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377호 장성 대도리 백자 요지

오늘의 쉼터 2008. 2. 22. 19:12



종    목 사적  제377호
명     칭장성대도리백자요지(長城大都里白磁窯址)
분     류 유적건조물 / 산업생산/ 요업/ 도자기가마
수량/면적 6,547㎡
지 정 일 1992.10.10
소 재 지 전남 장성군  삼서면 대도리 885외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장성군

일반설명

16∼17세기경에 조선시대 서민용 백자를 굽던 곳이다. 조선시대 서민용 백자는 조선 전기 후반부터 조금씩 나오다가, 중기에 들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가마의 규모는 길이 23.5m, 폭 2.8m 안팎이고 비스듬한 언덕 형태의 가마로, 도자기를 굽는 방 4개, 아궁이 1개, 불창(火窓) 4개로 이루어져 있다. 가마터 주변에는 자기를 만들고 보관하던 건물터가 있으며, 가마의 서쪽 부분에 도자기 조각이 쌓여있는 퇴적층이 있다.

주로 만들었던 백자는 보통의 백자로 색은 옅은 청색에 가까운 회색과 회백색을 띠고 있다. 대접과 접시, 일상용기가 대부분인데 서민들이 쓰던 것으로는 품질이 좋은 편에 속한다.

이 가마의 큰 특징은 아궁이가 북쪽에 있고, 바닥이 첫 번째 방보다 높으며 출입구 부분이 낮다는 점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발견된 적이 없는 특이한 구조로, 우리 나라 가마 연구에 학술가치가 매우 큰 유적이다.


전문설명


이곳은 16-17세기경에 조선시대 서민용 백자(白磁)를 굽던 가마터(窯址)이다.

가마의 규모는 길이 23.5m, 폭 2.8m 내외로 4개의 방이 연결된 비스듬한 언덕형태의 가마(連室式登窯)로 도자기를 굽기 위해 쌓아둔 방(燔造室) 4개와 1개의 아궁이와 4개의 불창(火窓)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마의 특징은 아궁이가 북쪽에 있고 바닥이 제 1 번조실보다 높으며 출입구 부분이 낮다는 점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발견된 예가 거의 없는 조선시대의 특이한 구조로서, 전남 지방은 물론 우리나라의 가마 연구에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 또한 가마터의 주변에 자기의 제작 및 보관소로 삼았던 건물터가 있으며, 가마의 서쪽부분에 가마와 같은 방향으로 도자기의 파편을 버려서 쌓여진 퇴적층(堆積層)이 5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마터에서 생산된 백자는 보통의 백자로서 유약(釉藥)의 색깔은 담청색(淡靑色)에 가까운 회색(灰色)과 회백색(灰白色)을 띠고 있으며, 그릇의 종류는 대접과 접시 등 일상용기(日常容器)가 대부분인데, 서민들이 쓰던 것으로는 품질이 좋은 편에 속한다. 여기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현재 목포대학교(木浦大學校) 박물관(博物館)에 보관되어 있다.




장성 대도리 백자 요지 전경

장성 대도리 백자 요지 근경

장성 대도리 백자 요지-가마터 조사 후 전경

장성 대도리 백자 요지-발굴조사 전경

장성 대도리 백자 요지-유물 노출 상태

장성 대도리 백자 요지-자기 파편

장성대도리백자요지

장성대도리백자요지

장성대도리백자요지

장성대도리백자요지

장성대도리백자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