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택(陽宅)이란
사람은 생몰 기간 동안 여러 종류의 공간이 필요한데 이를 개인적인 생활 공간과 사회적 활동
공간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으나 둘이 중복되거나 혼재되는 공간도 적지 않다.
여기에서 공간이란 일의적 개념이 아니어 일반적 의미의 건축물 외에 여러 형태의 구조물이나
시설물 따위도 사람의 활동에 관련되는 한 풍수 지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인위적 목적물들뿐 아니라 이들의 입지 환경 즉 자연 지리도 그 대상이 된다.
즉 풍수 지리의 대상으로서 양택은 매우 포괄적인 개념이다.
이러한 양택은 그 종류나 형태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모두 다 결국은 땅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공통점이 있다.
양택도 음택과 마찬가지로 지기 즉 땅의 기운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영향의 정도는,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로 인한 길흉의 정도는 양택이 음택보다
덜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양택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속단해서는 곤란하다.
음택이 풍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사후 교정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데 비하여 양택은 비교적 쉬워 그때 그때마다 필요에 의한 임의적 교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양택 이론을 바르게 배워서 제대로 적용만 할 것 같으면
비록 음택이 부실하여 좋지 않은 동기감응의 영향을 받는 처지일 지라도 조금씩 상쇄해 가며
삶의 질을 어느 정도는 향상시킬 수 있다.
음택 이론에서 지기가 땅 속의 체백을 매개로 한 동기감응에 의하여 자손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비하여 양택의 경우에는 지기를 사람 자신이 바로 받으므로 지세가 좋지 않은 곳에 입지한 양택에
사는 사람은 나쁜 지기에 직접 노출될 수 밖에 없다.
물론 산 사람은 시신,유골과 달리 이동성이 있으므로 지속적인 영향은 덜 하더라도 정착기간이
길어지거나, 또는 이동성이 거의 없거나 작은 환자나 노약자의 경우에는 문제가 달라진다.
땅의 나쁜 기운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병이 들거나 불화가 생기거나
또는 재물이 나가는 등의 흉화를 입게 된다.
이러한 현상들을 예를 들어 비유하자면 차량의 왕래가 빈번한 시내 간선 도로변에 주택이 있을 경우
차량의 질주나 경적 따위에 따른 소음이 극심하여 불면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과 같은 이치인 바
촉감적,직접적이며 가시적인 인지 능력 밖의 범위에도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인과 관계가 분명한
현상이 존재한다.
소위 초현실이 아니라 바로 현실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식견이 좁은 것은 모른 채 비현대적,비과학적,비합리적이라는 구실로
전가의 보도 마냥 비(非) 자를 열거해가며 엄존의 현상을 무시하기에 급급하다
결국은 자신도 피해를 입는 인사들이 흔하다.
그러나 이런 안타까운 사람들도 통계적 수치즉 확률에 대한 신뢰는 대단하여 흔히 알려진
막다른 골목길과 같은 흉은 대개 수긍하는데 이 막다른 골목길에는 순화(順和)되지 않은
마파람이 곧 바로 계속 불어 닥치므로 살풍(殺風)의 역할을 하며 서서히 피해를 주어
이어 누적이 사람의
생리와 기운을 해침으로 흉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연의 이치에 부합될 뿐만 아니라 동양의 사상과 학문 체계에도 포섭되는 양택 풍수는
그 대상이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생활 공간이므로 누구라도 쉽게 익혀 실생활에 적용내지는
응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설픈 과학성의 논리에 길들어져 자연의 제 현상을
대하는 태도가 유연하질 못하고 경직되어 있어 수 많은 사상(事象)들을 미제(未濟)의 영역으로
스스로 내몰아 버리는 우를 자초하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한 검증이나 시도는 오로지 과학적이어야 하는 편협한 시각에만 집착하다 보니
비록 과학이 첨단으로 치닫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원인 불명의 불치병(不治病)과 같은
불가사의한 영역은 더욱 확장되고 있으니 유아적 소견을 이제 떨쳐 버리고 지금부터라도 생각의
문을 열고 쾌적한 생활 공간을 가꾸어 궁극에는 삶의 질을 높일 지혜를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첫째; 지세(地勢) 및 국세(局勢)
둘째; 대지(垈地)의 상(相) 및 가상(家相)
셋째; 동·서사택(四宅)의 배합
음택 이론과 마찬가지로 양택을 논함에 있어서도 건축물 등과 같은 양택 구조물이 입지한
지형을 가장 먼저 따져 보아야 한다.
