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압지 출토 14면 주사위 ◈
각 면 나올 확률 동일....신라의 놀라운 수학력
카이사르가 “주사위..,.” 운운한 것은 서기전 1세기 중반이다.
최소한 주사위가 그 이전에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주사위는 이집트 등 오리엔트 지방에서 유래했다는 게 정설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언제 들어왔을까?
처음 전래된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발굴품 중 가장 오래된 주사위는 통일신라시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주사위는 현재 복제품만이 남았다.
이 주사위는 1975년, 신라 태자가 거처하던 동궁(東宮) 주변에 조경용으로 만든 안압지에서 나왔다.
참나무에 흑칠(黑漆)을 했다. 높이는 4.8cm로 손에 딱 잡히는 크기였다.
이 주사위는 그러나 여느 주사위와는 다른 특징이 있었다.
우선 정육면체가 아니라. 십사면체라는 점이다.
이 중 6개면은 정사각형이었고, 8개면은 육각형이었다.
그리고 한면을 제외한 나머지 13면에는 한자로 네 글자씩 적혀 있었다
(나머지 한 면은 다섯 글자였다).
글자들을 해석하면 이 주사위는 술자리에서 사용되던 ‘벌칙용’ 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정사각형에 적힌 벌칙은 -
음진대소(飮盡大笑.술 마시고 크게 웃기),
삼잔일거(三盞一去.술 석잔을 ‘원샷’ 하기, 혹은 술 석 잔을 마시고 한 걸음가기),
자창자음(自唱自飮.혼자 노래 부르고 술 마시기),
금성작무(禁聲作舞.소리내지 않고 춤추기),
중인타비(衆人打鼻.여러 사람으로부터 코를 맞기),
유범공과(有氾空過.여러 사람이 덤벼서 장난쳐도 참기)였다.
▲ 1975년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주사위의 복제품. 술자리에서 벌칙을 정하는데 쓴 것이었다.
진품은 그러나 보존 처리 과정에서 한 줌 재로 사라졌다. /신형준 기자
육각형에 적힌 벌칙은 -
추물막방(醜物莫放.더러워도 버리지 않기),
양잔즉방(兩盞則放.술 두잔을 빨리 마시고 다른 이에게 돌리기),
임의청가(任意請歌.아무나 지목해 노래 청하기),
곡비즉진(曲臂則盡.팔을 구부리고 술을 다 마시기),
농면공과(弄面孔過.얼굴을 간지럽게 해도 참기),
자창괴래만(自唱怪來晩. ‘괴래만’ 이라는 노래를 부르기),
월경일곡(月鏡一曲. ‘월경’ 이라는 노래 부르기),
공영시과(空詠詩過.시 한 수 읊기)였다.
통일신라시대 술자리의 풍류를 물씬 느끼게 한다.
그런데 14면체인 이 주사위를 던지면 각 면이 나올 확률은 모두 같을까?
실측 결과로는 정사각형의 넓이가 대략 6.25㎠(가로 세로 각 2.5cm)였고,
육각형의 넓이는 6.25㎠(최대폭 3.25cm, 높이 2.8cm)로 넓이는 대략 같았다.
이강섭 단국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1987년, 제자들과 함께 안압지 주사위
복제품을 만들어 7000번 던졌다. 실험 결과 최대 542번 나온 면도 있었지만,
대개는 평균치인 500번(7000÷14면=500번)에 수렴(收斂)했다.
이 교수는 “모양과 크기가 같은 정다면체는 정4면체, 정6면체, 정8면체,
정12면체, 정20면체 등 5개만이 수학적으로 가능하다” 며 “ 정다면체가
불가능한 14면체의 각 면 넓이를 거의 똑 같이 만들어, 각 면이 나올 확률을
동일하게 만든 신라 장인의 솜씨가 놀랍다”고 했다.
하지만 이 주사위는 지금 없다.
출토 직후 수분을 제거하고 보존하기 위해 자동으로 온도가 조절되는
특수 오븐에 하룻밤 동안 넣었는데, 온도 과열로 한 줌 재로 사라져 버렸다.
국립문화재연구소측은 “오븐에 넣고 보존처리를 하기 전에 주사위에 종이를 대서
실측을 하고 전개도를 만들었다”며 “이를 바탕으로 복제품을 제작했다”고 했다.
〈10/8일 조선일보 - 신형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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