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충북문화재자료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83호 진천 강세황 묘소(鎭川 姜世晃 墓所)

오늘의 쉼터 2011. 3. 12. 16:02

 

종 목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83호
명 칭 진천 강세황 묘소(鎭川 姜世晃 墓所)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무덤/ 봉토묘
수량/면적 1곽
지정(등록)일 2011.03.04
소 재 지 충북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 510-10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강태근 외 1인
관리자(관리단체) 강중차(姜重次)
상 세 문 의 충청북도 진천군 문화체육과 043-539-3600

 

일반설명

 

豹菴 姜世晃(1713~1791)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文人畵家이자 文章家, 書藝家, 評論家로서 詩ㆍ書ㆍ畵 三絶로 불렸고 당시 畵壇에서 “禮願의 總帥”로서 중추적인 구실을 했다.

本貫은 晉州 字는 光之, 號는 ?齎, 山響齎, 樸菴, 宜安子, 繭菴, 露竹, 豹菴, 海山亭, 紅葉尙書, 無限景樓, 道菴, 端硏齋, 借軒, 豹翁, 豹老, 豹翁老子 등이다. 父親은 判中樞府事를 지낸 文安公 ?이며, 母親은 廣州李氏 翊晩의 따님 貞敬夫人 李氏이다. 그리고 3男 6女중 막내인 姜世晃은 집안 先祖들과 두터운 관계로 英?正祖에게 상당한 배려를 받았고, 1763년 英祖의 배려로 61세의 나이에 처음 벼슬길에 올랐다. 1776년 耆老科, 1778년 文臣庭試에 首席合格하여 官階가 嘉善大夫에 이르러 그 뒤 英陵參奉, 司圃別提, 戶曹參議, 兵曹參議, 漢城判尹등을 거쳤다. 71세에 耆老所에 입사하여 祖父 姜栢年 父 姜?에 이어 三世耆英之家의 영광을 이루었다. 1784년 天樞府使로 북경에 갔을 때 德保, 博明, 金簡 등 중국 지식인들과의 교류로 자신의 文化的인 면모와 긍지를 발휘했다. 또 32년 차이가 넘는 檀園 金弘道, 紫霞 申緯와 같은 훌륭한 제자를 길러냈으며, 1790년 (78세)에 知中樞府事가 되었다.

墓所는 圓形의 封墳으로 직경 750㎝, 높이 172㎝이다. 墓所 앞쪽에 床石 및 階?石, 正面 左?右側으로는 文人石과 望柱石이 각각 1기씩 있으며, 下段에 豹菴 姜世晃 事蹟碑가 세워져 있다.

墓所 上段으로는 公의 祖父母 墓所가 위치하고 있으며, 左側으로는 宗中 納骨墓, 右側으로는 밭이 위치하고 있으며, 前面에는 밭과 능선이 이어지고 있다.

그의 묘소가 어떠한 경위로 이곳에 자리하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처음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을 세우고 좌우로 문인석(文人石), 망주석(望柱石) 각 1조를 갖춘 배치형태(配置形態)는 묘소의 형태와 석물들로 별다른 특징이 없는 조선시대 일반형 묘소이나, 강세황의 인물사적 중요성을 감안하여 지정 보존하려는 것이다.

 

 

 

진천 강세황 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