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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빙몽유록(安憑夢遊錄)

오늘의 쉼터 2009. 5. 6. 20:06
안빙몽유록(安憑夢遊錄)


 

글 잘하는 선비로 성은 안(安), 이름은 빙(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누차 진사시(進士試)에 응했으나 합격하지 못했고, 남산 별장으로 나아가 한가로이 살았다.

사는 곳의 후원에는 이름난 꽃과 기이한 풀을 많이 심었는데, 날마다 그 사이에서 시를 읊조렸다.

일찍이 음력 삼월 말에 일기가 맑고 온화하여 선비는 화초를 읊어 감상하며 흐뭇하게 오가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기력이 쇠잔하여 늙은 홰나무에 기대어 앉아 입을 매만지며 스스로 말하기를



"세상에 전해 오는 괴안국(槐安國) 이야기는 매우 허탄하고, 아! 또한 괴이하구나!"

하고, 몸을 기댈 듯 말 듯 하다가 한가하고 홀연한 생각에 선잠이 들었다.

처음에는 크기가 박쥐만한 호랑나비가 코끝에서 훨훨 나는 것을 깨닫자,

선비는 괴이하여 나비의 뒤를 따르니 나비는 혹 가까이 혹 멀리하면서 마치 인도해 가듯이 했다.

몇 리쯤 가자 한 마을 입구에 이르렀는데, 복숭아·오얏꽃이 난만하게 피었고 그 아래에는 좁은 길이 있어

방황하다 돌아오려 하자, 따라오던 나비가 또한 보이지 않았다.

좁은 길 사이에서 나이 십 삼사 세된 청의동자(靑衣童子)를 만났는데, 손뼉을 치며 앞에서 웃으며 말하기를,



"안공께서 오신다."

고 하고, 인하여 달려 사라지니 그 걸음이 날 듯했다. 선비는 당초 그 동자와 서로 서로 알지 못했음을 곰곰이 생각하고, 자못 괴이하게 여겼다. 드디어 좁은 길을 찾아 들어가자, 집 한 채가 보였는데 흰 담장을 두르고 붉은 용마루에 푸른 기와와 훤히 빛나는 산골짜기는 자못 인간의 제도가 아니었다. 점차 밖의 문으로 나아가니 채색 문이 일시에 열리며, 갑자기 한 시녀가 나타났는데, 붉은 입술과 푸른 소매가 아름답고 훌륭한 자태였다. 곧바로 선비 앞에 이르러 미소를 머금으며, 몸을 숙여 예를 표함이 자못 과거에 서로 친숙했던 사람과도 같았다. 먼저 멀리서 오느라고 수고했다고 말하고, 또 전하기를,

 "저희 임금님께서는 공의 원대한 도리를 들으시고, 매우 기뻐하사 장차 대등한 대우(제각기 뜰에 나누어 앉아 대등한 예로 서로 만나는 일)로 배례를 베풀고자 하니 잠깐 머무르소서."

하였다. 선비가 이러 묻기를,

 "우리 임금님은 도당씨(陶唐氏)로, 요(堯) 임금의 아들 단주(丹朱)의 후예입니다. 그 선조 중 많은 사람이 우(虞)·하(夏) 시대에 여러 목민관이 되었는데 목민함에 공이 있으므로 해서 드디어 왕의 호칭을 갖게 되어 여러 대를 이러 왔으나, 후사가 번창하지 못하여 여러 신하들이 공화정치를 하여 종실의 여자 중 학문과 덕이 있는 자를 택하여 즉위시 키고, 목덕(木德)·화덕(火德)을 섞어 사용했습니다. 무릇 위의(成儀),제도(制度)에는 푸른 빛과 붉은 빛을 숭상하여 오늘에 이르도록 이 예를 따르고 있습니다."

라고 했다. 선비가 또 묻기를,

"그대는 누구이며, 성씨는 무엇이고, 차례는 몇째인가?"

라고 하자, 시녀가 말했다.

