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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소경(小景)◈
새벽부터 소죽 끓이는 솥에서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장작 소리에 바쁜 하루의
표정이 느껴진다. 집 앞을 지나는 개울, 산골짜기에서 내려온 맑은 물이
돌부리를 타고 넘느라 거친 숨 몰아쉬는 소리가 졸졸졸 들려온다.
물기 머금은 돌미나리 짙은 녹색으로 자라고, 미나리아재비 반짝이는
노랑 꽃잎에 오월의 아침이 고즈넉한 눈길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주인이 바쁘면 키우던 개도 바쁘다. 외양간 누렁이 이른 아침을 먹느라 바쁘다.
아침식사가 끝나면 큰들 무논 써레질을 해야 한다.
오월이면 못자리 모들이 한 뼘이나 자라 얼른 옮겨 심지 않으며 야윈 모들이
키만 자라서 모내기 후에 꼿꼿이 서 있지를 못하고 꺾어지거나 하여 살아날
확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꼿꼿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즉 웃자라지 않은 모를
내야 튼튼한 벼로 자라 풍년을 기약해준다.
우거진 숲에선 바쁜 산새들의 아내 부르는 소리, 남편 찾는 소리로 분주한
것이 오월이다. 이른 봄 알을 낳아 부화하고 먹이가 많은 여름날 튼튼하게
자라야 가을날 다시금 따뜻한 남녘으로의 먼 여정을 견뎌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서로 부르며 알을 품고, 부화한 새끼들에게 먹이를 잡아다
나르느라 바쁜 새들, 그들의 삶에 대한 열정이 우리에겐 아름다운
노래로 들려온다.
어쩌면 모내기하면서 부르는 노래, 보리밭 매면서 부르는 노래,
배를 짜면서 부르는 노래들과 일맥상통하는 삶의 노래가 아닐까……
부엌 가마솥에선 아침밥 뜸 들이는 냄새가 구수하다.
감자 넣고 무 넣고 끓인 찌개 끓는 소리 보글보글 들려오는 작은 솥,
바쁜 어머님의 손은 젖은 행주로 솥 전을 닦으며 아침상 차리기에 바쁜 시간,
누렁이도 절반의 아침을 먹고서는 주인 눈치 보느라 외양간 밖을 휘 둘러본다.
보리쌀을 바닥에 깔고 가운데 한 줌 쌀을 넣어 지은 밥, 쌀이 많은 밥은
아버님 밥, 그리고 함께 일할 손님들의 밥이다.
그리고 조금 남은 쌀밥을 보리밥과 골고루 섞어 밥을 푼다.
개다리소반에 아버님 상 차리고, 또 다른 개다리소반에 손님상 차리고,
두레상을 펼쳐 남은 가족들이 둘러앉아 아침 식사를 한다.
식사하면서 입에 밥이 보이면 상스럽단다. 그래서 식사시간에는 조용히
오물오물 소리 나지 않게 밥을 먹는다.
가끔 이야깃거리가 있어도 입에 밥이 보이지 않게 밥을 넘기고, 이야기하고,
이야기 끝나면 다시 밥을 먹는다. 국물을 마셔도 후루룩 소리를 내지 않는 게
우리들의 예의다.
맛나게 밥을 먹되 쩝쩝 소리를 내지 않아야 한다.
식사가 끝나면 조용히 물을 마시고 어른이 식사 마칠 때까지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야 한다.
식사 도중에 먼저 자리를 뜨는 것도 어른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허겁지겁 밥을 먹어서는 안 된다.
밥은 천천히 꼭꼭 씹으며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어 먹어야 한다.
아무리 바쁜 5월이어도 지켜야 할 예의는 지켜야 하는 게 우리들의 삶이었다.
(중략)
내일 이어집니다,
<<시인, 수필가 이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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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랑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봄, 바지런한 농부들의 손놀림으로 심어진
나락들이 검푸르게 자라 다가올 추수 때를 기다리며, 알알이 영글어가고
있는 들판을 바라보며 오늘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모습을 곱게 그려주신
작가님의 글을 통해 잊혀가는 우리 농촌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바쁘지만 평화스럽게 예의를 지켜가며 농사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농부들의
삶 속에서 인내를 배우고 나눔을 배우고 그들이 흘렸던 땀의 대가로
오늘도 풍성한 식탁을 차릴 수 있음이 감사한 아침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벼”가 무언지도 몰라 “쌀 나무”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많다지요?
더구나 쌀 소비가 줄어들어 농민들의 통장에 이자만 불어난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가슴이 싸아~해짐을 느낍니다.
사랑하는 국보 가족님!
오늘은 팔랑팔랑 논두렁을 뛰어다니다 푸른 5월 하늘을 바라보며 보리피리
불어대던 아름다웠던 기억 한 자락 꺼내놓고 추억으로의 여행을 떠나보시면
어떠실는지요?
마음이 풍요롭고 더위도 추억으로 물리칠 수 있는 행복한 하루 보내시고
환한 미소로 오늘을 마감하는 고운 날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김미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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