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 역사/고려

제29대 충목왕(忠穆,1344~1348 재위4년)

오늘의 쉼터 2009. 7. 30.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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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대 충목왕(忠穆,1344~1348 재위4년)

 

 

충목왕은 충혜왕의 맏아들이자 정순숙의공주(덕녕공주)의 소생으로 1337년 4월에 태어났으며, 이름은 흔(昕), 몽고 이름은 팔사마타아지(八思麻朶兒只)이다. 어려서 볼모로 원나라에 가 있다가 1344년 충혜왕이 죽자 8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비록 나이는 어렸으나 총명하여, 원나라의 순제(順帝)는 왕위를 계승하게 하고 뒤이어 개부의동삼사 정동행중서성좌승상 상주국 고려국왕(開府儀同 三司征東行中書省左丞相上柱國高麗國王)으로 임명하였다.

   충목왕은 왕위에 오르자 그의 모후 덕녕공주가 섭정을 시작했다. 곧 신료(臣僚)들을 계고(戒告)하여 폐정을 개혁하고 백성들을 위무·구휼하는 한편 선왕(先王)때 아첨하던 폐신(嬖臣)들을 귀양보냈다. 그리고 작은아버지 기(祺:뒤의 공민왕)를 강릉부원대군(江陵府院大君), 현 (玹)을 익흥부원군(益興府院君)으로 봉하였으며, 이제현(李齊賢)의 상서(上書)에 따라 보흥고(寶興庫)·덕녕고(德寧庫)·내승(內乘)·응방(鷹坊)을 폐지하여 백성들의 원한을 덜었으며 서연(書筵)을 열었다.
또한, 선왕이 지은 신궁(新宮)을 헐어 숭문관(崇文館)을 짓게 하고, 권신에 의하여 빼앗겼던 녹과전(祿科田)을 원주인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같은해 금마군(金馬郡)이 기황후(奇皇后-元나라의 順帝妃)의 외향(外鄕)이므로 익주(益州:지금의 益山)로 승격시켰다.
1346년에는 이제현 등으로 하여금 앞서 민지(閔漬)가 편찬한 《편년강목 編年綱目》을 증수하게 하고, 또 충렬·충선·충숙 세 왕의 실록을 편찬하게 하였다. 1347년에는 정치도감(整治都監)을 두고 계림군공(鷄林郡公) 왕후(王煦), 좌정승 김영돈(金永旽) 등 33명을 속관(屬官)으로 삼아 여러 도의 토지를 측량하게 하였다.
그러나 남의 토지를 빼앗고 불법을 자행한 기황후의 친척인 기삼만(奇三萬)의 옥사를 계기로 원나라의 간섭을 받아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였으며, 1348 년에는 진휼도감(賑恤都監)을 두어 굶주리는 백성들을 구제하게 하였다.
덕녕공주가 국가기강을 바로 잡으며 경제 재건에 힘쓰고 있는 동안 충목왕은 급속도로 병약해져 거처를 건성사로 옮겨 요양하였지만 1348년 12월 충목왕은 모후 덕녕공주의 직극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12세의 어린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시호는 현효(顯孝), 원나라의 시호는 충목(忠穆)이며, 능은 명릉(明陵:開城 소재)이다. 
 

서문출처: 미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