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 역사/우리역사

[스크랩] 조선여진분계도(朝鮮女眞分界圖)와 한반도 괴지도의 비밀

오늘의 쉼터 2008. 8. 30. 19:58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는 "해동지도(海東地圖)"라는 총 8책으로 된 지도집이 있다.
이 지도집에 대한 규장각측의 총설에 의하면,

 

"해동지도(古大4709-41)  :(제작시기: 1750년대 초, 규격: 47.0×30.5cm, 구성: 8책)

1750년대 초에 제작된 회화식 군현지도집. 이 지도집에는 조선전도, 도별도, 군현지도 뿐만 아니라 세계지도(<천하도>), 외국지도(<중국도>, <황성도>, <북경궁궐도>, <왜국지도>, <유구지도>), 관방지도( <요계관방도>) 등이 망라되어 있다. 민간에서 제작된 지도집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데 활용된 관찬 군현지도집이다. 제8책의 팔도총도와 제 4책의 서북피아양계전도는 회화식 대형 전도이며, 나머지 대부분의 지도들은 도지도, 도별 군현지도, 도내 군사적 요충지의 지도 순으로 편집되어있다. 해동지도는 당시까지 제작된 모든 회화식 지도를 망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설명에 따르면 이 지도집은 어느 개인이나 하급관청에서 만든 어설픈 지도집이 아니라, 국가에서 정책적

으로 당대의 관련 지식을 총 동원하여 만든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지도집에서 당시 조선의 북방영토를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지도를 발견했는데 해동지도의 3책에 수록된 "조선여진분계도(朝鮮女眞分界圖)가 그것이다. 

 

(이하 이미지 확대: 더블클릭) 

조선여진분계도(부분).

 

위 조선여진분계도의 서쪽 담장(?)너머는 청(淸)의 영역이고, 북쪽의 목책과 같은 책성을 경계로 하여 북쪽이 여진(女眞), 책성 이남(以南)이 조선의 영토임은 아무리 지도 지식이 전무한 사람이라도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즉, 흑룡강 하구(현 아무르강)에서 부터 서쪽으로 흑룡강에서 갈라지는 송화강(지도상의 혼동강)을 따라 북쪽 책성을 경계로 하여 개원(開原)에 이르러 남쪽으로 내려 온 장성과 맞닿고, 이 장성이 조-청간의

경계가 되며 그 동쪽이 모두 조선의 영토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조선여진분계도에 대한 규장각측의 개별설명은 참으로 암울한 것으로 현 제도권 사학의 인식이 어떠한가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조선과 청 사이의 국경지대를 그린 지도. 북으로 흑룡강, 동쪽으로 연해주 일대, 남으로는 조선 국경, 서로는 장성까지를 그렸다. 의주의 건너편으로 조선 사신들이 출입하던 책문이 보인다. 지도를 그린 대부분의 자료들은 성경지의 지도, 요계관방도의 지도 등 중국측의 자료들이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평안도의 군현은 적색 사각형 안에, 함경도는 황색 사각형 안에 그려넣었다. 백두산은 독립된 산으로 표현되지 않고 의무려산에서 시작되는 한 줄기처럼 묘사되어 있다. 중국의 동북지방으로는 청이 몽고를 의식해 쌓아놓은 나무 울타리들이 두드러져 보인다. 조선은 청이 오랑캐라는 이유 때문에 필연적으로 멸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고, 그 경우 청은 그들의 본거지인 영고탑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 지도는 이러한 조선측의 전형적인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북경 쪽에서 시작되어 船廠 烏喇를 지나 寧古塔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유일하게 그려진 것은 조선이 이 경로를 청이 퇴각할 것을 가상하고 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두산에 대한 설명은 중국측 자료에 전적으로 의존한 것이다. 대명일통지를 근거로 백두산에서동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토문강이라 부르고 있으나, 실제 이 강을 토문강으로 적은 것은 성경지였다. 이러한 오류는 <요계관방도>에서도 발견된다. 토문과 관련해서는 정계비 건립 이후 심화된 인식이 반영되어 있지 않지만, 국경 밖에 있는 高麗境, 先春嶺의 위치는 고토의식의 심화를 부분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배우성) "

 

어떻게 머리를 돌리면 위와 같은 해석을 도출해 낼 수 있는 것인지 감탄스럽기 까지하다.

"...남으로는 조선국경.." .  남쪽에 조선의 국경이 어디있는가?

 

"...청은 그들의 본거지인 영고탑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 지도는 이러한 조선측의 전형적인 인식을 반영하는...". 현재와 유사한 조청 국경이었다면, 청의 영역인 만주 한 복판을 가로지르는 도로에 대해서 무엇 때문에 조선이 신경을 쓰는가?


"....청이 몽고를 의식해 쌓아놓은 나무 울타리들이 두드러져 보인다.." 하는 대목에선 말문이 막힌다.

저 북쪽 책성은 신변(新邊)이라 하여, 기존의 노변(서쪽책성) 보다 후대인 강희제 때 만들어 진 것으로 이 책성을 구축할 당시엔 이미 책성 너머(현 내몽고) 지역은 청이 점령하고 있었던 때이다.

즉, 청몽국경이 아니라 조청국경인 것이다.

그리고, 문제의 도로는 병자호란의 결과의 하나로 청에게 영고탑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양보(?)한 것이지

이 도로가 위치한 지역이 청의 영역이었기 때문은 결코 아닌것이다.