양택이 입지한 터 그 자체의 혈성과 주위 지형의 지세 즉 국세를 살피어 길흉의 대강을 판별한다.
물론 판단의 기준이나 범위가 음택과는 사뭇 달라 비교적 포괄적이고 거시적인 기준이 적용되고
또한 영향을 주는 지세나 국세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넓긴 하지만 양택이나 음택이나 이론의
기저(基底)는 같다.
예를 들어 산기된 용맥의 자락이나 기슭, 지각이나 요도 혹은 청백이 반주(反走)한 곳 등에서는
음택은 물론 양택의 입지로도 역시 부적합하다.
다시 말해 생성 구조상 근본적 결함이 있는 곳은 터 자체의 부실이 지대함을 의미하며 결정적인
흉이 되므로 사후의 교정이나 보완 즉 가상(家相)이나 방위 따위로 만회(挽回)하기가 어렵다.
자연력이나 자연 상태를 인위적 행위로 설혹 변형(變形)시킬 수는 있겠지만 결코 변질(變質)시킬
수는 없는 바 만일 그럴 가능성이 엿보이면 그것은 바로 재앙의 징후이다.
결국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보잘것 없는 존재인 인간의 자연에 대한 도리이다.
양택의 입지 즉 터 자체와 주위 지세가 양택에 걸맞을 정도로 형성되어 있다면 다음에는
건축물 등의 구조물을 앉힘에 있어 터의 상(相)이나 가상(家相)을 길흉을 감안하여 정하여야 한다.
천헤(天惠)의 품 안에서 조금도 오만하지 않은 겸허한 마음으로 자연에 전혀 누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인공을 조심스레 가하여야 할 것이다.
길한 터의 상이나 가상을 도형적으로 표현 하면 원형에 가까울수록 좋으나 현실에서는
그 모습이 부득이 하게 방형(주로 직사각형)일 경우가 많은데 이때 그 가로와 세로의 비(比)는1:0.577~1:0.866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어느 한쪽이 과도하게 길면 지기의 집중도가 떨어져 결국 산기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한편 방형의 모습 조차도 갖추지 않아삼각형의 모습을 한 터나 건축물 등은 그 상이 흉하다.
이것은 삼각형의 모서리로 에너지가 제 각각 집결되므로 결국 지기의 집중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자연력에 의해 형성된 자연 상태인 터의 지세나 주위 지형의 국세를 살피어
그 길흉을 판단한 다음 자연에 순응하는 범위 내에서 인공적 길상을 갖춘 후에는 양택 이론의
마무리 격인 동·서사택(東·西四宅)의 배합 관계를 따라 양택의 길흉이 결정된다.
여러 양택중 가장 기본적이며 대표적인 것이 집인데 집의 공간적 범위는 묘지처럼
협소하지 않아 방위(方位)를 논하고 적용할 만한 여지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단 이 경우에도 양택의 전제 조건을 충족한 후라야 그 실익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편 동·서사택에 대한 고금의 이론중에는 내용상 오류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글자에 과도하게 집착한 결과 글자 자체를 탐닉하는 병적인 현학성에 빠져 든
일부 풍수가들의 식자우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중 두 가지 만 지적해 보면
① 좌(坐)의 어깨 쪽이 뚫리면 좋지 않다.
예) 서좌동향(西坐東向)의 집에 서남,서 또는 서북 쪽의 대문은 불가
② 음양의 배합을 단순히 남녀의 배합으로만 보지 말고 구체적으로 따져서 볼 것.
예) 노모(老母: 坤)와 소남(少男: 艮)은 불배합이다.
