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음택지

눈 먼 손자가 나온 노사 기정진의 할머니 묘 황앵탁목혈

오늘의 쉼터 2008. 5. 30. 18:36

 

* 눈 먼 손자가 나온 노사 기정진의 할머니 묘 황앵탁목혈

 

고향 이야기가 나온 김에 순창군 복흥면에 있는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선생 조모 묘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노사 기정진 선생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조선 성리학의 6대가 중 한사람이며 이 고장 복흥 출신으로,

인근의 장성에서 경학을 공부하려고 전국에서 모여드는 선비들을 가르쳤다.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1489-1546년),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년),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년), 녹문(鹿門) 임성주(壬聖周, 1711-1788년),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6년),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 1818-1886년) 선생을

조선 성리학(性理學)의 6대가로 일컬어 말한다.
눈 하나가 먼 노사 선생은 8,9세에 이미 경서와 사기에 통달했고,
유학에 전심하여 진사에 합격한 후

참봉에서 호조참판까지 여러 번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고향 사람들은 흔히 기참판(奇參判)으로 노사 선생을 부르고 있다.

노사 선생은 다음 일화로 유명하다.
중국에서 조선에 인물이 있는지를 실험하기 위해서 조선 조정에 시 한편을 보내 뜻을 물었다.

인물이 없으면 자신들이 조선을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전부터 해오던 조선 조정을 파악하는 방법이다.

"용단호장 오경루하 석양홍(龍短虎長 五更樓下夕陽紅)"
직역을 하자면 "용은 짧고 호랑이는 길다. 오경루 아래 석양은 붉네"

조선 조정에서는 무슨 뜻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 애를 태웠다.

그렇다고 아무런 답변을 해주지 않으면 중국으로부터 무시당할 일이었다.

할 수 없어 사람을 보내 장성에 있는 노사에게 뜻을 물었다.

노사는 글을 읽고 다음과 같은 답을 써 보냈다.

"동해유어 무두무미무척(東海有魚 無頭無尾無脊)
화원서방 구월산중 춘초록(畵圓書方 九月山中 春草綠)"
직역을 하자면 "동해에 고기가 있는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고 등도 없다.

그림으로 그리면 원으로 둥글고, 글씨로 쓰자면 각이 졌다. 구월산중에 봄 풀이 푸르다."

글 모두 직역만 가지고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두 글은 모두 해(日)를 주제로 표현 한 것이다.
겨울철에는 해가 용을 상징하는 진시(오전 7시정도)에 떠오르므로 해의 길이(낮의 길이)가 짧고,

 여름철에는 해가 호랑이를 상징하는 인시(오전 5시정도)에 떠오르므로 해의 길이(낮의 길이)가 길어

용단호장(龍短虎長)이라고 표현 한 것이며 오경루는 중국에 있는 누각으로 석양의 경치를 노래한 것이다.
이에 대한 노사의 시도 마찬가지다. 동해에 떠오르는 해는 고기와 같은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고

등지느러미도 없다.

그림으로 그리면 둥글고 글씨로 쓰자면 각이 졌다(日자를 암시) 중국은 오경루에 지는 석양이지만

조선은 구월산에 새로 돋아나는 봄 풀이다라고 비교 표현하였다.
시를 보고 중국 사신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며 조선 임금은 서울의 수많은 사람들이 장성 고을의

눈 하나 없는 사람 보다 못하다 하여

장안만목 불여장성일목(長安萬目 不如長城 一目)이라고 하였다.

노사 기정진 선생은 할머니 묘 발복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순창 복흥면 소재지에서 담양 가는 도로로 가다보면 대방리 용지 마을 건너편으로

 금방동 들어가는 산길이 나온다.

한참을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마을이 나타난다. 금방동은 산이 나선형으로 돌아 감아준 곳이다.

마치 고동(다슬기) 안에 있는 곳과 같다하여 영라하수형(靈螺下水形)이라고 하는데

깊은 산골로 논하나 없지만 옛날부터 부자가 많이 나온 동네다.
마을 뒤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큰 나무 한 그루가 고갯마루에 서있다.

