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병법서

본국검법(本國劍法)

오늘의 쉼터 2009. 7. 23. 13:22

본국검법(本國劍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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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국검법>은 신라시대의 검법이며 현존하는 것으로는 세계 최고의 것이다.

중국에도 검법이나 검도의 기법이 있으나, <본국검법>보다 앞선 것은 오직 전해오는 말뿐이며

실제 검보(劍譜)로 이보다 앞선 것은 없다. 

일본의 도법은 까마득한 뒷날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본국검법>은 그 자체만으로도 국보적 가치가 있다.

이 검법은 우리의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수록된 24기(技)중의 하나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칼춤의 희(戱)라 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을축년(乙丑年) 겨울에 내가 게림(경주)에 손님이 되어 갔는데 부윤 배공(裵公)이 향악을 베풀어

나를 위로하는데 탈을 쓴 동자(童子)가 뜰에서 칼춤을 추는 것을 보았다.

물어보니 말하기를,

신라 때 황창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나이 15,6세쯤 되어서 칼춤을 잘 추었는데 신라왕을 뵙고 말하기를 신이 원하건데 임금을 위하여

백제왕을 죽여 원수를 갚고자 합니다 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황창이 곧 백제로 가서 시가에서 춤을 추니구경하는 사람이 담처럼 둘러쌌다.

 백제왕이 이 소문을 듣고 황창을 불러서 칼춤을 추라고 하였다. 황창은 기회를 보아 왕을 찔렀다.

이에 백제인이 그를 죽였다.

신라인이 이를 슬퍼하여 그의 얼굴 모습을 본떠서 가면을 만들어 쓰고 칼춤을 추었는데 그것이 지금도 전한다.'

또한 '왜(倭)가 신라와 인접해 있으므로 검기(劍技)와 검무(劍舞)가 반드시 전하여 졌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의 어머니가 듣고 울부짖다가 드디어 눈이 멀었다.

사람들의 그의 어머니의 눈을 도로 밝아지게 하려고 꾀를 내어 사람을 시켜서 뜰에서 칼춤을 추게 하고 속여서 말하기를 창이 와서 춤춘다. 창이 죽었다는 전일의 말은 거짓말이다 하니, 그 어머니가 기뻐 울며 즉시 눈이 도로 밝아졌다 한다. 이첨은 스스로 이에 관해 고증하기를 내가 <삼국사기>를 보니 모든 것이 다 씌어 있는데 이런 소년이 적국의 왕을 살해한 애기가 없으니 이것은 아마 관창의 이야기를 잘못 전한 것이 분명하다. 창이 어찌 적국인 백제에 들어갈 수 있었겠느가? 이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그러니 관창의 이야기를 미화한 것이다. 관창이야말로 춘추시대의 노나라 소년 왕기(汪錡)와 함께 오직 둘뿐인 소년 영웅이다. 앞으로 창의 춤을 보는 이를 위하여 고증한다.' 이런 내용은 <동경잡기>에도 인용된다.

황창이 신라 사람인 것은 확실하나 화랑인지 아닌지, 또 어느 왕 때의 인물린지 알 수 없으며 <무예도보통지>나 <동경잡기(東京雜記)>는 <동국여지승람>을 인용한 것 같은데, <동국여지승람>은 어떤 문헌을 참고 하였는지 밝히지 않았고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전혀 황창의 이름이 보이지 않아 더 이상의 고증은 어렵다. 황창이 백제왕을 찌른 사실은 당시 신라가 백제에 큰 원한이 있었음을 말한다. 신라는 그 국력이 백제에 미치지 못해 늘 피해를 당했던 것이다. 특히 무령왕 이후 성왕 때에 이르면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되어 피차 양립 못할 절박한 상태가 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황창에 관한 이첨(李詹)의 고증이 있다.

현재 본국검에 관한 문헌상의 최고의 기록은 1673년에 본국검을 시험 보았던 사실이다. 북벌의 군주 효종의 아들로 왕위에 오른 현종이 무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시험인 관무재에서 “본국의 무예를 시험 보도록 하라”고 명을 내리자, 대장이 “본국의 기예 중 어떤 것을 먼저 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본국검부터 시작하라”고 명을 내린 흥미로운 기록이 [승정원일기]에 남아 있다.


