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여야 할 소녀의 꿈 ◈
한국문학신문 창간호가 나온 주말 저녁이었다.
조촐한 축하 파티로 몇 분의 선생님들이 모였다.
거한 분들 속에 나이만 거한 신출내기가 작가라는 이름으로 감히 같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연신 축하의 와인 잔을
부딪혔다.
들뜬 기분에 교양 잃은 깔깔거림은 시간을 푹푹 집어삼켰다.
시뻘건 닭도리탕이 바닥을 보이고 거나해진 목소리는 자꾸만 높아들
가고 있었다. 모 대학 교수님의 타고난 입담과 창 한가락에 소름이 쪽
돋아나는 시간 옆에서 자꾸만 떠오르는 분이 계셨다.
너무나 비슷한 인생사를 즐기신다는 생각을 하면서 혹시 김천에 계시는
모 선생님을 아시느냐고 물었다.
친하게 지내는 지인이란 말씀에 선생님을 뵌 듯 기뻤다.
‘세상에 죄짓고는 못 살겠구나. 한 다리만 걸치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참으로 좁은 세상이로구나.’ 신기함과 그리움에 40년의 시공을 거침없이
거슬러 되돌아갔다.
초등학교 시절 눈이 와이셔츠 단추 구멍만 하고 키 크고 깡마른 긴 머리
소녀를 봄 처녀, 우리 봄 처녀, 때로는 모나리자 우리 모나리자 하시며
유난스레 예뻐해 주시던 입이 커서 웃는 모습이 더 환해 보이시던 선생님!
마냥 다정다감하시며 예술방면의 모든 것을 사랑하시는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선생님, 지금 생각해봐도 그분을 좋아하지 않은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노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분께 글짓기를 배우고 크고 작은 상들을 타면서 나의 꿈은 시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송충이를 잡으러 학교 뒤 관암산엘 올라갔다.
모두 서로 많이 잡으려고 열심히 뛰어다닐 때, 나는 소나무에 닿을까
걱정만으로도 소름만 돋았다. 반장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송충이
한 마리를 얻곤 했다. 깡통에 송충이가 우굴우굴 차자 식은땀이 흐르며
반 실신 상태가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그런 나를 업고 그 험한 비탈길을 달리셨다.
땀이 촉촉이 배어져 나오는 선생님의 등에 업혀서 정신을 잃었었나 보다.
깨어나 보니 숙직실 방이었다. 유난히도 나를 예뻐하던 급사 숙이
언니는 울고 있었고 선생님은 안도의 숨을 돌리시며 환하게 웃어 주셨다.
그 후 송충이를 보면 사흘이 가렵고 스물 거려 몸서리가 쳐진다.
털 있는 복숭아를 만지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담임선생님도 아니셨는데…….
그때부터 나의 꿈은 시인이자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6학년 때 선생님은 전근을 가시고 나는 상심한 소녀가 되어 글쓰기의
재미도 잃어 버렸다. 시인이 되겠다는 꿈도 차츰 희미해지고 사그라졌다.
그러다 사회 초년생이던 여름 어느 날 선생님을 뵙고도 기쁜 표현도 못 하고
쑥스러워만 하던 저에게 “이리와 봐 이놈아” 하시며 글 많이 쓰느냐고
물으셨다. ‘글은 무슨……’ 생각지도 않은 말씀에 얼굴만 붉히고 앉아 있었다.
대뜸 초등학교 시절 내 시 한 편을 읊조리신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몇 달 동안은 일기라도 썼었다. 그러다가 또 일장춘몽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현실만 살기에도 벅찬 세월이 강산을 몇 번 바꿔 놓았다.
마흔이 오는 우울과 싸우다가 다시 한 송이의 꿈을 피우고 싶다는
열망만으로 구민회관 시 창작반에 입학했다.
또 한 분의 인자하신 선생님을 만나게 되고 알뜰한 지도와 칭찬과 격려로
소녀의 꿈이었던 선생님은 못되었지만, 시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었다.
하지만, 창피한 마음에 선생님께는 연락도 못 드리고 있던 형편이다.
선생님! 시다운 시 한 편, 수필다운 수필 한 편, 첫사랑의 전율처럼 누군가의
가슴에 심는 날, 꽃다발 한 아름 안고 뵈러 가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더욱더 행복하시고 저 만나시면 그때 그 시절보다 더
환하게 웃어 주세요.
선생님! 그리운 나의 선생님, 지금도 변함없이 존경합니다.
<<수필가, 황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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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에 젖은 갈잎 하나 바르르 떠는 이른 아침입니다.
문학소녀와 문학 소년의 꿈은 누구나 한 번쯤 꾸어왔던 꿈이었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초등학교 삼 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꿈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백일장 대회에 나가 장원을 하는 것이 계기가 되어 선생님은 어린
저에게 문학의 꿈을 키워주시고 문학의 길을 걷기 위한 안내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삼 학년 담임을 하셨던 선생님은 제가 펜을 놓지 않는 한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분이십니다.
우리 주변에는 나를 인도해주신 고마운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이 가을이 가기 전 내가 힘들고 아파할 때 위로해 주시고 내가 기뻐
웃을 때 같이 웃고 기뻐해 주시던 감사한 이들을 둘러보는 시간을 갖고
마음을 전하는 전화나 편지 한 통 보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랑하는 국보 가족님!
곱게 말려 책갈피에 넣어둔 단풍잎 하나 꺼내봅니다.
남쪽까지 내려온 단풍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서서히 우리 곁을 떠나겠지요.
시월의 마지막 날이 아쉬움으로 남지 않도록 마무리 잘하시고 가족들과
함께 떠나는 가을 여행으로 행복한 주말을 보내시는 좋은 시간을 만들어
가시기를 예람 이가 기원합니다.
한 주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기 걸리지 않도록 유의하시고 고운 미소 잃지 않는 아름다운
주말 보내십시오.
월요일 찾아 뵙겠습니다.
♣김미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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