 "저의 성은 강이요, 이름은 낙으로, 차례는 스무 번째로 한나라 시대 강후영(絳候 )의 후손인데, 선조 시대에 강(絳)에 봉해져 성으로 삼고 있습니다."

문답을 마치려는데, 또 한 시녀가 나오니 고운 바탕에 사뿐하고 충만하여 스스로 지탱하지 못하는 듯했는데, 단정히 선비를 향해 읍하고는 이어 강씨를 희롱하여 말했다.

"무슨 비밀 이야기가 있기에 사람을 보자 바로 그치는 거요?"

강씨는 웃으며 말했다.

"마침 귀한 손님을 만나 다만 성명을 통했을 뿐이니, 어찌 의심하겠소?"

선비가 또 강씨에게 했던 것처럼 성명을 묻자, 여인은 말하기를,

"저는 이름이 유(留)인데, 차례는 열 여덟째입니다. 손님과 같은 성으로, 계통이 금곡(金谷)에서 나왔습니다."

선비가 같은 성과 금곡의 이야기를 묻고자 하나, 여인은 말하기를,

"외람되이 임금님의 명을 전달하는데 한가히 이야기할 겨를이 없으니, 바라건대 서둘러 우리 임금님에게로 듭시다."

라고 했다. 선비가 관을 바로 잡고 손을 공손히 하고서, 두 시녀를 따라 들어가니, 수십 개의 겹문을 지나서 정전(正殿)이 우뚝한데, 황금빛으로 현관에 쓰기를 조원전(朝元殿)이라고 했다. 이슬처럼 고운 구슬을 꿰어 발을 만들고, 월계화로 걸상을 장식했으며, 백옥이 지대 뜰을 이루고 있었고, 푸른 유리를 뜰에 깔았으니 깨끗하여 가히 밟을 수 없었다. 왼쪽에는 푸른 누각이 있고, 오른쪽에는 붉은 누각이 있으며, 왼쪽은 편액을 여춘이라 했고, 오른쪽은 화악이라 했으니 난간 과 그림 그려진 기둥의 화려함과 광채는 시선을 빼앗았다. 선비는 두려워하여 조심하면서 몸을 웅크리고 굳어진 듯이 섰는데 행랑 사이에서 갑자기 선계의 음악이 나부끼듯이 들려와 마치 공중으로부터 내려오는 것 같았다. 시녀 수백 명이 수레를 옹위하고 있는데, 여왕이 수레를 멈추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이는 십칠팔쯤 될 만했고, 붉은 비단의 곤룡포를 입었으며. 황금의 정교한 무봉관을 썼고 풍염한 살결에 붉은 볼이었다. 아름다운 걸음걸이로 천천히 동쪽 섬들의 경유하여 내려오자, 기이한 향기가 풍겼다. 선비는 급히 달려 나아가 뜰에서 절을 드리고자 했으나, 왕은 앞서의 두 시녀로 하여금 만류케 하며 말했다.,

"오래도록 깨끗한 덕행을 우러러 절하고, 사모하기를 진실로 힘썼고, 또한 서로 다스린 바가 없었으매, 당에서 내려 서로 만나리니, 행하여라도 그렇게 하지 마시오."

선비는 감히 못하겠다고 답변하고 드디어 두 번 절하니, 왕도 역시 답배하고, 서로 더불어 읍(揖)하여 겸손함을 표하고 전각에 올랐다. 자리를 정하자 왕은 시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부인을 불러오되 반희(班姬)와 함께하도록 하라" 조금 뒤 이부인이 이르렀는데, 깨끗이 화장하고 소박한 복식에 걸음걸이는 사뿐하고 유연하며, 모습은 옥이 곱고 구슬이 아름답게 빛나는 것과 같았다. 다시 반희가 이름을 부르니 풍염한 얼굴은 약간 붉고, 푸른 눈썹은 산을 모은 듯하며, 가냘프고 짙고 고운 바탕은 붉은 비단보다 훨씬 나았다, 선비가 얼떨결에 내려가 절하니, 두 사람도 또 한 답배를 하고는 남쪽 좌석으로 나아가 앉고자 했다. 이부인이 반희에게 읍하자, 반희는 이부인에서 사양하여, 오래도록 서로 결정하지 못했다. 왕은 두사람을 희롱하여 말하기를,

"과거에 이부인은 총애받고, 반희는 소원했으나, 오늘의 자리는 벼슬로서 하지말고 미색으로 함이 가하겠는가?"

