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 옛날 숙종대왕(肅宗大王) 즉위(卽位)후 십 년 동안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하며 사람마다 살림 형편이 넉넉하고 풍족하여 그야말로 요(堯)임금의 시대요, 순(舜)임금의 천하같은 좋은 세상이었다. 이런 태평세월에 백성이 먹을 것이 풍족하여 좋아하고 즐기며 격양가(擊壤歌) 부르기를 일삼았다.
각설. 이 때에 서울에 유명한 두 명의 재상이 있었는데, 한 재상은 이정(李楨)이요, 또 한 재상은 김정(金楨)이었다. 두 재상은 정의가 남달리 매우 깊었다. 두 재상이 각각 아들이 없어서 서러워 하더니, 하루는 이정의 꿈에 청룡이 오색 구름을 타고 여의주(如意珠)를 희롱하다가 난데 없는 백호(白虎)가 달려드니까 백호를 물어 한강에 쫓아 내버리고 하늘로 올라감을 보았는데, 그 달부터 부인이 태기(胎氣)가 있어서 열 달만에 신기하게도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혈룡이라 지었다.
김정승도 같은 때에 꿈을 꾸었는데 백호가 산을 넘어 한강을 건너려 하다가 용감한 청룡을 만나 백호가 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 놀라서 깨어나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다. 부인과 함께 꿈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였는데, 부인이 그 달부터 태기가 있어 열 달이 차서 기이한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진희라 지었다.
두 아들이 점점 자라나니, 기골(氣骨)이 장대(壯大)하고 씩씩한 기상이 늠름하였다. 김진희와 이혈룡이 한 글방에서 공부하였는데 그 총명한 재주가 옛 사람들을 능가하게 되었다.
두 아이는 수 년을 같이 공부했는데 그들의 정의는 동골동태(同骨同胎)의 친형제와 같았고, 두 집이 대대로 친구로 사귀어 오는 사이라 비록 후세의 자손이지만 세의(世誼)를 저버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진희와 혈룡이 서로 언약하기를,
"우리 두 사람의 정의를 생각하면 우리들이 살아 있는 동안은 물론이요, 후세의 자손들까지 우리 조상들이 하신 듯이 세의를 이어서 저버리지 말자. 세상의 복록의 이치란 변화무쌍해서 어찌 될지 모르니, 네가 먼저 귀하게 되면 나를 도와주고 내가 먼저 귀하게 되면 너를 도와 주기로 약속하자."
고 하였다. 서로 이처럼 태산같이 맺은 언약을 금석(金石)같이 여겨서 한결같이 의좋게 지냈다. 그런데 뜻밖에도 김정과 이정이 우연히 병을 얻어 백약이 무효한데 천명이라 회생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병세가 점점 위중하여지자 전하께서 대경실색하셔서 만조백관(滿朝百官)을 모아 놓고 하시는 말씀이,
"과인의 수족같은 신하는 김정승과 이정승이다. 지금 두 정승이 우연히 병을 얻어 백약이 무효하고 매우 위중하니 어떻게 하여야 회생시킬 수 있겠는가?"
하시는 백관이 명을 받들고 두렵고 황송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나 인력으로 어찌 천명을 어길 수 있겠는가. 전하께서 어의(御醫)를 불러서 말씀하시기를,
"급히 가서 두 승상의 병을 구하라!"
하시는 어의가 명을 받들고 두 승상에게 이르렀으나 벌써 병세는 기울어 있었다. 비록 편작(扁鵲)같은 명의라도 살릴 수는 없었다. 이 날 두 승상이 별세하자 두 집의 유족과 친척들이 모두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였다. 전하께서는 이 슬픈 소식을 들으시고 못내 슬퍼하시며 금은 삼백 냥을 각각 부의(賻儀)로 내려 주셨다. 두 집에서 천은에 감사하고 초종지례(初終之禮)를 극진히 지내고, 이어서 삼년 상을 지냈다. 이 때 김진희는 가세가 부유하여 잘 살았으나, 이혈룡은 가세가 점점 기울어 그날 그날 살아가기도 곤궁하게 되었다.
각설. 이 때에 김진희는 운수도 좋게 소년등과(少年登科)하여 전하께서 평양감사로 임명하시니 김진희는 천은에 감사하고 도임 길을 떠나게 되었다. 도임 행차가 지나는 곳마다 각 읍에서 바치는 물건과 환영하기 위하여 나온 백성들이 역과 길을 메우고 그 위세가 진동하였다.
평양에 당도하자 사승구(四勝區) 대로상에 씩씩한 팔백명의 나졸들이 늘어 서고 육각(六角)의 풍류 소리가 원근에 울렸고, 신임 감사는 찬란한 금마(金馬)위에서 위엄이 당당하였다. 그리고 영축하는 녹의홍상(綠衣紅裳)의 기생들은 각별히 곱게 단장하고 구름같은 머리채를 반달같이 둘러 얹고, 버들 잎 같은 두 눈썹은 여덟 팔자(八)로 다듬고, 옥 같은 두 연지볼은 삼사월 호시절의 꽃송이같이 묘한 태도로 고운 옷을 단정히 차려 입고, 박 속 같은 잇속은 두 이자(二)로 방그레하게 웃어 반만 벌리고서, 흰 모래밭에 금자라 같은 걸음으로 아기작 아기작 왕래하니, 어느 눈이 황홀하지 않으랴.
평양감사 김진희는 도임 후에 각 읍 수령들의 연명(延名)을 받고 이삼일 지낸 후에 육방(六房) 점고도 마친 다음, 기생 점고를 하는데, 영주선(瀛州仙)이, 김선월(金仙月)이, 옥문(玉門)이, 옥단춘(玉丹春)이 등등 앵무같은 기생들이 옷 모양과 얼굴을 곱게 꾸미고 갖은 교태의 걸음걸이로 아양을 떨어 어찌해서든지 감사의 눈에 들게 해서 수청이나 한 번 들까 서로 시기하고 아양 떠는 거동이 볼만하였다. 그 중에서 옥단춘이라는 기생은 지체가 비록 기생이나 행실이 송죽 같고 본심이 정결하여 부임하는 수령들과 감사들이 수청을 들라고 해도 모두 거절하고 글공부에만 힘쓰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기적(妓籍)에 매인 몸이라 점고는 받을망정 행실이야 변하랴고 정조를 굳게 지키고 있었다. 이같이 도도하게 완연히 들어가니 김감사가 보고서 마음이 울적하여 호장(戶長)을 불러서 분부하기를,
"오늘부터 옥단춘을 수청들게 하라."
하니 호장이 감사의 분부를 듣고 옥단춘의 집으로 급히 가서,
"춘아 춘아 옥단춘아, 버들잎에 피어난 춘아. 사또께서 너를 불러 수청을 들라고 명하시니 아니 가지는 못하리라. 네가 만일 수청을 거역하면, 너 때문에 우리가 경을 치니 단장하고 어서 가자."
하니 옥단춘이 깜짝 놀라 하는 말이,
"여보 호장 들어보소. 내가 비록 기생이나, 공부하는 처녀인데 수청을 들라니 그게 웬말이오?"
호장이 하는 말이,
"네 사정은 그러하나, 사또의 분부가 지엄하니 아니 가지는 못하리라. 우리 또한 너를 데리고 가지 않을 수가 없으니 잔말 말고 어서 가자."
옥단춘이 하는 수 없이 입고 있던 옷을 채복으로 갈아 입고 미친 여자 모양 들어가니 사또는 옥단춘을 가까이 이끌어 앉힌 후에 온갖 희롱 수작을 서슴치 않았다. 옥단춘은 하는 수 없이 수응수답(酬應酬答) 건성으로 감사의 비위만 맞추고 어물쩡하니라. 감사는 옥단춘에게만 빠져서 정사(政事)는 마음이 없이 풍악과 주색만 일삼았다.
이 때 이혈룡은 가세가 곤궁하여 늙은 모친과 처자를 데리고 살 길이 막막하였다. 날품을 팔자하니 배우지 못한 상일이요, 빌어 먹자하니 가문을 더럽힐까 두려웠고, 굶어 죽자하니 늙은 모친과 연약한 처자를 두고 차마 죽지도 못하는 처지였다. 죽지도 못하여 근근히 지냈는데 자기 배가 아무리 고파도 노친에게 그런 눈치를 보이지 않으려고 참았다. 이혈룡은 모친이 모르시게 자기 머리칼을 베어서 팔아다가 곡식과 바꾸어서 한 끼 두 끼 먹었으나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머리인들 어찌 이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내색을 않고 이렇게 지낼 적에 김정승의 아들 김진희가 평양 감사가 되었다는 풍문을 듣고 깜짝 놀라면서 혼자 속으로,
"친구가 큰 벼슬을 하였다니 반갑기 한량 없구나."
