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의 나한신앙과 설화
나한신앙은 나한(羅漢)을 대상으로 하는 불교신앙의 하나로서 나한은 아라한(阿羅漢)의 준말이며 의역하면 살적(殺賊), 응공(應供), 응진(應眞)이라 한다. 살적은 수행의 적인 모든 번뇌를 항복 받아 죽였다는 뜻이고, 응공은 모든 번뇌를 끊고 도덕을 갖추었으므로 인간과 천상의 공양을 받을 만하다는 뜻이며, 응진은 '진리에 상응하는 이'라는 뜻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에 나한신앙이 유행하였고,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크게 성행하여 나한재(羅漢齋)가 빈번하게 열렸으며, 나한을 봉안한 전각을 사찰의 금당(金堂)으로 삼는 경우도 있었다.
오봉산 석굴암은 중부 제일의 나한기도 도량의 하나로 그 영험이 뛰어나기로 이름이 높다. 실제 나한기도 도량은 지극정성으로 기도 정진하면 빠른 시간 안에 반드시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 반면, 계율을 어기고 소홀히 하거나 몸가짐이 부정하면 엄한 과보를 받는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나한기도 도량으로는 함경남도 길주군 석왕사, 경북 청도 운문사 사리암, 경북 영천군 거조암, 전북 완주군 봉서사, 서울 수유동 삼성암을 꼽을 수 있다.
함경남도 북청군 설봉산(雪峰山) 나한사(羅漢寺)의 경우 오봉산 석굴암과 같이 '동짓날 팥죽과 불씨' '부정한 이가 찾으면 마르는 샘물' 등 비슷한 영험과 설화를 갖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오봉산 석굴암의 독성님이 보이신 영험과 이적(異蹟)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으나, 그 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독성님 생쌀을 드시네
6·25전쟁이 끝난 지 2년쯤 된, 1950년대 중반의 일이다.
당시 주지 초안선사가 석굴암에 움막을 짓고 모친 조삼매심 보살님, 화주 윤일광심 보살님과 함께 석굴암 중창발원 천일기도를 드리던 중 인근마을에 사는 세명의 노파들이 불공을 드리기 위해 찾아왔다.
당시 초안선사는 승복 한 벌을 구할 수 없어 제대할 때 입었던 군복을 그대로 입고 있을 정도로 어려운 사중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었지만, 지극정성으로 드리는 선사의 기도발원은 공덕이 뛰어나기로 소문이 나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석굴이 너무 비좁아 서너명 밖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황씨 부인 등 기도객 세 명만이 석굴에 들어가고, 초안선사와 윤일광심 보살은 석굴밖에 자리를 깔고 앉아 염불과 기도를 올렸다.
사건은 '생마지'가 발단이 됐다. 본래 독성님은 생식(生食)을 하시기 때문에 그날도 석굴암에는 생공양미 세 불기가 올려졌다. 그러나 이 같은 이치를 알 턱이 없는 노파들은 불공 중간에 자기들끼리 "절 사람들이 게을러 밥을 지어 마지를 올리지 않는다"고 험담을 했다.
그런데 불공이 끝나갈 무렵 고개를 들어 나한상을 쳐다본 세 노파는 그 자리에서 놀라 맨발로 석굴 밖으로 뛰쳐나오고 말았다.
초안 선사와 윤보살이 노파들의 손에 이끌리어 황급히 석굴에 들어가 보니 생쌀 불기마다 움푹 패인 자국이 있고, 없어진 생쌀은 독성님의 입과 가슴, 그리고 무릎에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 날 이후 석굴암 인근 마을은 물론 경향 각지에 '석굴암 부처님이 생쌀을 드신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고, 전국의 기도객이 공양미를 들고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초안선사와 윤보살이 화주 탁발을 나가면 사발 가득히 공양미를 시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결국 독성님의 이 같은 이적과 영험에 힘입어 중창불사 발원 천일기도가 끝날 즈음에는 비록 임시 가건물 이었지만 요사채와 삼성각의 낙성을 볼 수 있었고, 이 때 석굴암과 인연을 맺은 선남 선녀들은 이후 계속된 40여 년 중창불사를 원만성취하는데 있어 누구보다 앞장서 시주공덕을 쌓아 나갔다.
그 때 이후로 오봉산 석굴암 나한전은 생미를 올리는 도량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부정타면 마르는 샘
석굴암의 석굴로 들어서 왼쪽에는 바위틈에서 나오는 자그마한 샘이 있다. 지금은 지하수를 뚫어 물을 풍족히 쓰고 있지만,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이 샘이 석굴암의 유일한 식수원이었다.
그런데 이 용왕샘은 가뜩이나 부족한 수량에도 불구하고 강우량과 상관없이 자주 말라붙곤 하였다. 특히 부정한 이들이 샘물을 마시려 하면 아무리 비가와도 샘에는 물이 고이지 않았다.
