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아니라 사람이 희망이다.
사람이 숫자를 만들었지만 거꾸로 숫자의 노예가 된 듯 하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도 사람은 없고 숫자만 있다.
‘집은 몇평이냐?’, ‘재산은 얼마냐?’
‘년봉은 얼마나 되느냐?’
‘성적은 몇등이냐?’ 등 첫 만남부터 숫자에만 집착을 한다.
그러나 묘하게도 숫자 때문에 헤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기적이어서’, ‘낭비벽이 심해서’, ‘구타가 심해서’,’바람을 피워서’,
’부모님을 홀대해서’ 등 대부분은 성격이나 인간적 면모 때문에 헤어진다.
질문이 거꾸로 되었어야 한다.
애초 숫자가 아닌 사람에 대해 먼저 알려고 했어야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있는지?’, ‘
사고가 유연하고 상대를 잘 배려하는지?’,
‘유머감각은 있는지?’,’여행은 좋아하는지?’ 등 그 사람의 철학이나 성품을
먼저 파악했다면 만남에서 이별까지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숫자에도 함정이 있다.
미국의 공화당, 민주당 의원과 통계학자 3명이서 토끼 사냥을 나갔다.
공화당 의원이 쏜 총알이 토끼의 오른쪽으로 1m 빗나갔다.
민주당 의원이 쏜 총알은 왼쪽으로 1m 벗어났다.
그러자 통계학자는 “만세! 토끼가 명중됐다”고 환호성을 지르며
토끼를 주우러 뛰어갔다.
저 통계학자가 멍청하다고 말하겠지만 가끔은 자신도 모르게
다들 통계학자의 어리석음에 빠져 들곤 한다.
숫자로는 잡혔어야 할 토끼가 실제로는 잡히지 않았듯 우리의 삶은
성적과 돈 같은 숫자로는 잡을 수 없는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
우리가 죽음에 직면했을 때 과연 자녀 성적이 좀 덜 올랐던 것
또 돈을 좀 더 못 벌었던 것을 아쉬워 할까,
아니면 ‘그때 왜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지 않았을까?’, ‘
마음껏 웃으며 섬기행을 했었더라면’, ‘
그때 마음 상처를 주지말고 멋진 선물과 단란한 저녁식사를
했었어야 했는데’ 등 좀 더 인간적이지 못했음을 아쉬워 할까?
숫자보다 중요한 가치를 깨우쳐 갔으면 한다.
숫자에 욕심부리고 집착하기 보다는 마음 편하게 사는 법을 터득해 가고,
내 숫자가 좀 좋다고 독선과 오만에 빠지지 말고 상대를 존중하며
함께 공존하는 지혜를 배워갔으면 한다.
창의력이 재산인 시대가 되었다. 메마른 숫자의 오류에서 벗어나
좀 더 올 곧고 따뜻한 품성을 가꾸어 가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수필가 황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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