하였다. 모친께 들어가서 여쭙기를,
"김정승의 아들 진희가 그전에 친히 지낼 적에 태산같이 맺은 언약이 있었는데, 지금 들으니 그가 평양감사로 갔다 합니다. 옛일을 생각해서라도 제가 찾아 가면 괄시는 않고 도와 줄 것입니다. 그런데 가서 보자고 하려 해도 재상가 자손으로 구걸하는 모양으로 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노자 한 푼 없으니 갈 일이 막막합니다. 어쨌든 좌우간 빨리 다녀 오겠으니 가까이 모시지 못하여 고생이 되시더라도 용서하고 기다려 주십시오."
하였다. 평양까지 갈 일을 생각하니, 머나먼 길에 어이 갈까, 날아 갈까 뛰어 갈까 마음만 초조하였다. 그 친구를 찾아 가기만 하면 배고픔을 면할 것이요, 집에 돈백이나 가지고 돌아올텐데,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노자 한 푼 없이 먼 길을 걸어 갈 생각을 하니 막막하였다. 이혈룡은 또 혼자 넋두리 하기를,
"우리와 같은 중신(重臣)의 자손으로서 저렇듯이 귀하게 되었는데 나는 왜 이토록 곤궁하기가 심할까. 참으로 슬프고 가련하구나."
슬피 통곡하며,
"내 복록의 운수가 부족하거나, 죄주는 귀신이 나를 시기하여 천운이 이러하니 누구를 원망하랴."
하고 탄식하자 그 모친이 아들을 위로하여 말하기를,
"너는 조금도 슬퍼하지 마라. 남아(男兒) 궁달(窮達)이 때가 있는 법이니, 어찌 하늘이 무심하겠느냐."
하였다. 혈룡이 모친 앞을 물러 나와서 아내에게 당부하기를,
"당신은 모친을 모시고 내가 다녀 올 때가지 잘 있으시오."
하니 부인이 또한 울면서,
"제 생각에도 당신이 평양에 가시면 그 친구분이 괄시는 아니할 듯하니 아무쪼록 가실 방도를 구하시오."
하고,
"우례(于禮) 때 입었던 의복을 팔아서 겨우 몇 푼이나마 마련했는데 노자는 될 듯 하오니 길을 떠나시옵소서."
하였다. 혈룡이 떠날 적에,
"모친과 부인을 생각하니 나는 가서 한 때나마 연명하겠지만, 모친과 처자는 어떻게 지내리오?"
하면서 방성통곡하여 슬피 우니 그 소리를 듣는 사람마다 그들을 불쌍하게 생각했다. 마침내 혈룡이 떠날 때에 모친께 들어가서 앞에 엎드러 방성통곡하며,
"어머님 어머님, 식구들을 데리고 부디 안녕히 계시옵소서. 소자는 남아로서 자식이 되었다가 부모를 봉양하여 그 은공을 갚지 못하고 유리걸식하러 가오니 어디 간들 불효의 몸을 용납하겠습니까?"
하고 하직하며 눈물 지어 하는 말이,
"나는 평양에 당도하면 일시라도 기갈을 면할 것이지만 부인은 어떻게 모친과 기갈을 면하겠소?"
하니 부인이,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죽지 아니하고 노친께서 기갈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만 서방님을 걸어서 오백리 길을 어떻게 왕래 하시겠습니까. 부디 무사히 다녀 오십시오."
하였다. 혈룡이 눈물로 작별하고 평양으로 가는데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니 슬픔도 기쁨도 헤아릴 길 없고 다만 슬픈 마음 둘 데 없어서 비탈길로 내려가며,
"어쩌면 내 행색이 이러할까."
하였다.
혈룡이 죽장망혜(竹杖芒鞋)와 단표자(單瓢子)로 내려갈 때 가는 곳마다 경개 좋음을 감탄하며 평양에 당도했는데 그야말로 절승강산은 이를 두고 이름이었다. 동문 밖에 여관을 정하고 관속을 불러내어 기별 보내기를 청하였다. 통지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재차 청하여,
"나는 너의 사또와 죽마고우(竹馬故友)요 한 형제같이 지낸 사람이다. 네가 가서 통지하면 너의 사또가 반가워 할 것이니 염려 말고 통지하라."
하니 관속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이를 장차 어찌해야 할 지 곰곰 생각다 못해 이방(吏房)을 불러 사정했는데 그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일을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애고 애고 어찌할고. 모친과 아내, 날 보내고 배고파 기진하여 오늘이나 올라올까 내일이나 올라올까, 돈바리가 올라올까 주야장천 기다릴텐데 통지조차 못하니 어찌하여 살잔 말인가."
이런 탄식으로 슬피 울며 여관에서 십여 일을 유숙하니 노자도 떨어지고 모친과 처자를 대할 길이 망연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려 한들 노자 한 푼 변통할 수 없고 이곳에 머무르려 한들 주인이 싫어하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하면서 수없이 통곡하니 그를 불쌍히 여기지 않을 사람이 없었다.
혈룡은 대동강에 빠져서 죽기로 결심하였으나 다시 생각하니 모친과 처자가 계신 고로 차마 죽을 수는 없었다.
"불쌍하구나. 우리 모친과 처자는 이런 줄도 모르고 돈바리나 얻어 가지고 오늘이나 올라올까 내일이나 올라올까, 주야장천 고대할 일을 생각하니 차마 어찌 죽겠는가. 푼전의 노자도 없는 것은 물론 여관 주인도 괄시하여 나가라고 하니 이 넓은 처지간에 이런 팔자가 어디 또 있겠는가."
그의 탄식은 끊어지질 않았다. 그는 의복을 벗어서 팔아 기갈을 겨우 면하였으나 그것도 일시 뿐이었다. 아무리 통지 없이 관아를 들어가려 해도 사방을 굳게 지켜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다.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슬피 통곡하며 다니는 꼴이며 그 의복마저 떨어지고 때묻은 모습이 걸인 중에 상걸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산 목숨이라 기갈을 견디지 못하여 문전걸식 하던 중에, 하루는 평양감사가 각 읍 수령을 다 불러서 대동강변 연광정(練光亭)에서 큰 잔치를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 소문을 듣고 그 날을 기다려 만나보리라 하고 고대고대 기다리는데, 드디어 그 날이 되자 대동강변 연광정에 큰 잔치가 베풀러졌고 풍악소리가 낭자하며, 팔십 명의 기생들은 제각기 재주를 자랑하여 여흥을 돋구었다. 감사가 취흥을 못 이겨 취한 소리로 하는 말이,
"백구야 펄펄 날지 마라, 너 잡을 내가 아니다. 어허 하관수령들아 내 말을 들어보라. 삼사월 호시절에 온갖 잡화 다 피었는데, 세류청청(細柳靑靑) 저 버들과 좌우편의 저 두견아, 슬피 우는 너의 소리 들어보니 철석(鐵石)간장 안 녹으랴."
하며 취흥이 도도하여 마음 내키는 대로 놀고 있었다. 이 때 혈룡이는 배고파 기진맥진하였는데 연광정의 그 풍성한 음식을 보고 반가웠지만 아무리 반가워도 화중지병(畵中之餠)이라 먹을 수가 없었다. 눈을 돌려 경치를 살펴 보니 십리청강에 오리들은 물결을 따라 둥실둥실 높이 떠서 쌍쌍이 놀고 있고 백리평사(白里平砂)에 백구들은 쌍을 지어 놀고 있었다. 혈룡은,
"네 노래 청량함도 처량하다."
하면서 구경을 다한 후에 틈을 타서 감사가 노는 앞으로 가까이 들어가서 불러 말했다.
"평양감사 김진희야, 이혈룡을 모르느냐?"
두 세 번 외치는 소리에 감사가 듣고 한참을 보다가 호장을 불러 호통하니, 호장이며 수령들이 겁을 내어 혈룡에게 일시에 달려들어 뺨을 치고 등을 밀며, 상투를 잡아 끌고 가서 혈룡을 감사 앞에 꿇어 앉혔다. 그러자 김감사가 혈룡에게 노발대발
"너 이놈! 들어라. 웬 미친 놈이 와서 감히 내 이름을 욕되게 부르느냐?"
하였다. 이혈룡이 어이가 없어서,
"오냐, 내가 너를 친구라고 찾아 왔다가 통지를 할 수 없어 한 달이나 지나서 노자도 떨어지고 기갈을 견디지 못하여 문전걸식하고 다니다가 오늘이야 이 자리에서 너를 보니 죽어도 한이 없다. 나는 너를 친구라고 찾아왔는데 어찌 이같이 괄시한단 말이냐? 오랜 친구도 쓸 데 없고 결의형제(結義兄弟)도 쓸 데 없구나. 내가 네 처지라면 이같이는 괄시하지 않을 거다. 다만 돈 백이라도 준다면 모친과 처자를 먹여 살리겠다."
하면서 대성통곡하였다. 이혈룡은 다시 울먹이는 말로,
"이 몹쓸 김진희야, 내가 지금 푼전의 노자가 없으니 멀고 먼 서울 길을 어찌 돌아가랴."
하니, 김감사는 노발대발,
"이 미친 놈 봤나. 내가 너 같은 미친 거지 놈을 언제 봐서 아는 친구라는 거냐"
호통을 치면서 대동강의 뱃사공을 불러 엄명하기를
"이놈을 배에 싣고 가서 강물 한 가운데 던져서 물고기 밥을 만들어라."