여기서 왼쪽 길로 조금만 가다보면 산 중턱에 석물 하나 없는 봉분이 나타난다.

이곳이 노사 기정진 조모 묘인 황앵탁목혈(黃鶯啄木穴)이다.
황앵탁목혈이란 노란 꾀꼬리가 나무를 쪼는 명당이다.

이곳은 꾀꼬리가 나무에 붙어 있듯 혈도 산 중턱에 메 달려 있으며

주산 현무봉은 꾀꼬리 같은 새의 모양을 한 바위로 되어 있다.

앞산은 나무가 옆으로 누운 듯한 모습으로 와목체(臥木體)고 가운데는

꾀꼬리가 나무를 쪼아 생긴 구멍이 나있다.

묘 정면에는 문필봉이 뚜렷하게 있는데 노사 선생 같은 큰 학자를 낳게 한 산이다.

좌향도 묘좌유향(卯坐酉向)으로 묘좌는 오행으로 목(木)에 해당된다.

이 혈은 노사 할아버지가 직접 잡은 자리라고 한다.

노사 할아버지는 옥룡자 결록을 들고 이 마을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옥룡자 결록에 의하면

`복흥남십리(福興南十里) 장성담양분거로협(長城潭陽分去路峽) 금방동초기봉하(金榜洞初起峰下)

적암화산석맥상(赤岩火山石脈上) 수자동북교합류(水紫東北交合流) 남대류지혈귀서(南大流之玄歸西)

안재역수(案在逆水) 황앵탁목혈(黃鶯啄木穴) 본신용호이선익(本身龍虎以蟬翼)

안여외청룡성수구(案與外靑龍成水口) 예성대부(裔盛大富) 백화이인(白花二人)

문무각삼인위지정이품(文武各三人位至正二品) 용사일인(勇士一人) 맹인일인지외무흠(盲人一人之外無欠)`
이를 풀이하면


`복흥에서 남쪽으로 10리를 가면, 장성과 담양이 갈라지는 길 골짜기에, 금방동에서 처음으로 기봉한 산아래,

적색 바위가 화산처럼 생겼고 석맥 위에 (용 또는 혈이)있다.

아름다운 물은 동북쪽에서 서로 만나 합류하여, 남쪽으로 크게 지현자(구불구불)로 흘러 서쪽으로 빠져나간다.

 안산이 역수하는 황앵탁목혈이다.

본신에서 나온 청룡과 백호는 선익이 되고, 안산이 외청룡과 더불어 수구를 이룬다.

후손은 큰 부자가 되며, 백화(진사) 2인이 날것이고, 문과와 무과에 각각 3인이 나는데 정2품에 이르고,

용감한 선비 1인이 나온다.

맹인 1인이 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흠이 없는 명당이다.`

보름이 넘게 마을 산을 돌아다니다

이 혈을 찾은 노사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신 노사 할머니 묘를 이곳으로 이장하고

한쪽 눈이 없는 아이가 태어나기만을 기다렸다.
목은 3과 8을 가르치고, 꾀꼬리가 나무를 계속해서 쪼아대기 때문에 나무에 구멍이 뚫리듯
한쪽 눈이 빈 손자(3대)가 나와야 명당 발복이 제대로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며느리들이 출산 할 때 가장 먼저 묻는 것이 한쪽 눈이 없는가 여부였다.

그러나 태어나는 손자마다 두 눈이 멀쩡하였다.

노사도 처음 태어났을 때는 두 눈이 정상이었다.

그런데 노사가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과 전쟁놀이를 하면서 활을 가지고 놀다가

상대편 아이가 쏜 화살에 눈을 맞아 그만 실명하고 말았다.
집안 식구들 모두 슬퍼하는데 유독 노사 할아버지는 무릎을 치며 기뻐하였다.

이제야 명당 발복이 시작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기대처럼 노사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글을 잘하여 훌륭한 학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