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와 김해공설운동장 사이의 동서로 뻗은 구릉지대에 있는 가야의 무덤들이다. 길이 약 300m, 높이 20m정도의 구릉 지대로, 경사가 완만해 무덤이 있기에 매우 적합하다. 현재 구릉의 정상 일부분을 제외한 주변의 경사지는 밭으로 개간되어 있다.
발굴조사 결과 1∼5세기에 걸친 지배집단의 무덤 자리로 고인돌을 비롯하여 널무덤(토광묘), 덧널무덤(토광목곽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 등 가야의 여러 형식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구릉 주변 평지에는 1∼3세기 무덤이 밀집되어 있고, 구릉 정상부에는 4∼5세기 무덤이 밀집되어 있어, 삼한시대 구야국 단계에서 금관가야 시기까지의 무덤이 발견되고 있다.
덧널무덤은 나무판을 조립하여 널(관)을 만든 것으로, 이전에 통나무관을 이용하던 것에서 나무판널을 사용하는 시기로의 전환이 1세기경임을 보여준다. 유물로는 토기류와 철기류, 목류, 중국제 거울 등이 출토되었다.
우리나라 고대무덤 형식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며, 중국제 거울이나 토기류에서 한·중·일의 문화교류 상황을 밝혀주고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전문설명
이 고분군은 1990년에서 1991년까지 3차에 걸친 경성대학교(慶星大學校) 박물관(博物館)의 학술발굴(學術發掘)에 의하여 김해(金海)를 중심으로 했던 금관가야(金官伽倻)의 지배계층의 무덤이 함께 한 집단묘역(集團墓域)으로 밝혀졌다.
마을에서는 무덤으로 덮힌 이곳 구릉(丘陵)을 '애구지'라고 부르고 있는데, 무덤의 위치에 따라 그 시기(時期)가 다름을 알 수 있었다. 곧 2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 묘역(墓域)이 형성되었다. 특히 구야국(狗邪國)의 지배계층묘(支配階層墓)로 보이는 무덤에서 후한대(後漢代)의 중국제 거울을 비롯하여 일본의 고분에서 보이는 통형동기(筒形銅器), 파형동기(把形銅器) 등이 나와 한·중·일(韓·中·日)과의 문물교류(文物交流) 상황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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