이에 사공들이 영을 받고 물러나와 이혈룡을 잡아 묶어서 배에 실을 때에 연회장에 있던 옥단춘이 넌즈시 보니, 비록 의복은 남루하나 얼굴이 비범한 것을 보고 불쌍히 여기고 감사에게 거짓말하여 고하기를,
"소녀 지금 오한이 일어나며 온몸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고 거짓 엄살하기를 하니 감사가,
"그러면 물러가서 약을 써서 빨리 치료하라."
"네 황송하옵니다."
하고, 옥단춘이 물러나와서 이혈룡을 잡아가는 사공들을 급히 불렀다.
"저기 가는 저 사공들, 잠깐 기다리시오."
하니 사공들이 머무르거늘 옥단춘이 하는 말이,
"내 이 양반의 몸값을 후하게 줄 것이니 이 양반을 죽이지 말고 죽인 듯이 모래를 덮어서 숨겨 두고 오시오."
하고, 은근한 말로 간청하니라. 옥단춘의 부탁을 받은 사공들이, 귀가 솔깃해져서 서로 얼굴을 쳐다 보면서 수군거리되,
"아무리 사또 영이 지중하지만 어찌 우리 손으로 죄 없는 사람을 죽이겠는가."
"나도 그래. 마침 절개로 유명한 옥단춘 기생 아가씨의 부탁인데다가 활인적덕하고 큰 돈까지 생기는데 죽일거야 있겠나?"
하고, 옥단춘에게 눈짓으로 약속하고 이혈룡을 뱃사공들이 배에 싣고 만경청파 깊은 대동강물에 둥기둥실 젓고 가서 깊은 곳을 향하여 떠나갔다. 혈룡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속절없이 죽는 줄로만 알고 하늘을 우러러 방성통곡하기를,
"천지신명이여 굽어 살피소서. 불쌍한 이혈룡의 목숨을 살려 주시옵소서. 서울에 남은 노모와 처자가 나를 평양에 보낸 후에 이렇게 죽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오늘에나 올까 내일에나 올까 주야장천 바라는데 내 팔자가 무슨 죄로 갈수록 이같이 기박하단 말입니까?"
하니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고 산천초목까지 슬퍼하는 듯 하였다. 그런데 사공들의 거동은 백리청강 맑고 긴 물에 두둥실 높이 떠서, 어기여차 소리하며 물결 따라 떠내려 갈제 좌우 경치를 바라보니, 장성일면에 용용수(長城一面溶溶水)요, 대야동두에 점점산(大野東頭點點山)이라는 글처럼 이 땅의 승경(勝景)이므로, 무산(巫山) 열두 봉은 구름 밖에 솟아 있고, 연광정 내린 물은 대동강을 따라 있고, 산천초목(山川草木) 좋은 경치 홍홍백백 좋은 곳에, 범파창랑(汎波滄浪) 어부들은 청강홍미(淸江紅味) 좋은 경치, 백구는 하늘과 물 사이에 너울너울 높이 떠서 노는 모양 사람 흥미 자아내고, 동정호 추야월(洞定湖秋夜月)에 어수청풍(御水淸風) 노니는데, 내 팔자는 무슨 죄로 성은(聖恩)을 못다 갚고 어복중(魚腹中)의 혼(魂)이 된단 말인가 하고, 이혈룡은 억울하게 죽는 몸을 탄식하기를
"나 한 몸 죽기는 섧지 않으나, 북당(北堂)의 팔십 모친이 나를 보내시고 주야장천 기다리다가 이런 줄 모르시고, 자식 낳아 쓸 데 없다 하실 것이요, 가련한 나의 처자는 늙은 모친을 모시고서 오늘 올까 내일 올까 밤낮으로 문 밖에 나와서 기다릴제 소식이 묘연하여 나 죽은 줄 모르고서, 모친 처자 잊었는가 야속하다, 우리 낭군. 왜 그리 무정하냐고 눈물로 세월을 보낼지니, 애고 답답한 이 신세야, 어찌하면 모친 처자를 만나볼 수 있단 말인가. 아아 나 죽은 혼백이라도 천리 고향 어찌 갈꼬."
하면서 울었다. 이혈룡의 슬피 통곡하는 말이,
"수중고혼의 귀신이 되어 물과 하늘 사이를 다닐 것을 생각하면 원통하고 서러우니 명천이 밝게 살펴서 이 신세를 도와 주시옵소서. 한 번만 살려 준다면 어떠한 고생도 감수하리니 생전에 모친과 처자를 만나 보게 해주시옵서. 하늘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야, 한양성 서울을 지날 적에, 우리 모친 계신 곳을 지나게 되거들랑 나를 이곳에서 보았다고 전해다오. 불초자식 이혈룡은 모친과 처자를 이별하고 대동강에 억울하게 수중의 고혼이 되어 팔십 늙은 모친을 버린 죄로 이승도 저승도 갈 수 없어 물과 하늘 사이를 떠다니며 애고애고 통곡하여 슬피 울며 모친과 처자의 머리 위를 주야장천 다닌들, 불쌍한 우리 모친과 처자는 나를 어이 볼 수 있으리오."
하며
"수중의 고혼이 되더라도 소식 좀 전해다오. 아아 무심한 저 기러기 창망한 구름밖에 두 날 개 훨훨 치며 대답 없이 울고 가니, 내 마음 둘 데 없다. 애고애고 내 신세야 어찌하면 살겠느냐. 우리 고향에 모친 처자 두고 고대광실 집을 두고 무슨 일로 천리 타향 평양까지 왔다가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고금사를 생각하니 한심하고 가련하다."
이렇게 울며 호소하는 이혈룡을 실은 배가 대동강을 따라 내려갈 제, 산천에는 황금같은 꾀꼬리가 버들 속을 왕래하고, 좌우편의 뻐꾹새들은 제 신세를 한탄하여 이리 가서 뻐꾹뻐꾹 저리 가서 뻐꾹뻐꾹 울음 울고, 무심한 잔나비는 부라질을 일삼는구나. 그리고 또 저쪽을 바라보니 한 많은 두견새가 이리저리 다니면서 울음 우니 괴로운 이 내 심정 둘 데 없구나. 때는 마침 춘삼월이라 경치는 좋건만
"이 내 팔자는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토록 갈수록 기구한가. 꼼짝없이 수중고혼 되었구나. 박복한 이 내 신세 충신의 후손으로 성은을 갚지 못하고 이렇게 죽게 된단 말인가. 이같이 서러운 말로 글자마다 슬픈 원정(怨情)을 글로 지어 옥황상제께 올리려 한들 구만리 장천이라 바칠 길이 전혀 없다. 구중궁궐 우리 성군(聖君), 이런 일을 아시면 선악구별 못하실까."
수없이 통곡하니 일월이 빛을 잃고 산천초목과 비금주수(飛禽走獸)도 슬퍼하고, 대동강 맑은 물도 흐르지 않고 울렁출렁 머물렀다. 사공들이 이혈룡을 비로소 위로하여,
"여보 그만 진정하고 안심하시오. 사또님 영이 비록 지엄하나, 우리들이 어찌 무죄한 사람을 죽이겠소. 당신은 모래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해가 지고 날이 어둡거든 멀리 도망하시오. 만일 사또께서 아시면 우리가 애매하게 잡혀 중죄를 당할 것이니 조심하여 도망하시오."
하고 신신 당부한 연후에 이혈룡을 물가에 내려놓았다. 이혈룡은 일어나서 사공의 손을 잡고,
"죽게 된 이 인생을 선공(善功) 없이 살려 주시니 그 은혜 백골난망이옵니다. 내가 만일 살아나면 훗날 꼭 다시 뵈올 것이니 성명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며 백배 사은하였다. 사공은 이혈룡의 손을 잡고 하는 말이,
"남아하처불상봉(男兒何處不相逢)이라 했습니다. 후일에 다시 만납시다."
하면서 성명도 알리지 않고 배를 돌려서 돌아갔다. 이혈룡은 하는 수 없이 사공들의 말대로 모래를 파고 몸을 숨겨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데 배가 고파 기진맥진하여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이때 뜻밖에 어떤 사람이 와서 모래를 파헤치면서 일어나라고 두 세 번 불렀다. 혈룡이 깜짝 놀라 죽은 듯이 숨을 죽이고 그냥 누워 있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은근한 말로,
"여보시오, 겁내지 말고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 나를 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죽이려고 찾아 온 사람이 아닙니다. 염려 말고 어서 일어나서 나를 자세히 보고 요기를 하십시오."
하였다. 이혈룡이 그제야 좀 안심하고 기운을 차려서 눈을 뜨고 바라보니, 어떤 아름다운 여인이 미음 한 그릇을 손에 들고 지성으로 권하고 있지 않은가. 혈룡은 꿈같은 혼미 중에
"부모 은혜를 하늘이 살피심인가, 내 동갑의 어떤 사람이 원통하게 죽은 귀신인가."
