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179호 경주 헌안왕릉

오늘의 쉼터 2008. 2. 18. 21:54


종     목 사적  제179호
명     칭경주 헌안왕릉 (慶州 憲安王陵)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왕실무덤/ 고대
수량/면적 사적177호에 포함
지 정 일 1969.08.27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서악동 산92-2
시     대통일신라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경주시

일반설명

신라 47대 헌안왕(재위 857∼861)의 무덤이다.

헌안왕은 본명이 김의정으로, 45대 신무왕의 이복동생이다. 재위기간 동안 특별한 치적은 없으나 제방을 수리하는 등 농사를 장려하는데 힘썼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861년 1월에 왕이 죽자 시호를 헌안(憲安)이라 하고 공작지(孔雀趾)에 장사지냈다고 하였으나 공작지의 위치는 알 수 없다.

무덤의 형태는 가장 단순한 형식의 무덤으로 높이 4.3m, 지름 15.3m의 원형 봉토분이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둘레돌을 둘렀으나, 현재 몇 개만이 남아 있다. 내부는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으로 추정된다.


전문설명


선도산(仙桃山) 동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이며, 지름 15.3m, 높이 4.3m로 봉분(封墳)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다. 봉분 아래에 호석(護石)의 받침돌로 보이는 자연석이 몇 개 나와 있을 뿐 다른 장식물은 보이지 않는다. 위치와 호석 구조로 보아 매장주체는 횡혈식 석실(橫穴式 石室)일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제47대 헌안왕(憲安王)(재위(在位) 857-861)은 본명이 김의정(金誼靖)(혹은 김우정(金祐靖))이고, 신무왕(神武王)의 이복동생이다. 재위기간 동안 별다른 치적은 보이지 않지만 제방(堤防)을 수리하고 농사를 장려하는 등 권농(勸農)에 힘썼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861년 1월에 왕이 죽자 시호(諡號)를 헌안(憲安)이라 하고 공작지(孔雀趾)에 장사지냈다고 하였으나 공작지의 위치는 알 수 없다.




경주 헌안왕릉 전경

경주 헌안왕릉 근경

민묘석물

경주 헌안왕릉1

경주 헌안왕릉2

경주 헌안왕릉 봉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