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염객전(虯髥客傳)
수(隋)나라의 양제(煬帝)가 강도(江都)로 행차했을 때, 사공(司空) 양소(楊素)에게 명하여 서경(西京)의 유수(留守)가 되게 하였다. 당하여 천하의 권세가 크고 명망이 높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나만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사치와 호화로움을 마음껏 부려 예제(禮制)도 다른 일반 신하들과는 달리하고 있었다. 공경(公卿) 등의 벼슬아치들이 용무가 있어 찾아온다던가 손님들이 인사차 찾아온다던가 했을 때도, 언제나 반드시 의자에 걸터 앉은 채로 만나며 미녀로 하여금 접대를 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녀들을 나란히 세워 놓는 모양도 아주 과도하여 천자와도 같았다. 만년 (晩年)에는 그런 버릇이 더욱 심해져서 다시는 자기 자신이 맡은 바의 임무를 다할 것을 깨닫지 못하였고, 자기 혼자만이 천하를 다스려 위난을 극복해 나가고 있는 듯한 기분에 도취되어 있었다. 정책을 진언하려고 했다. 그런데 양소는 이때도 역시 의자에 앉은 자세로 이정을 만나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공은 앞으로 나아가 인사를 하고 말하기를, 공께서는 황실의 중신(重臣)이시므로 반드시 그런 영웅호걸들을 주위에 모으는 일에 신경을 쓰셔야지, 이처럼 거만한 자세로 손님을 접견 하셔서는 안됩니다."라고 하니, 아주 마음에 들어 이공의 정책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물러가게 하였다. 들고 그 앞에 서서 이공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공이 물러 나오자 마루 끝까지 쫓아 나와서는 관리를 불러서, 그 말을 전해들은 기녀는 그것을 입속으로 외우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르는 소리가들려서, 공이 일어나서 물어 보려고 밖으로 나갔다. 그랬더니 밖에는 자주색의 옷을 입고 모자를 쓴 사람이 지팡이에 자루 하나를 걸치고 서 있었다. 이공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리고 겉옷과 모자를 벗고 난 다음 그녀의 모습을 보았더니 18∼19세의 미인이었다. 소박한 얼굴 그대로 아롱진 옷을 입은 채 이공에게 절을 했다. 이공도 놀라면서 답례를 했다. 그리고나서 그녀는 말했다. 이공과 같이 훌륭한 분은 없었나이다. 그리고 저의 몸 또한 사라(絲蘿) 6)들처럼 독립해서 살 수 없는 것이므로, 큰 소나무에 의지하고 싶어서 이렇게 집을 뛰쳐나와 찾아왔을 따름이옵니다." 그 집의 기녀들 가운데는그의 앞날에 아무런 희망이 없음을 알아차리고 달아난 자들이 많은걸요. 그렇지만 그분은 또한 그렇게 뒤쫓아서 찾으려고도 않아요. 그리고 저는 그 점에 대해서 세밀한 계획을 세우고 있사오니, 아무쪼록 걱정은 하지 마세요." 내려온 사람 같았다. 더해 갔기 때문에 순식간에 여러가지 걱정거리가 생겨서 불안하였다. 그런데다가 집안을 기웃거리며 구경하는 사람들은 그칠 사이가 없었다. 역시 엄중하게 찾고 있는 눈치는 아니었다. 어쩠던 그녀에게는 남자의 복장을 시켜서 말에 태우고 여관문을 열어 젖히고 나와서 태원(太原)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고기를 올려놓았는데 그것이 곧 삶길려고 했다. 이공은 바야흐로 말에게 솔질을 해주고 있었다. 바로 이때 갑자기 한 나그네가 나타났는데, 몸집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보통이었고, 수염은 붉으면서도 용의 수염처럼 꾸불꾸불했으며, 당나귀를 타고 그곳으로 왔다. 