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문학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2.

오늘의 쉼터 2011. 5. 6. 21:09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2.

 

 

베르테르는 그녀를 향해 두 팔을 내밀었으나, 그녀를 만류하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소파에 머리를 기댄 채 마룻바닥에 누워 반 시간 이상이나 그 자세로 그냥 있었는데,
인기척이 나는 바람에 제정신을 차렸습니다.
하녀가 식사준비를 하려고 들어왔던 것입니다.
베르테르는 방 안을 오락가락하다가,
이윽고 다시 혼자만 있게 되자 옆방 문 앞으로 다가가서 나직한 소리로 불렀습니다.
"로테! 로테! 딱 한 마디만 작별인사를 하게 해 줘요"
로테는 잠자코 있었습니다.
베르테르는 기다렸습니다.
다시 청을 하고는 또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그는 문에서 떨어져서 외쳤습니다.
"잘 있어요, 로테! 영원히 잘 있어요!"

베르테르는 걸어서 성문 앞에 다다랐습니다.
문지기들은 그와 안면이 있는 터라, 말없이 통과시켜 주었습니다.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11시경에야 그는 집으로 돌아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하인은 베르테르가 모자를 쓰지 않은 채 돌아온 것을 알아챘으나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옷을 벗겨 주었습니다.
옷은 함빡 젖어 있었습니다.
모자는 나중에 어느 바위 위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곳은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 바위의 사면이었습니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어두운 밤에 어떻게 굴러 떨어지지도 않고
거기까지 올라갔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들 말하고 있습니다.
베르테르는 침대에 드러누워 오랫동안 잤습니다.
이튿날 아침, 베르테르의 부름에 따라 하인이 코피를 가지고 방에 들어갔을 때,
그는 뭔가를 쓰고 있었습니다.
로테 앞으로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눈을 뜨는 것도 마지막, 드디어 마지막 눈을 나는 떴습니다.
이 눈은 아아, 이제 다시는 태양을 보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흐릿하게 안개가 끼어서 태양이 가려져 있습니다.
자연이여, 슬퍼하라!
네 아들, 네 친구, 네 사랑하는 자가 그 종말로 다가가고 있는 거니까.
로테! 이것이 최후의 아침이다,하고 자신에게 타이르는 것은 정말 기묘한 기분입니다.
어렴풋한 꿈결 같다고나 할까요? '최후!'
로테!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알 수가 없습니다. '최후!'
지금 나는 이렇게 조금도 힘을 상실하지 않고 꿋꿋이 서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내일이면 쭉 뻗어서 마룻바닥에 드러누워 있을 것입니다.
죽음! 그것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우리는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몇 번이나 나는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존재의 처음과 마지막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만큼 한정된 세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직 나는 내 것이요, 또한 당신의 것, 당신의 것입니다.
아아, 사랑하는 이여!
그것이 한 순간이 지나면 헤어지고 떨어져 나가서......아마도 영원히?......아니, 로테, 아닙니다.
어떻게 내가 죽어 없어져 버린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존재해 있는 것입니다! 죽어 없어져 버린다......
그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내 가슴 속에 아무런 실감도 전해 주지 못하며, 공허하게 울리는 말에 불과합니다...
로테, 죽어서 차가운 땅 속에 묻힙니다. 답답하고 어두운 곳에!

