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세상사는이야기

그 말 한 마디

오늘의 쉼터 2010. 2. 19. 12:49

(2월 19일 금)

 

    ◆ 그 말 한 마디 ◆ 딸아이는 고집이 센 편이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자존심이 세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오빠가 다섯 살이나 더 많지만 절대로 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 아이 여섯 살 때 일입니다. 둘이 싸웠는데 사정을 들어보니 딸애가 잘못한 것이 확실했습니다. 저 때문에 오빠까지 혼나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오빠한테 사과하라고 타일렀습니다. 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사과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말을 끝내 안 들어서 무릎 꿇리고 손을 들게 했습니다. 오빠에게 사과할 때까지 손을 못 내리게 한 것이었지요. 녀석은 비지땀을 흘리며 한 시간이 다 되도록 방구석에서 버티고 있었습니다. 저녁 아홉시 뉴스 시작 전에 벌을 세웠는데 뉴스가 벌써 끝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확실하게 버릇을 고쳐놓아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빈 병 두 개를 양손에 쥐고 손을 들도록 벌을 강화시켰습니다. 녀석이 내 말은 순순히 따랐습니다. 나를 자기편으로 해야 했으니까요. 저녁 1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서도 견뎌내고 있는 딸아이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서 얼른 오빠한테 사과하고 벌을 끝내자고 했지만 녀석은 여전히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결국은 내가 병을 받아 내리고 땀과 눈물을 닦아 주고, 녀석을 안아주었습니다. 내가 진 것이었지요. 내가졌다고 말하자 녀석은 물었습니다. 아빠는 잘못이 없는데도 사과할 수 있느냐고. 하지만 사람이 경우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사과를 해야 우리 집이 화목해 진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라고……. 이 아이는 지금도 자존심 하나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경우에 따라 사과를 할 수 있는 소양을 가지고는 있습니다.    세상에는 정말 쉬운 말인데도 쉽게 하지 못하는 말, 그 말 한마디면 금방 화해의 분위기가 만들어 질 수 있는데도 잘 안 나오는 말, 그런 말이 있습니다. 나이가 적으나 많으나 그 말 쉬 못하는 것은 만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계곡을 흘러내리고 있는 작은 물줄기도 잘 흐르던 것이 조그만 바윗돌 때문에 돌아서 흐르게 되거나 그 지점부터 물줄기가 흩어져 버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위를 들어 치워주면 물길이 흐름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말도 흐르는 것이 아닐까요. 감정을 말로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말이 순조롭게 흐르지 못하면 말상대에게 자극이 되겠지요. 이 자극들이 커지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 상처를 키우게도 됩니다. 아주 쉬운 말인데, 그 말 한마디면 매듭이 풀리는데, 그 말 끝까지 못해서 더 큰 화를 가져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해 버리면 시원한데도 잘 안 나옵니다. 그 말만 하면 상대방이 마음을 열 수 있는데도 나오지 않는, 그런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잘못했다’는 한 마디입니다. 비워내야만, 빈 구석이 있어야만 비집고 들어 올 틈이 보이는 법이니, 잘못했다는 말이야 말로 비워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비워 냈을 때 그곳에 채워지는 것이야 말로 말이 일궈낸 지혜의 선물이 아닐까요. <소설, 수필가 박 종 규 > ^*^*^*^*^*^*^*^*^*^*^*^*^*^*^*^*^*^*^*^*^*^*^*^*^*^*^*^*^*^*^*^*^*^*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생각이 나며 벌서고 있는 앙증맞은 모습이 미소를 짓게 합니다. 자식에게 져주는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윗돌을 치워서 흐르는 물길을 바로 잡듯이 아이들도 자랄 때 바로잡아 주고 사랑으로 보듬고 감싸준다면 아름답고 고운 사람으로 잘 자랄 수 있지 않을까요. 따스함이 함께하는 작가님의 가정 행복해 보입니다. 가족여러분… 자존심 때문에 멀어진 사람은 없는지 “잘못했다” 말 건네고 잘못 시인하며 마음을 비울 사람은 없으신지요. 오늘 여유로운 마음과 작은 미소로 웃으며 지낼 수 있는 좋은 날 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오.^^* (저는 다음 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 이 규 자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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