와서는 가죽배낭을 화롯가에 내던지며 베개를 가지고 와서 비스듬히 기대고 누워서 장씨가 머리를 빗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공이 이 꼴을 보고 대단히 화가 났지만, 아직 겉으로 나타내지는 않고 계속해서 말만 씻어 주고 있었다. 장씨는 그 사람의 얼굴 모양을 자세히 보면서 한쪽 손으로는 머리카락을 잡고 또 다른 손으로는 등뒤에서 이공을 향하여 가로 저어 보이면서 화내지 말라는 암시를 하였다. 그리고는 급히 머리를 다 빗고 나서 의상을 단정히 하고 그 손님에게로 가서 그의 성씨를 물었다. 그랬더니 누워 있던 나그네는 "장(張)가요."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에게 형제 중에서 몇째인가를 물었더니, 그리고 나서 세 사람은 화로를 중간에 두고 둘러앉았다. 앉자 나그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나그네는 허리에서 비수를 뽑아서 고기를 잘라 셋이서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먹다 남은 고기를 난도질하여 당나귀에게 갖다 먹이는데 그 동작이 대단히 빨랐다. 그리고 나그네가 말하기를, 가난한 선비에 불과한 것 같은데, 어떻게 이처럼 아름다운 여자를 얻었소?" 다른 사람이 이런 것을 물어 온다면 결코 답변을 해주지 않겠지만, 형님께서 물어 오셨으니 감추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술잔이 이미 돌자, 나그네가 말했다. 그러더니 머리는 다시 배낭 속에다 집어넣고 비수로 염통과 간을 썰어서 이공과 함께 먹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이제야 비로소 이놈을 잡게 되어서 가슴에 맺혔던 원한이 풀어졌지."라고 했고 태원 땅에 혹시 이인(異人)이 있다는 말을 못 들었소?" 그리고 그 나머지는 모두 장수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유문정을 통해서 그를 만나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형님께선 그를 만나서 무얼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나에게 그를 찾아보라고 했거든. 이랑은 내일 떠나면 며칠날 태원에 도착하시오?" 그 나그네는 이공과 장씨는 한편 놀랍기도 하고 또 한괸은 기뻐기도 하여 한동안 갈피를 못 잡다가, 이공은 유문정을 속이면서, 유문정은 항상 이공자를 비범하게 보아 온 터인데, 갑자기 상을 잘 보는 사람이 왔다는 말을 듣고서는, 당장에 사람을 보내어 이공자를 데려오게 하였다. 보낸 사람이 돌아왔는데 이공자도 따라왔다. 그런데 그의 모습은 예복도 입지 않고 관화(官靴)도 벗은 채 그냥 평복 그대로 왔는데, 의기는 충만했고 용모 또한 보통 사람과는 같지 않았다. 규염객(용의 수염을 기른 나그네)은 묵묵히 말석에 앉아 있다가 이공자의 모습을 보더니 그만 기가 죽고 말았다.
그래서 몇 잔의 술을 마시고 나더니 이정을 불러서, 유문정은 더욱더 기뻐하면서 자기의 사람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자부하고 있었다. 유문정의 집을 나와서 규염객은 말하였다. 그러니 이랑은 누이동생과 함께 다시금 낙양(洛陽)으로 올라와서, 아무 날 정오에 마행(馬行)의 동쪽에 있는 술집 아래층으로 나를 찾아와 주시오. 거기에 이 나귀와 또 다른 말라빠진 나귀가 있으면 곧 나와 도형이 함께 그 위에 있을 것이니 도착하는 대로 위로 올라오시오." 이렇게 일러주고 또 작별하고 떠나갔다.
