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심동신(1824∼?)이 입던 금관조복 중 금관 1점이다. 금관은 조복에 갖추어 쓰던 모자로 양관(梁冠)이라고도 하는데, 량(梁)은 모자의 앞면에서 꼭대기를 지나 뒷면까지 연결되어 붙여진 금색선을 말하며, 그 수에 따라 계급이 구분된다. 이 금관은 5량관으로, 1품의 관리가 쓰던 금관이다.
금관의 모양은 원통형인데 머리둘레와 뒷면 전체에 금칠이 되어 화려하고 윗부분은 검은 비단으로 싸여 있다. 뒷면은 금칠한 나무비녀 2개를 꽂아 고정하였고 비녀의 양 끝에는 술을 감아 늘어 뜨렸다.
이 금관은 1948년 석주선씨가 심동신의 7대 손자며느리로부터 인수받았다고 하며, 1890년대를 전후한 구한말의 유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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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초가로, 집의 뒷산이 좌우로 뻗어나와 감싸고 앞으로는 넓은 들판이 펼쳐지는 명당에 동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오른쪽 산자락에 울창한 소나무 숲과 연못을 조성하였고, 들판에 나무를 일렬로 심어 진입로를 조성하여 아늑함을 느끼게 한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나란히 배치되고 광채가 왼쪽·부엌이 오른쪽을 감싸고 있어 전체적으로 튼 'ㅁ'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앞면 5칸·옆면 1칸반 규모의 안채는, 왼쪽부터 방 3개를 차례로 배치하였고 오른쪽이 부엌이다. 부엌과 'ㄱ'자로 연결되어 부엌광·헛간·외양간이 있다. 사랑채는 2칸의 사랑방 오른쪽으로 대문간과 광이 있는 4칸집이다. 광채는 광과 헛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광채와 사랑채 사이에 샛문이 있다. 원뿔형으로 돌려쌓은 토담에 통나무를 세우고 이엉을 덮은 굴뚝은 산간지대에서 쓰이던 기법으로 전통적 특색이 있다.
명당지에 인위적으로 조성한 짜임새가 주변환경과 어우러져 아담한 공간을 이루고 있는 민가이다.
※ 위 문화재는 제한적으로 관람이 가능하오니, 관람가능 여부를 사전에 확인해야 합니다..
전문설명
잡목이 무성한 둔 덕 정도의 뒷산이 좌우로 뻗어나와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를 이루고 오른쪽으로 비껴서 수구가 열리면서 너른 들판이 펼쳐진다. 너른 들의 중간에는 나무를 일열로 심어서 공간감을 형성하며 오른쪽 산자락 끝을 안산 삼아 소나무 숲을 울창하게 조성하고 그 안에 연못을 팠다. 이 집에 이르는 진입로는 안산을 휘감아 돌아서 연못 옆을 지나도록 하였다. 뒷산의 무성한 숲에 둘러싸인 이 집은 안산과 연못을 바라보도록 축을 잡아 배치하여 가히 풍수지리상(風水地理上) 명당이라 하겠다.
안채와 사랑채는 축을 맞춰 동남향하여 앞뒤로 배치되고 광채는 안마당의 서쪽에 놓여서 전체적으로 튼ㅁ자를 이룬다. 집 앞은 경작지로 트여 있어 동쪽 바깥에 공간이 마련되었는데 아마도 집터와 지반 높이의 차이 대문일 것이다. 이 집은 모두 초가집으로 19세기 초 무렵에 건축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안채는 一자 5칸 전퇴집인데 동쪽의 맨 아랫칸만 처마 밑을 이용하여 반칸(半間)쯤 더 내었으나 지붕의 모양은 네모꼴로서 변하지 않는다. 평면구성은 동쪽으로부터 뒤에는 나뭇간을, 앞(退間)에는 부엌광이 마련되며 다음은 부엌이다. 나머지 3칸은 앞퇴에 툇마루를 시설하고(안방 앞만 우물마루이다.) 동쪽으로부터 안방, 웃방(가운데방), 끝방의 차례로 놓였다. 세 방의 사이는 개방할 수 있는 미서기문이다.