1) 동사택 :
감(坎)[임자계(壬子癸), 중남(中男), 수(水)] |
손(巽)[진손사(辰巽巳), 장녀(長女), 목(木)] |
진(震)[갑묘을(甲卯乙), 장남(長男), 목(木)] |
리(離)[병오정(丙午丁), 중녀(中女), 화(火)] |
2) 서사택 :
건(乾)[술건해(戌乾亥), 노부(老父), 금(金)] |
태(兌)[경유신(庚酉申), 소녀(少女), 금(金)] |
간(艮)[축간인(丑艮寅), 소남(少男), 토(土)] |
곤(坤)[미곤신(未坤申), 노모(老母), 토(土)] |
* 그러나 대문은 삽합오행(三合五行)에 기준해서 만드는 게 동서 사택보다 우선이다.
삽합오행(三合五行)( 寅午戌, 亥卯未, 巳酉丑, 申子辰)
ex) 子坐일때는 대문은 辰방위
3. 양택의 12방위론
양택의 패철은 24방위를 8등분하여 동, 서 ,남, 북, 북동, 북서,남동, 남서로 구분되어 있다.
좌선의 중심과 대문의 배합 불배합은 앞 페이지의 동서사택을 참조하시기 바라며
양택의 좌(坐)자체만의 배합 불배합은임자(壬子), 계축(癸丑), 간인(艮寅), 갑묘(甲卯), 을진(乙辰),
손사(巽巳, 병오(丙午), 정미(丁未), 곤신(坤申), 경유(庚酉), 신술(辛戌), 건해(乾亥)로 보아야 한다.
예1) 북쪽 방위인 임자계에서 양택의 좌는 임자의 중심선상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된다.
자계의 중심선상에서 균형을 맞출 수는 없다. 자계의 중심선상에서 양택의 좌를 놓았을때
뒤의 배산(背山)은 잘못된 것이며 눈속 임의 배산일 수 있으니 다시한번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예2) 계축은 배합의 절(節)이나 8등분된 경계선에 있으니
산맥의 변화를 잘 살펴서 계나 축으로 놓으면 된다.
산맥은 살아 움직인 생룡이기 때문이다.
즉, 8등분된 눈금보다 용의 생사가 양택에서도 더 중요한 것이 된다.
4. 아파트의 경우
아파트에서는 거실의 중앙을 기준점으로 하여 동·서사택의 배합 관계를 측정한다.
|
A: 개방형의 주방이 거실과 연결된 일체 |
B: 주방과 거실 사이가 차폐(遮 蔽) 되어서 구분되어 별도의 출입문이 있을 경우 에 패철의 측정점 |
* 문은 음(陰)에너지 즉 공간 에너지가 흐르는 통로인 동시에 음 에너지의 흐름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므로 음 에너지의 주된 영역인 거실의 중앙 이 패철의 측정점이 된다.
* 거실: 공간(-) 에너지 ┐
방(화장실,창고 등): 입체(+) 에너지 ┘양 에너지 간에 일정한 비를 유지해야 됨(1:0.866~1:0.577)
아파트(apartment)라는 것이 전통적 양식의 건축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토지 이용상 효율의
극대화와 소위 핵 가족 중심으로 급변한 가족 제도라는 시대적 필요성에 따라 이 땅에 등장한지 불과
수 십 년 만에 집단 주거용 건축물로서 가장 일반적인 양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주거 문화의 대변혁이라 할 아파트에 전통적 양택 이론을 직접 적용하기에는 문제가 적지 않으나
적용을 함에 있어 이론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융통성을 발휘하여 시기 적절한 적용
내지는 응용을 할 수 있다고 하겠다.
그러면 아파트의 실내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중에 규모나 고정성에 있어 비중이 가장 큰 가구의 배치,
그리고 지기(地氣)나 방위 즉 위치 에너지에 의한 영향력이 지배적인 수면(睡眠)이 이루어지는 잠자리의
위치 대한 풍수적 고찰을 해 보자.
방의 중앙에서 패철을 보아 방문과 배합을 이루는 쪽에 잠자리의 위치를 정하되 머리는 아파트 주위에
가장 인접한 산쪽을 향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방문이 동쪽으로 난 경우에는 북쪽이나 동남쪽 혹은 남쪽에 잠자리의 위치를 정하는 한편
가구류 또는 여타의 물건은 서,서북,서남쪽이나 동북쪽에 배치한다.