생각하며 놀라워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인지 생시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기갈이 심하던 차라 먹을 것을 보니 어찌 반갑지 아니하겠는가. 미음을 받아서 마시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혈룡이 여인에게 다시 묻기를,
"당신은 어떤 분인데 죽어 가는 인생을 살려 주십니까. 이 은혜는 백골난망이오니 거주 성명을 알려 주십시오."
하였다. 옥단춘은,
"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평양에 사는 기생이옵니다만, 오늘 당신이 무고하게 죽게 됨을 보고 불쌍하게 생각되어 사공들에게 부탁하여 이곳에 살려 두라고 해 놓고 왔사오니 염려하지 마시고 제 집으로 가시지요."
하였다. 그러나 이생원은 만일 이 여인을 따라서 평양성 안으로 갔다가 김감사에게 발각되어서 다시 잡혀 죽을까 겁이 나서 굳이 사양하였다. 이혈룡은,
"죽었던 사람을 살려주신 은혜는 결초보은(結草報恩) 하겠으나, 내 신세가 이 땅에서는 일시 일각도 머물러 있을 수 없으니 권하지 마십시오,"
하였다. 그러자 옥단춘은,
"제가 비록 기생의 몸이오나 당신을 살릴 사람이니 아무 염려 말고 가십시다."
하고 은근히 권하였다. 이생원은,
"한 번 죽었던 몸이매, 살려준 은인의 호의를 어찌 의심하고 거절하랴"
하고, 권하는 대로 옥단춘을 따라가니, 이생원은 미인인 기생에게 구원되어서 그의 집으로 가는 자기가 마치 세 세상을 만난 듯하니라.
"사지(死地)에 빠진 뒤에, 내 몸이 꿈같이 살아났으니 이것이 무슨 천행일까."
하였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옥단춘의 집에 이르렀다.
아담한 집은 단장(短墻)이 정결하고 주위의 경치도 좋았다. 좌우를 살펴보니 온갖 화초가 만발한 가운데 화중부귀(花中富貴) 모란꽃이며, 화중신(花中神) 해당화며, 어화일(御花逸) 국화며, 충신(忠臣) 회일화(回日花)가 만발하였고, 달빛은 뜰에 가득하고 단청 색깔이 찬란하였다. 뜰 아래에선 학과 두루미 등이 주적주적 걸으면서 짧은 목 길게 늘여 끼룩끼룩 소리를 내면서 사람을 보고 반기는 듯하였다. 방안으로 들어가니 분벽사창(粉壁紗窓)이 찬란한데, 좌우를 둘러보니 천하 명화의 좋은 그림이 여기저기 걸렸는데, 위수(渭水)의 강태공(姜太公)이 문왕(文王)을 보려고 곧은 낚시를 물에 던지고 어엿이 앉아 있는 모양이 역력히 그려 있고, 또 다른 그림에는 시중천자(詩中天子) 이태백이 채석강 밝은 달에 포도주를 취하게 먹고 물 속에 비친 달을 잡으려고 섬섬옥수를 넌지시 넣은 광경이 역력했다. 또 저편 벽에는, 한나라 종실 유황숙은 와룡선생 제갈량을 맞으려고 남양(南陽)땅의 초당으로 풍설 속에 적토마(赤?馬)를 빗겨 타고 지향 없이 가는 정경이 선명했다. 또 한편에는 푸른 하늘에 외기러기 짝을 잃고 끼룩끼룩 울고 가는 모습이 역력히 그려 있고, 또 한편을 보니 산중처사 두 노인이 한가롭게 앉은 모양이 역력히 그려 있었다. 또 다른 그림에는 상산사호(商山四皓) 네 노인이 바둑판을 앞에 놓고 흑백 바둑알을 두고 있는 모양이 역력히 그려져 있고, 또 저편 벽을 바라보니 대동강의 좋은 풍경 이모저모를 그린 것이 있었다. 이혈룡이 차례로 구경을 하고 있자니 옥단춘이 주안상을 드려 놓고, 맛 좋은 계강주(桂薑酒)를 유리잔에 가득 부어 들고 권주가를 한 곡 부르면서 이혈룡에게 술을 권하였다.
"잡으시오, 잡으시오. 일배 일배 부일배라. 이 술이 보통 술 아니오라, 한무제(漢武帝) 승로반(承露盤)에 이슬 받은 술이오니, 이 술 한 잔 잡으시면 천만년을 사시리다. 권할 제 잡으시오. 전에 한 번도 못 뵈었으나 내일 보면 구면이라."
하며 옥단춘이 술을 권하니, 이생원은 한 잔 두 잔 먹는 사이에 어느덧 취했다. 취중에 하는 말이,
"하아, 지난 일을 생각하니 세상사가 허망하다. 천만 무궁한 이 자리의 흥취를 어찌 다 말하리오."
하였다.
이럭저럭 노닐 적에 세월이 흘러서 왕실에 세자(世子)가 탄생하자, 나라의 경사를 축하하여 태평과(太平科)를 보인다는 소문을 풍편에 넌짓 들은 옥단춘이 기뻐하고 이혈룡에게
"과거 보인다는 소식이 들리니 낭군은 과거를 보러 상경하십시오. 충신의 후손으로서 이런 경과(慶科) 볼 기회를 어찌 허송할 것입니까?"
하고 권하였다. 이생원은,
"그대 말이 당연하나 북당(北堂)에 계신 우리 모친이 내가 오늘 올까 내일 올까 하고 기다리시면서, 초조하게 간장을 녹이고 계실 것을 생각하면, 오늘가지 이렇게 편히 지낸 일이 불효임을 어찌 모르리요. 그러나 이 꼴로 서울 가서 무슨 면목으로 노모와 처자를 대하리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서 두 눈에서 눈물을 주루루 흘리며 슬픔을 금치 못하였다. 옥단춘이 위로하여,
"과거를 힘써 봐서 입신양명 하온 후에 영화(榮華)를 볼 것이니 너무 상심 마시고 속히 상경하십시오."
하고 행장을 수습하여 주면서 다시 신신 당부하였다.
"이 길로 상경하시되 새문 밖 경기감영 앞의 이섬부(李贍富)댁을 찾아 가십시오. 그 댁에 제가 부탁할 말씀도 있고 제 하인도 그 댁에 있으니, 그 하인을 데리시고 과장(科場)에서 부리십시오."
이렇게 부탁을 한 연후에 옥단춘이 다시 말하기를,
"이제 이별하오나 후일에 다시 만날 것이니, 조금도 섭섭하게 생각지 마시고 입신양명하온 후에 북당(北堂) 기후 안녕커든 다시 돌아와 주십시오."
하고 손을 잡고 이별할 제 연연한 정을 못내 서러워하였다.
이 때 이혈룡은 서울로 올라와서, 우선 새문 밖의 이섬부 집을 찾아갔다. 하인의 인도로 대문에 들어서니, 고대광실은 아닐망정 십여 칸의 집이 정결하고, 솟을대문의 별배들이 일시에 문안하고 이혈룡을 내정(內庭)으로 모셔들였다. 이생원이
"이 댁이 뉘댁이냐?"
하고 물으니 하인들이,
"서방님, 이 댁이 바로 서방님 댁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혈룡이 깜짝 놀라며 안으로 들어가니, 뜻밖에도 자기의 모친이 계시거늘 모친 앞에 엎드려 통곡하면서,
"불효자 혈룡이 이제야 돌아왔습니다. 어머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불초한 이 자식을 생각하여 얼마나 기다리셨습니까?"
하였다. 모친도 아들의 뜻밖의 태도에 놀라면서 혈룡의 손을 잡고 슬피 울면서 말하였다.
"혈룡아, 너는 충신의 아들이라 효성이 이렇듯 지극하니 어찌 기쁘지 않겠느냐. 네가 평양에 간 후에 근근히 지내던 중, 너의 친구 평양감사가 보내주신 재물로 가세가 이만큼 요부해져서 노비와 전답을 많이 샀으니 만년(晩年)의 재미가 족하고 편하다만, 오직 네가 빨리 오기만을 기다려 주야로 한탄하였더니 이제 너를 보니 어찌 즐겁지 않고 반갑지 아니하겠느냐. 죽었던 자식을 다시 본 듯하여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다. 그래 너는 객지에서 얼마나 고생하였느냐?"
혈룡은 그제야 옥단춘의 호의로 모든 것이 마련된 것임을 깨닫고 속으로 칭찬하여 마지 않았다. 그리고 부인을 돌아보며,
"당신은 모친을 모시고 얼마나 고생했소?"
