를 알고 있는 누구에게나 그는 과거에 대한 더 많은 지식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를 우리에게 준거란다.

 

 

28. 죽음

죽음은 누구에게나 의문이다.
잉태나 사랑처럼 우리를 모든 것과 연관지우는 기반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들 중에 누구도 그게 어떤 것인지,
무엇을 예고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섰다가 자기들이 본걸 말해주기 위해
죽음에서 되돌아 온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죽음에 관한 티벳인들의 책과 이집트인들의 책같은
종교적인 기록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우리는 모든 믿음과 종교로부터 내세를 약속받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것이 진실인지를 완벽하게 알 수는 없다.
모든 이들이 혼자서 죽음에 이를 것이고,
우리들 개인을 위한 개인적인 준비들만이 남아있다.
네가 알고 있는 죽음은 무엇이냐?

아주 오래 전에 일식을 직접 본적이 있었다.
높은 언덕의 꼭대기에 올라 앉아 때를 기다렸다.
짧은 해돋이가 지난 이른 아침이었다.
새들이 나무 위에서 지저귀고 있었고,
멀리 산허리에서는 젖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으며,
말들은 잡초들 속에서 부스럭대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태양이 빛을 잃기 시작했단다.
말들이 잠잠해지고 소들 역시 조용히 있었다.
새들도 더이상 지저귀지 않았다.
태양이 달 뒤로 숨자 대지가 온통 고요해졌다.
소들은 주저앉았고, 새들은 날개죽지 사이로 고개를 파묻었다.

감추어진 태양의 희뿌연 해무라기만이 적막한 어둠을 비추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었다. 적막했다.
태양의 빛을 잃은 세상은 칠흑같았다.
그 순간, 중대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더 이상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이다.
나는 절멸을 감지했지만,절멸은 어떤 것 속에 있었다.
수천 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곳에서 돌아가신 삼촌이 문득 떠올랐다.
나는 그의 공포와 외로움을 생각했고,
태양이 빛을 잃은 지금 순간에
잠시만이라도 같이 있을 수 있다면 하고 간절히 바랬다.

나는 내가 깨달은 게 뭔지 모른다.
내게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훨씬 초월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죽음과 관련된 어떤것이란 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죽음은 우리 모두가 가야만 할
거대한 암흑과도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평화가 있고, 그것은 모든 이해관계를 초월할 것이다.
죽음의 공포가 나를 엄습해 올 때,
아픔과 커다란 위험에 처할 때,
나는 새들이 날개죽지에 고개를 파묻던 그 언덕을 떠올린다.
우리들 모두는 - 나, 새들, 소들, 말들 - 삶
그 자체보다 훨씬 심오한 것을 경험한 것이다.

우리들 자신은 자취를 감추었고, 우리의 개성은 제거되었다.
그 절멸에 대항할 어떠한 추진력도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매우 거대한 것속에 함몰되었고,
지긋이 껴안듯 긴 숙면을 받아들였다.
산허리에서의 그 순간이 진실이라면 -내 생각에 그랬지만- 
우리는 자신에 대해 헤아리는 아무런 가치의 평가없이 죽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미세한데 반해, 죽음은 너무 거대하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단지 자아의 상실이지만,
그 자아는 그림자가 태양이있음을 알게 하듯이 영원한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죽음은 우리가 인식하는 삶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고,
비통해할만한 가치의 상실이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말거라.
그것은 너무 커서 환영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위대한 일이기에 두려워할 일도 아니다.
우리는그 둘 모두를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은 살아있는 우리 삶의 유형들을 통제하기 위한
우리의 수단이기도 하거니와 자연의 광대한 영속성 속으로]
우리를 절멸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전체를 포괄하는 영속적인 평화에 참여하는 거란다.

이 두가지 경우에 있어서, 진실은 우리 것이란 걸 믿게 된다.
태양이 빛을 잃는 동안, 산허리에 서있던 그 짧은 순간 동안에,
나는 삶의 상실에 대한 좋지 않은 느낌을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그 대신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획득의 느낌을 감지했고,
내게 있던 모든 경계들을 광대한 평화 속에다 던져버렸다.

만약 그게 죽음의 순간이었다면, 죽음은 전혀공포스러울 게 없으며,
우리가 영원한 조화음 속을 통과하는 순간으로써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게다.
우리가 당장 그 하모니를 듣지는 못하더라도.

아마 우리는 커다란 공허와 침묵으로 그것을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현혹당해선 안된다.
그 광대함은 텅빈 것이 아니라 존재들로 가득채워져 있는 거란다.
침묵조차 소리를 지닌 것이듯이.