그런데 방안의 물건중 TV나 전화기 등과 같은 가전 제품은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전자파 유해론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배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각 가구들의 규모는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바 그 부피나 크기의 차이가 과도하면 바람직하지 않다.
잠자리에서 특히 유의할 점은 머리를 두는 방향인데 흔히 집의 입지 환경
즉 집 주위의 지리 상태에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무조건 자연적 방위로서의 남쪽이나 동쪽으로 머리를
두어야 하는 것으로 잘 못 알고 있으나 자연적 방위에 상관 없이 머리는 반드시 가장 가까운 산쪽울
향하여야 하는 바 그 방향이 자연적 방위로서 설령 북쪽이더라도 조금도 꺼려하지 말아야 한다.
요즈음 양택 풍수의 현대적 응용을 빙자한 이른바 인테리어 풍수라는 것들이 도처에서 선풍적으로
회자(膾炙)되고 있는데 물론 그 내용이 완전히 허구적이기 만은 않아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갖춘 듯도
하지만 사실 양택 풍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해도 무방할 만큼 너무나 미미한 것들인 바 양택
풍수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양택 이론의 3대 구성 요소에 대한 고찰이 관건이므로 이를 제대로
갖추었으면 이른바 인테리어 풍수 따위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사족(蛇足)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이 양택 이론의 하찮은 단편(斷片)에 불과한 것을 엄청나게
부풀리는 한편 논리의 억지 확장에 따른 무리(無理)를 감추기 위해 갖은 치장을 가하여 뜻 모를
사람들을 혹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개탄스러울 뿐이다.
쓰레기 매립장이나 연약 지반 또는 산을 뭉개어 골을 메운 곳 등과 같이 양택의 입지로서는 당초부터
결격(缺格)인 흉터나 동·서사택의 배합이 이루어질 수 없는 곳에 제 아무리 인테리어 풍수라는 잡술을
동원해 봤자 전혀 소용없는 노릇이다.
6. 살기 좋은 아파트
오늘날 주거용 건축물의 대표적 양식으로 자리 잡은 아파트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토지 이용상
효율의 극대화라는 정책적 명분와 주거 생활상 편의성의 추구라는 사회 구성원들의 실제로 높은
선호도에 힘입어 도시 공간을 마치 우후죽순과도 같은 위세로 잠식하여 전체 주거용 건축물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커져 급기야는 단독 주택과 같은 여타 양식의 주거용 건축물보다
양적인 우위에 놓여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아파트의 양적 팽창이 곧 주거 문화의 향상이나 삶의 질적 제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건축을 통한 기술 문명의 총체적 구현(具現)이라 할 정도로 현대적 가치를 두루 갖추고 있는
아파트이지만 그 터 만큼은 땅에 의존할 수 밖에 없으므로 아파트도 여타의 양택처럼 근본적으로
자연 지리의 범위 내에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아파트의 입지로는 그 규모에 걸맞는 지리 환경을 갖추어 지세나 국세가 순응하게끔
형성된 곳이 적당하다.
터 자체가 양택의 일반적 입지 조건을 어느 정도 갖추었으면 그 다음에는 아파트의 가상(家相)
즉 아파트 건물 자체의 모습도 살펴 보아야 하는데 너무 길죽하거나 베란다가 뒷 산을 바라보는
아파트는 가상이 길하지 못하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이상과 같이 아파트가 입지와 가상에 관한 양택 조건을 구비하였으면 마지막으로 동·서사택의
배합 관계를 살펴 보아야 한다.
아파트 실내에 직접 들어가 거실의 중심 되는 곳에서 패철로 보아 현관문과 각 방 그리고 거실이
동사택의 배합 여부 혹은 서사택의 배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관문이 진(震) 방위이면 동사택으로 각 방과 거실은 동남,남 또는 북쪽에 위치해야
배합이 된다.
즉 현관문의 방위와 배합이 되는 방위가 곧 길(吉)한 방위이니 이에 걸맞는 용도의 공간이
위치해야 함은 지당하다.