하니 부인이 반기며,
"저는 서방님 덕택으로 잔명을 보전하였으니 너무도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후한 우정으로 우리를 살려주신 평양감사님의 은혜를 어찌 다 갚을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혈룡은 하는 수 없이 평양 간 후의 모든 사연을 낱낱이 말하였다. 그러자 모친과 부인은 그 사실을 듣고 혈룡의 죽을 고생을 생각하고 서로 슬픈 눈물을 흘렸다. 동시에 옥단춘이 혈룡을 구제한 전후 사실을 듣고, 그 은혜를 서로 치사하여 마지않았다. 오래간만에 만난 가족들은 그동안의 회포를 서로 다 이야기하여 풀고 다시 원만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모친도 죽었던 자식 다시 본 듯, 부인도 잃었던 낭군 다시 본 듯 잠시도 서로 떠날 마음이 없이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
이 때에 과거 날이 되었으므로 혈룡이 모친의 슬하를 떠나서 대궐안 과거장에 들어가니 팔도에서 글 잘한다는 선비들이 구름같이 모여 있었다. 글을 지을 생각을 가다듬은 후에 용벼루에 먹을 갈아 조맹부의 필체로 단숨에 일필휘지하여 바쳤는데, 전하께서 보시고는 글자마다 비점(批點)이요 글귀마다 관주(貫珠)를 치는 것이었다. 전하께서 칭찬하시는 말씀이,
"참으로 신묘하다. 이 글씨와 글 지은 사람은 범상치 않은 사람이다."
하시고, 알성급제(謁聖及第) 도장원(都壯元)으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제수하시고, 곧 어전입시(御前入侍)하라는 분부를 내리셨다. 이한림이 입시하여 천은을 사례하자 전하께서 칭찬하시기를,
"충신의 자식은 충신이요, 소인의 자식은 소인이다. 용모를 살펴보니 용안호두(龍顔虎頭)요 목목지인(穆穆之人)이로다."
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한림은 어전에 엎드려
"소신과 같이 무재 무능한 자를 이처럼 충신지자충신(忠臣之子忠臣)이라 하시오니 황공무지 하오며, 또한 한림을 제수하시니 더욱 황공하옵니다."
하고 수없이 치사하고 물러나와 집에 큰 잔치를 베풀어 향당과 친지를 청하여 경사를 축하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 '평양 감사 김진희의 불의무도한 소행을 나만 당하였으랴. 무고한 백성들은 무슨 죄로 한 사람의 학정으로 평양 일도에서 어육(魚肉)이 된다는 말인가. 곰곰 생각하니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마땅히 성상께 여쭙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하고 전후 사실을 일일이 밀록(密錄)하여 전하께 바쳤다. 전하께서는 그 밀록을 받아 보시고 수없이 탄식한 뒤에 봉서 삼장을 내리셨다. 또 친히 하교하시기를,
"첫 봉서는 새문밖에 가서 뜯어보고, 둘째 봉서는 평양에 가서 뜯어보고, 셋째 봉서는 그 후에 뜯어 보라."
하시고 조심하여 다녀오라 하셨다. 이한림이 사은숙배하고 바로 나와서 모친과 부인에게 하직하였다. 새문 밖에 나가서 첫째 봉서를 뜯어보니. '평안도 암행어사 이혈룡'이라는 사령장과 마패가 들어 있었다. 이한림이 또 사은숙배하고 수의(繡衣)를 내어 입고 마패를 찬 후에, 바쁜 마음에 급히 평양으로 내려갈 때 정신이 씩씩하고 의기가 양양했다. 수 일 만에 평양에 당도하니, 산도 전에 보던 산이요 물도 전에 보던 물이었다. '연광정도 대동강도 잘 있었느냐.'하며 기쁜 마음에 사방을 둘러보았다. 무산 십이봉은 구름밖에 솟아 있고, 좌우 산천을 살펴보니 온갖 화초가 만발하고 세류 청강의 버들가지에 황금같은 꾀꼬리는 춘흥을 못 이겨 화류중을 왕래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에 서울 가서 모친과 처자를 만나보고 다시 내려왔다. 대동강 위의 일엽편주 나를 싣고 만경창파 두둥실 떠서 가는 배야, 내가 온 줄 모르고서 어디 가서 매였느냐. 산수도 새롭구나. 푸른 하늘의 저 구름은 내가 오는 모습을 보고 뭉실뭉실 피어 있고, 범피창랑(泛彼滄浪) 백구들은 무심도 무심하여 나를 어이 모르느냐. 강물은 은은하여 산을 둘러 있고 출림비조(出林飛鳥) 저 물새는 농춘화답(弄春和答) 쌍을 지어 쌍쌍이 날아들고, 녹의홍상 기생들은 오락가락 번화하고, 갑제천문(甲第千門) 좌우에 즐비하니 천문만호(千門萬戶)이 아닌가."
암행어사 이혈룡은 역졸을 단속하여 각처로 보낸 후에, 둘째 봉서를 뜯어 보니, '암행어사는 평양감영에 출도하여 감사를 봉고 파직하라.'는 지령이 들어 있었다. 어사는 다시 역졸을 단속해 놓고 옥단춘의 집을 찾아 가서 대문 밖에서 살펴보았다. 침침칠야 깊은 밤에 옥단춘은 이혈룡을 서울로 보낸 후에 김감사에게는 칭병(稱病)하고, 연광정 잔치에서 물러난 후에, 새로 정든 낭군이 그리워서 노래를 지어 부르고 있었다.
"오늘 올까 내일 올까, 오늘이나 소식 올까 내일이나 편지올까, 주야장천 문밖에 나가서 기다려도 소식이 아주 끊겨 독수공방 빈방에 게발 물어 던진 듯이 홀로 앉아 생각하니 임의 생각 절로 나네. 임의 음성이 귀에 쟁쟁하고 옥같은 임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네."
이 때는 춘삼월 호시절이었다. 봄꽃은 만발하고 황금 같은 꾀꼬리는 버들가지에 날아들었다. 좌우 산천을 둘러보니 꽃은 피어서 산은 온통 꽃으로 뒤덮였고 나뭇잎들은 피어서 온통 푸르니 그야말로 첩첩산중이 빛이 고왔다. 이러한 경치를 구경하자니 임 생각이 절로 나서 거문고를 내어 섬섬옥수 넌짓 들어 새 줄을 메워 골라잡고 거문고를 연주하며 노래를 또 지어 불렀다.
"임아 임아 낭군 님아, 전생의 연분으로 청실 홍실 맺은 사이는 아니지만, 눈정으로 만난 정이 남과는 유달라서, 밥상을 당겨 놓고 임의 생각 문득 나면, 한 술 밥도 전혀 못 먹겠소. 그러나 낭군님은 이런 줄을 모르는가. 어이 그리 더디 오시나. 나를 찾아오는 도중, 빨래하는 여인 만나 주린 배를 채우던가. 홍문연(鴻門宴) 높은 잔치에 가서 패공(沛公)을 구하던가. 계명산(鷄鳴山) 추야월에 장량(張良)의 옥퉁소 소리로 팔천 제자 헤어져 못 오는가. 항우(項羽)의 어린 고집 범증(范增)의 말 안 듣고 팔천 제가 다 간 후에 천하일색 우미인(虞美人)과의 이별을 구경하는가. 아아 천리마 타고 오실 임의 행차 어이 이리 더디신고. 임아 임아 서방님아, 과거에 낙방되어 무안하여 못 오시나. 과거는 하였지만 조정의 내직으로 계셔서 못 오시나. 일신이 귀히 되어 나를 아주 잊으셨나. 설마 사람으로 생겨서 어이하여 잊을 것인가. 편지 한 장 없는 것은 인편이 없음인가. 과거를 보았으면 급제도 했을텐테, 운이 나빠 낙방거자(落榜擧子) 됐나. 아아 어찌 그리 더디던고. 야속하다 낭군님아, 무정하신 낭군님아. 침침 칠야 야삼경에 홀로 앉았으니 임이 올까. 누웠는들 잠이 오나. 눈물만 오락가락, 한숨으로 벗을 삼고 생각하는 이는 임 뿐이라."
하며 거문고를 선뜻 들어 새 줄로 메워 골라 잡고 둥기둥기 둥두기 두덩기 두덩기데 둥기둥실 한참 타고 있을 때, 험상궂게 변장한 암행어사 이혈룡이 중문 안에 들어섰다. 어험하는 기침 소리에 백두루미가 깜짝 놀라서 짧은 목 길게 늘여서 끼루끼룩 울어댔다. 옥단춘이 밤중의 인기척에 깜짝 놀라서 거문고를 내려 놓고 문을 열고,
"거 누구시오? 이 밤중에 누가 와서 날 찾으시오? 기산 영수 맑은 물의 소부(巢父)와 허유(許由)가 날 찾는 게요? 채석강 이태백이 달 보자고 날 찾나요? 산중처사 도연명이 술 먹자고 날 찾나요? 상산사호 네 노인이 바둑 두자 날 찾나요? 남양 초당의 와룡선생이 병서(兵書)를 의논하자고 날 찾는가? 밀양읍의 운심이가 놀이 가자 날 찾는가? 당나라의 양귀비가 꽃밭에 물 주자고 날 찾는가? 삼사월 호시절에 천하문장 김생원이 풍월 짓자 날 찾는가? 봉래산(蓬萊山) 박처사가 옥저 불자 날 찾는가? 누가 와서 날 찾는가? 서울 가신 서방님이 편지 보내 날 찾는가?"