라고 했다. 반희는 옷깃을 여미고, 웃으며 대답했다.

"다만 종일 바람불고 또 날씨가 험하기 때문입니다(終風且暴 : 남편의 광란, 방탕을 비유). 과거의 반열은 누가 이씨와 더불었는지 알지 못하고, 또 제가 듣건대 조정에서는 벼슬만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드디어 윗자리에 나아가 어울려 웃음을 그치지 않았는데, 홀연히 문밖에서 시끄럽게 소리치는 것이 들리고, 문지기가 들어와 손님이 도착한다고 급히 고했다. 왕은 천천히 말했다.

"오랫만에 조래선생·수양처사·동리은일과 더불어 만나기로 한 약속이 오래 되었는데, 이들이 마침 오는 구나! 짐이 일찍이 빈객으로 대우했었으니, 앉아서 기다림은 마땅하지 않다."

드디어 전각을 내려서자, 세 사람은 이미 이름을 통하고 각각차례로 들어오니, 왕이 용모를 가다듬고 기다렸다. 그 한사람은 푸른 수염과 큰 키에 기개가 뛰어났고, 한 사람은 굳굳하고 바르며 드높은 절조에 말쑥하고 깨끗한 모양이고, 한사람은 누런 관에 야인 복장을 했는데 향기로운 덕성이 얼굴에 어렸다. 세 사람이 이르러서는 길데 읍만 하고 절을 하지는 않으면서 말했다.

"저희들은 야인이라 성품이 소루하고(꼼꼼하지 못하고) 나태해 예법을 알지 못합니다."

왕은 더욱 예로 우대하고 드디어 전각에 올라와서는 벽을 나누어 마주보고 앉았다. 선비는 끝으로 겨우 달려가 절하니 ,세 사람은 서로 돌아보며 안색이 변하면서 말했다.

"안수재는 어떻게 하여 이곳에 오셨습니까? 다시 만나서 얼굴을 알게 되니, 어찌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선비는 매우 괴이해 하면서도, 그 이유를 깨닫지는 못했다. 세 사람은 선비에게 읍하고 좌객으로 대우하려 하니 선비는 굳이 사양하며 나아가지 않았다. 이에 왕이 말하기를,

"예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나, 지나치게 사양함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라고 하여 선비는 부득이 나아가 앉으니, 그 다음에 조래, 다음은 수양, 다음은 동리순으로 앉았다. 각각 서로 안부를 물은 후, 마침내 이 부인이 나아가 왕에게 아뢰었다.

"옥비가 가까이 있고, 좋은 모임을 또 다시 얻기가 어려우니 어찌 서로 초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왕이 말하기를,

"그렇다."

하니, 곧 하인을 시켜 맞이하게 했다. 밥 한 끼 지을 만한 시간이 되어, 산 뒷길을 지나서 비가 이르니, 엷은 화장에 흰옷을 입고 흰말을 타고 또한 여자가 함께 뒤따라 이르렀는데, 호위하여 모심이 왕비· 공주의 부류와 같았다.  왕은 바라보다가 앉아 있는 빈객들에게 말했다.

"시경에 이르기를 '빈객이시여! 그 말이 희구료!(有客有客 赤白其馬)' 하였으니, 이는 또한 우리 집안의 빈객이로다. 다만 뒤에 이르는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겠소."

비가 이미 들어와 알현(謁見)하고는 인하여 말하기를,

"부용성주 주씨와 서로 지나치다가 이끌어 함께 왔으니, 성대한 연회에 당돌함이 되지는 않겠는지요?"