이공과 장씨는 또다시 규염객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옷깃을 움켜잡고 위충으로 올라가 보니 규염객과 도사가 때마침 마주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가 이공이 온 것을 보고 아주 기뻐하면서 맞아서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둘러앉아 10여 잔의 술잔이 돈 다음, 규염객이 말하였다. 누이동생을 안주(安注)시키고 난 다음, 아무 날 분양교(汾陽橋)로 나를 다시 찾아 주시오." 그래서 그들은 함께 유문정에게로 갔다. 가서 보니 그때 마침 유문정은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인사를 하고 나서 그들은 그들이 온 뜻을 말해 주었다. 유문정은 그들이 찾아온 의도를 알자, 곧 편지를 써서 지급으로 사람을 보내어 문황(文皇)을 바둑 구경하러 맞아 오게 하였다. 이리하여 도사는 대국(對局)을 벌이고 규염객은 이정과 더불어 옆에서 관전(觀戰)을 하고 있었다. 정중히 인사를 하고 나서는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또 기분이 상쾌해서 만좌(滿座)에 바람이 이는 듯했으며 돌아보는 눈동자도 번쩍번쩍 빛났다. 도사는 한눈에 기색이 참변하여 바둑알을 놓으면서, 이쪽에서 그만 온 판을 망쳐 버렸단 말이야! 살려낼 도리가 있어야지. 말해 봤자 소용없어!"라고 말하고 바둑을 끝내고 작별 인사를 했다.
그 집에서 나와서 도사는 규염객에게 말하기를, 다른 곳으로 가보는 것이 좋을까 하오. 노력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상심하진 마십시오."라고 했으며 그리고 규염객은 말했다. 도착하는 그 다음날 누이동생과 함께 모지모리 (某地某里)에 있는 내 집으로 찾아와 주시오. 이랑은 누이동생과 의지하게 되었는데, 한푼도 가 진 것 없는 빈털터리란 말이야, 하여튼 우리 집사람을 인사도 시키고 겸해서 조용히 의논하고자하는 일도 있으니, 미리부터 사양일랑 하지말고 와 주시기 바라오." 말을 마치더니 탄식하면서 돌아갔다. 그리고 약속한 날에 드디어 장씨와 함께 규염객의 집을 찾아갔다. 가보니 한 조그마한 판자문이 달려 있었다. 그 문을 두드리니 어떤 응접하는 사람이 나와 인사를 하면서, 40명의 시녀들이 뜰 앞에 도열해 섰고 20명이나 되는 하인들이 그들을 인도하여 동쪽 대청으로 들어갔다.
대청 안의 진설(陳設)은 지극히 진기(珍奇)하였고, 상자 속에 들어 있는 화려한 화장품·모자·거울·머리장식품 등은 모두 이 세상의 물건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고 화장을 하고 나니 또 옷을 갈아입으라고 청하는데, 그 옷 또한 진기한 것이었다. 옷을 다 갈아입고 나니,
어떤 사람이 또한 용과 범 같은 위용(威容)이 있었으며 반가이 그들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나서는 자기의 아내를 재촉하여 나와서 인사를 하게 했는데, 그도 또한 선녀 같은 미인이었다. 그곳에 차려 놓은 요리의 풍성함이란 비록 왕공(王公)의 집이라고 할지라도 이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네 사람이 자리를 잡고 요리상 앞에 앉으니, 곧 여자 악사 20명이 그 앞에 나란히 자리잡고 음악을 연주하는데,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았으며 이 세상에 있는 곡은 아닌성 싶었다. 식사를 끝마치고 나니 이번에는 술이었다. 상마다 비단수를 놓은 보자기로 덮어놓았다. 앞에다가 늘어놓은 다음 그 보자기를 모두 벗기는데 보니 그 속에는 문서와 열쇠로만 가득 차 있었다. 규염객이 말하였다. 이것이 모두 나의 소유인데 전부 이랑에게 기증하겠소. 왜 그러느냐 하면 실은 내가 이 세계에서 큰일을 좀 해보려고 20∼30년 동안이나 천하의 패권을 다투어 왔고, 그 결과 조그마한 공업(功業)을 세우게 되는가 했습니다만, 그러나 이제는 이미 주인이 나타났으니, 내가 이곳에 더 머물어 있은들 무엇을 하겠소? 