철없던 어린 시절, 나에게는 세계만큼 소중한 여자친구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소녀가 죽었을 때 나는 그 영구를 따라 묘지로 가서
관이 무덤 속에 내려지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관 밑에서 밧줄을 빼냈습니다.
이윽고 최초의 흙이 한 삽 관 위에 끼얹어졌습니다.
흙은 관 뚜껑에 부딪히며 둔한 소리를 내었습니다.
그 소리는 차츰 작아져 가더니, 마침내 관은 완전히 흙에 덮였습니다.
나는 그 무덤 곁에 쓰러졌습니다. 마음 속 깊이 충격을 받고 갈기갈기 찢어진 심정으로.
그러나 나는 그 때 나 자신이 어떻게 되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죽음! 무덤! 이 말들의 뜨슬 나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아, 어제의 일을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해 주십시오!
그때가 내 목숨의 마지막 순간이 었더라면 좋았으련만.
아아, 나의 천사!
처음으로, 처음으로 아무런 의심도 없이 내 마음 속 깊이 환희가 불타올랐습니다.
로테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
로테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
지금도 내 입술 위에서 타고 있습니다,
당신의 입술에서 번져 나온 거룩한 불꽃이. 새롭고 뜨거운 환희가 내 가슴 속에 깃들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해 주십시오!
아아,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 진심어린 눈길에서, 최초의 악수에서 나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떨어져 있을 때, 알베르트가 당신 곁에 있는 것을 보거나 하면,
또다시 열병과도 같은 의심이 일어나서 의기소침해지곤 했습니다.
기억하고 있습니까?
언젠가의 그 고약한 모임에서 당신은 나에게
말을 걸지도 못하고 손을 내밀지도 못하고 꽃을 보내주었던 그 일을.
아아, 그 꽃을 앞에 두고 나는 한밤중까지 꿇어앉아 있었습니다.
그 꽃이 나에게 사랑을 입증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아! 마음 속에 새겨진 그 확신도 흐려져 갔습니다.
충만한 천상의 힘에 의해,
또 눈에 보이는 성스러운 증표에 의하여 하느님의 은총을 알고 난 뒤에도,
이윽고 그것이 신자의 마음 속에서 차차 희미해져 가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무상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제 당신의 입술에서 맛보고 지금 내 가슴으로 느끼고 있는
이 불타는 생명은 영겁토록 소멸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로테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
이 팔은 로테를 포옹하였다,
이 입술은 로테의 입술 위에서 떨었다,
이 입은 로테의 입데 닿아 말도 나오지 않았다,
로테는 내 것이다! 그렇습니다, 로테. 당신은 내 것입니다! 영원히.

알베르트는 당신의 남편,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남편! 그것은 이승에서만의 일이쟎습니까?
이승에서는 죄가 되겠지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남편의 품에서 당신을 빼앗아 내 품에 안으려 하는 것은. 죄?
좋아요, 그러므로 나는 나 자신에게 벌을 내립니다.
나는 이 죄의 성스럽기까지 한 기쁨을 마음껏 맛보았습니다.
생명의 향기와 힘을 들이마셨습니다. 그 순간부터 당신은 내 것이 되었습니다!
아아, 로테! 나는 먼저 갑니다.
나의 아버지요, 당신의 아버지인 그 분에게로 가서 하소연하겠습니다.
그러면 그 분은 당신이 올 때까지 나를 위로해 주시겠지요.
당신이 오면 나는 기쁘게 맞이하여, 영겁의 아버지가 계시는 앞에서 당신을 그러안고,
영원한 포옹을 계속하며 함께 있을 것입니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환영을 그리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무덤 바로 곁에 와서 더 한층 또렷하게 느낍니다.
우리는 결코 죽어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시 만납니다. 당신 어머니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당신 어머니를 찾아뵙겠습니다. 나는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아, 그리고 나는 당신 어머니께 내 마음 속을 모조리 다 털어 놓을 것입니다!
당신을 꼭 닮은 그 분께......

11시경에 베르테르는 하인에게 '알베르트가 돌아왔을까?'하고 물었습니다.
'네, 그 분의 말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고 하인은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베르테르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개봉된 쪽지를 하인에게 주었습니다.
'여행을 떠날 계획인데, 권총을 좀 빌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부디 안녕하시기를 빕니다'
로테는 그 전날 밤 거의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전부터 두려워했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것은 뜻밖에,
전혀 걱정조차 하지 않았던 그런 형태로 일어났던 것입니다.
평소에는 맑게 흐르던 순결한 피가 열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끓어오르고
갖가지 생각이 아름다운 마음을 어지럽혔습니다.
그녀가 가슴깊이 느끼고 있었던 것은
베르테르와의 포옹에서 일어난 불길이었을까요,
그의 무례에 대한 노여움이었을까요,
아니면 지금의 자신을 전의 자신과 비교하여 느끼는 불쾌감이었을까요?
전에는 그토록 아무 거리낌없이 구김없는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신뢰감을 가질 수 있었는데......