한편 아파트에서는 기두(起頭)의 기준이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은데 이는 아파트가 제한된
면적의 토지에 효율적인 집단 주거를 가능하게끔 입체성을 극대화한 건축물인 바 수 많은
개별 가구(家口)의 집합체라는 아파트 구조 자체의 이질성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두의 개념을 아파트에 적용하는데 있어서는 본질적 괴리를 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실익도 별무하므로 굳이 이에 의한 배합을 궁리하기 보다는 음에너지의 주 통로인 현관문을
기준으로 하여 배합 관계를 따지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방법이다.
7. 양택의 3대 필수 조건
1) 배산임수(背山臨水)
2) 전착후관(前窄後寬)
3) 전저후고(前低後高)
1) 배산임수: 일반인에게도 귀에 익을 정도로 많이 알려진 지리 용어인데 모든 양택 입지의
대전제 조건이다.
집 뒤로 산을 업고 집 앞으로 물을 품어야 한다.
만약 이와 반대의 경우이면 터 자체가 역성(逆性)을 띠어 좋지 않다.
예를 들어 집 앞에 산이 가로 막혀 있다든지 또는 아파트의 경우에는 베란다가 집의 향(向)이 되고
아파트의 베란다가 산을 치켜 올려다 보고 있으면 거꾸로 앉은 꼴이니 역성의 지기를 받는다.
한편 분지(盆地)와 같이 넓은 지형에서는 집의 앞과 뒤쪽 모두 트인 채 산이 아주 멀리 있기 쉬운데
이러한 경우 배산처가 어느 쪽인지 혼돈할 수도 있으나 그 판단은 의외로 수월하니
두 산 사이에 흐르는 물의 굴곡 형태를 보면 비록 평원 지대로 보일지라도 산맥 즉 은맥의 영향이
강한 곳은 물의 흐름을 바깥으로 밀어낼 것이므로 엄연히 산줄기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으니
실제 산과의 거리가 반대쪽 산보다 설령 멀더라도 배산처임에 틀림없다.
2) 전착후관: 집은 그 터는 물론 구조도 앞이 좁고 뒤가 넓은 형태이어야 좋다.
지세가 제대로 갖추어진 터라면 그 자연적 형태는 전착후관의 모습인 반면에 그렇지 않은 곳은
청룡과 백호가 벌어져 터를 응기하지 못하고 각각 역성을 띠어 결국 터의 지기는 설기(洩氣)되고 만다.
이 흉한 터를 입지로 하는 집이나 여타 양택은 터로부터 나쁜 기운을 받게 됨은 물론이고 대개
그 가상이 터를 닮을 수 밖에 없는 바 흉한 가상 자체도 역시 문제가 된다.
요즈음 도심의 번화한 상가에 앞쪽을 쇼윈도우(show window)로 넓지막하게 시공한 점포가 흔한데
영업 전략상 나름대로의 의도야 있겠지만 이는 오산(誤算)에 불과하니 장사가 제대로 될 리 없으니
특히 주의해야 한다.
오히려 앞이 좁고 뒤가 넓은 구조를 한 상점이 장사도 잘 되고 돈도 잘 버는 경우가 많다.
3) 전저후고: 집의 마당 보다 대문 밖의 지형이 높으면 불길하니 인패나 재패와 같은 불운이 내습한다.
처음부터 전저후고와 반대인 모습을 한 집은 드물고 방방곡곡 거미줄같이 조밀한 도로 교통망이
구축되고 두메 산골 한적한 시골 구석 구석까지 도로가 뚫리면서 신작로의 노반보다 낮아져
흔히 차를 타고가다 보면 길 밑으로 푹 꺼진 모습을 한 시골 집들이 바로 이와 같이 본의 아니게
전고후저(前高後低)의 모습을 하게 된 전형(典型)이다.
