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산은 이천의 진산(鎭山)으로, 이 산의 7∼8부 능선, 속칭 칼바위를 중심으로 한 약 3만여 평에 달하는 고원지대가 바로 옛 산성터이다.
계곡을 감싸안고 쌓은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성벽은 대부분 흙으로 쌓았으나 돌로 쌓은 석축도 군데군데 있다. 석축은 대부분 무너져 내렸거나 매몰되고 있는데, 아직도 정상 아래 부분에는 3∼10m의 석축의 흔적이 뚜렷한 형태로 남아 있는 곳도 있다.
이 일대에서는 석축·석편·토기편은 물론, 건물터 임을 알리는 정면 9m, 측면 6.30m의 인공 주춧돌 9개가 정연히 배치되어 있어, 이 곳이 웅장한 규모의 삼국시대 산성터 임을 알려 준다. 정상 밑 서쪽 능선 평평한 부분에는 주춧돌이 원형대로 남아 있어 장대지(將臺址)로 추정되며, 군기(軍旗)를 꽂았던 홈을 판 바위와 돌싸움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돌무더기도 3곳 남아 있다. 또 산성의 필수요건인 우물터 2곳, 수구와 인접한 북문의 흔적도 남아 있다.
축성연대는 대략 고구려가 백제를 쳐서 한강 이남을 점유하고 이 곳에 처음으로 남천현(南川縣)을 설치한 고구려 장수왕 63년(475)에서 신라·백제세력이 이 곳을 다시 수복하던 신라 진흥왕 12년(551)사이에 고구려군이 쌓은 성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산의 정상에 서면 주변 지역이 한눈에 들어와, 삼국시대부터 치열한 세력 다툼이 있었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대의 역할을 하였던 성으로 여겨진다.
전문설명
이천은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과 삼국통일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곳으로, 그동안 실시한 단국대학교박물관의 발굴조사('98년~2000년) 결과, 백제시대(위례성 도읍기)에 축조된 유일한 석성으로 밝혀졌고, 본성(성곽 길이 1,078m, 문지3, 건물지6, 장대석1, 치성4, 우물지1, 수구지2), 부성(길이 532m, 362m, 건물지9, 치성3, 문지1, 추정저수지2) 관련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삼국-통일신라기의 유물들(평기와, 토기, 자기, 석제류, 철제류들)이 출토된 바 있어, 하남 위례성의 실체를 밝히는데 귀중한 단서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천 설봉산성 전경 이천 설봉산성 깃봉 이천 설봉산성 8각 제단지 전경 이천 설봉산성 목책 이천 설봉산성 4,5,6차 내벽 조사 후 전경 동경 앞면 및 뒷면 기와류 토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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