남편이 돌아오면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어제 그 일을 어떤식으로 고백해야 할까?
그대로 고백해도 켕길 것은 없지만,
그러면서도 어쩐지 고백하기가 망설여지는 그 순간의 일을,
벌써 오랫동안 두 사람은 베르테르에 대한 이야기를 피해 오고 있지 않았는가,
그런 판에 이쪽에서 먼저 침묵을 깨고,
하필이면 이렇게 거북스러운 계제에
그가 예상조차 하지 않았을 사건을 고백해야만 옳을까?
베르테르가 왔었다는 말만 들어도 남편은 언짢아할 텐데,
어떻게 그런 뜻밖의 상황을 입밖에 낼 수 있단 말인가!
또 남편이 공평한 눈으로 아무런 편견없이
자기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 줄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을 속일수도 없는 일 아닌가.
자기는 언제나 투명한 수정알처럼 숨김없는 자세로 남편을 대해 오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그녀를 괴롭히고 곤혹에 빠뜨렸습니다.

베르테르는 이미 그녀로서는 잃어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잃는다는 건 가슴아픈 일이었지만 별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녀를 잃으면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그였지만.
뚜렷이 자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부부 사이에 뿌리를 내린 갈등은 지금 로테의 마음을 무척이나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총명하고 선의적인 두 사람이 남모르는 마음의 엇갈림이 원인이 되어
서로 침묵하기 시작하고, 서로서로 자기가 옳고 상대방이 부당하다고 생각함으로써
사태는 꾀고 악화되어 마침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중대한 순간에 그 매듭을 푸는 일이 불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되기 전에 두 사람이 원래 너그럽게 이해하는 마음으로
사랑과 관용을 북돋우고 속마음을 서로 열어 보였더라면,
우리의 벗은 어쩌면 구원의 여지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거기에 또 한 가지 특별한 사연이 곁들여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편지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베르테르는 이세상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알베르트는 몇 번이나 그에 반론을 제기하였고,
로테와의 사이에도 때때로 그것이 화제에 올랐습니다.
알베르트는 자살이라는 행위에 대하여 철두철미 반감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평소의 그에게서는 불 수 없는 신경질적인 태도로
자살 계획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없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 남편 말은, 한편으로는 로테를 안심시키고,
그녀가 마음 속으로 끔찍한 광경을 상상할 때의 위안이 되기도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태도 때문에 현실적으로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 걱정을 남편에게 말하기를 꺼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알베르트가 돌아왔습니다.
로테는 황망하게 그를 맞이했습니다.
남편은 밝은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일이 완전히 처리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웃마을의 관리라는 사람은 완고하고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길이 나빴던 것도 그를 불쾌하게 했습니다.
별일 없었느냐고 그가 물었을 때
로테는 얼른, 간밤에 베르테르가 왔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알베르트는 우편물이 온 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편지 한 통과 소포가 몇 개 와서 방에 놓아 두었다는 말을 듣고
알베르트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로테는 혼자 남았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편이 돌아왔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에 새로운 감명을 주었습니다.
남편의 관대함과 사랑,
그리고 어쩐지 남편을 뒤따라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평소에 곧잘 그랬듯이 일거리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남편은 바삐 소포를 끄르기도 하고, 편지를 읽기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사연도 섞여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로테가 두세 마디 물어 보니까,
남편은 간단하게 대답을 하고 책상에서 뭔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은 이렇게 1시간 정도 함께 있었는데, 로테의 마음은 어두워져 갔습니다.
자신의 마음 속에 찜찜하게 걸려 있는 일은
설령 남편의 기분이 아주 좋을 때라 하더라도
고백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것을 숨기고 눈물을 삼키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한층 괴로워지는 것이었습니다.