구조는 2고주4량집인데 이는 3량집에 앞퇴만 덧붙이는 민가의 일반적 기법이다. 따라서 전면의 서까래는 단연과 장연으로 이루어지고 후면은 하나의 서까래만 걸친 것으로서 지붕은 전면의 길이가 길고 후면은 짧게 하였다. 특이한 것은 전면의 긴 서까래가 거의 수평에 가깝게 걸쳐지는 것으로서 중남부 지역의 평야지대에서 가끔 볼 수 있는 기법이다. 도리는 굴도리이며 기둥은 전면만 네모이고 나머지는 둥근꼴이다. 댓돌은 막돌 허튼층쌓기 네벌대 정도의 높이로서 높으며 초석(礎石)은 덤벙주초이다. 광의 지붕틀은 중도리 위에 동자주를 올리고 종도리를 직각으로 걸쳐 ㄱ자형을 만들었는데 지붕면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사랑채는 5칸ㄱ자형집으로서 가로칸을 4칸 전퇴로 하고 동쪽칸 뒤에 단칸(單間)을 덧달아낸 것이다. 간살이는 서쪽으로부터 2칸 사랑방을 두고 앞퇴에는 툇마루를 깔았다.
다음은 대문간인데 사랑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아궁이가 축조되었다. 맨 동쪽간은 광이며 뒤로 꺾어져서 외양간이 된다. 지붕은 우진각 초가집이다. 구조는 안채와 같은 방식인데 모를 접은 납도리를 사용하였으며 장혀는 쓰지 않았고 사괘맞춤 하였다. 특이한 것은 사랑 앞 툇마루의 가운데는 퇴보를 사용하지 않고 토막보만 도리에 맞춘 점인데 이것은 마루를 통행할 때 불편했기 때문이며 민가에서 흔히 쓰는 수법이다. 기둥은 네모이고 덤벙주초이며 댓돌은 막돌 허츤층 쌓기이다.
광채는 맞걸이 3량3칸, 우진각 초가지붕집인데 북쪽에 광을, 나머지 2칸은 헛간을 배치했다.
이 집은 공간의 짜임새가 주변환경과 어우러져 아담하게 만들어졌다. 특히 굴뚝은 지방적 특색을 나타내는 전통적 구조이다. 통나무 굴뚝을 세워서 원뿔형 토담을 쌓고 이엉으로 덮어 보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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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에서 바라본 안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36C2455DE2100B25)
안채와 안마당 ![](https://t1.daumcdn.net/cfile/blog/99C826455DE2100C22)
안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EF83455DE2100D26)
사랑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EA4C455DE2100F26)
광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2BE0455DE2101025)
내려다 본 정동호가옥 ![](https://t1.daumcdn.net/cfile/blog/993FDC455DE2101129)
뒷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D3E34B5DE2101229)
사랑채 굴뚝 ![](https://t1.daumcdn.net/cfile/blog/991FFA4B5DE2101328)
사랑채 배면 ![](https://t1.daumcdn.net/cfile/blog/9921344B5DE2101428)
사랑채 배면과 대문칸 ![](https://t1.daumcdn.net/cfile/blog/990F274B5DE2101619)
사랑채 툇마루 ![](https://t1.daumcdn.net/cfile/blog/9936984B5DE2101821)
사랑채에서 바라본 안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1FE24B5DE2101928)
안채 나뭇간과 부엌 ![](https://t1.daumcdn.net/cfile/blog/9983B74B5DE2101A26)
안채 툇마루 ![](https://t1.daumcdn.net/cfile/blog/999E0D4E5DE2101B2A)
안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C4F34E5DE2101C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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