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경북기념물

시도기념물 제113호(상주시) 상주김준신의사제단비(尙州金俊臣義士祭壇碑)

오늘의 쉼터 2010. 10. 27. 08:07

 

종 목 시도기념물  제113호 (상주시)
명 칭 상주김준신의사제단비(尙州金俊臣義士祭壇碑)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95.12.01
소 재 지 경북 상주시  화동면 판곡리 476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청도김씨상주파종중
관리자(관리단체) 청도김씨상주파종중
상 세 문 의 경상북도 상주시 문화공보담당관실 054-530-6063
 
일반설명
 
이 제단비는 의사(義士) 김준신(金俊臣)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설단한 것으로 건립연대는1850년경에 제단비를 세우고 그 후 첨모재(瞻慕齋)를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며 1993년에 첨모재를 철거하고 원형대로 중건하였다. 낙화담(落花潭)좌측의 나지막한 언덕 아래에 첨모재 뒤로 단을 높이고 축을 약간 꺽어 제단비각을 세웠다. 비각은 단칸 규모의 맛배집으로 건립연대는 첨모재와 같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준신의사는 청도인으로 이곳 판곡(板谷)에서 태어났는데 판곡은 고려조 이후로 청도 김씨세거지였다. 임진왜란이 반발하자 의사는 32세의 나이로 분연히 일어나 의병을 소집하여 솔령장(率領將)이 되었다.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칠곡 석전까지 전진하였다가 다시 상주 본진으로 돌아와 상주성 사수에 분전하여 많은 왜적을 도륙 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끝내 임진년 4월 25일 장렬히 순국하였다.
당시 의사의 활약에 분노한 왜적들이 판곡을 찾아 김씨일문을 멸하려하자 죽어도 왜적의 손에는 죽을 수 없다하여 낙화담에 투신 자살한 김씨문 절부들의 넋도 오늘까지 낙화담을 밝히고 있다. 이에 노산 이은상선생이 1973년에 쓴 낙화담의적천양시(落花潭義蹟闡揚詩)를 소개한다.

" 임진년 풍우 속에 눈부신 의사모습 / 집은 무너져도 나라는 살았네 /
절사곡(節士谷) 피묻은 역사야 어느 적에 잊으리라" 했고

둘째 수에서는

"설악(雪岳)높은 본대로 이르는 말 / 꽃은 떨어 져도 열매는 맺었다고 /
오늘도 낙화담향기 바람결에 풍기네" 라고 찬양했다.
 
 
 

상주김준신의사제단비

 


재실전경
 

상주김준신의사제단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