베르테르의 심부름을 온 하인이 나타났을 때 로테의 당혹은 극도에 달했습니다.
하인은 알베르트에게 쪽지를 전했습니다.
알베르트는 침착한 태도로 아내를 보고 말했습니다.
"권총을 빌려 드려요" 그러고는 하인을 향해
"여행 잘 다녀오시기를 바란다고 전하게"하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벼락처럼 로테의 가슴을 때렸습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는데,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 지조차도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천천히 벽 쪽으로 가서 떨리는 손으로 권총을 내려 먼지를 털고, 그러고는 망설였습니다.
만일 알베르트가 의아스런 듯한 눈매로 그녀를 재촉하지 않았더라면
더 오랫동안 머뭇거렸을 것입니다.
로테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그 불길한 무기를 하인에게 내주었습니다.
하인이 돌아가자 로테는 일거리를 챙겨 가지고
형언할 수 없는 불안한 마음으로 자기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끔찍한 사태를 그녀 자신에게 예언하였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발 아래 엎으려 어젯밤에 일어났던 일과
지금 자신이 예감하고 있는 것을 다 고백해 버릴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 봤자 그 결과가 바람직하게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을 설득하여, 그로 하여금 베르테르를 찾아가도록 한다는 것은
도저히 가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식사준비가 되었습니다.
그 때 마침 로테의 허물없는 친구가 물어 볼 것이 있다면서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곧 돌아가려 했으나 그대로 눌러앉아 같이 식탁에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 덕분에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 로테는 애써
이리저리 화제를 돌리면서 마음의 불안을 잊으려고 했습니다.
하인이 권총을 가지고 돌아와 로테가 내주더라는 말을 하자,
베르테르는 무척이나 기뻐하며 그 권총을 받았습니다.
그러고는 하인에게 빵과 포도주를 가져다가 식사를 하라고 이른 다음
자기는 책상 앞에 앉아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권총은 당신의 손을 거쳐서 내게로 왔습니다.
먼지를 털어 주셨다구요?
나는 천 번도 더 권총에 키스를 했습니다.
당신의 손이 닿았던 것이니까요.
하늘의 정령인 당신이 나의 결심을 격려해 줍니다!
당신의 손에서 죽음을 받고 싶었는데, 아아! 지금 그것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하인에게 고치꼬치 물었답니다.
권총을 내주면서 당신은 떨고 있었다구요.
작별인사는 하지 않으셨다는데, 유감스럽습니다!
나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셨습니까?
나를 영원히 당신과 결합시킨 그 순간 때문에 그러셨나요?
로테, 설령 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그 순간의 감명은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으로 인하여 이토록 마음을 불태우고 있는 사람을 당신이 미워할 리 없다는 것을.

식사를 마친 뒤 베르테르는 하인을 불러서 짐을 전부 구리라고 이르고
많은 서류를 찢어 버렸습니다.
그 다음엔 밖으로 나가서 자질구레한 미불금들을 완전히 청산했습니다.
그리고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밖으로 나갔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교외의 M백작 정원과 그 부근을 서성거리다가,
어둑어둑해질 무렵에야 돌아와 다시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빌헬름, 마지막 하직삼아 들과 수풀과 하늘을 보고 왔네.
그럼 자네도 잘 있게나!
어머니, 용서해 주십시오.
빌헬름,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게.
당신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내 짐은 전부 정리해 놓았네. 그럼 잘 있게나! 또 만나세,
그때는 좀더 기쁜 얼굴로 만나게 될 걸세.

알베르트 씨, 당신에게는 몹쓸짓을 했지만 나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당신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고, 당신들 두 분 사이에 의혹의 씨를 뿌렸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결말을 지으려 합니다.
내가 죽음으로써 부디 당신들 두 분이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알베르트 씨, 천사와 같은 그 분을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하느님의 축복이 당신에게 내리기를!

그는 밤에도 내내 원고들을 뒤적거리며 그 대부분을 찢어서 난로 속에 던져넣고
몇 뭉치의 원고는 포장을 해서 빌헬름 앞으로 겉봉을 썼습니다.
그것은 짤박한 수필과 단편적인 감상문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몇 편은 나중에 편자도 읽었습니다.

