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131호 합천 영암사지

오늘의 쉼터 2008. 2. 18. 07:08


종     목 사적  제131호
명     칭합천영암사지(陜川靈岩寺址)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사찰
수량/면적 3,812㎡
지 정 일 1964.06.10
소 재 지 경남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1659
시     대신라
소 유 자공유,사유
관 리 자합천군

일반설명

황매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절터이다. 처음 지어진 연대는 정확히 모르나, 고려 현종 5년(1014)에 적연선사가 이 곳에서 83세에 입적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홍각선사비의 조각 중에도 ‘영암사’라는 절의 이름이 보이는데, 홍각선사비가 886년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영암사의 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

발굴을 통해 조사해본 결과, 불상을 모셨던 금당·서금당·회랑터·기타 건물터가 확인되어 당시 절의 규모를 알 수 있고, 금당은 3차례에 걸쳐 다시 지어진 것으모 밝혀졌다.

절터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쌍사자석등(보물 제353호)·삼층석탑·귀부·당시의 건물 받침돌·각종 기와조각 들이 남아있다. 특히 금동여래입상은 8세기경의 것으로, 절의 창건연대를 살피는데 중요하다.

영암사의 건물터는 일반 사찰 건물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금당이 있는 상단 축대의 중앙 돌출부 좌우에 계단이 있는 점, 금당지 연석에 얼굴모양이 조각되었고 후면을 제외한 3면에 동물상을 돋을새김한 점, 서남쪽 건물터의 기단 좌우에 계단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특징과 더불어 절터 내에 흩어져있는 석조물은 이색적인 느낌마저 준다.

조형의 특이함과 입지 조건, 서남쪽 건물의 구획안에서 많은 재가 나오는 점으로 보아 신라 말에 성행한 밀교의 수법으로 세워진 절로 보인다.


전문설명


황매산 남쪽 기슭, 좁은 대지에 자리하고 있는 이 절터의 창건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1014년에 적연선사<寂然禪師>가 이곳에서 입적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중앙박물관에 있는 홍각선사비<弘覺禪師碑>의 파편 중에 '영암사'라는 절의 이름이 보이는데 홍각선사비가 886년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영암사의 연대를 어림할 수도 있다. 1984년에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절터의 일부지역을 발굴조사하였다. 발굴조사에서는 금당지, 서금당지, 회랑지와 기타 여러 건물터가 조사되어 가람의 규모를 부분적으로 확인할 수가 있었다. 절터는 중앙부분이 돌출된 장대석으로 쌓은 축대에 의하면 계단형의 대지를 형성하고 자리한다. 아랫단 축대 위에는 초석, 계단 석재등이 남아 있다. 상단 축대에는 금당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기단이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본래의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초석도 있다. 하단 축대와 상단 축대가 형성하는 평지 중앙부분에 석탑과 석등이 자리하고 있다. 금당지의 서남쪽 60여m 지점에 건물지가 있는데 이 건물지는 전면 기단의 좌·우측에 계단이 있으며 건물지의 주변에 귀부가 자리한다. 또 금당지의 북쪽 40여m 지점에는 건물지가 있어 강당지일 가능성이 있으나 파손이 심하여 규모와 형태를 파악할 수가 없다. 보물 제353호인 쌍사자석등은 일반적인 석등의 간주석을 서있는 쌍사자로 대치한 것으로 8각의 지대석에는 각면에 안상과 사자상을 배치하였다. 연화 하대석과 쌍사자를 하나의 돌에 새겼는데 연화문은 8엽 단판이다. 팔각 화사석에는 한면 건너 4면에 사천왕상을 배치하였고 사천왕상이 배치되지 않은 면에 방형의 화창을 설치하였다. 옥개석에는 귀꽃이 있었는데 흔적으로 남아 있고 상륜 부분도 2단의 받침부분만 남아 있다. 남아 있는 석등의 높이는 2.31m이고 1933년 일본인들이 반출하려다 못하고 가회면사무소에서 관리하다가 1959년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였다. 석등의 상대석과 하대석에 있는 연화문의 간엽에 매듭문이 있어 함통<咸通> 연(860∼873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석탑은 현재 남아 있는 높이 3.8m이고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다. 기단은 2중 기단이며 각층 옥개석의 추녀는 수평을 이룬다. 옥개받침은 각기 4단씩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5단 옥개받침보다 수가 줄어 시기가 얼마간 늦을 것으로 추정된다. 귀부는 동쪽의 귀부가 길이 255㎝, 폭 194㎝이고, 서쪽의 귀부는 219㎝, 폭 170㎝로, 동쪽의 것이 서쪽 귀부보다 크나 형식은 대체로 같다. 등에는 귀갑문이 표현되었고 비좌의 주변에는 인동문이 조각되었다. 이 절터의 건물지는 일반적인 사찰 건물과는 몇 가지 다른 속성을 보이고 있다. 첫째 금당이 자리하고 있는 상단 축대의 중앙 돌출부 좌우에 계단이 있는 점, 둘째 금당지의 기단 면석에 안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뒷변을 제외한 3변에는 각 변마다 2개소에 사자 또는 개로 보이는 동물상을 부조한 점, 셋째 금당지 서남쪽에 있는 건물지의 전면 기단 좌우에 계단이 있으며 이 건물지 내에 많은 재가 있다는 점 등을 들 수가 있다. 이같은 속성은 전체적인 가람의 입지나 이색적인 느낌을 주는 석조물들과 더불어 이 절터를 신라 말에 성행한 밀교의 수법도량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근거가 된다.




합천 영암사지

합천 영암사지

합천영암사지

합천영암사지

합천영암사지전경

금당지기단부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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