이덕무, 박제가 등은 이런 이야기에 자신들이 철저히 고증하여 내린 견해를 이렇게 덧붙였다. “황창은 신라 화랑이었다. …신라는 왜국과 가까이 있었으므로 그들의 춤(검무)과 검기 등이 반드시 전해졌을 것이지만 전해오는 검술이 없으므로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황창랑을 본국검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원의가 ‘검보’를 조선에서 구했다고 한 [무비지]의 기록은 사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서역의 등운에 비유했는데, 그것은 조선이 스스로 ‘본국검보’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또 서복이 전해주었다는 일본의 [상서]에도 비유했는데, 그것은 조선의 ‘검보’가 중국에서 전해진 ‘보’일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은 모원의의 시대로부터 백 수십 년이나 흘렀으므로 창안하고 전수한 사실은 물론이고 서로 주고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는 부분이 아주 많다.”
기록이 없어 본국검, 예도(조선세법) 같은 우리 검보의 기원을 밝히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갖고 있었던 [무예도보통지] 편찬자들은 동시대인들에게, 그리고 후대의 우리들에게 이런 경계의 말을 남겼다. “본국 사람들은 왜 스스로 전하고 익히지 않고 꼭 모원의의 [무비지]에 의존하여 전수하고 수련하려 했는지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첨은 고려말에 태어난 문장가로 조선 태종 5년(1405년)까지 살았는데 적어도 그때까지는 <본국검법>이 전해져 내려온 것인 확실시된다. 현재도 영남지방에 황창무(黃昌舞)를 추는 사람이 있다 하여 수소문 하였으나 아직 찾지 못했다.
 

  이상의 기록으로 유추해 보면,

  ① 신라가 화랑을 제도화하기 전후하여 청소년들 사이에 검무(劍舞)가 크게 유행하였다.
  ② 이들은 백제왕을 해하는 것을 큰 목표로 하고 있었다.
  ③ 신라에는 어떤 형태이든 자객이나 첩자를 백제에 보내고 있었다.
  ④ 이첨의 고증에서는 황창을 관창으로 보고 있으나 오히려 신라 진흥왕 15년(554년)에 백제왕을 죽였다는 
      고간도도(高干都刀)가 창일 가능성도 있다.
  ⑤ 신라의 검술은 이때 이미 매우 발전해 있었으며 일본에도 전파된 것이 분명하다. 
  ⑥ 이 검법은 조선왕조 초기까지는 전승되고 있었으니 적어도 신라의 <무오병법(武烏兵法)>이나 고려의
     <김해병서(金海兵書)>(단채 신채호는 김해병서가 연개소문의 저서라는 설이 있다고 함)에는 실려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동국여지승람>에 소개된 서거정(徐居正)의 <문천빙망(蚊川聘望)>이라는 시구에도
     '황강개보군원(黃慷慨報君寃)'이라는 황창의 애기가 있고 김종직(金宗直)의 시 <칠영(七詠)>중에도
     황창랑이라 하여 '이란 사람이 있었도다! 어린 나이에, 키는 석 자도 못되면서 어찌 그렇게 웅걸하고
      날쌘고, 언제나 왕기를 스승으로 삼아, 나라 위해 치욕을 씻었으니 마음에 뉘우침 없네, 공을 이루고는
     춤을 그치고 가버리니 태산을 옆에 끼고 북해를 뛰어 건넌 듯' 이라고 썼다. 서거정이나 김종직은 성종때
    사람으로 잘 알려진 문인들인데 그들이 남긴 시로 보아도 그때까지는 황창에 관한 문헌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본국검법>의 배경은 신라의 화랑정신이며 이를 발판으로 신라에서는 훌륭한 검법을
  창출하게 되었던 것이다.
  <본국검법>은 모두 33세(勢)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 격법(擊法)이 12수(首), 자법(刺法)이 9수로 치고
             찌르는 것이 모두 21수다.
   진전살적세(進前殺賊勢) 3수
   향전살적세(向前殺賊勢) 2수
   후일격세(後一擊勢) 3수
   후일자세(後一刺勢) 2수
   일자세(一刺勢) 1수
   안자세(雁刺勢) 1수
   직부송서세(直符送書勢) 1수
   발초심사세(撥艸尋蛇勢) 1수
   표두압정세(豹頭壓頂勢) 1수
   좌우요격세(左右腰擊勢) 2수(각 1수)
   장교분수세(長蛟噴水勢) 1수
   우찬격세(右鑽擊勢) 1수
   용약일자세(勇躍一刺勢) 1수
   시우상전세(?牛相戰勢) 1수
 
