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돌을 사용하여 쌓은 성이 마치 시루를 올려놓고 시루테를 바른 듯 하다고 하여 시루메산성이라고도 부르는 백제 산성이다.
성왕 16년(538) 수도를 사비로 옮기고 나서 수도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둘레는 약 600m이고 높이는 2∼3m 정도로 거의 무너진 상태이지만, 성의 남쪽부분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서쪽·남쪽·북쪽에 각각 문이 있던 흔적이 남아있다. 성벽은 자연 지세를 이용하여 쌓았지만 다른 성에 비하면 정교하지 못한 편이다. 성 안에는 백제토기와 기와조각이 많이 남아 있으며 동쪽에는 우물터가 있다. 은산면에 있는 이중산성·서쪽의 옥녀봉산성과 서로 바라 보면서 연결 되어있다.
증산성은 신라 문무왕 12년(672) 정월에 백제 고성성을 쳐서 이겼다는 기록에서 나타나는 고성성으로도 여겨지이며, 백제 부흥운동군의 한 거점으로도 여겨지는 중요한 산성이다.
전문설명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성리에 있는 백제시대 석축산성(石築山城)으로 산허리를 감은 돌이 시루를 솥에 올려놓고 시루 테를 바른 듯이 흰색으로 보여 시루메산성이라 불리운다.
둘레가 약 600m이고 높이가 약 2∼3m로 거의 무너진 상태이지만 잔존한 성벽과 붕괴된 석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성의 서쪽 성벽은 약 2m정도의 높이로 남아 있으며, 너비 4.2m 규모의 북문지가 있다. 동쪽 성벽은 파괴가 심하여 남은 부분이 없다. 남쪽 성벽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성의 동쪽에 우물터가 남아 있고, 성내에 두 곳의 초소지(哨所址)도 남아 있다.
이 산성은 백제가 수도를 사비(泗비)로 옮긴 538년(성왕(聖王)16)경에 수도를 보호하기 위한 북방의 외곽성으로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발 200여m의 산 위에 시루(甑)에 테를 두른 것처럼 되어 있고, 서쪽의 산기슭과 안부(鞍部)에 걸쳐서는 백제시대의 석곽무덤이 떼를 이루고 있다.
테뫼식산성의 전형적인 모습이며, 성벽의 내부는 삭토를 하여 내탁(內托)하였는데, 삭토된 부분은 자연적인 호(壕)를 이루고 있다. 성문은 북문 외에 동남방과 서쪽에도 자리가 남아 있다. 성내의 자연지세로 보아 동쪽에 수구(水口)가 있어야 할 터인데, 무너져 알 수 없으나 성벽이 함몰된 곳이 수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은 자연 지세를 이용하여 축조하였으나 다른 성에 비하여 수법이 정교하지 못하다. 즉, 축성을 할 때에 기초 부분부터 4∼5단까지는 다른 성과 같으나 그 위부터는 공돌쌓기로 조잡하게 쌓여 있다.
이 산성은 은산면에 있는 이중산성(二重山城)과 서쪽의 옥녀봉산성(玉女峰山城)과 서로 바라다 보이면서 연결되어 있다. 이 산성은 672년(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12) 정월에 백제(百濟) 고성성(古省城)을 쳐서 이겼다는 기록의 고성성으로도 비정되고 있다. 백제 부흥운동군의 한 거점으로도 이용되었다고 여겨지는 산성이다.
증산성 증산성원경 근경 근경 증산성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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