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방이동 일대에 있는 백제전기(4C초∼475)의 무덤들이다.
제1호 무덤은 봉토의 지름이 12m, 높이 2.2m로 널길(연도)과 널방(현실)을 가진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이다. 도굴로 인해 남아 있는 유물이 없었으나, 주민에 의해 3접의 토기가 수습되었다. 4호 무덤은 아치형천장(궁륭식천장)을 한 굴식돌방무덤으로, 자연적으로 유약이 입혀진 회청색경질 굽다리접시(고배)와 굽다리접시뚜껑을 비롯한 토기류와 철제류가 출토되었다.
6호 무덤에서 나온 회청색경질 굽다리접시의 경우 굽구멍(투창)이 전형적인 신라토기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이다. 이는 6세기 이후 한강유역이 신라영토로 되었을 때 만들어진 신라무덤일 가능성도 있다.
방이동 유적은 백제의 수도가 한성에 있을 때 만들어진 전기무덤으로 가락동·석촌동무덤과 함께 한성백제의 문화를 알 수 있는 유적이다.
전문설명
백제는 한강< 漢江 > 하류역< 下流域 >에서 나라를 세웠다고 하지만 그 도읍지의 위치는 아직 확인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방이동 고분군을 비롯하여 가락동< 可樂洞 >·석촌동< 石村洞 > 등지에 산재해 있는 백제 전기의 고분은 이 근방에 백제의 도읍지가 위치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 방이동 고분군에는 6기< 基 >의 백제 전기 고분이 있는데, 이곳에 4기가 있고 150m 떨어진 동쪽 언덕에 2기가 있다. 그 중 제1호분은 시체를 옆으로 넣어 안치할 수 있게 축조한 횡혈식석실분< 橫穴式石室墳 >으로 봉분< 封墳 >의 크기는 지름 12m, 높이 2.30m이고, 봉분 남쪽에는 석실< 石室 >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인 연도< 이道 >는 길이 2.30m, 넓이 1.06m, 높이 1.10m이며, 시체를 안치한 현실< 玄室 >의 크기는 길이 3m, 너비 2.46m, 높이 2.15m이다. 현실 중앙에 마련된 시체 안치 시설인 시상대< 屍床臺 >의 크기는 길이 2.40m, 너비 2.10m높이 30cm이다. 제2호분과 제3호분은 그 내부구조는 알 수 없으나 봉분의 크기는 제2호분은 지름 13.40m, 높이 2.70m이고, 제3호분은 지름 13.12m, 높이 2.90m이며 봉분의 서북쪽 밑둘레에 호석< 護石 >이 돌려져 있다. 제6호분은 1976년에 발굴조사되었는데, 봉분의 크기는 지름 10.60m, 높이 2.10m이고, 내부구조인 석실은 중앙에 돌벽을 쌓아 서쪽 주실< 主室 >과 동쪽 부곽< 副槨 >으로 나누었고, 남쪽 벽 중앙에 연도가 마련되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방이동 고분군은 1983년에 서울시가 복원공사를 시행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가꾸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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