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리 알뿌리를 심은 뜻은
7월은 붉으스레한 꽃을 활짝 피우는 참나리철이도 하다.
붉은 바탕에 검은 반점이 점점히 박힌 호피(虎皮)같은 꽃을 키우고 싶었다.
여러 해 전부터 참나리 모종을 구하려다가 거듭 실패했다.
참나리가 도서지방, 해안지방에 자생한다는 것을 섬마을을 들락거리면서 확인했다.
충남 원산도 사창해수욕장의 바위 벼랑에서, 서천군 마량포구의 바위 끝에서,
태안반도 이원면 사목해수욕장 등지에서 참나리 몇 뿌리를 캐고,
줄기에 검은 구술처럼 맺힌 주아를 조심스럽게 흝어서 화분에 묻어 두었다.
알뿌리의 비늘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떼어서 흙에 묻거나 열매와 비슷한 주아(珠芽)를
흙 속에 묻으면 금새 뿌리가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최근 내륙에서 가까운 섬과 포구에서 캐 온 참나리는
화분과 텃밭에 심어져서 붉으스레한 꽃을 피웠다.
참나리는 여늬 꽃송이와는 달리 꽃송이를 뒷쪽으로 또르르 말아서
암수술과 숫수술을 훤하게 드러내는 꼬라지가
마치 미친 화냥년이 제 속것을 홀라당 벗어서 치부를 들어낸 형상이다.
벌과 나비들이 쉽게 접근하여 꽃가루를 묻히기 위한 전략으로 선택했을 터.
이에 비하여 나리과인 흰백합 꽃송이는 다소곧이 속것을 감싸 쥔 모양이다.
어제도 서해안 끝자락, 일명 땅끝 마을로도 부르는 태안반도의
사목해수욕장에서 주아 스물여섯 개를 채종했다.
식기에 담은 뒤 화장지에 물을 적셨더니만 금새 실낱같은 잔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주아는 첫해에는 뿌리를 내리되 새싹을 추운 겨울을 난 뒤에
잎새 하나를 내민다고 했다.
새싹은 2~5년이 경과하여만 꽃을 피울 수 있다 하니
질 좋은 흙, 바람과 햇볕이 잘 소통되는 곳에 심어야 한단다.
참나리는 붉으스레한 종류가 태반이지만 때로는 노랑색깔도 있단다.
노랑참나리 몇 뿌리를 구해야겠다.
사목해수욕장 모래사장 바로 위 야트막한 산에는 노랑원추리가 예쁘게 피었으나
나는 한뿌리조차도 캐지 못했다.
솔밭에 숱한 피서객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데 그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감히 캘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언제 한적한 계절에 와서 노란원추리(애기원추리?) 뿌리를 몰래 캐다가
텃밭에서 재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욕심을 접었다.
나는 엉텨리 농사꾼, 얼치기 농사꾼이다.
사이비 농사꾼이기에 먹을 것을 기르지 않고 엉뚱하게도 야생화를 키우려고
산과 들판, 외지의 풀과 꽃, 나무를 눈여겨 본다.
장터에서, 화원과 농원에서 돈 주고 꽃의 모종을 산다면야 재배가 수월하겠지만
나는 한두 뿌리를 캐거나 얻어서 번식하기를 더 선호했다.
정성을 드리고 손끝 재주로 소량 번식하는 묘미가 더 즐거웠다.
참나리를 번식시키려는 뜻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키가 훌쩍 크고 잎새가 단촐하고, 꽃대 하나만을 쑤욱 뽑아
올린 자태가 단솔해서 좋다는 이유일까?
흰 비늘을 잔뜩 지닌 알뿌리와 검정색 주아는 식용으로도 크게 활용한다 하니
제법 큰 알뿌리를 밥솥에 넣어 삶아서 달작지근한 알뿌리밥을 먹어야겠다.
또 바다와 섬마을이 때때로 보고 싶고, 그리우면 화단, 텃밭,
길가에 심은 참나리를 보면서 마음으로 떠나는 상상여행을 즐기고 싶다는 뜻도
내포되었다고 고백해야겠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들꽃 산꽃인 야생화를 키우면서 식물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넓게, 깊게, 진하게, 넓히고 싶다.
꽃을 키우면서 나이들어 가는 나를 잊고,
또 바깥 나들이를 하면서 바람과도 친구해야겠다.
바람이 전해주는 꽃향기로도 密語를 나눌 수 있으니까.
<수필가 최윤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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