태원(太原)에 있는 이씨(李氏)는 진정한 영주(英主)입니다. 4∼5년 이내에 천하는 태평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랑은 기특(奇特)한 재능으로 천하를 통일할 군주를 보필하여 마음과 몸을 다 바친다면, 반드시 신하로서의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될 것이요. 누이동생은 선녀와 같은 용자(容姿)로서 특출한 지략(智略)을 쌓아, 부군의 출세에 따라 현귀(顯貴)한 영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실로 누이동생이 아니었던들 이랑의 인물을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며, 또 이랑이 아니고서는 누이동생을 영광되게 해 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군웅(群雄)들이 기회를 만나 일어나기 시작하는 때에는 으례 영주(英主)와 어진 신하가 서로 만나게 되는데, 이는 마치 범이 으르렁거리면 산계곡의 바람이 이에 따라 일고, 용이 으르렁거리면 이에 따라 구름이 모이는 것처럼 실로 우연한 일은 아닙니다. 이랑은 내가 기증하는 이 재물을 가지고 진정한 주인을 보좌하여 그의 창업(創業)에 협찬(協讚) 하십시오. 힘껏 노력하십시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에 동남쪽 수천리 밖에서 무슨 큰 사건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때가 곧 내일이 성공하는 때입니다. 그때 누이동생과 이랑은 동남쪽을 향하여 술을 뿌리며 축하해 주기 바랍니다." 몇 걸음 못 간 듯하였으나 어디론지 사라지고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정은 이 집을 차지하여 대부호가 되었고 그 재산으로 이세민이 창업(創業)하는 일을 도와 줄 수가 있었으므로 드디어는 천하를 통일하게 되었다. 그 후 정관(貞觀)10년 이정이 좌복야평장사(左僕射平章事)의 벼슬에 있을 때, 마침 그때 남만국(南蠻國)으로부터 사람이 들어와 보고하였다. 그 나라의 군주를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국내의 질서는 이미 안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이 사실을 장씨에게 일러주고, 두 사람은 예복으로 갈아 입고 멀리 동남쪽을 향하여 술을 뿌리며 축하의 예(禮)를 올렸다. 못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하물며 영웅도 못되는 자에 있어서랴. 신하의 신분으로서 난을 꾸며 모반(謀叛)하려고 망상하는 것은, 마치 사마귀가 그의 팔뚝으로 굴러 오는 수레바 퀴를 대항하려는 것과 같이, 결국에는 자멸하고 말 뿐인 것이다. 우리 황실(皇室)이 만세(萬世)토록 복을 누리는 것이 그 어찌 요행으로 얻은 것이리오! 명나라 때의 홍불기, 규염옹은 이를 각색한 것이다. 규염객전은 호협적이면서도 역사소설로서의 구상이 뛰어난 작품으로 특히 주인공인 규염객은우리나라 고구려 명장 연개소문의 화신이라는 데에 큰 흥미를 자아낸다.
3) 楊素: 수대의 장수로서 字는 處道이며, 화음사람이다 일찌기 문제를 따라 천하를 통일하여 越國公에 봉해졌다. 煬帝는 낙양을 東京, 대흥을 西京이라 개칭했다. 西京은 지금의 섬서성 서안이다. 衛公의 칭호는 李靖이 衛國公에 봉해졌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여기서는 바로 髥客을 지칭 한 것이다 從二品으로 尙書令의 副職이었다. 평장사(平章事)는 同中書門下平章政事의 약칭이다. 무릇 中書省의 中書令(正二品)이나 門下省의 侍中(正二品)이 아닌 자로서 재상의 직위에 있는사람에게는 모두 이 직책을 부여하여, 中書·門下 두 省의 장관과 함께 군대에 관한 일과 나라의 大事에 관한 일에 간여케 했다. 우리 나라 高句麗 이전에 扶餘國이 있었는데,그것은 만주의 송화강을 중심으로 세워졌었고, 나중에 동·북부여로 분열되었고, 또 고구려 때에는 오직 扶餘省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여기의 부여국은 작자의 가상적인 나라라고 하겠다. 그러나 하필이면 부여국이라고 한 데 대해서는 따로 무슨 까닭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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