   이상이 격자지법(擊刺之法) 21수이고 내략(內掠), 외략(外掠), 방적(防賊) 등의 방어법이 있으며 지검대적세
(持劍對賊勢), 금계독립세(金鷄獨立勢), 맹호은림세(猛虎隱林勢), 조천세(朝天勢), 전기세(展期勢), 백원출동세
(白猿出洞勢)등의 기존자세가 있다.  <무예도보통지>의 검보(劍譜)나 총도(總圖)를 보면 검법의 운용만을 순서에
 따라 대충 그려 놓았을 뿐이고 세법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 그 전체의 묘를 터득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이 검법이 실린 <무예도보통지>의 편자가 <본국검법>에 관해 아는 것이 적었고 또한 볍업을 알고 알고
있었던 실무자 역시 저예가 깊지 못하였던 것 같으며 도보를 그린 화공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무예도보통지>의 검보(劍譜)나 총도(總圖)를 보면 검법의 운용만을 순서에 따라 대충 그려 놓았을 뿐이고 세법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 그 전체의 묘를 터득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이 검법이 실린 <무예도보통지>의 편자가 <본국검법>에 관해 아는 것이 적었고 또한 볍업을 알고 알고 있었던 실무자 역시 저예가 깊지 못하였던 것 같으며 도보를 그린 화공은 더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이제 <본국검법>의 세법(勢法)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다시 전체의 검법을 순서에 따라 기술하여 보기로 한다.
 1. 세법(勢法)
1. 持劍對敵(後를 향하여 바로 서서 왼쪽 어깨에 칼을 멘다. 이때 발은 어깨넓이로 벌려선다)
2. 內掠(오른발을 약간 들면서 왼발을 축으로 오른쪽으로 돌면서 동시에 칼을 안으로 스치듯이 원을 그린다)
3. 進前擊賊(스쳐올려 前을 향하여 오른발로 한 번 친다)
4. 金鷄獨立(뒷발을 당긴후 왼쪽으로 돌아 왼발을 들고 왼쪽으로 돌아 前을 향한다)
5. 後一擊(오른발로 後를 친다)
6. 金鷄獨立(들었던 왼발을 내디디고 오른발이 앞으로 나가면서 後를 향하여 왼발을 들고 우어깨칼을 한다)
7. 進前擊賊(오른발로 前을 친다)
8. 一刺(왼쪽으로 칼을 감는다. 오른쪽으로 칼을 감는다. 감은 칼을 앞으로 내며 왼발이 나가면서 왼발로 前을
        찌른후 칼을 뽑는다)
9. 猛虎隱林(어깨 높이로 들고 오른쪽으로 돌고 다시 오른쪽으로 돌고 왼쪽으로 돈다 )
10. 雁字(칼을 내리면서 왼쪽으로 감고 오른쪽으로 감아서 왼발이 나가면서 칼을 뻗쳐서 왼발로 後를 찌른다)
11. 直符送書(칼을 빼면서 오른쪽으로 돌아 왼발로 前을 찌른다)
12. 撥艸尋蛇(오른발을 들면서 왼쪽어깨에 칼을 메었다가 즉시 허리를 치듯이 오른발로 친다)
13. 豹頭壓頂(왼발이 나가면서 왼쪽으로 감고 오른발이 나가면서 오른쪽으로 감는다.
     이때 땅을 구르며 위로 뛴다.
     내려서며 왼발이 먼저 닿고 이어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디면서 前을 찌른다.
     이때 "에잇"하고 기합을 넣는다)
14. 朝天(칼을 빼서 오른쪽으로 돌며 칼을 크게 들었다가 다시 중단세를 취한다. 왼발을 내어 딛고 이어 칼과 오른발을 든다)
15. 左挾獸頭(오른발을 뒤로 빼면서 오른쪽으로 돈다. 중단을 취한 다음 왼발이 나아가고 이어 오른발을 들면서 왼쪽
             어깨에 칼을 멘다)
16. 向右防賊(오른발을 뒤로 내디디고 왼발을 들면서 칼을 수평으로 하여 밖으로 크게 돌린다)
17. 後一擊(들었던 왼발을 내디디고 칼을 이마위에 들었다가 오른발이 나가면서 後를 친다)
18. 展旗(칼을 왼쪽으로 치켜 올렸다가 안으로 스쳐 올려서)
19. 進前殺賊(오른발로 後를 친다)
20. 金鷄獨立(왼쪽으로 돌아 금계독립세를 하고)
21. 左腰擊(왼쪽으로 한걸음 나아가 오른발을 내디디면서 칼을 비스듬히 후려 목덜미를 씻으면서 왼쪽으로 돈다)
22. 右腰擊(칼을 왼쪽 어깨에 멘다. 다시 반대방향으로 두걸음 나아가서 몸을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옆으로 후려 씻으며
           허리를 치고 오른쪽 어깨에 칼을 멘다)
23. 後一刺(오른발을 내딛고 왼발이 나가면서 後를 찌른다. 이때 "에잇"하고 기합을 넣는다)
24. 長蛟噴水(즉시 왼쪽으로 돌아 오른발로 前을 친다)
25. 白猿出洞(왼발이 나아가고 오른발을 들면서 칼을 왼쪽 어깨에 비스듬히 세운다)
26. 右鑽擊(오른발을 우측방(135도)으로 내어딛고 오른발로 우측방을 찌른다)
27. 勇躍一刺(오른발을 뒤로 빼면서 오른쪽으로 225도 돌아서 왼발로 前을 찌른다)
28. 後一擊(왼발을 뒤로 빼면서 오른발로 前을 친다)
29. 後一刺(왼쪽으로 감고 오른쪽으로 감아서 왼발이 나가면서 後를 찌른다)
30. 向右防賊(칼을 빼고 오른쪽으로 돌면서 밖으로 스쳐 향우방적세를 하고)
31. 向前殺賊(앞으로 나가면서 오른발로 前을 두번 달아 친다)
32. 시牛相戰(오른발이 나가면서 前을 낮게 찌른다. 이때 "음~"하고 기운을 거둔다)
 
