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장가가는 날 ♡
토요일, 교통 혼잡을 예상한 나머지 너무 일찍
결혼식장에 도착하여 우연히 예식 두 건을 보게 되었다.
먼저 예식에서 주례를 맡은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진지한 구석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예식이 끝나고 다음 예식이 시작되는데도
그 주례는 미적미적 주변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다음 예식의 주례를 서려고 단상으로 다시 오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똑같은 주례사가
신랑 신부의 이름만 바꾸어서 되풀이되고 있었다.
아무리 대리주례라 해도 신랑 신부가 바뀌었고, 다른 일도 아닌 백년가약을
맺는 자린데 미리 외워둔 말로 앵무새주례사를 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여간 씁쓸하지 않았다. 차라리 주례가 없는 편이 나았지 않았을까 싶었고,
주례가 결혼식의 품격을 높일 수도, 낮출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주례가 없는 색다른 결혼식이 있었다. 모든 예식은 사회자의 말에 의해서
진행되었으며, 신랑과 신부는 둘의 인연이 담긴 글을 하객들 앞에서 읽었다.
신랑 아버지는 성혼선언문을 낭독하고, 신부 아버지는 격려의 말을 했다.
신랑의 여유 있는 표정과 다소 신선한 예식의 진행이 흥미로웠다.
그동안 관례로 앉혔던 주례로부터 혼인예식을 되찾아 온 것 같은
긍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하객들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런데 일생에서 가장 진중하게 임해야 할 결혼식에 구심점이 없다는
허전함이 드는 것은 나만의 선입견 때문은 아니었다.
몇몇 하객들로부터도 그런 말들이 들려왔다. 그뿐만 아니라 장인 될 사람의 격려사는 주례사보다 장황해서 주례 없는 결혼식의 색다른 느낌마저 무색해졌다.
새로움에 대한 기대감, 그에 미치지 못한 안타까움이 교차한 아쉬운 결혼식이었다.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서는 신랑과 신부가 음악대를 따라 동네를 돌며 하객을 모아 식장에 입장한다. 개선장군처럼 입장한 신랑 신부는 가장 상석에 앉고 좌우에는 양가의 부모가 앉는다.
혼인예식은 신랑과 신부 두 사람을 위한 하객들의 춤과 노래로 긴 파티가 이어진다.
온전히 두 주인공을 위해 모든 하객이 한바탕 축하의 노래와 춤사위를 벌이는 것이다.
주례 없는 예식을 보면서 탄자니아의 결혼식 모습은 우리보다
후진국이라지만 훨씬 진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탄자니아 사람들의 결혼예식은 철저하게 주인공을 위해 진행되었음에 비추어볼 때,
우리의 혼례 의식은 하객들을 위해 사회자가 요구하는 대로 두 주인공이
몸짓 발짓을 하기가 일쑤이다. 이런 방식은 본래 우리의 것도 아니었다.
서구의 혼례예식이 식상해져서 이벤트화하다 보니
엄숙해야 할 예식이 희화되고 만 것이다.
주례가 없는 예식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으나 엄숙해야 할 두 사람의
영육간의 결합 의식으로는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하객들은 식당에 자리 잡는 것이 우선이었다.
누구나 예식을 남다르게, 훌륭하게 치루고 싶어 하지만 막상 시간에 쫓기다
보면 별다르지 않은 혼인예식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식이 끝난 뒤끝이 개운 찬은 경우가 많은데 마을 어귀에서부터 시작되어
여유롭게 치르던 우리 고유의 전통혼례를 왜 생각 못하는지 아쉬웠다.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전래의 예식문화가 있다. 첨단으로 가는 시대일수록
고유의 전통혼례는 오히려 그 빛을 더할 수 있다. 전례의 혼례방식이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 지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혼주들은 결혼에 맞추어 한복을 장만한다.
요즈음은 전통혼례에 대한 의식이 달라지고 절차도 개선되어
길지 않은 시간에 비용도 훨씬 경제적이다.
혼례 청 울림, 불 밝힘, 손 씻기 의식, 합환주 등 전통
혼례의식에는 의미가 새록한 것들도 적지 않다.
여기에 가마꾼까지 등장하여 짧은 거리라도 가마 타고, 말 타고 혼인의식을 치른다면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지 않을까.
나의 어머니는 산 넘고 개울 건너 삼 십리 먼 길로 시집을 왔다.
아버지가 말 타고 외가에 가서 삼일을 묵은 뒤 어머니를 가마에 태워 데려온 것이다.
그 험했던 산길 대신 지금은 바닷가로 해안도로가 뚫려 승용차를 몰고
외가를 가다보면 꽤나 멀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걸어서, 가마꾼들이 신부를 태우고 오가는 거리라니.
죽청리 뒷산마루에 오르면 은비늘 반짝거리는 바다 풍경이 내려다보인다.
어머니를 가마에 태워 올랐던 가마꾼들은 산마루를 어르던 바람이 얼마나 시원했을까!
가마 쉬어놓고 땀 훔치며 마셨던 탁주는 정말 꿀맛이었을 것이다.
어언 옛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아씨와 서방님의 시집장가 가던 날의
추억은 잊을 수 없는 낭만이며 되살려야 할 감성유산이다.
15분 만에 식을 끝내고 다음 차례에 자리를 내 주어야 하는 오늘날의 결혼식,
혹 그 스피드에 행복도 쉬 날려 보내는 것은 아닌지…….
< 소설, 수필가 박 종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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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님 따라서 시집가던 길…
코끝이 시큰 거립니다. 지금은 예식장을 가도 눈물을 볼 수 없어졌어요.
좋아서 싱글벙글 거리는 신랑 각시를 보면 부럽기도 하구요.
요즘 예식은 뒷전이고 식권 받아 식당으로 행하는 발길을
진정한 격려와 축복으로 행복을 빌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식이 다 끝나서 식사를 하던 때가 새삼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가족 여러분 …
훌쩍 한 주를 보냈습니다.
오늘 누군가의 축복을 하러 가신다면 30분의 여유로
진정한 행복을 빌어 주시면 기분 좋으실 것 같습니다
한주동안 세상사는 이야기 사랑해 주심 감사드리며
저는 월요일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뵙겠습니다.^^*
♣ 이 규 자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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