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벚꽃 추억◈
비바람과 함께 흩날리며 떨어지는 윤중로의 벚꽃,
유명일간지의 첫머리에 실린 사진이라 많은 이들이 보았을 것이다.
봄날은 짧다더니 오자마자 가는 느낌이다.
지금은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벚꽃이 되었지만, 반세기 전만 해도
창경원(지금의 창덕궁)의 벚꽃놀이가 서울에서는 단연 으뜸이었다.
볼거리나 놀거리가 시원치 않던 시절이어서 그곳에 가면 벚꽃도
장관이려니와 동물원 구경도 겸하여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선호도가
높은 놀이터였다.
그 외에도 벚꽃축제 때에는 부라스밴드의 연주도 있었고 줄타기 묘기도
보여주던 터라, 어린 우리 또래들은 벚꽃축제 기간이면 몸살이 날
지경에 이른다.
하도 궁하던 시절이어서 그때는 전차표 살 돈도 창경원입장료도 도무지
마련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또래 동무들은 일 년을 기다린 그 좋은
구경거리를 놓칠 수가 있으랴. 어머니에게 승낙을 받았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우리는 무작정 그곳으로 향하여 걸음을 재촉하였다.
원효로에서 원남동까지는 초등학생 걸음으로 아마 반나절 거리는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기진맥진하여 도착한 창경궁은 원남동 입구부터 인산인해다.
설사 돈이 있다 하더라도 길게 늘어진 길은 입장권을 사기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 구경을 결코 포기할 수는 없었다.
방법은? 감시자의 눈을 피하여 몰래 담을 타고 넘어가는 것이다.
창경원 담 옆으로는 가로수가 나란히 있어 나뭇가지와 담이 맞닿은
곳을 찾으면 일단은 성공이다. 창경원 담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적당한 자리를 알아낸 꼬마 왕초는 행동개시 명령을 한다.
그런데 나뭇가지가 담과 조금 떨어져 있어 건너뛰어야 하는 위험이 있었다.
나와 몇몇은 담으로 뛰어내려 창경원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먼발치에서 나머지 친구들이 넘어오기를 기다렸으나
감감소식이다. 포기를 했나?
담 넘기에 성공한 우리 몇몇은 배가 고픈지 목이 마른 지도 모르고 종일
구경을 하고 집에 왔다.
그런데 집에는 큰일이 벌어져 있었다.
우리 옆방에 살던 동무가 담으로 뛰어내린 것이 아니라 발을 헛디디고
땅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두 팔이 몽땅 부러졌다(골절)는 것이다.
아차!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리만 온종일 즐기다가 왔으니 어린 마음에도
어찌 미안하던지…… 다친 친구는 물론 함께 병원으로 간 친구들에게
얼마 동안 기죽어 지낸 기억이 난다.
그날 어머니에게 벼락 치듯 얻어맞은 것은 물론이고 다친 애 어머니의
원망 어린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떨어지는 벚꽃을 보며 나무에서 떨어진 친구를 생각하니 반세기가 지난
봄날의 추억도 벚꽃처럼 새롭게 피어난다
<<수필가 이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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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름이 짙어가는 청명한 하늘에 흰 구름 둥둥~~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던 휴일을 보내고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합니다.
근로자의 날부터 시작된 연휴 고운님 모두 행복하게 보내셨는지요?
오늘은 “벚꽃 추억”을 읽으며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지어봅니다.
남자들이라면 한번 쯤 경험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얼마 전
친구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릴 적 마을에 유랑극단이 들어오면 몰래 숨어들려고 친구들과
천막을 들추고 주위를 살피며 머리가 아닌 엉덩이부터 슬슬 밀어 넣다가
혹여 들키면 마치 화장실을 가려고 나오다 들킨 것 마냥 자연스럽게
천막으로 들어가 공연단의 마술이나 서커스를 보았다는 얘기를 듣고
눈물이 나도록 웃었던 일을 떠올려봅니다.
중년이 되고 보니 이토록 추억을 먹고 사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보 가족님!
감사와 가정의 달인 5월, 고운님들의 삶에 아름답고 멋진 추억 하나
간직할 수 있는 예쁜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도 하시는 일에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시는 멋진 하루 되시고
한 주 내내 웃음과 행복만 가득하십시오.
♣김미옥 드림♣
![](https://t1.daumcdn.net/cfile/cafe/1864281B49FDB46E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