10시에 그는 난로에 땔감을 더 넣게 하고,
포도주를 한 병 가져오게 한 다음, 하인더러 그만 자라고 일렀습니다.
하인의 방은 문지기의 방과 마찬가지고 훨씬 안쪽에 있었습니다.
하인은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나기 위해 옷을 입은 채로 잡자리에 들었습니다.
6시 전에 마차가 집 앞에 올 것이라는 말을 베르테르에게 들었던 것입니다.
11시 지나서 주위는 적막 속에 잠겨 있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도 평온합니다.
하느님, 이 회후의 순간에 이런 열정과 힘을 저에게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리운 이여, 나는 창가에 서서 바깥을 내다봅니다.
바람에 몰려가는 구름 사이에, 아직도 영원한 하늘에 빛나는 별이 몇 개 보입니다!
그렇지, 그대들은 결코 원망하는 일이 없으리라.
영원한 존재자가 그대들을 가슴에 안고 있으니까.
그리고 나 역시 그러하리라.
별들 가운데서도 내가 가장 좋아한 큰곰자리,
그 성좌의 자루 부분의 별들이 보입니다.
밤에 당신과 헤어져서 문을 나서면, 이 성좌가언제나 맞은편 하늘에 걸려 있었습니다.
나는 그지없이 황홀한 심정으로 이 별들을 바라보곤 했었습니다.
두 손을 뻗어 별을 가르키며, 그때 그때의 내 행복의 상징으로 삼고,
거룩한 증인으로 삼았었죠. 그리고 지금도......

아아, 로테, 어느 것 하나 당신을 생각나게 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당신을 나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나는 마치 어린애처럼, 성스러운 당신의 손이 닿았던 것이면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닥치는 대로 수집해 왔으니까요.
그리운 당신의 실루엣! 이것을 유물로서 당신에게 드립니다.
로테, 부디 소중히 간직해 주십시오.
몇천 번이나 나는 거기에 키스를 했습니다.
몇천 번이나 나는 거기에 인사를 했습니다.
밖에 나갈 때와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
나는 당신 아버지께, 나의 유해를 거두어 주십사고 편지로 부탁을 드렸습니다.
묘지의 안쪽, 밭 맞은편 구석에 보리수가 두 그루 있습니다.
나는 그 곳에 묻히고 싶습니다.
당신 아버지께서는 그러실 수가 있고, 또 이 친구를 위해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아무쪼록 당신도 그렇게 부탁해 주십시오.
그렇지만 경건한 그리스도 교인들은 이 불행한 사나이와 한 장소에 묻히기를 싫어할 것이고,
나도 억지로 그렇게 해 달라고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길 옆이나 호젓한 골짜기의 어느 구석에 묻어 주셔도 좋습니다.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들이 성호를 그으며 그 무덤 앞을 지나가고,
사마리아 사람이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말씀입니다.

자, 로테! 나는 두려움 없이 차갑고 으스스한 술잔을 손에들고 죽음을 들이켭니다.
당신이 내게 준 술잔입니다.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내 생애의 모든 소망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토록 냉정하게, 이토록 두려움없이 죽음의 철문을 두드릴 수가 있다니!
로테! 나는 될 수만 있다면 당신을 위해 목숨을 버리고,
당신을 위해 이 몸을 바치는 행복을 누리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생활에 평화와 환희를 되찾게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씩씩하게, 기꺼이 죽어가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아,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피를 흘리고,
그 죽음으로써 친구들의 마음 속에 새로운 생명의 불길을 타오르게 한다는 것은
극소수의 숭고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입고 있는 옷 이대로 묻히고 싶습니다.
로테, 당신의 손이 닿아서 신성화된 옷입니다.
이것은 당신 아버지께도 부탁을 드렸습니다.
나의 영혼은 관 위를 떠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아무도 내 호주머니를 뒤지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 분홍색리본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이 가슴에 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당신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요.
아아, 아이들에게 키스를 많이 많이 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 불행한 친구의 운명을 이야기해 주십시오.
귀여운 아이들! 언제나 내 둘레에 모여들곤 했었지요.

