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345호 고창 용계리 청자 요지

오늘의 쉼터 2008. 2. 22. 14:35




종     목 사적  제345호
명     칭고창용계리청자요지(高敞龍溪里靑瓷窯址)
분     류 유적건조물 / 산업생산/ 요업/ 도자기가마
수량/면적 22,577㎡
지 정 일 1991.02.26
소 재 지 전북 고창군  아산면 용계리 산22외
시     대고려시대
소 유 자고창군
관 리 자고창군

일반설명

요지란 도자기, 기와, 그릇 등을 만들어 굽던 가마터를 말한다. 이 가마터는 용계리 아산댐 뒤쪽 구릉에 있으며, 4개의 퇴적 구릉과 주변의 작업장 건물터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퇴적구릉 사이에서 3개의 가마가 겹쳐져 발견되었는데, 가마의 길이는 각각 38m, 31m, 14m이고 폭은 1.1∼1.2m 정도이다. 가마 벽과 천장은 돌과 점토를 섞어 쌓아 올렸다. 이곳에서 제작된 청자들은 대접·접시·병·탁잔들로 다양하고, 구름무늬·꽃무늬·덩쿨무늬들이 음각으로 제작되었다. 태평임술2년(太平壬戌二年,1022)이 새겨진 기와조각이 나와 11세기 초반을 중심으로 한 고려 전기 청자 가마터 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전북지방에서 가장 오랜 청자 가마터로, 12세기에 청자가마터가 부안 일대로 옮겨가기 전까지의 청자 발생을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가마터이다.


전문설명


40×80m에 걸쳐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은 4개의 거대한 퇴적 구릉과 주변의 작업장, 건물터로 이루어진 청자가마터이다. 1983년 원광대학교(圓光大學校) 마한백제연구소(馬韓百濟硏究所)에 의하여 아산댐 수몰지의 일환으로 발굴조사되었고, 그 후 사적 제 345호로 지정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퇴적구릉 사이에서 3개의 가마가 겹쳐져 발견되었는데, 가마의 길이는 38m, 31m, 14m 로 일정하지 않았고, 가마 폭은 1.1-1.2m였다. 가마벽은 안벽이 갑발(匣鉢)과 석재를 사용하여 점토와 섞어 쌓고 바깥벽은 잡석을 점토와 섞어 쌓았다. 가마터 앞의 건물터는 작업장과 관리소로 추정되는 기와가 덮여 있는 대형 건물터로 확인되었으며, 주변에는 점토 등이 덮여 있었다.

이곳 가마에서 제작된 청자들은 대접 접시·완·병(甁)·호(壺)·합(盒)·탁잔(托盞)·발(鉢)·유병(油甁) 등 다양하였으며, 드물게 운문(雲紋)·초화문(草花紋)이 음각(陰刻)된 청자들과 함께 대부분 무문의 청자들이 제작되었다. 유약빛은 엷은 담청녹색이고, 태토(胎土)는 회백색인 양질의 청자였으며, 굽바닥에는 회백색의 내화토받침을 받쳐 구웠다. 특히 햇무리굽 청자완들이 주로 제작되었는데, 태평임술2년명(太平壬戌二年銘)(1022)이 있는 기왓조각과 함께 발견되어 11세기 초반을 중심으로 한 고려 초기의 청자가마터로 확인되었다.

전북지방에서 가장 오랜 청자 가마터로 12세기에 줄포만을 낀 부안 일대의 청자 가마터로 옮겨가기까지 청자의 발생을 알려주는 귀중한 가마터이다.




고창용계리청자요지

고창용계리청자요지

고창용계리청자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