 
2. 검 법 (劍法)
검보에는 따로 언해본이 있으나 본문을 싣고 미비한 점을 보충한다.

   처음에 지검대적세를 취하되 양손으로 칼자루를 잡고(왼손은 자루끝, 오른손은 콧등이 바로 아래) 왼쪽 어깨에 의지하듯(칼끝을 위로 향하여 세우고) 바로 섰다가(양발은 어깨넓이로 벌리고) 오른쪽으로 돌며 안으로 칼을 스쳐(이때 오른발을 들며 방어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진적격적세를 하되 오른발을 앞으로 내어 구르며 오른손으로 앞을 한 번 친다.

  * 검을 양손으로 잡고 있는데 본문에 이따금 오른손으로 친다. 혹은 왼손으로 찌른다 하는 구절이 있음은 검무의 형태를 취할 때는 자연 가벼운 검을 사용하므로 그렇게 하였으나 이미 이법을 실전용으로 연습하던 때에 와서는 주로 예도, 즉 요도를 사용 하였으나 조선식 환도의 무게가 한 근 여덟 냥이라 양손으로 쓰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금계독립세를 하되 왼쪽으로 돌아 칼을 들고(칼끝이 위로 가게 오른쪽 어깨에 메고) 왼발을 들어  뒤를 돌아보고 왼쪽으로 한 번 돌아 후일격세를 하되 오른손과 오른발로 한 번 치고 다시 금게독립세를 하되 왼쪽으로 한 번 돌아 진전격세를 하되 오른손과 오른발로 한 번 치고 재빨리 좌우로 감아 왼손관 왼발로 한 번 찌른다.

