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6대 인조의 첫째아들 소현세자의 부인 민회빈 강씨(1611~1646)의 무덤이다.
강감찬의 19대 손녀이자 강석기의 딸인 민회빈 강씨는 1627년(인조 5) 왕세자빈에 책봉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의 볼모로 가게 되었고, 1645년(인조 23)에 귀국하였다. 그러나 남편 소현세자를 잃은 후, 인조의 후궁 조씨 등이 민회빈이 왕실을 저주한다는 모함을 하여, 1646년 폐위된 후 사사(賜死)되었다. 이후 1718년(숙종 44)에 죄가 없음이 밝혀져 민회빈으로 복위되었다. 무덤의 이름은 민회묘(愍懷墓)라 하였다가 1870년(고종 7) 영회원으로 높였다.
무덤 주변에는 문석인, 장명등, 혼유석, 석양과 석호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정자각 등은 남아있지 않다.
전문설명
이 묘소는 조선조 제16대 인조(仁祖)의 원자(元子)인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빈(嬪) 강씨(姜氏)가 잠든 능원이다.
세자빈 강씨는 우의정을 지낸 문정공(文貞公) 강석기(姜碩期)의 딸로 인조 5년(1627)에 세자빈(민회빈(愍懷嬪)) 이 되었고 병자호란 때는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가서 많은 고생을 하고 귀국하였다. 그러나 소현세자가 세상을 떠나자 평소 민회빈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인조(仁祖)의 후궁(後宮) 조씨(趙氏) 등이 민회빈이 소현세자를 독살하였고 왕실을 계속 저주한다고 거짓 꾸며대는 바람에 인조 23년(1645)에 폐빈(廢嬪)되고 그 다음해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하였다. 그 뒤 숙종(肅宗) 44년(1718)에 세자빈 강씨의 결백함이 밝혀져 민회빈으로 복위되고 고종 7년 (1903)에는 이 묘를 영회원(永懷園)이라 이름 지었다.
이 능원의 시설은 봉분(封墳)·혼유석(魂遊石)·장명등(長明燈)·문인석(文人石)·석마(石馬)·석양(石羊)·석호(石虎) 등이 있으나 비석(碑石)과 정자각(丁字閣)은 남아 있지 않다.
영회원 영회원 영회원 영회원 봉분 좌측문인석 우측문인석 좌측석마상 좌측석호상 우측석호상 우측석호상 정면 석양상 장명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