하며 이리저리 살펴보니, 어떤 거무스레한 사람 형용이 뜰 가에 웅크리고 앉아 있지 않은가. 옥단춘이 찔끔 겁이 나서,
"웬 사람이 이 어둔 밤중에 주인 몰래 남의 집에 들어와서 엿보느냐. 비록 조선이 작다한들 동방예의지국에서, 아무리 무식해도 남녀가 유별한데 밤중에 남의 내정(內庭)에 들어왔으니 이런 불측한 행실이 어디 있느냐, 네가 분명 도적이 아니냐?"
하고 옥단춘은 노복을 부르면서 도적을 잡으라고 호통을 쳤다. 그래도 그 사람은 태연히 꼼짝 않고 앉아 있으므로 옥단춘은 또한 의아하게 여겼다. 도적놈 같으면 응당 도망하련마는 의연히 앉아 있으니 괴이하다 하고 등불을 켜 들고 나가서 보니 어떤 사람이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었다. 옥단춘이,
"어떤 사람이길래 여기에 왔소?"
하며 아무리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그리하여 옥단춘이 무색도 하고 화도 나서 와락 떠다미니 그 사람이 그제야 고개를 들고 하는 말이,
"한양 낭군 내가 왔네. 그 사이 평안히 잘 지내었소?"
하였다. 옥단춘이 깜짝 놀라서 손을 잡고 하는 말이,
"한양 갔던 낭군이 지금에야 돌아왔네. 어서 가서 방으로 들어나 가시지요."
하였다. 방으로 들어가며 혈룡의 행색을 보니 말이 아니었다.
"이것이 웬일이요? 과거는 못할 망정 모양조차 이 꼴이 되었소. 내 집이 누구 집이라고 그렇게 속이고 놀라게 해요. 저는 서방님이 가신 후로 일각이 여삼추(女三秋)로 독수공방에 게발 물어 던진 듯이 홀로 앉아 수심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오늘 오실까 내일 오실까 주야장천 바랐는데, 한 번 가신 후로 소식이 영영 끊겼으니 어찌 그리 무심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였다. 이렇듯 하면서도 계집종 매월에게 목욕물을 데워오게 하여 혈룡을 목욕시킨 뒤에 섬섬옥수로 빗을 잡고 만수산발(滿首散髮) 헝큰 머리를 어리설설 빗겨서 황라상투를 짜주고, 산호동곳, 호박풍잠, 석류동곳, 옥동곳을 멋있게 꽃아 주었다. 그리고 자개함농 반닫이를 열고 유려한 새 의관을 집어 내서 삼백돌 통영갓과 외동뜨기 망건이며, 쥐꼬리 당줄에, 공단싸개 호박풍잠과 관자까지 모두 달아 씌우고, 봄철 새 의관으로 깨끗이 갈아 입히고, 서방님 얼굴을 다시 보니 어찌 반갑지 않으랴.
"임아 임아 낭군님아, 이처럼 좋은 얼굴, 어쩌면 그 지경이 되어 왔소?"
이렇게 옥단춘이 말하니, 이혈룡은,
"서울 본집에 올라가 보니, 수십 여명의 권솔이 무슨 까닭인지 가세도 풍부하고 노비와 전답이 흡족하게 지내므로 그 연고를 물었더니, 그대가 재물을 많이 보내어 호의호식으로 지내는 것을 비로소 짐작하고 그대의 은혜가 백골난망인 것을 알았네. 가족들도 모두 자네의 호의를 고맙게 여기고 잘 지냈지만, 그전에 곤궁할 때에 수 천냥 빚을 얻어 썼더니, 그 빚쟁이들이 졸부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모여들어서 성화같이 빚 독촉을 하지 않겠나. 양반의 체면으로 갚지 않을 수 없어서 가정 기물을 모조리 팔아도 오히려 부족한지라. 그리하여 과거도 보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그대를 볼 낯이 없네. 이런 민망한 소리하기 싫어서 오지 않으려 하였으나 그러면 배은망덕이 될 듯하여 오기는 하였네. 그러나 안 되는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도중의 주막에서 자다가 도적에게 노자와 의복을 모두 빼앗기고 거지꼴이 되어서 그대 보기가 무안하여 그리 했었네."
라고 대답하였다. 옥단춘은 말을 받아,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려면 무슨 일을 안 당하리까. 그런 근심 걱정일랑 아예 마세요. 과거를 못 보신 것은 역시 운수입니다. 다음에 또 보실 수가 있으니 그것도 낙망하실 것 없나이다. 내 집에 서방님 드릴 옷이 없겠어요? 밥이 없겠어요? 그만 일에 장부가 근심하면 큰 일을 어찌 하시리까."
하고 위로하니 연연한 정이 측량할 수 없었다.
이튿날 옥단춘은 혈룡에게 뜻밖의 말을 하였다.
"오늘은 평양감사가 봄놀이로 연광정에서 잔치를 한다는 영이 내렸습니다. 내 아직 기생의 몸으로서 감사의 영을 거역하고 안 나갈 수 없으니 서방님은 잠시 용서하시고 집에 계시면 속히 돌아오겠습니다."
말을 하고 난 후에 옥단춘은 연광정으로 나갔다. 그 뒤에 이혈룡도 집을 나와서 비밀 수배한 역졸을 단속하고 연광정의 광경을 보려고 내려갔다. 이 때 평양감사 김진희는 도내 각 읍의 수령을 모두 청하여 큰 잔치를 벌였는데, 그 기구가 호화찬란하고 진수성찬의 배반(杯盤)이 낭자하였다. 이 때는 춘삼월 호시절이었다. 좌우 산천을 둘러보니 꽃이 피어 온통 꽃산이 되었고 나뭇잎은 피어서 온통 청산으로 변해 있었다. 맑은 강가의 버들가지엔 황금 같은 꾀꼬리가 날아들고 두견새, 접동새, 온갖 새들은 쌍쌍이 모여드는데, 말 잘하는 앵무새, 춤 잘 추는 학두루미, 요지 연못에 소식 전하던 청조새, 만첩 청산에 홀로 앉아서 슬피 우는 두견새는 청천명월 깊은 밤에 이리 가며 뻐꾹, 저리 가며 뻐꾹뻐꾹 우는 그 소리가 몹시도 처량했다. 그 소리에 어사또는 심란하였다. 구경하는 사람들도 녹의홍상으로 곱게 입고 오락가락 다니면서 춘흥을 못 이겨 춤도 추고 노래도 따라 하며 놀았다. 이리 저리 구경을 다한 어사또는 남루한 의관과는 달리 의기는 양양하였다. 역졸들과 약속한 시각이 다가오자 이혈룡은 그 남루한 행색으로 성큼성큼 연광정 대상(臺上)으로 올라가려 하였다. 그러자 당황한 나졸들이 와르르 달려와서 덜미를 잡아 끌어내며,
"이 미친 놈아, 이 자리가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올라가려 하느냐!"
하고 호통을 치며 혹심하게 구박했다. 그러니 어사또는 헌 파립 헌 의복이 모두 떨어져서 알몸이 보이게 되었다. 이에 화가 치민 이혈룡은 김감사의 이름을 부르며 큰 소리로,
"네 이놈 김진희야, 나 이혈룡을 모른단 말이냐?"
하고 호통을 쳤다. 이 소리에 옥단춘이 깜짝 놀라 살펴보니 음성은 혈룡 서방의 음성이나 의복이 달랐다. 이혈룡의 말을 김감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이혈룡을 잡아 들이라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할 듯하였다. 김감사의 영을 받은 나졸들이 와르르 달려들어 이혈룡의 풀어진 상투를 휘휘 칭칭 감아 쥐고 뺨도 때리고 등도 밀치고 재빠르게 잡아들여 층계 아래에 업쳐 놓았다. 김감사가 호령하기를,
"오냐, 이혈룡아, 네 이놈 죽지 않고 또 살아 왔구나. 이번에는 어디 좀 견디어 보아라. 일이 있으리라."
하였다. 그러자 어사또가 대답하기를,
"내 신세가 비록 이러하나 나도 양반의 자식이다. 글쎄 이놈 김진희야 한 번 들어 보아라. 내가 지난번에 너를 친구라고 찾아 왔다가 통자(通刺)도 못하고 근근히 지내다가, 이 연광정에 네가 놀고 있는 것을 보고 반가와 하였으나, 너는 나를 미친놈이라고 대동강 사공을 불러서 배에 태워 강물에 넣어 죽이지 않았느냐. 내 물귀신 된 원혼이 너를 오늘 또 다시 보려고 왔다."
하였다. 혈룡의 귀신이 원수를 갚으러 왔다는 말에 김감사는 깜짝 놀라 좌우 비장을 돌아보며,
"어찌된 일이냐?"
고 물었다. 비장이,
"죽은 혼이 어찌 왔겠습니까? 아무래도 거짓인 것 같습니다. 그 때 데리고 갔던 사공들을 불러다가 문초하여 보시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
하고 사공들을 속히 잡아들이라는 영을 내렸다. 나졸들이 영을 받고 나가서 사공들을 불러서 하는 말이,
"야단났다, 야단났다. 너희 사공 놈들 야단났다. 어서 빨리 들어가자."