   * 오른발 오른손으로 친다, 혹은 왼발 왼손으로 한 번 찌른다는 뜻은 물론 검으로 상대를 친다는 것을 말함이니 칼끝의 장난이 아니라 몸을 버리고 과감히 들어가며 혼신의 힘을 다해 쳐야 적을 제어할 수 있을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어서 맹호은림세를 하여 그 자세대로 오른쪽으로 두 번 돌고 왼쪽으로 돌아 안자세를 하되 왼쪽을 향하여(상대의 오른쪽 가슴을 뜻함) 좌우로 감아(칼끝을 왼쪽 오른쪽으로 한번씩 돌려 감는 것) 오른손과 왼발로 한 번 찌르고 거듭하여 직부송서세를 하되 오른쪽으로 한 번 돌아 오른손과 왼발로 오른쪽을 한 번 찌르고(좌일자라 함은 상대의 왼편 가슴을 찌르는 것이니 심장을 겨냥하여 찌르라는 것으로 일본의 검도본에서도 목을 찌름, 가슴을 찌름, 폐를 찌름, 명치를 찌름 등의 구분이 있어 대개 이와 같다.)왼쪽으로 돌아 앞을 향하여 발초심사세를 하되 오른손과 오른발로 한 번 치고, 앞으로 한 발 나아가 한 걸음 뛰어 표두압정세를 하되 좌우로 감아 오른손과 오른발로 앞를 한 번 찌른다.

   이어서 오른쪽으로 돌아 뒤로 돌아와 조천세를 하되 양손으로 검을 이마 위에 높이 들고 오른쪽으로 돌아 앞으로 나아가 뒤를 향하여 좌협수두세를 취하고 즉시 향우방적세를 하되 왼발을 들고 밖으로 스쳐(칼끝이 바깥쪽으로 원을 그림) 인하여 후일격세를 하되 오른손과 오른발로 한 번 친다.

   * 본문에는 조천세에서 오른발를 들라는 내용이 없다. 그러나 도보(圖譜)나 총도(總圖)에는 그림으로 나타나 있다.
이것으로 보아 발을 들 수도 있었으나 이것은 한 동작에서 다음으로 이어지는 중간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조천세는 오늘날 우상단과 같다.

   오른쪽으로 돌아 앞을 향하여 전기세를 하되 오른발을 들고 안으로 스치고 즉시 진전살적세를 하되 오른손과 오른발로 한 번 치고 즉시 금계독립세를 하되 칼을 높이 들어(오른쪽 어깨에 메고) 왼발을 들어 뒤를 돌아보고 인하여 들어와 왼쪽으로 돌아 좌요격세를 하되 왼쪽발을 들면서 오른쪽으로 검을 돌려 산대의 목을 후려 베고.

   * 현대 검도는 스포츠화 되어 요격이라 하면 허리를 치는 것인데 실전에서는 갑옷을 입은 자의 허리를 치는 것보다는 더 취약한 목을 공격하는 것이 바람직함은 물론이다. <본국검법>에서도 요격세라 기록하고 실제는 세항(洗項)이라 했음에 유의한다.

   즉시 오른쪽으로 돌아 우요격세를 하되 오른발을 들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목을 후려베고 즉시 오른쪽으로 돌아 후일자세를하되 오른손과 왼발로 한 번 찌른다. 왼쪽으로 돌아 앞으로 장교분수세를 하되 오른손과 오른발로 한 번 치고 이어서 백원출동세를 하되 오른손과 오른발을 들고, 이어서 우찬격세를 하되 오른손과 오른발로 비비어 찌르고 돌아  용약일자세를 하되 오른손과 왼발로 한 번 찌른다.

   왼쪽으로 돌아 뒤를 향하여 후일격세를 하되 오른손과 오른발로 한 번 치고 이어서 후일자세를 하되 좌우로 감아 오른손과 왼발로 한 번 찌르고 즉시 오른쪽으로 돌아 앞으로 향하여 향우방적세를 하되 왼발을 들고 밖으로 스쳐 즉시 향전살적세를 하되 오른손과 오른발로 앞을 두 번 치고 이어서 시우상전세를 하되 오른손과 오른발로 한 번 찔러서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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