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산의 정상을 둘러싼 길이 620m의 백제 성이다.
경사가 가파르고 서쪽은 임진강, 남쪽은 한강·동쪽은 농경지·북쪽은 산으로 이어진다. 성벽은 서쪽 부근이 잘 남아있다.
성벽 쌓기 수법을 보면 밖으로는 위로 올라가면서 돌을 안으로 들여 쌓고, 성벽 내부는 돌로 채웠다. 이러한 성곽의 형태는 백제 성곽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광개토대왕릉비와 『삼국사기』백제본기에 나오는 관미성이 이 바로 오두산성이라는 주장이 있으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이곳을 관미성이라 기록해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전문설명
파주 오두산성< 烏頭山城 >이 위치해 있는 곳은 경기도< 京畿道 > 파주군< 坡州郡 > 탄현면< 炭縣面 > 성동리< 城洞里 > 산< 山 > 86번지< 番地 > 일대이다. 이 산성은 한강< 漢江 >과 임진강< 臨津江 >이 서로 만나는 지점인 오두산< 烏頭山 > 정상< 頂上 >(표고 119m)을 중심으로 축조된 길이 약 620m인 백제시대< 百濟時代 > 퇴뫼식 산성으로서, 사면< 四面 >이 가파르고 서< 西 >쪽은 임진강, 남< 南 >쪽은 한강과 면하고, 동< 東 >쪽은 농경지로(당시에는 해수< 海水 >(서해< 西海 >)가 들어왔었으나 지금은 한강변 제방으로 인해 농경지화되어 있음.) 북< 北 >쪽은 산록으로 연결되고 있다. 동 유적일원에 대한 관계전문가의 현지조사< 現地調査 > 결과< 結果 > 임진강과 한강 합류지점인 서안쪽에 높이 1-1.5m, 길이 약 30m, 폭 6-7m인 당시의 성벽< 城壁 >이 정연하게 남아 있음이 확인되었고, 축조방법은 기초석위 지대석(5-15cm)을 들여쌓기 하여 내측은 전부 돌로만 채운 뒷채움석 형식으로 큰 암반을 채석으로 이용하고 그 단면을 성벽< 城壁 >으로 이용한 고식< 古式 >의 성곽형태를 갖추고 있어 백제시대 성곽연구에 중요< 重要 >한 유적< 遺蹟 >이다. 한편 오두산성< 烏頭山城 >의 위치 및 산형 등 주변 지형여건으로 보아 광개토대왕릉비< 廣開土大王陵碑 >와 삼국사기< 三國史記 >(고구려본기< 高句麗本紀 > 광개토왕 원년조< 元年條 >(391)와 백제본기< 百濟本紀 > 아신왕< 阿莘王 > 2년조< 年條 >(393)) 등 문헌< 文獻 > 기록에 나오는 백제북변< 百濟北邊 >의 『관미성< 關彌城 >』이라는 학자< 學者 >들의 주장이 있고, 김정호< 金正浩 >의 대동지지에는 동 오두산성< 烏頭山城 >이 백제의 관미성< 關彌城 >이라 기록되어 있어, 최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앞으로 동 지역을 포함한 통일< 統一 >동산 및 자유로< 自由路 > 건설공사와 관련하여 볼 때 동 유적의 가치는 더욱더 배가될 것이다.
통일전망대진입로 오두산 출토 토기편 동측하단성벽 성벽 파주오두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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