아아, 나는 어쩌면 이토록 당신과 밀착되어 있었을까요!
최초의 그 순간부터 나는 당신에게서 떨어질 수 없었습니다.
이 리본도 함께 묻어 주십시오. 내 생일에 당신이 선물로 준 것입니다.
그런 물건들을 나는 얼마나 탐냈는지 모릅니다!
아아, 그런 일들이 나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부디 진정하십시오!
탄환은 이미 재어 놓았습니다. 시계가 12시를 칩니다.
그럼 로테, 잘 있어요! 잘 있어요!

이웃사람 하나가 화약의 섬광을 보고 총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2분, 곧 조용해졌으므로 그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새벽 6시에 하인이 등불을 들고 방 안에 들어섰을 때,
주인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권총이 뒹굴고 있었습니다.
소스라쳐 놀란 하인은 주인을 안아 일으키며 소리쳤으나,
대답은 없고 목구멍에서 골골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습니다.
하인은 의사에게, 그리고 알베르트에게로 달려갔습니다.
로테는 초인종 소리에 온몸이 떨렸습니다.
남편을 불러 깨우고, 두 사람 다 일어났습니다.

하인은 소리내어 울면서 사건의 내용을 전했습니다.
로테는 실신하여 알베르트 앞에 쓰러졌습니다.
의사가 왔으나 이미 손 쓸 도리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맥박은 뛰고 있었지만 사지는 완전히 마비되어 있었습니다.
오른쪽 눈위에서 머리를 쏘았는데 뇌수가 터져 나와 있었습니다.
소용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팔의 정맥을 째자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아직도 숨은 붙어 있었습니다.
의자의 팔걸이에도 피가 묻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베르테르는 책상 앞에 앉은 채 방아쇠를 당신 것 같았습니다.
그런 다음 마룻바닥으로 굴러 떨어져, 의자 주위에서 몸부림쳤던 모양입니다.
발견되었을 때는, 힘이 다하여 창문 쪽으로 머리를 두고 누워 있었습니다.
장화를 신고 있었으며, 푸른 연미복에 노란 조끼 차림이었습니다.
그 집과 이웃, 그리고 온 시내가 떨들석해졌습니다.
알베르트가 왔습니다. 베르테르는 침대에 뉘어져 있었는데,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벌써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었고 팔다리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폐에서는 아직 거친 숨소리가 났습니다. 임종이 가까웠습니다.
포도주는 한 잔 정도밖에 마시지 않은 모양으로 병째 놓여 있었습니다.
책상 위에는 레싱의 대표적 비극 '에밀리아 갈로티'가 펼쳐진 채 놓여 있었습니다.
알베르트의 경악과 로테의 비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법무관이 소식을 듣고, 말을 타고 달려왔습니다.
그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임종의 베르테르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법무관의 아이들도 얼마 뒤에 걸어서 왔는데,
참을 수 없는 슬픔을 얼굴에 나타내며 침대 주위에 꿇어앉아 베르테르의 손과 입에 키스를 했습니다.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큰 아이는 베르레트가 숨을 거둔 뒤
사람들이 억지로 떼어낼 때까지 그의 입술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낮 12시에 베르테르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법무관이 그 곳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로 조치를 취했으므로 소동은 가라앉았습니다.
밤 11시경, 베르테르는 법무관과 그의 아이들은 영구 뒤를 따라갔습니다.
알베르트는 장지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로테의 생명이 염려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상두꾼들이 영구를 메고 갔습니다.
성직자는 한 사람도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ㅡ 끝 ㅡ

'종합상식 > 문학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위 / 김동리  (0) 2011.05.07
이문구 / 관촌수필  (0) 2011.05.07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1.   (0) 2011.05.06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0.  (0) 2011.05.06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9.  (0) 2011.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