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를 만드는 기능과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장도장이라 한다. 장도는 몸에 지니는 자그마한 칼로 일상생활이나 호신용 또는 장신구로 사용되었다. 고려시대부터 성인 남녀들이 호신용으로 지니고 다녔으며, 특히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이후부터 사대부 양반 가문의 부녀자들이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휴대했다. 조선 후기부터는 장도가 몸단장을 하는 노리개로서 일종의 사치품이었기 때문에 제작과정이 정교하게 발달하였다.
장도 중에서 몸에 차는 것을 패도(佩刀)라 하고, 주머니 속에 넣는 것을 낭도(囊刀)라고 한다. 장도는 모양과 재료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칼집장식이 복잡한 갖은 장식과 단순한 맞배기로 나뉘는데, 맞배기에는 칼집이 원통형인 평맞배기와 을(乙)자형인 을자맞배기가 있다. 그 외에도 칼집이 사각형이면 사모장도, 팔각이면 모잽이장도라 부르고, 재료에 따라 금장도, 은장도, 백옥장도 등으로 부른다. 낙죽장도는 7마디 이상의 대나무에 선비들이 좋아하는 시문을 새긴 칼로서 일반 은장도와 달리 선비의 칼로 알려졌다.
장도는 서울을 중심으로 울산·영주·남원 등지에서 많이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전라남도 광양지방의 장도가 역사가 깊고 섬세하며 종류 또한 다양하여 한국적 우아함과 장식용으로 뛰어난 공예미를 나타내고 있다. 각종 재료를 사용하는 장도의 제작기법은 조선시대의 우수하고 다양한 공예기법을 잘 알려주고 있다.
전문설명 장도(粧刀)란 일명 패도(佩刀)라고도 한다. 고려시대(高麗時代)부터 성인 남녀들이 호신용으로 지니고 다녔으며 특히 조선시대(朝鮮時代)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부터 사대부(士大夫) 양반 가문(家門)의 부녀자들이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휴대하였다.
장도는 서울을 중심으로 하여 울산(蔚山)·영주(榮州)·남원(南原) 등지에서 많이 만들었으나 그중에서도 전라남도 광양(光陽)지방의 장도가 역사가 깊고 섬세하며, 종류가 다양하여 한국적 우아함과 장식용으로 뛰어난 공예미(工藝美)를 나타내고 있다.
국가에서는 이 점을 중히 여겨 광양에서 오래 전부터 전통적으로 장도 제작기술을 보유(保有)하고 있는 박용기(朴龍基)·한병문(韓炳文)을 중요무형문화재 제60호로 지정 기술을 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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