하는 사공들의 덜미를 잡고 연광정 밑으로 갔다.
"사공들을 잡아 들였습니다."
하는 나졸들의 복명하는 소리가 천지에 진동하였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옥단춘이는 사공이 매에 못 이겨 사실대로 불어 대면 자기가 죄를 당할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서방님이 화를 입을 것을 생각하여 전신을 벌벌 떨고 서 있었다. 김감사는 형방을 불러서 형구(形具)를 차려 놓고,
"그놈들을 능지가 되도록 때려서 문초하라."
추상같은 엄명을 내렸다. 형방조차 겁을 내고 뱃사공들을 문초하였다.
"이놈들 들어 보라. 저번에 너희들은 저기 저 양반을 명령대로 물에 던져 죽였느냐? 바른대로 고하여라!"
하고 엄하게 호령하니 사공들이 악형에 못 이겨
"여차여차 하였습니다."
하고 사실대로 토설하고 말았다. 김감사는 대번에 형방마저 잡아내고 다른 형방에게,
"저 이혈룡은 목을 베어 죽여도 죄가 남을 놈인데, 아까 형방놈은 내 앞에서 저놈을 양반이라고 불러서 존대하였으니, 그 형방 놈도 혈룡 놈과 똑같은 놈이다."
하고 먼저 형방을 잡아 꿇리고도 분을 이기지 못하여 책상을 치며 호통을 쳤다.
"저 요망스러운 옥단춘을 잡아 내라!"
하니 좌우 나졸들이 일시에 달려들어서 소복단장한 채로 앉아 있는 옥단춘의 분결같은 손목을 덥석 잡아서 끌어내리니 연광정이 뒤집힐 듯하였다. 옥단춘은 평생에 이런 봉변을 만나 보지 않다가 오늘 이런 일을 당하자 수족을 벌벌 떨었다. 옥단춘은 이혈룡을 돌아보고 원망하여
"여보세요, 낭군님, 이것이 웬일이오. 내가 그처럼 집을 보고 있으라고 신신 당부하였는데 정말 귀신이라고 씌운 것입니까? 무슨 살매가 들려서 죽을 곳을 찾아 왔소? 내 집의 재물만으로도 호의호식 지낼텐데 어찌하여 여기 와서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애고 낭군님아, 어허 낭군님아 어찌하여야 살 수 있겠소? 요전번에 죽을 목숨 살려서 백년해로 언약하고 즐겁게 살려 했더니, 일년이 채 못되어 이런 죽음 웬일이오? 애고애고 우리 낭군 야속하고 원통하오. 나는 지금 죽더라도 원통할 것 없건마는, 낭군님은 대장부로 태어나서 공명 한 번 못 해보고 억울하게 황천객이 되면 얼마나 원통한 일이오. 아아 낭군 팔자나 내 팔자나 전생의 무슨 죄로 이다지도 험악한가요. 사주팔자가 이럴진대 누구를 원망하겠소.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우리이니 이제 죽더라도 후세에 다시 만나서 이승에서 미진한 우리 정을 백년해로 다시 살아 봅시다. 임아 임아, 우리 낭군 어찌하여야 살아날까. 아무리 원통하여 후세에서 만나자 한들 지금 한 번 죽어지면 모든 것이 허사로다."
통곡하였다. 이런 옥단춘의 모습을 보고 슬퍼하고 불쌍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이혈룡은 태연한 말로,
"너무 슬피 울지 마라. 네 울음 한 마디에 내 간장 다 녹는다. 내가 죽고 너 살거든 내 원수를 네가 갚고, 네가 죽고 내가 살면 네 원수를 내가 갚아 주마."
하였다. 이 때 김감사가 사공들에게 분부하여 호령하였다.
"저 두 연놈을 한 배에 싣고 내가 보는 앞에서 대동강 깊은 물에 던져 버려라!"
추상같이 호령하니 사공들이 영을 받들고 물러 나오자, 김감사는 또 영을 내려서,
"북소리 세 번 들리거든 그 연놈을 함께 죽여 버려라!"
하고 호령하였다. 그리고 나서 아까 이혈룡을 양반이라고 부른 형리를 또다시 호령하였다. 그러자 그 형리가 엎드려,
"제 잘못은 과연 사또 앞에서 죽어 마땅하오나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겠으니 한 번만 용서하여 주십시오."
라고 아뢰고 수없이 애걸하였다. 김감사는 겨우 분을 풀고 그 형방을 용서하였다. 그러나 이 때 아직 신분을 밝히지 않은 암행어사 이혈룡은 사공들에게 묶여서 배에 실려 오르고 있었다.
이혈룡이 탄식하면서 하는 말이,
"붕우유신(朋友有信) 쓸 데 없고, 결의형제 쓸 데 없다. 전에 너와 내가 생사를 같이 하자고 태산같이 맺은 언약 철석같이 맺었더니, 살리기는 고사하고 죄 없이 죽이기를 일삼으니 무심하고 야속하다. 오륜을 박대하면 앙화가 자손에게까지 미치리라."
하였다. 이혈룡이 대동강의 맑은 물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한탄하였다.
"대동강 맑은 물아, 너와 내가 무슨 원수로, 한 번 죽기도 어려운데 두 번이나 죽이려고 이 모양을 시키느냐. 정말로 죽게되면 가련하고 원통하다."
이 때에 옥단춘이 이혈룡의 손을 부여잡고 만경청파 바라보고 애통해 하며
"원통하고 가련하다. 죄 없는 목숨 천명을 못다 살고 어복중의 원혼 되니, 명천은 감동하사 무죄한 이 인생을 제발 덕분 살려 주소서."
하고 수없이 통곡하였다. 그 때 물에 던지기를 재촉하는 북소리가 한 번 울렸다. 옥단춘은 더욱 기가 막혀,
"애고애고 이 일을 어찌 할까. 임아 임아 낭군님아. 어찌하면 산단 말이오?"
하고 울부짖자 이혈룡이 옥단춘을 달래며,
"울지 마라 울지 마라, 죄 없으면 사느니라. 울지 말고 진정하여라."
하고 말했다. 이 때 북소리가 두 번째 울렸다. 옥단춘이 또 자지러지게 놀라면서,
"임아 임아 서방님아, 이제는 죽는구려. 살려주오 살려주오. 무죄한 이 소첩을 제발 덕분 살려주오. 맹세코 아무 죄도 없습니다."
하고 통곡할 때 세 번째 북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사공들은 황급히 재촉하기를,
"어서 물에 들어가쇼. 일시라도 지체하면 우리 목숨이 죽을 테니 어서 들어가쇼."
하고 성화같이 독촉하였다. 옥단춘이 넋을 잃고 사공들에게 애걸하며
"여보 사공님들 들어보소. 당신들도 사람인데 죄 없는 우리 인생을 왜 그리 무고하게 우리를 죽이려 하오. 나만은 자결할 테니 우리 낭군 살려주소."
하였다. 그러자 사공들이 대답하기를,
"아무리 야속해도 감사님 명령이 지엄하시니 살릴 묘책이 없소이다. 어서 바삐 조처하쇼."
하였다. 옥단춘은 단념하고 하는 수 없이 두 눈을 꼭 감고 치마를 걷어 올려서 머리에 쓰고 이를 박박 갈고 벌벌 떨면서
"애그머니 나 죽는다!"
한 마디 지르고는 풍덩 뛰어 들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이혈룡이 깜짝 놀라서 옥단춘의 손을 부여잡고 하는 말이,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
하고 잡아서 옆에 앉히고 저쪽 연광정을 건너다 보면서,
"얘들, 서리 역졸들아! 어디 갔느냐?"
하고 소리치는데 그 소리 천지를 진동할 듯하였다. 그러자 난데없는 역졸들이 벌떼처럼 내달으며 달과 같은 마패를 일월(日月)같이 치켜들고 우레와 같은 큰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면서,
"암행어사 출두요! 암행어사 출두요!"
하고 두 세 번 외치는 소리가 연광정과 대동강을 뒤엎을 듯하였다. 또한,
"저기 가는 저 뱃사공아, 거기 타신 어사또님 놀라시지 않도록 고이 고이 잘 모셔 오라!"
하는 소리 천지를 진동할 듯하였다. 이 때 암행어사 이혈룡이 비로소 배 안에서 일어서면서 사공에게 호령하였다.
"이 배를 빨리 연광정에 돌려 대라!"
사공들이 귀신에 홀린 듯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지둥 배를 몰아 연광정 밑으로 대었다. 옥단춘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원망스러운 듯이,
"임아 임아, 암행어사 서방님아. 이것이 꿈인가요 생시인가요, 만일에 꿈이기라도 한다면 행여 깰까봐 걱정이오."
하고 푸념했다. 어사또가 옥단춘을 위로하며,
"사람은 죽을 지경에 빠진 후에도 살아나는 법인데, 너 이런 재미 보았느냐?"
하고 여유있게 말하였다. 옥단춘이 비로소 마음 턱 놓고 재담으로 대꾸하여,
"구중궁궐 아녀자가 어디 가서 이런 재미 보오리까."