그 때도 6.25전쟁 직후라 석굴암에 움막을 짓고 살 때였다. 중병을 앓는 한 처사가 석굴암에 움막을 짓고 요양을 하게 되었다. 백일기도를 드리던 처사는 어느 날 집에를 다녀오겠다고 하였다.
주지 초안 선사는"기도 중에 부정한 것을 접하면 안 된다"고 신신 당부해 보냈다. 그런데 처사가 돌아오자 그만 샘이 말라붙고 말았다.
한편 초안 선사와 함께 움막에 기거하던 그 처사는 집에 다녀온 후로 무엇인가를 몰래 먹는 모습이 목격되곤 했다. 이를 이상히 여기기는 했으나 차마 누구도 추궁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화주 윤일광심 보살이 마른 뱀이 우물 위 허공에서 또아리를 틀고 왔다갔다하는 현몽을 꾸었다. 윤보살이 꿈 이야기를 초안선사에게 하니, 스님이 그 즉시 처사에게 수상쩍은 점을 캐물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그 처사가 집에 갔을 때 형수가 몸에 좋다면서, 뱀 말린 것을 갈아 약으로 만들어 주어 몰래 가져와 먹었다는 것이다.
초안 선사는 크게 노하여"그러한 부정한 것을 먹으며 몸이 낫기를 바란다면 절에 있을 필요가 없다"며 집으로 쫓아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처사는 병이 악화되어 생을 마감했다.
이후에도 석굴의 우물은 보신탕 등 부정한 음식을 접하거나 몸가짐이 바르지 못한 신도가 오면 예외 없이 물이 말라 버렸다.
독성님과 동지 팥죽
지금으로부터 약 200여년 전인 1792년의 일이다.
당시에는 석굴암에 노스님과 동자승 단 둘이서 살았다고 한다.
그 날은 마침 동짓날이었고, 밖에는 많은 눈이 와서 마을과의 왕래가 두절되었다.
동자승이 아침 일찍 일어나 팥죽을 끓이려 아궁이를 헤집어 보니 그만 불씨가 꺼져 있었다.
노스님께 꾸중들을 일에 겁이 난 동자승은 석굴에 들어가 기도하다 지쳐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눈을 뜬 동자승이 공양간에 가보니 아궁이에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바로 같은 시간. 석굴암에서 10여 리 떨어진 아랫마을 차(車)씨네 집에서도 팥죽을 끓이고 있었다. 당시 50대 초반의 차씨 부인(파평 윤씨)이 인기척에 놀라 부엌밖으로 나가보니 발가벗은 아이가 눈 위에 서 있었다.
깜짝 놀란 차씨 부인이"어디에서 새벽같이 왔는냐"하고 묻자 동자승은"오봉 석굴에서 불씨를 얻으러 왔다"고 대답했다. 차씨 부인은 하도 기가 막혀 아니, 스님도 너무 하시지. 이 엄동설한에 아이를 발가벗겨 불씨를 얻으러 보내는 법이 어디 있냐고 안타까워하며, 때마침 펄펄 끓는 팥죽 한 그릇을 떠서 동자승에게 주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보통아이 같으면 펄펄 끓는 팥죽을 수저로 불며 떠 먹었을 텐데, 이 동자승은 그릇째로 들이마시더라는 것이다.
얼른 부엌에 가서 불씨를 담은 차씨 부인은 소중히 동자승에게 건넸고, 불씨를 얻은 동자승은 홀연히 자취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난 차씨 영감(차대춘 씨)에게 부인이 새벽에 있었던 일의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자, 차씨 영감은 혹시 동자의 흔적이라도 있을까 해서 사립문 밖에 나가 보았지만 눈 위에는 발자국 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 후 눈이 어느정도 녹아 노스님이 아랫마을에 내려가니 차씨부부가 일주일 전 동짓날 새벽에 일어났던 일의 전말을 설명하면서 노스님에게 전후 사정을 말씀드렸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노스님은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다.
동짓날 사시에 마지를 드리려고 예블을 드릴때 나한존상의 입가에는 팥죽이 묻어 있고 김이 무럭무럭 났던것이 새롭게 떠 올랐다.
그래서 동자승을 불러 확인해 보니, 동자승이 불씨를 꺼뜨리고 항망중에 나반존자께 기도를 들었는데, 불씨가 저절로 되살아나 팥죽을 끓여 부처님께 공양하였다는 것이었다. 바로 동자승의 안타까운 사정을 굽어살핀 독성님이 이적(異蹟)을 보이셨던 것이다.
이후 독성님께 팥죽을 공양한 차씨 집안은 6대조 차대춘(1802년 작고)씨와 2000년 현재의 차영민(60세)씨에 이르기까지 6대째 화제(話題)의 그 집에서 그대로 살고 있다.
차씨 집안은 특히 이날 독성님께 팥죽을 공양한 음덕과 어머니의 간절한 나한기도 덕분에 6·25전쟁 피난길에서 잃어버렸던 당시 아홉 살 차영민씨가 살아서 돌아오는 등 집안이 나날이 번창해 화목한 일가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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