 
만주지역은 곧, 중국이라는 단정하에 조선여진분계도를 설명하고 있다.
이 해석의 가장 큰 오류는 청을 건국한 세력으로서의 여진과, 같은 여진으로 분류되나 청의 건국세력과는 태동 부터가 다른 북방여진(해서여진,야인여진)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의 초기 건국세력은 조선영토내에서 통치를 받으며 조선인과 다름없이 융화되어 살던 무리로서 이들은 명(明)에 의해 북방 영토를 위협받던 조선이 명을 견제키위해 묵인 내지는 지원하에 힘이 키워져 예상치 않게 독립해 나간 세력이나, 또 다른 북방여진은  이들과는 전혀 성향이 다른 무리들로서 위의 지도는 그 북방여진과 조선의 접경을 그린것이고 서쪽에 나타나는 청과의 접경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다.  또, 만주가 청의 영역이였다면 서쪽과 북쪽에 저런 위치의 방어를 위한 성을 구축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이미 강성한 국가를 세운 청과의 접경도라면 조청분계도(朝淸分界圖)가 되어야 마땅한것이고,
위의 지도가 조청분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님은 결정적으로 해동지도에 이 조선여진분계도와 함께 수록된 중국도(십삼성도)를 보면 확연해 진다.

 

중국도(십삼성도).

 

위의 청나라 십삼성도(十三省圖)는 산해관 이동쪽이 중국(청나라)영토라는 어떠한 표식이나 기록도 없다. 조선여진분계도의 북쪽 책성 이남지역(소위 만주)이 청의 영토라면 당연히 함께 수록된 청의

십삼성도에 포함되어야 하지 않는가.
조-청간의 분계인 서쪽장성 이동지역은 청이 건국되기 전이나 건국후 빠져 나간 이후에나 조선의 영토였고 위의 조선여진분계도는 청과는 다른 북방여진과의 접경지역을 그린 것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18C 조선의 영토가 어떠했는지 위의 조선여진분계도의 접경을 그대로 현대지도에 옮겨 보면 아래와

 같다.
 

 

고지도의 지명,지형을 토대로 하여 그대로 옮겼을 뿐인데 상상외의 어마 어마한 조선의 영토가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모양의 조선지도를 언제,어디선가 본듯한 기억이다.
2003년, "한반도 괴지도"라는 이름으로 언론에 보도되기 까지 했던 바로 그 지도.


당시 의친왕의 손자인 이초남씨가 숙부의 유품이라며 지도한장을 공개 했는데
그 지도의 조선영토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라 잠시 화제에 오르다 묻혀버린 일이 있었다.

 

 

위의 지도는 조선에 왔던 교황청 소속 신부가 교구 획정과 관련하여 교황청에 작성해 보낸 서류에 첨부된 지도의 사본이라며 이초남씨가 공개한 문제의 그 괴지도이다.
원본은 교황청에 보관되어 있을 것이라는 얘기이고.

 

이 지도와 조선여진분계도를 토대로 재구성한 조선영토와는 유사하나 같다고 볼 수는 없는데.
그 다른점은 현재의 압록강과 백두산 이북쪽이 떨어져 나간 형세다.
그런데 조선영토에서  떨어져 나간 이  부분이 설명되어 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청(淸)이 일방적으로

선포하여 만들어진 "봉금지역"인 것이다.
지도가 만들어진 경과를 보면 조선여진분계도가 만들어지고 난 뒤, 봉금지역으로 인해 일부가 떨어져

나간 조선영토가 그려진 것이 바로 괴지도 이다.
아니, 괴지도가 아닌 18C 이전 조선의  실제 영토를 그린 지도인 것이다. 
 

얼마 전 까지도 간도(間道)라고 부르는 우리의 북쪽 끝 영토가 왜 間道라 부르게 된것인지

알지도,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었다.

북쪽 끝에 있는 지역을 '사이 간 間' 자를 써서 간도라 부르는 이유는 위의 지도들에 잘 나타나 있다.

청(淸)이 일방적으로 선포하여 들어 갈 수 없었던 지역 즉, "봉금지역"을 간도라 부른것인데.

이 봉금지역은 위의 지도들을 참고하면 조선영토의 허리를 끊을 듯이 파고들고 있다.

그래서 조선은 북방영토와 남방영토 사이에 낀 지역을 일컬어 '間道'라 칭했던 것이다.

조선의 행정구역 단위인 '도(道)'라 부를 만큼 드넓은 지역이나 통금지역이다.

혹자들은 간도의 어원이 현 두만강 하구의 섬에서 유래 되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間道'가 아닌 '間島'가 되어야 하며 간도가 그렇게 작은 지역도 아니므로 가당치가 않다.

이 간도는 다시 남간도와 북간도로 나뉘어 지고 일제가 청에게 철도 부설권과 바꿔 넘겨버린

지역이 북간도이다. 

그리고 남간도 지역은 아무런 인과도 없이 지금까지 불법 점유되고 있는것이다.

 


한반도 괴지도 관련기사
http://weekly.chosun.com/wdata/html/news/200307/20030729000053.html

 

조선여진분계도 전체보기(원본크기)

 http://blog.daum.net/sabul358/13708581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해동지도-기타-조선여진분계도)

                             (여지도- 기타-조선여진양국경계도)

http://e-kyujanggak.snu.ac.kr/GZD/GZD_JIMYUNGS.jsp?ptype=class&subtype=hd&lclass=01&mclass=기타

 

 

 

참고---근세조선의 영토관련 향고도의 다른 글.

 

이것이 18C 조선(朝鮮)의 서북방 영토 경계다.
http://blog.daum.net/sabul358/13664764

 

 

충강공 이징옥(李澄玉)과 오국성(五國城).
http://blog.daum.net/sabul358/13200050

 

 

 

 

 

 

 

 

--끝.

출처 : 향고도
글쓴이 : 향고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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