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 때의 문신 후조당 김부필(1516∼1577)이 지었다고 전하는 별당건물이다. 원래는 예안면 오천동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1974년 이곳으로 옮겨 지었다.
광산 김씨 예안파 종택에 딸린 별당으로, 종택은 별당·정침·사당·재사·창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정침에 부속된 건물이고,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앞면 4칸·옆면 2칸의 一자형에 오른쪽으로 2칸 마루와 방을 달아 ㄱ자형을 이룬 큰 규모의 별당이다. 정침 왼쪽 담장 안에 있으며, 정침으로 통하는 협문과 정문을 갖추었고 왼쪽에는 사당으로 통하는 신문(神門)이 있다. ‘후조당’이라는 현판은 스승인 퇴계 이황의 글씨이다.
대청의 천장에서 고서 및 문집류, 고려 말기의 호적, 조선시대의 호적·교지·토지문서·노비문서·각종 서간류 등 희귀한 전적류가 발견되었다.
전문설명
본래 안동군(安東郡) 와룡면(臥龍面) 오천리(烏川里) 132번지에 있던 건물로 광산김씨(光山金氏) 오천종택(烏川宗宅)에 부속된 별당(別堂)이다. 종택(宗宅)은 정침(正寢)은 근년에 중건(重建)되었고 후조당(後彫堂)과 사당(祠堂)만이 고격(古格)을 유지하고 있다.
후조당(後彫堂)은 광산김씨 21세손이며 예안입향조(禮安入鄕祖)인 김효로(金孝盧)(1455∼1534)의 장손(長孫)으로 선조시인(宣祖詩人) 김부필(金富弼)(시호 문순공(文純公) 1516∼1577)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후조당이란 당호(堂號)는 그의 호를 따서 붙인 것이며 대청(大廳)에 게판(揭板)되어 있는 현판은 퇴계(退溪)(1501∼1570)의 글씨이다. 그들 형제는 퇴계문하(退溪門下)에서 수학하였다. 1500년대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973. 8. 1 도 유형문화재로 지정, 1970년대초 안동댐 건설로 인한 수몰로 1975년 원위치에서 2㎞ 가량 떨어진 현위치로 이건보존되고 있다.
이건을 위한 건물해체시 대청의 합각하부(合閣下部) 천장에서 안동 낙향조(落鄕祖)인 18세 김무(金務)로부터 30세 김숙(金塾)에 걸쳐 모아둔 희귀(稀貴)한 고서(古書) 및 문집류(文集類)와 고려말기의 호적(戶籍)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교지(敎旨), 호적(戶籍), 토지문서(土地文書), 노비문서(奴婢文書), 분재기(分財記), 각종서간문(各種書簡文) 다수가 발견되었다.
후조당 전경 한 칸 마루에서 내다본 풍경 대청 대청 현판 사당 제례 모습 내부 대청 사당
온돌방 내부 온돌방 외부 온돌방 측면 측면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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