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에 처음 쌓았고, 조선 태종 9년(1409)에 고쳐 쌓은 후 광해군 2년(1610)에 보수공사를 하면서 내성도 함께 만들었다. 광해군 14년(1622)에는 내성 안에 관청을 건립하고 효종 4년(1653)에 성 위의 작은 담(여장)을 수리하면서, 전반적으로 성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외성은 2㎞, 내성은 700m 길이에 돌로 쌓은 산성이다. 동학운동(1894) 때 건물이 많이 불타 없어지고 현재는 동·서·남·북문의 터가 남아 있다. 내성 앞에는 국문영 장군의 비석이 남아 있다.
전문설명
삼국시대(三國時代)에 축조(築造)되었다고 전해지며 조선(朝鮮) 태종(太宗) 9년(1409)에 개축(改築)하였고 임진왜란 후 광해군(光海君) 2년(1610)에 파괴된 성곽을 개수하고 내성(內城)을 구축하였으며 동 14년(1622)에 내성 안에 대장청(大將廳)을 건립하고 효종(孝宗) 4년(1653)에 성첩(城堞)을 중수(重修)하여 견고한 병영기지로 규모를 갖추었다.
외성(外城)은 2km, 내성은 700m에 달하는 석성(石城)으로서 동학운동(東學運動) 때 건물들이 불타 없어진 이래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동, 서, 남, 북문의 터가 아직 남아 있다. 내성 앞에는 마지막 별장(別將)을 지낸 가선대부(嘉善大夫) 국문영(鞠文榮)의 비(碑)가 있다.
외남문 외남문 전경 담양금성산성 담양금성산성 담양로 치 치 암문 총안 북문지 서문지 남문지 담양금성산성 담양금성산성 담양금성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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