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에 박동진이 설계하여 지은 석조 2층 건물이다.
1917년 중학 과정으로 내려오던 이 학교를 김성수가 인수하여 백두산을 상징하는 백산학교로 학교이름을 지으려 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로 결국 중앙고등보통학교로 이름 지으면서 새 건물을 짓게 되었다. 평면은 ‘H’형 모습을 하며 1층 중앙은 행정공간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교실로 사용하고 있다.
옛 본관은 1934년 불에 탔고, 대신 세워진 이 건물은 암울했던 일제시대를 거치며 민족교육의 바른길을 잡아준 배움의 장으로 수많은 지도자를 배출한 유서깊은 곳이다. 우리나라 건축가가 설계하고, 근대 초기 양식으로 건축한 민간학교 건물로서 의의가 있다.
전문설명
이 건물은 일제 식민지치하에서 창의적인 작품을 설계하였던 박동진((朴東鎭) : 1899∼1982) 선생의 설계로 1937년 9월에 준공되었다. 본래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선생이 1917년 중학과정으로 내려오던 이 학교를 인수하여 백두산(白頭山)을 상징, 백산(白山)학교로 교명(校名)을 짓고저 하였으나 일본의 방해로 결국 중앙고등보통학교로 이름짓고, 그 후 새 교사를 짓게 된 것이다. 사학의 명문인 이 학교 숙직실은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H 자형 평면의 중앙에 중세 고딕성관(Gothic (城館))풍의 4층탑을 두고 이의 1층에 현관을 두었다. 현관부와 직교되는 즉 동서로 긴 평복도를 두어 복도의 남측으로 실들을 배치하였는데 1층은 주로 교무실이고 2층에 교실을 두었다. 특히 좌우 돌출부에도 교실을 두었다. 중앙 현관부의 개구부는 뾰죽아취(Pointed arch)로 기타 창호들은 모두 수평아취(Flat arch)의 창틀인데 이들 창틀은 잔다듬 화강석으로 정교하게 마무리하고, 벽체는 혹두기 거친다듬의 화강석으로 바른층 쌓기하여 중후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창출하였다. 지붕은 박공지붕으로 지붕 속에도 교실을 두고 이의 채광과 환기를 위해 지붕면에 도머(Dormer)를 두었다
중앙고등학교본관 본관박공부 중앙탑부 중앙고등학교본관
중앙고등학교본관 중앙고등학교본관 중앙고등학교본관 중앙고등학교본관 중앙고등학교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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