라고 했다. 왕은 말했다.

"나를 매우 흥기(興起)시키도다. 서둘러 들어오도록 하시오."

주씨가 알자를 따라 알현을 하자 광채가 사람을 움직이고, 돌아보니 훤하게 빛났다. 두 사람이 나중에 이르러, 앉은차례를 두고 곤란해 하니, 조래가 말했다.

"옥비는 수양의 아래에 차례 할 만하오."

옥비는 얼굴빛을 바꾸며 말하기를,

"예기에 '남녀는 자리를 함께 하지 않는다'했는데, 하물며 손을 마주 닿으며 앉겠습니까?"

라고 했다. 왕이 말했다.

"그렇다. 옥비는 혈족으로는 형이요, 또한 누추한 나라의 빈객이니 비록 권좌에 앉았더라도 내가 낮춤이 옳다. 주씨는 마음대로 성곽과 못을 만들어 주인이 되었으니, 옥비의 다음 차례가 될 만하다."

두 사람이 겸양하여 정하지 못하다가 드디어 자리에 이끌려 조금 뒤쪽에 앉았다. 잠시 뒤 음식이 나오니, 향기롭고 진기함이 일찍이 보지 못하던 것이었다. 풍류 기생 수십 명이 있어, 화관을 쓰고 악기를 들었는데, 각각 한 가지 색의 옷을 입어 청·황·적·백 등 오체가 현란했다. 드디어 대열을 나누어 대청 아래에 앉으니, 이들 또한 모두가 경국지색이었다. 왕은 구화상(옥을 깎아 만든 술잔)을 좌석에 내고는 여미주를 따라 선비를 향해 먼저 올렸다. 선비는 머뭇거리다가 무릎 꿇고 물러나며 좌우로 사양하니, 왕이 말하기를,

"이미 윗자리에 앉았으니, 어찌 다시 첫잔을 사양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이에 뭇 주악이 모두 연주되고, 기녀가 있어 짝지어 춤추는데, 하나는 황금빛 술이 달린 옷을 입고, 긴 허리가 간들간들 하고 하나는 깃털 옷을 입고 가뿐한 몸이 훨훨 나는 듯했다. 황금빛 술이 달린 옷을 입은 기녀가 절양류(곡조의 하나, 고향을 떠날 때 버들까지를 꺾어 이별의 정을 노래한 것)를 읊었다.

담장 머리 버들 휘늘어지니 꺾고 싶구나!
꺾어 떠나는 사람에게 주니 몇 가지나 남았는고.
해마다 이별하여 해마다 꺾으니
봄바람에게 말 부치노니 장차 불지 말아다오.

깃털 옷의 기생은 접련화(나비가 꽃을 그리워 함)를 불렀다.

초록 남쪽 동산에 풀이 푸르러, 봄이 또한 사례하니
꿈속 풍광 너는 어찌 나의 조화 아니겠느냐?
한 번 좋은 자리에서의 만남은 하늘이 빌린 바이니
다시 어느 곳을 찾아 분분히 지날까?
세상 바쁜 가운데 번뇌 보기를 다하니
푸름이 부숴지고 붉음의 쇠잔함에 꽃다운 청춘이 늙어감을 막을 수 없구나.
오늘 어찌 내일이 좋음을 알겠는가?
몸이 술동이 앞에 엎어짐을 애석해 하지 말라.

왕이 말하기를,

"세속의 음악은 다만 사람의 귀를 어지럽힐 뿐이라. 우리 집안의 옛악보를 보고자 하는데, 여러분의  뜻이 어떤지를 알지 못하겠소."

하니 모두 말하기를,

"듣기를 원합니다. 듣기를 원합니다."

