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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산 밑바위, 대자연이 빚은 성석… 경이로운 여인

오늘의 쉼터 2008. 5. 26. 12:21
* 불암산 밑바위, 대자연이 빚은 성석… 경이로운 여인

 

 

불암산 방향에서 바라본 밑바위의 뒷면.

 

땅은 생명의 근원이다.

모든 생명체는 땅과 유기적인 연관성을 갖고 살아간다.

또한, 땅은 저마다 이름과 사연이 있다.

지명에는 그 지역의 풍속이나 생활상 등 다양한 문화요소가 담겨 있다.

지명은 땅의 얼굴이자 모국어적인 향수의 원형을 담고 있다.

 

이에 스포츠 월드는 우리의 삶과 운명적으로 상생의 관계를 맺고 있는 지명의 유래와 사연을 통해

옛 사람들의 풍속과 문화를 되짚어 본다.

 

알타이 신화에 의하면 태초에 혼돈 속에서 음과 양이 갈라졌는데, 이때 밝고 맑은 것은 위로 올라가서

하늘이 되었다.

또 어둡고 흐린 것은 아래로 가라앉아 땅이 되었으며 반고(盤古·거인신)가 생겼다고 한다.

그는 혼돈 속에서 음과 양의 두 기운이 중화(中和)되어 태어난 인류의 시조다.

이 신화에 따르면 천지만물이 생겨나게 된 것은 반고의 죽음에서 비롯됐다.

즉, 그의 몸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가 내뿜었던 숨은 바람과 구름이 되었고,

목소리는 천둥소리가 됐다. 왼쪽 눈은 해가 되었으며 오른쪽 눈은 달이 되었다.

또 그의 사지와 오체는 하늘과 땅의 사극(四極)과 오방(五方)의 산이 되었으며 피는 강물이 되었고,

힘줄과 맥은 지리가 됐다. 살갗의 털은 초목이 되었고, 이빨과 뼈는 쇠와 돌이 되었으며,

땀은 비와 늪이 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허황하고 어리석은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삼라만상을 한 사람의 인체로 풀어 본 것은 천지·음양·선악·남녀·명암 등 상대적인 근본원리가

중화(中和)를 거쳐 대화(大和)로 통하는 세계관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융화를 바탕으로, 궁극적으로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대자연법과 통하고 있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 산 101번지 불암산 자락에는 ‘밑바위’라 부르는 큰 바위가 있다.

세상에 여자의 성기를 이처럼 절묘하게 닮은 바위가 또 있을까. 이 바위는 대음순·소음순·배뇨관과 작은

돌기까지 너무도 적나라하다.

대자연이 아무런 의도 없이 여성의 중요한 부분을 이처럼 절묘하게 나타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경이롭다.

여자의 성기처럼 생긴 상징물들은 대개 ‘보지바위’니, ‘씹바위’니 하고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바위 이름은 에둘러 ‘밑바위’라고 했다.

그것은 이 바위의 생김새가 너무도 적나라하게 닮아서 구태여 외설스런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밑바위는 폭 10m, 바위 밑 둘레 약 26m, 높이 5∼6m다.

전체적으로는 여성의 궁둥이가 하늘로 향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 형상이 너무도 절묘하여 이전부터

마을 어른들은 이 바위 근처에 아이들이 가지 못하게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밑바위를 보려면 중계본동 현대아파트나 삼성아파트 뒤쪽에서 학도암쪽이 아닌, 원암유치원을 찾아가야 한다.

유치원에서 과수원을 따라 불암산 쪽으로 200∼300m쯤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자연은 부조화를 싫어한다.

이처럼 절묘한 여근바위를 두었으니 틀림없이 그에 맞는 남근바위가 있을 터이다.

역시 그랬다. 불암산 줄기의 하계동 쪽 산기슭에 예전에는 채석장이 많았다.

그곳의 바위 가운데 ‘용든바위’, 또는 ‘사랑바위’라고 부르는 크고 늠름하게 생긴 남자바위가 있었다.

그러나 40여년 전 채석을 하려고 산을 허물면서 이 바위도 함께 없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밑바위’는 설화 속에서 거대한 여근을 가졌던 가야국 김수로왕의 왕비 허왕후를 떠올리게 한다.

민담에는 김수로왕의 남근이 낙동강을 가로질러 걸쳐놓을 만큼 컸다고 하는데, 허왕후도

그에 못지 않게 컸던 모양이다.

어느 날 큰 잔치가 열렸는데, 바닥에 깔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왕후가 생각 끝에 자기의 거대한 음문을 자리로 깔아서 잔치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한 손님이 실수로 뜨거운 국물을 자리에 엎지르고 말았다.

왕후는 비명을 지를 뻔했으나 꾹 참고 잔치를 마쳤는데, 그로 인해 여근에 흉터가 생기고 말았다.