이 경우 설상가상으로 차량의 통행이 많고 그 속도가 빠르면 집안에 환자가 끊이지 않게 되는
병패까지 들이 닥치게 되니 적절한 자위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1) 터의 길흉
① 좋은 터의 기운 과 나쁜 터의 기운
㉠좋은 터
- 에너지의 균형을 이루는 터
- 에너지의 흐름이 순응(順應)한 터
- 양지 바른 터
- 바람이 온화하게 갈무리되는 터
- 수맥이 가로 지르지 않는 터
- 물이 감아 도는 터
㉡나쁜 터
- 깨진 터
- 골이 패인 터.골짜기
- 함몰된 터와 가파른 낭떠러지 위의 터
- 응달지
- 바람이 치는 터
(산 등성이를 타며 부는 바람은 간을, 골짝 바람은 심과 신을 해친다.) - 수맥이 흐르는 터
〔동판으로 수맥을 막을 수 있는데 이는 동판에 의해 회로화(回路
化)한 수맥 파장이 파괴력을 상실 내지는 경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물이 빠져 나가는 터
- 집 뒤로 물이 흐르는 터
- 불이 난 적이 있는 터(地氣發散)
- 주변 산이 크게 잘려 나간 터
② 터로 인한 건강과 질병
㉠좋은 터는 건강의 청신호
- 정신을 맑게 한다
-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크게 한다.
- 병원성 세균의 번식을 억제한다.
- 몸에 기운이 난다.
- 설혹 발병하더러도 치유가 빠르다.
㉡나쁜 터는 질병의 온상지
·
- 정신 질환: 지각(支脚)이나 집 뒤의 파손 등
- 암: 수맥이나 바람. 지각이나 요도의 간섭
- 그외 각 종의 불치 또는 난치병
③ 집의 길흉
㉠ 좋은 집
- 산의 기운을 제대로 타고 앉은 집
- 물이 안아 도는 집
- 햇볕이 부드럽게 드는 집
㉡ 나쁜 집
- 역성의 산을 배산으로 삼은 집
- 물이 그 뒤로 흐르거나 아니면 앞을 흐르되 멀리 빠져 나가는 집
- 응달의 집
- 담장이 과도하게 높은 집
- 마당이나 뜰의 넓이에 걸맞잖게 나무를 빽빽히 심어 놓은 집
④ 모양이 좋은 집과 나쁜 집
㉠.좋은 모양의 집
- 마당의 넓이: 집의 넓이=0.866:1 또는 1:0.866
- 집의 길이: 집의 폭=1:0.866~1:0.577
- 거실:방=1:0.866~1:0.577
- 원융(圓隆)한 기운이 서리는 집
- 출입문의 향이 올바른 집
* 수치는 최소한의 안정상태인 직삼각형에서 나온 것임(1: :2)
㉡. 나쁜 모양의 집
·
- 마당과의 음양비(陰陽比)가 너무 크게 차이 나는 집
(뒷 마당이 과도하게 넓으면 첩(妾)이 안방을 차지하거나 아니면 본처를 상배(喪配)함.)
(안채와 사랑채를 제대로 갖춘 고택을 개수하여 쓰고자 양 채를 구분짓는 중간 울타리를 헐어 한 공간으로 틔우면 여자가 바람난다.) - 거실이나 방의 가로와 세로의 비가 크게 차이 나는 집
- 필요 이상으로 출입구가 많은 집
(매사 판단이 흐려지고 뒷문이 크게 나 있는 경우에는 축첩이나 부정 축재에 의한 화를 입는다.)
- 필요 이상으로 많은 방이 있는 집
(빈 방이 사람을 해할 우려가 있다.)
- 지기가 미치지 못할 정도로 높은 고도의 집
(고층 아파트의 경우 7층 이상은 지기의 도달이 곤란하다. 한편 이
경우 층수가 너무 낮아도 기운이 억압되고 페색되므로 좋지 않다.
그러나 전체 층수가 낮은 경우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물이 양택에 미치는 영향 즉 물의 길흉은 양택을 판단함에 있어 비중이 큰 기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양택의 운명을 거의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좌(坐) 자체가 산맥의 변화에 전적으로
구속되므로 편찬(編纂) 기술상 부득이 물의 중요성을 강조할지라도 결코 산에 우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과 전혀 무관한 채 별도의 독립적 개념으로서의 물은 양택 뿐만 아니라
모든 지리에 있어 무의미하므로 결국 산과 물은 표리의 관계라 하겠다.