 

 

에필로그

아버지의 성찰
내가 이 책의 집필을 마칠 무렵에
태양은 8월의 하늘에 숨막힐듯이 내리쬐고 있었다.
지금은 늦여름 - 휴식의 시기이고 결실의 시기이며,
점차 그림자가 땅위에 길게 늘어지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나는 8월이 거의 끝나가는 날들을 경외하곤 했다.
그 날들은 마치 정지해 있는 시간처럼 보였다.
그러나 여름은 그 기약을 포기했고
바람이 날카롭게 밤하늘을 가르는
겨울의 어두운 속삭임에 자리를 넘겨준다.
이제 나는 그러한 나날들을 사랑한다.
그들의 침묵에 지혜가 있다.
땅에서 봄의 기약이 그들의 소리를 들려준다.
그러나 아직 그 빛은 얇고 미미하고 동물들은 멀리서 조심스레 보고 있다.
끝마치기에 좋은 때다.

계절의 중년은 역시 나의 시간이다.
땅과 같이, 나는 나의 삶의 변화를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나는 나의 뒤에 따라 올 너의 청춘의 기약을 볼 수있다.
너의 희망의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날카롭고 신선한 너의 꿈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또한 삶의 더 냉혹한 경계심과 더 어두운 메아리와 함께
또다시 한 세대의 지식이 오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짧은 순간 동안나는 아버지의 아들이고,
아들의 아버지인 한 세대에 존재한다.
이 위치는 좋은 곳이고, 그리고 그것이 나를 변화시켰다.
나는 이제 더욱 인내할 수 있다. 땅에서 자라나는 농작물처럼,
나는 기다림의 시간과 활동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었다.
내가 경작하는 씨앗은 단지 그것들이 성숙하는 때에 꽃이필 것이다.
내가 그것을 재촉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더 깨끗해졌다.
나의 젊은 시절의 욕망과 꿈은 보다 간단한 진실들에 안주했고,
일상의 친절이 때로는 충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더욱 기쁜 마음으로 무거운 짐을 견딘다.
가족의 즐거운 무게와 부성애가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었고,
나는 더욱 기꺼이 장애물들과 삶의 한계들을 맞아 들이겠다.
그리고 나는 사랑에 대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의 삶에서 많은 사랑이 오갔고
나는 더욱 조심스럽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더 상냥해졌다.
그것은 내가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많은 접촉과 눈짓,
결코 보내거나 받지 않는 편지들이
얼마나 많이 쓰여지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은총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한 순간에 어떤 한 장소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한 손이 꺼려할 때 다른 손이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면,
내가 공포에 빠졌을 때 용기를 가졌거나 혹은 용기를 낼 때 공포를 가졌다면,
내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요"라고 말했다면,
내가 돈을 더 많이 혹은 더 적게 가졌다면,
또는 새벽에서 1,2마일더 가까이 태어났다면,
내 삶의 역사와 꿈은 그 거리만큼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것들에 나는 고맙게 생각한다.
그 기회를 나는 의무보다는 선물로써받아들였다.
그러나 또한 어떤 날에는 타락에 빠지거나,
쓸데없는 일을 벌이거나사랑이 텅비어 있었던 적도 있다.
그럼에도 이 중년은 좋은 시절이다. 나의 젊은 시절보다도 이곳이.

너는 너 자신의 때에 이 시절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신선한 열정의 시절이다.
그것을 포옹하거라.
그것을 축복하거라.
그러나 너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항상 상냥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거라.
우리는 모두 우연의 산물이고,
어떤 땅이 8월의 태양 아래 갈색으로 놓여있는 동안에
왜 어떤 땅은 꽃들이 만발하는지를 아무도 말할 수 없다.

주위를돌 아보거라.
너와의 차이를 떠나서 바라보거라.
그들의 꿈이 너의 꿈보다 작은 것은 아니며,
삶에서 그들이 선택한 것이 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베풀어라. 네가 할 수 있는 한,
네가 가진 것은 무엇이든 베풀어라.
주는 것이 곧 사랑하는 거란다. 주지 않는 것은 시들어 버린다.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보다 네 삶의 수확물을 돌보는 일에 열중하는 것을 그만두고,
너의 삶을 의미있고 마음이 평화롭게 되도록 만들거라.

밖에서는 지금 산들바람이 일고 있다.
나뭇잎은 춤추고 꽃들은 바람에서 얼굴을 돌린다.
멀리서 한 청년이고독하게 일어나고 있다.
유령을 부른 듯. 살아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란다,
나의 아들아. 살아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