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전남문화재자료

문화재자료 제249호 (영광군) 영광묘장영당(靈光畝長影堂)

오늘의 쉼터 2010. 12. 23. 20:01

 

 

종 목 문화재자료  제249호 (영광군)
명 칭 영광묘장영당(靈光畝長影堂)
분 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인물기념/ 사우
수량/면적 919㎡
지정(등록)일 2004.02.13
소 재 지 전남 영광군  묘량면 운당리 영당마을 1002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전주이씨영당종중
관리자(관리단체) 사단법인 묘장영당사유적보존회
상 세 문 의 전라남도 영광군 문화관광과 061-350-5225~6

 

일반설명

 

묘장영당(畝長影堂)은 묘장서원(畝長影堂) 또는 영당사(影堂祠)라고도 한다. 조선 초의 개국공신인 양도공(襄度公) 이천우(祐)(1354∼1417)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으로, 1616년에 건립되었다. 이천우(祐)는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형인 이원계(李元桂)의 둘째 아들로서, 여말선초의 격동기에 이성계(李成桂)의 휘하에 들어가 황산대첩 등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조선 개국을 도왔으며, 두 차례의 왕자의 난에서 공을 세우고 태종의 즉위를 위해서도 많은 공헌을 하여 정사공신(定社功臣)과 좌명공신(佐命功臣)에 훈록되었던 인물이다. 태종은 1416년 이천우(祐)가 퇴직할 때 그 공적을 치하하여 화공으로 하여금 이천우(祐)의 화상()과 이응도()를 그리게 했는데 그것이 후에 묘장영당(畝長影堂)을 건립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후손들이 대대로 영정을 보관하다가 이천우(祐)의 증손인 부사맹(副司猛) 이효상()이 담양으로부터 영광 묘량면 영양리 당산마을로 이주·정착하면서 부조묘()를 건립하고 영정과 함께 유품(포총교지, 이응도, 공신회맹축 등)을 보존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1616년(광해군 8) 향내 유림과 함께 뜻을 모아 현 소재지에 영당()을 세우고 영정을 이안하여 배향하였다는 기록이 1747년 간행된 <영당사기>에 전해진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의해 사우는 철거되었고, 강당은 그대로 남아 서당으로서의 기능을 했으며 1919년에는 강당에 사립 영신학교(私立英新學校)를 설립하여 4년 과정의 학교를 운영하였다. 그 후 1928년 후학과 향내 유림들이 사우 복원을 추진하였고, 1934년에 이르러 옛터에 사우를 중건하였다. 묘정영당(畝長影堂)은 사당(사우), 강당, 외삼문(문간채), 내삼문, 고직사로 구성되어 있는데 약간 경사진 지형을 2단으로 정지하여 첫째 단에 5칸 외삼문과 강당을, 둘째 단에는 내삼문과 사당을 배치하였다. 사당은 정면 3칸·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집으로 영당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내부에는 이천우(祐) 외에도 사우 중건 후에 추배한 이응종, 이황종, 이홍종, 이복원 등 전주이씨 명현 5위가 모셔져 있다. 

 

 

 

 

영광묘장영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