특히 사람들의 주거나 취락(聚落) 양상이 과거 촌락 중심에서 오늘날 도시로 집중되면서 물에 대한
지리적 비중이 크지고 있다.
이는 도시가 형성되고 이후에 팽창하기 유리한 지형이 산이나 구릉보다는 분지나 평야와 같은
광활한 곳이므로 도시는 산의 분포도가 자연적으로도 낮은데 이마저 개발로 인하여 깍여 버리니
도시 구성원들의 터와 삶에 산은 이제 친근한 자연이 아닌 멀리 교외쪽으로 물러 나 앉아 조금은
초라한 모습으로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 오는 그저 먼 산일 뿐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터와 삶 자체가 산과 친밀한 지리 환경 즉 자연의 품 안에 생멸을 거듭하며
자연과 한 몸으로 어우러지는 겸허한 지혜를 터득한 바 자연을 어머니 품처럼 의지처로 삼고
최소한의 필수적 이용은 하되 결코 그 본질을 파훼하는 만행은 자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고도 근시안을 자만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최첨단의 현대 문맹인들이 화택(火宅)을
다닥 다닥 짓고 사는 도시라는 인위적 개념의 취락에는 우리 나라 자연의 대표적 형상이라 할 산이
극히 드물 뿐 아니라 그 이치를 적용할 여지 또한 희박하니 비록 궁여지책이지만 물로써 산을
간접적으로 판단해 낼 수 밖에 없다.
그나마 물은 비록 많이 더럽혀지기는 하였지만 아직까지는 그 흐름을 계속하고 있으니까 없는 산
핑계를 대면 그래도 명색이 지리를 헤아린다는 자의 도리가 아니니 산의 불비(不備)타령만 하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특히 요즈음 이른바 생활 풍수를 양택 이론의 현대적 적용임을 강조하는 견지에서는 도시에서 적용할
지리의 대상물 중 도시인들에게는 아무래도 다분히 관념적일 수 있는 밖에 없는 산 보다는 물이
가시적 실체로서 더 친근하므로 오늘날 도시의 양택을 논함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물을 보고 그 길흉을 헤아리는 데 있어 육안으로 보이는 강이나 개울 등과 같은 직접 적용할 수 있는
물이 있는 경우에는 이들을 기준으로 삼으면 될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경우 즉 가시적인 물이 없으면
주위 지형의 원근과 고저를 잘 살피어 물의 흐름을 짐작하여 길흉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한편 도시는 그 차별적 특징의 하나인 도로율이 시골 보다 월등히 높아 도로망의 형성이 매우 조밀하고
도시 전체에서 도로가 차지하는 면적 또한 큰 관계로 집 주위에 넓고 혹은 좁은 여러 가지의 도로나
길이 흔한데 이러한 것들은 지리적으로 가수(假水)로 보는 바 물에 준용(準用)할 수 있다.
10. 양택사례
1) 사례Ⅰ
필자의 지인 K씨로부터 그의 숙부 집에 대한 양택 감정을 의뢰받아 그곳에 들러 살펴보니
K의 숙부 집은 위의 그림과 같이 백호쪽의 물이 집의 향(向)과 나란한 채 그냥 흘러 나가는 전형적인
설기처(洩氣處)에 입지해 있었다.
K씨의 숙부는 과거 70년대 주류 도매업에 종사하여 돈을 많이 벌어 상당한 수준의 재력가로 꽤
명성을 날렸지만 이 집으로 이사를 한 후 재물이 급감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조세 포탈 행위가
들통이 나서 옥살이까지 하게 되어 결국에 그는 몰락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2)사례Ⅱ
일제 강점 시대 경남 동래군 일원에서 두번째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갑부였던 P라는 지역 부호가
있었는데 그는 새 집을 지어 이사를 하면서 그의 운명은 격랑의 바다에 표류하게 된다.
그 집은 위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2부 능선을 한 무기룡에 앉아 있었는데 그곳은 지기가 전혀
응기되지 못하고 다만 산기될 뿐인 전형적으로 흉한 터였다.