그런 연유로 김해 허씨 후예인 여자는 그 위에 검은 점이 있다는 것이다.

 

중계동쪽에서 바라본 불암산 밑바위. 바위의 모양이 여성의 성기와 절묘하게 닮았다.

 

밑바위는 용든바위가 없어지면서 온종일 외롭게 불암산 소나무 숲을 지키고 있다.

전국에 수배하여 짝없는 남자바위를 찾아 이 바위와 서로 부부의 인연을 맺게 해주면 어떨까?

아니 그보다도 먼저 노원구청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먼저 이 바위를 민속자료로 지정하여 바위를 보호하고, 주변지역을 정화해야 할 것이다.

근래에는 경남 남해의 가천 암수바위처럼 지역마다 특징 있는 바위를 민속자료로 지정하고

도로 안내표지판까지 세워서 관광자원화 하고 있다. 노원구에서도 이런 점에 착안해 볼 필요가 있다.

밑바위는 공중변소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조잡한 외설물이 아니다.

 어떤 의도적 행위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앞에서 이야기 한 대로 땅과 산이 반고의 육신이듯이,

이 바위도 자연이 빚어낸 여인의 육신의 한 부분으로 태어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여근바위를 자연의 풍요,

다산(多産)과 다남(多男)을 기원하는 믿음의 상징물로 섬겨 왔다.

성을 천박하게 여기거나 외설적으로만 해석하지 않았다.

본래 태극은 음과 양이 맞물려서 서로 침범하는 형태이다.

 

음과 양으로 구분되기는 했지만 이른바 음정양동(陰靜陽動)이자 건곤남녀(乾坤男女)이며,

만물화생(萬物化生)의 전개이다.

언제든지 서로 합해지려고 하는 두 존재, 둘이지만 하나가 되어야만 하는 존재로 우리네 성의 담론은

태극의 이론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불암산 밑바위는 우리나라 여성바위의 으뜸으로 보호되어야 마땅하다.

 

 

하늘에서 바라본 불암산(왼쪽)과 노원구의 아파트 단지

 

김기빈/토지박물관 지명조사위원·‘땅에 새겨진 문화 유산’ 저자

비스듬하게 곧추선 숫바위 생김새·모양 1등급 반열에 배부른 여인 닮은 암바위와 짝이뤄

 

 

경남 남해도 가천마을에 있는 암수바위. 왼쪽이 숫바위이고,

아기를 밴 것처럼 배가 불룩한 오른쪽 바위가 암바위다.

 

마을마다 한두 개의 남근이나 여근을 뜻하는 바위들이 있다.

 남근석이나 여근석은 대개 고대 성기 숭배신앙과 아들을 바라는 기자신앙(祈子信仰)이 결합한 형태다.

또 풍수지리상 여자의 기, 곧 음기가 강한 곳에 남근석을 세워 음기와 양기의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경남 남해군 남면 홍현리 가천마을에는 암수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남녀의 성기 모양과 절묘하게 닮았다.

 숫바위는 높이 5.8m, 둘레 약 4m로 이 같은 모양의 바위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민속학자 주강현은 숫바위를 보고 ‘생김새나 모양으로 보나 좆신앙 1등급 반열에 드는 바위’라고 표현했다.

바다를 등지고 마을을 향하여 비스듬하게 곧추선 숫바위 옆에는 배 부른 여인 같은 암바위가 짝을 이루고 있다.

숫바위의 우람하고 늠름한 모양을 보면 신라 22대 지철로왕의 거대한 성기 이야기가 떠오른다.

삼국유사 ‘기이’ 편에는 지철로왕(지증왕)의 남근 길이가 1척 5촌(약 45㎝)이나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물건이 하도 커서 보통 여자와는 도저히 짝을 지을 수가 없었는데, 마침 모량부 상공(相公)의 집에 키가

7척 5촌이나 되는 큰 여자가 있어서 아내로 맞이하였다고 한다.

한 나라 국왕의 남근 크기가 이처럼 구체적인 숫자로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어쩌면 지철로왕이

유일할 것이다.

 

남해의 암수바위는 경상남도 민속자료 제 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내문에 따르면 이 바위는 1751년(영조 27) 음력 10월 23일 땅 속에 묻혀 있던 것을 캐낸 것이라고 한다.

남해 현령 조광진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이 바위가 묻힌 곳을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그 후 이 바위에 자식 없는 사람들이 공을 들이면 아들을 얻었기 때문에 ‘미륵바위’,

또는 ‘미륵불’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

자연은 외설이 아니다. 사람들이 무엇이라 부르건 푸른 바다를 등지고 우람하게 서 있는 남근바위는

생식력을 통한 다산적 풍요와 옛 사람들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 

차전놀이나 고싸움 놀이가 여근을 상징하는 암동앗줄에 남근을 상징하는 수동앗줄의 코를 꿰어

진행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남근과 여근의 교합, 즉, 음양의 조화를 통해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