라고 말했다. 왕이 시동을 바라보자, 곧 황색 치마에 가는 허리의 기녀가 있어 5현금을 잡고, 대열에서 나와 따로 앉아 가지런히 가다듬어 줄을 고르고는 드디어 남훈곡(순의 작, 부모의 은혜를 찬양하여 천하에 효도를 가르친 것)을 켰다. 곡조가 고상하고 절묘하여 온 좌석이 모두 얼굴에 동요가 일었다. 왕이 말하기를,

"나는 단주의 후예입니다. 우리 문조께서 일찍이 이 곡을 지었고, 중화께서 이에 노래하고 연주했던 것인데, 세상에서는 다만 이 곡이 중화의 작품이라고만 알고, 실로 우리 문조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집안에 대대로 전해져 오늘에 이르기까지 잃지 않았습니다."

모두 다 탄복해 말했다.

"옛날 오계찰이 소소(순의 음악)를 추는 자를 보고 '덕이 지극하고 극진합니다. 비록 다른 풍류가 있더라도 다시는 보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는데 모두의 뜻도 역시 그러합니다."

왕은 명령을 전해 다시 다른 음악을 연주하기 않게 하고 이어 빈객에게 말했다.

"좋은 기약은 막히기 쉽고, 좋은 일을 하기 어려움은 또한 옛사람이 슬퍼한 바입니다. 오늘 술이 반도 안되어 음악이 그쳤으니, 손님을 즐겁게 하지 못한 것입니다. 청컨대 각각 시 한편씩을 읊어, 그  결합을 메움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모두가 말했다

"네, 네."

왕은 옥비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술자리를 마련하여 끝내지 못했고, 형의 자리가 내 다음이니, 주인을 대신하여 감히 서로 잇도록 하시오."

옥비는 교태로이 부끄러워하며 사양했으나, 좌우에서 억지로 요청하자, 마침내 절구 한 편을 읊었다.

은근히 천 리의 강남 소식이
응당 고산의 처사 집에 이르렀으리.
한 번 옥난간에 들었으니 봄이 적막한데
스스로 안타까워 하노니 성긴 그림자 누구를 위해 비꼈는가?

읊기를 마치자 옥이 한하고 구슬이 근심하는 듯 목메어 소리를 삼키고는 말하기를,

"저의 집은 본래 강남인데, 뒤에 고산으로 옮겼고, 처사 임포와 이웃하여 여러 번의 풍류의 기회(雪月之會)를 마련했습니다. 스스로 분에 넘치게도 옥란에 들어오고서는 매양 서호를 생각했습니다. 비록 공묘히 미소짓고 패옥을 차고 점잖이 걸으려 하나 가능하겠습니까? 과거를 느끼고 지금을 애달파 하니 감정이 그 말에 드러났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실의하여 즐거워하지 않았다. 좌우에서 그 까닭을 묻자, 왕은 서슬프게 탄식해 말했다.

"실같이 담장이도 덩굴을 뻗음에 반드시 그 의탁할 곳을 구하는데, 여자의 행실 가짐에 어찌 따를 바가 없겠는가? 스스로 생각건대 부족한 바탕으로 기꺼이 동황은 스스로 청년임을 믿고서, 우렛소리 같은 번개 수레를 바람처럼 몰고, 달과 꽃을 찾아 돌아다니며 노니, 형제는 황조의 훈계를 노래하고 마부는 기초시를 지었도다. 상제는 하늘의 이치를 저 버린 데 노하여, 더 심하게 꾸짖고 재앙을 내려 동방으로 귀양보냈도다. 그러나 또한 그 풍도, 재조를 아껴 차마 쓸쓸히 살다 끝맺게는 하지 않고, 해마다 봄의 석달중 열흘을 서로 만나게 했도다. 이를 지내고 이후로는 소식이 끊겨 이어지지 않으니, 이는 남해와 북해 먼 곳에서 바람난 말과 소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도다. 천진의 이별 또한 스스로를 비유하기에 충분하도다."