하고 하였다. 어사또 출두하여 연광정에 좌정하고 사방을 살펴보니 오는 놈 가는 놈이 모두 넋을 잃고, 역졸에게 맞은 놈은 유혈이 낭자하였다. 눈 빠진 놈, 코 깨진 놈, 머리 깨고 팔 부러진 놈, 다리 부러진 놈, 엎드러진 놈, 자빠진 놈 등이 오락가락 무수했다. 그 중에서 각읍의 수령들은 불의의 변을 당하고 겁내는 거동이 가관이었다. 칼집 쥐고 오줌 싸고, 안장 없는 말을 타고 개울로 들어가고, 또 어떤 수령은 말을 거꾸로 타고, 동서를 분별치 못하여 이리저리 갈팡질팡 도망을 쳤다. 오다가 혼을 잃고 가다가 넋을 잃고 한참 이렇듯 요란한데, 평양 감사 김진희의 거동이 가장 볼 만 하였다. 김감사는 수령들과 기생들을 거느리고 의기양양 노닐다가 '암행어사 출도' 소리에 다급하여 혼불부신(魂不附身) 달아나는데, 연고아정 마루 끝에서 떨어져서 삼혼칠백(三魂七魄) 간 데 없고, 왼쪽 눈의 동자부처(動資部)는 벌써 떠나 멀리 가고, 오른 눈의 동자부처는 이제야 떠나려고 파랑보에 짐을 싸고 신들메 하느라고 와싹바싹 야단이었다. 이 때에 비장들이 달려들어 구해내자, 어사또 분부하기를,
"비장을 잡아내라!"
하고 추상같이 호령하니, 좌우 나졸이 달려들어 비장들을 결박하여 끌어들였다. 어사또가 분부하기를,
"너희들 들어라! 남의 막하에 있어 관장이 악한 정사(政事)가 있거든 착한 길을 권할 것이어늘, 도리어 악한 짓을 권하니, 무죄한 백성이 어찌 편히 살며, 양반이 어찌 도의를 지킬 수 있겠느냐!"
하고 호통을 쳤다. 형벌제구와 숙정패(肅靜牌)를 내어놓고, 팔십명 나졸 중에서 날랜 놈 십여 명을 골라서 형장을 잡게 하고 엄하게 호령하였다.
"너희 놈들 매질에 사정을 두면 죽고 남지 못하리라."
대상의 호령이 지엄하니 누가 상쾌치 않을까. 곤장 육십대씩 때려서 큰칼을 씌어 옥에 가두고, 김감사를 붙잡아 들일 때 서리나 역졸들이 호령을 받들어 물러 나와 감사의 상투를 거머쥐고 끌어내어,
"평양감사 김진희 잡아 들였습니다."
하고 복명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할 듯하였다. 어사또가 감사를 당장에 봉고 파직하였다. 이혈룡은 옛일을 생각하니 슬픈 생각도 솟아나고 분한 마음 또한 측량할 수 없었다. 엄명을 받은 나졸들은 형구를 갖추어 형틀 위에 달아매고 팔십 명의 나졸과 서리 역졸이 좌우로 나열하여 어사또의 영을 기다렸다. 형장 든 놈, 곤장 든 놈, 능장 든 놈, 태장 든 놈이 각각 서로 골라 들고 팔을 걷어올리고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어사또가,
"여봐라 김진희야! 너는 나를 자세히 보라. 나 이혈룡을 지금도 모르겠느냐. 천하에 몹쓸 김진희 놈아. 너와 내가 전일에 사생 동거를 맹세하고 공부할 적에, 성은 서로 다를망정 대대로 친구의 두 집안이요 그 정의를 생각하면 동태동골인들 이에서 더하겠는가? 그 시절에 우리가 맹세하기를 네가 먼저 귀하게 되면 나를 살게 해 주고, 내가 먼저 귀하게 되면 너를 살게 해 달라고 네 입으로 맹세했지 내가 먼저 하자 했더냐. 마침 네가 먼저 등과하여 평양감사로 갔다는 소문을 듣고 옛일을 생각하여 태산같이 맺은 언약이 있었기에 혹시나 도와 줄까 하고 너를 찾아 평양까지 왔었다. 그러나 너에게 통자도 못하고 여러 날을 묵다가 노자도 떨어지고 여관 주인도 가라고 박대하여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기갈이 심해서 입은 옷을 벗어 팔아서 밥을 사먹으니 이도 한 때 뿐이었다. 거지꼴로 전전걸식 다닐 적에, 네가 마침 대동강에서 큰 잔치를 벌이고 논다는 소문을 듣고, 그 날 너를 만나 볼까 하고 근근히 틈을 타서 네가 노는 근처를 찾았었다. 배반이 낭자하고 음식이 푸짐하고 풍악이 광장할 제 굶주린 내 구미가 얼마나 동했겠느냐. 네가 그때 먹고 남아 버리는 음식이라도 조금만 주었으면 너도 생색내고 나도 좋았을 것을, 너는 나를 모른 체 하고 미친놈이라고 배에 실어다가 대동강 물 속에 넣어 죽이라 했으니 그 무슨 까닭이냐. 이 악독한 김진희 놈아! 바른대로 고하여라!"
하고 추상같이 호령하니, 좌우의 나졸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달려들어서 육칠월 번개같이 투드락 탁탁 한참 치는 것이었다. 그러니 김감사가
"애고애고, 어사또님 제발 적선 살려 주십시오. 제가 죽을 죄를 지을 때가 되어 저도 모를 귀신이 시켜서 그랬사오니, 죽고 사는 것은 어사또 처분입니다. 죽을 죄를 지은 놈이 무슨 말씀하오리까."
하는 것이었다. 어사또가 듣고 있다가 또 호령하기를,
"네 이놈, 나 뿐 아니라 죄 없는 옥단춘까지 나와 함께 죽이려 한 것은 또 무슨 까닭이냐. 네 죄를 생각하면 도저히 살려둘 수 없도다."
하였다. 어사또는 여기서 사공들을 불러 분부하기를,
"너희들, 이놈을 전의 나처럼 배에 싣고 대동강 깊은 물에 던져 버려라!"
하니 사공들이 어사또의 영을 듣고 김진희를 끌어다 배에 싣고 만경창파 물 위로 둥둥 떠나기 시작하였다. 이 때 어사또가 어진 마음으로 다시 생각하고 불쌍히 여겨서,
"저놈은 제 죄로 죽을망정 윗대의 의리를 생각하고 옛정을 생각하면 나 또한 저와 같이 차마 죽일 수가 없구나."
하고 나졸 한 놈을 급히 불러서 분부하기를,
"너는 급히 배에 가서 그 양반을 물 속에 한참 넣었다가 거의 죽게 되었을 때에 도로 건져서 배에 싣고 오너라."
하였다. 그 나졸이 영을 받고 강을 향하여 달려갈 적에, 별안간 뇌성벽력이 일어나더니 김진희에게 벼락을 쳐서 눈 깜짝하는 사이에 김진희는 시신도 없이 사라졌다. 나졸과 사공들이 돌아와서 그 연유를 아뢰었다. 어사또는 김진희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옛일을 생각하여 슬퍼하였다. 연후에 김진희의 처자와 노비와 비장 등 여덟 명을 불러러 들여서 이르기를,
"나는 진희와 같이 차마 못하고 정배하려 하였더니 하늘이 괘씸히 여기시고 천벌로 죽였으니 내 원망은 하지 말라."
하고,
"각기 노자를 후하게 주어 집으로 돌려보내라."
하였다. 평양성 안의 모든 백성들이 포악하던 김감사의 천벌을 통쾌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어사또가 김진희의 파직과 천벌의 경우를 상세히 기록하여 나라에 보고하자, 전하께서 들으시고 어사또의 처사를 수없이 칭찬하였다. 이 때에 어사또가 전하께서 주신 셋째 봉서를 뜯어보니, '암행어사 겸 평양감사 이혈룡'이라는 사령장이 들어 있었다. 이혈룡이 크게 기뻐하고 천은에 배사하고 평양감사로 도임하였다. 도임 후에 육방을 점고하고 뱃사공들에게 금은 상금을 각각 만냥씩 주었다. 사공들이 황송해서 머리를 숙여 은혜에 감사해 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어진 마음으로 치민치정을 잘 하였으므로 거리거리에 송덕비(頌德碑)가 여기저기에 섰다. 이감사는 만인산(萬人傘)을 받고, 선정을 찬양하는 백성들의 노래가 천지를 진동할 듯하였다. 전하께서 이 소문을 들으시고 크게 기뻐하여서 곧 승차하여 우의정을 봉하시고, 대부인을 충정부인으로 봉하시고, 부인 김씨를 정렬부인으로 봉하시고, 옥단춘을 정덕부인으로 봉하였다. 이로써 이혈룡이 일시에 부귀공명(富貴功名)하고 국태민안(國泰民安)하니, 위엄과 세도가 나라에서 으뜸이었다. 이에 만인(萬人)이 칭찬하고 부러워하고 그 높은 명성이 천하에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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