옥비의 말에 서로 감동하여 좌우에서 또한 모두 탄식했다. 왕은 두 시동으로 하여금 구름같은 비단 전지 한 폭을 펴게하고는 근체 칠언율시를 써서 좌우에게 보이고, 또 선비에게 화답을 부탁하니 그 시에 다음과 같이 일렀다.

진귀하고 소중한 동황은 사람을 오해하니
이별은 어제같아 꽃다운 때를 원망하도다.
단장한 누각 저문 비에 연지는 떨어지는데
보장의 남은 향기는 비단의 수에 새롭도다
천상의 좋은 때는 오직 칠석이니
술동이 앞 좋은 만남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는구나!
밤에 견우와 직녀성을 보니 근심스런 생각만 생기고
모임이 끝나니 다만 남풍은 백성을 살찌우도다.

선비는 꿇어앉아 읽기를 두세 번하고는 붓을 적셔 받들어 화답하니 그 가사에 다음과 같이 썼다.

우연히 호랑나비를 만나 그윽한 대화 이루고
문득 바라보니 산길 또한 봄이구나.
청조는 홀연히 금모의 소식을 전하고
늙은이는 지금 자황의 대궐에서 절하도다.
빈장들 많은 자리엔 꽃도 일제히 터지는데
풍월은 사람을 머물 게 술은 몇 순배였나?
스스로 다행함은 묵은 인연 때문에 옥적에 오름이니
되돌아와 다시 금성 사람을 찾으리.

좌우에서 일제히 소리쳐 칭찬해 말하기를 매우 뛰어난 재주라고 했다. 선비가 또 주씨에게 부탁하니, 주씨는 머리를 숙이고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세 분의 지은 것과는 다릅니다."

라고 했다. 드디어 창랑곡을 노래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을 수 있겠고,
창랑의 물이 흐르거든 내 발을 씻을 수 있으리.

왕은 웃으며 말하기를,

"본래 각각 그 뜻을 말하고자 함인데, 한갓 옛가사를 암송한다면, 이는 기수에서 목욕하겠다는 증점이 아니니, 어찌 하여 할 수 있으랴? 속히 벌을 행하리라."

라고 했다. 즉시 큰 술잔에 넘치도록 따르자 주씨가 일어나 술자리 옆에서 벌주 잔을 받아 절하고 마시니, 문득 술기운이 뺨에 오름을 느꼈다. 이에 낭랑하고 고아하게 읊기를,

외람되이 부용이 주인 되니, 해가 몇 번이나 돌아왔나?
등한하게 꽃 속에서 연꽃 배를 젓도다.
광풍제월을 사람마다 사랑한 사람이 없으니
말씀이 염계에 미치자 다시 근심짓도다.

라고 했다. 주씨는 부탁하는 바가 없었다. 조래선생은 왼손에 술잔을 잡고 오른손으로 소반을 두드리면서 차분히 가늘 게 읊으니 청초하여 가히 들을만 했는데, 다음과 같이 읊었다.

조래산 아래 늙은 수염의 사나이
바람과 서리에도 옛모습을 바꾸지 않는구나.
가장 한하는 것은 주왕이 동쪽으로 사냥간 뒤
부질없이 헛된 명성을 얻어 더럽게 진해 봉해진 것이라.
그 뒤 각각 차례로 지음이 있었는데, 수양이 가사에 이르기를,
젊고 젊어 두각을 나타내니
처음에는 몸을 비단으로 묶어주고 감싸 주었도다.
선군은 사양하는 덕이 많았지마는
후예는 사람을 이루지 못했도다.
오히려 천년의 절개를 보존하기는 했으니
구십의 봄을 자랑치 말라.
봉황새 소리 듣기에는 마음이 없으니
고비, 고사리와 더불어 이웃하리라.
동리의 시에는 이르기를,
도리로 즐기고 번잡한 화려함을 싫어하니
동쪽 울타리가 곧 집이로다.
저녁에 피는 꽃은 가을이 지난 뒤에 적었거늘
이슬은 밤이 깊은 후에 많도다.
율리에는 도연명을 슬퍼하고
용산엔 맹가가 한스럽도다.
해마다 비바람 몰아치는 날이면
다시 머리에 꽃이 만발하지 않으리.

두 편은 글귀마다 모두 놀라웠다. 왕이 말했다.

"수양의 고고함과 동리의 자유분방함은 이른 바 뼈가 사그라지도록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옛날 노나라 공자가 말하기를 '주나라는 하, 은 두 시대를 본받았으니, 빛나디 빛나도다. 문화여! 나는 주나라를 본받으리라'고 했고, 당나라 한유도 또한 말하기를, '애석하도다! 내가 그 때에 미치지 못함이여! 그 사이에 나아가고 물러나며 읍하고 양보하지 못했으니 아! 성대하도다.!'라고 하였으니 설사 두 군자를 이때에 나게 했더라도 역시 능히 고고함, 자유분방함에서 그쳤을 뿐일 것이다."

글 뜻에 풍자가 있는 듯하자, 처사는 얼굴색이 변해서는 소리를 질러 말했다.

"요, 순이 위에 있고, 아래에는 소부, 허유가 있었으니, 주나라 공덕이 비록 성대하나 멀리 당우에게 부끄러웠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 비록 쇠미했으나, 허유와 소부의 뒤에 있고자 하지는 않습니다."

왕은 숙전의 첫장을 읊어 말했다.

"어찌 아미가 없다고 해서 눈앞에 모양을 내랴? 여러 군자에게 사랑 받는 것은 역경에도 변하지 않는 자태가 있기 때문이로다. 내가 생각건대 제왕의 도리가 넓어 초목에도 두루 미치니, 만약 한 가지 사물의 미미한 것이라도 내 교화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내 스스로 보기를 부족한 듯이 하겠다. 그러하니 서로 도움을 이치로 삼아 만물로 하여금 모두 봄이 되게 할 수 없겠는가?"

수양은 기욱의 첫 장을 읊었고, 동리는 간혜의 끝장을 읊고 이르기를,

"각각 지키는 바가 있으니, 서로 빼앗을 수 없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왕이 말했다.

"두 군자는 나의 쇠미함을 꺼려하여 말하는가?"

이에 술 돌리기를 마치려 하자 선비는 일어나 하직코자 하니, 왕이 말하기를,

"반희와 이부인이 또한 자리에 있으나, 아직 글을 짓지 못했으니, 잠시 기다려 앉아 두 사람으로 하여금 쓸쓸하게 하지 않음이 어떻겠소?"

라고 했다. 선비가 공손히 응낙하니, 왕은 두 사람에게 이르기를

"안수재가 장차 떠나려 하는데, 은근함을 다하지 못했소. 어찌 반희와 부인은 일어나 춤추고, 그 지은 바 시의 장을 노래하여 남은 흥을 돕지 않는가?"

두 사람은 명을 듣고 앞으로 나와 절하고는 말하길,

"저희들이 평소 춤의 법도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모임은 즐거움이 극도에 달하여 알지 못하는 사이에 손이 놀려지고 발이 뛰노니, 마땅히 한 번 졸렬함을 드러내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드디어 짝지어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나 월궁소아의 춤을 추었다. 이부인이 먼저 노래하니 그 가사는 다음과 같았다.

선제께서 봄에 노닐어 건장궁에 나가시니
당시 은총은 궁녀들 중에서 으뜸이었도다.
꽃다운 마음 사라지지 않았으나, 연화는 다했으니,
한 곡조 가을 바람에 한을 잊지 못하겠도다.

반희가 이어 부르니, 그 가사는 다음과 같았다.

영화롭던 지난날 사양하며 같이 수레타니
비바람이 아침을 마치도록 백량대를 막았도다.
천년토록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오직 이백뿐이니
조비련의 새단장 의지함을 가련히 생각하노라.

왕은 시동에게 명하여 옥돌 쟁반에 춘채단을 담아 상주며 말하기를,

"마땅히 비단으로 머리를 씌울만 하다."

고 했다.

두 사람은 왕의 은혜에 절하고, 나아가 앉았다. 조래 선생은 기뻐하지 않으면서 수양을 보며 말하길,

"이미 취하여 나가니, 아울러 그 복을 받으라"

하고는 드디어 고하지도 않고 담을 넘어 곧장 가 버렸다. 이부인은 수양과 동리를 놀려 말했다.

"옛날에 어떤 처사가 노래를 듣고 놀라 담을 넘어 도망했습니다. 좌석에 그를 놀리는 자가 있어 말하기를 '산새는 홍분(연지와 분)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여, 단판(악기 이름, 박달나무로 만든 것으로 박자를 맞출 때 쓰임) 소리 한번에 놀라 날아갔다'하였으니 바로 이를 말함입니다."

두 사람이 대답하지 않고 서로 이어 나갔다. 선비가 또한 하직을 고하니, 좌우에서 서로 위로해 보내기를 극진하게 했다. 왕은 이에 춘관에게 명하여 노자 주는 예의를 시행토록 하여, 채단과 수놓은 비단, 금은, 완구, 진귀한 노리개 등을 뜰에 나열했다. 선비는 절하여 사례하고 문을 나오는데, 한 미인이 있어 문밖에 섰다가 선비에게 읍하며 말했다.

"오늘의 놀이는 즐거웠습니까?"

선비는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건대 홀로 여기에 서 있소?"

라고 하니 미인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옛말에 전하기를 저의 조상은 개원말기에 양비에게 죄를 얻었다 하는데, 일이 문서에 기록되지 않아 말이 매우 황당무계하나, 오늘까지 천여년에 자손에게 누를 끼쳐, 또한 당에 오르지는 못했습니다. 널리 사랑하는 앞에 의당 이런 일이 있습니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맹렬한 우렛소리가 마치 땅을 찢는 듯 가르자 문득 깨어나니, 바로 한 꿈이었다. 자못 술기운이 몸에 남아 있고, 향기가 옷에 배어 있음을 깨닫고, 황홀히 일어나 앉으니, 가랑비가 홰나무에 뿌리고, 여파는 은은했다. 선비는 아까 꿈꾼 것은 역시 남가몽이 나무에 얽혀 된 것이라고 하고, 곰곰이 생각하며 기억하고는, 어꽃밭으로 나아갔다. 모란 한 떨기가 비바람에 흩어진 바 되어 시들은 붉은 꽃잎이 땅에 떨어져 있고, 그 뒤에는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가 나란히 있고, 가지 사이에는 파랑새가 짹짹거렸다. 대나무와 매화나무가 각각 한 곳을 차지했는데, 매화나무는 새로 옮겨져 난간으로 보호되어 있었다. 정원 가운데에는 연못이 있었고, 푸른 연의 잎은 새로 물위에 떠 있으며, 울타리 아래에는 국화가 새싹을 갓 틔우고 있었다. 붉은 작약은 활짝 피어 섬돌 위에 버금갔고, 석류 몇 그루가 채색 화분에 심어져있고, 담장 안에는 수양이 땅에 드리워 있고, 담장밖에는 늙은 소나무가 구부러져 있었다. 그 나머지 여러 꽃의 분홍, 푸름, 붉음, 자주 등의 색과 벌이 소고 나비가 춤춤은 마치 악기를 보는 것과 같았다. 선비는 이에 이러한 물건들이 괴변을 일으켰음을 알고, 또 문밖의 미인을 생각해 보니, 선비가 일찍이 항간에서 소위 출당화(집에서 쫓겨난 꽃)하고 하는 것을 얻었는데, 꽃을 가꾸는 아이에게 희롱 삼아 말하기를,

"이 꽃은 양비에게 죄를 얻었으므로, 출장이라 이름했으니, 바깥 섬돌에 심음이 옳겠다."

선비는 이로부터 휘장을 내리고서 글만 읽고, 다시는 정원을 엿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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