흉한 터의 나쁜 기운을 십여년 받은 결과 P는 그 많던 재산이 완전히 거덜나 한 때의 부귀영화는
그야말로 일장춘몽이었을 뿐 끼니마저 걱정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인간사 무상함을
새삼 느껴볼 수 있는 사례이다.
3) 사례 Ⅲ
어느 해인가 겨울로 기억되는데 지인 L을 통해 알게된 R이라는 사람이 필자로부터 그의 고민거리를
해결할 무슨 방책이라도 구해볼 양으로 자신의 애로를 털어 놓은 적이 있었다.
R의 하소연인즉 그는 자동차 정비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때 당시까지 자식으로 아들은 없고
딸만 둘을 두고 있었고 그즈음 사업도 영 신통찮아 하루 하루가 초조한 판에 마누라마저 바람끼가
엿보여 자신의 처지가 사면초가에 놓인 꼴이라는 취지의 신세 타령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고충을 일방적으로 듣고 본의 아니게 카운셀러 노릇까지 해야 할 판인
필자로서는 적잖이 난감해질수 밖에 없었다.
그를 보아하니 지리에 식견도 인연도 별반 없는 것 같았는데 이런 인사더러 무턱대고 조상 산소
운운하기도 어색하고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하기에는 지인 L의입장이 난처해질 것 같아 나름대로
묘책을 강구하느라 뜸을 들이고 있던 차에 해법의 실마리는 의외로 R이 먼저 제공했다.
『제가 사는 집이 요 근방인데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그렇다. 평소 지리에 관심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일반인도 그 무관심의 기저(基底)에 일말의 흥미마저
없지는 않는 이율배반적 모순 심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바 화급지경에서는 누구라도 알맹이를
본능적으로 내뱉을 수 밖에 없다.
보통 사람들의 이러한 심리 구조는 얄팍한 지리 지식을 수단으로 사기를 일삼는 자들의 좋은 표적이
되는 경우도 간혹 있으므로 결국 스스로 혜안을 갖추는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
한편 R씨의 집을 살피며 느낀 점은 전혀 새삼스럽지도 않은 너무나 지당한 결론이지만 실제로는 종종
망각의 구름에 가려져서 흔히 간과하기 쉬운 것이었다.
이것은 다름아닌 양택에서 출입구의 위치가 차지하는 막대한 비중인 바 이를 제대로 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일깨워 강조하는데 적합한 사례가 바로 R씨의 집이었다.
그의 집은 원래 베란다쪽으로 주 출입문이 나 있었으나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출입문의 바깥 전면을
아예 알루미늄판으로 막아버린 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 대신에 그림의 B에 문을 내어 사용하고 있었다. 문제는 바로 출입문의 위치 변경에 있었다.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R은 화를 자초한 셈이었다.
기존의 출입문을 폐쇄하고 B에 문을 냄으로써 건물의 향(向) 자체가 바뀐 것은 물론이고 물 또한
백호수(白虎水)로 바뀌었는데 이 백호의 물은 B의 방위에 역성(逆性)인 바 재물과 여자에게 피해를 준다.
이 집은 폐쇄하여 사용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출입문을 틔워 사용한다면 산맥 A에 의한 백호 용맥의
응기 상태가 유정하고 물도 해가 없으니 처음 지어진 구조를 유지했어야 옳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치를
알 바 없는 자가 임의로 출입구를 바꿔버리는 바람에 집이 흉하게 되어 그 화가 집안 사람에게 미치니
그 무지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막힌 베란다쪽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혀를 차고 있던 필자에게 마치 보충 설명하듯 R이 말했다.
『그런데 여름에는 장사도 잘 되고 별로 걱정되는 일도 없이 만사가 순탄히 풀리던데...』
거 참 희안하다고 필자도 내심 궁금해 하던 중 이내 이어진 그의 실토를 듣고는 그 희안한 일이 더 이상
희안하지 않은 지당한 일임을 알 수 있었다.
R씨의 말에 의하면 여름에는 우선 자신이 더위를 많이 타고 집도 무척 더운 편이라 통풍의 필요상
막아놓았던 베란다쪽의 기존 출입문을 틔워 사용한다는 것이다.
좀 특이한 사례이지만 R씨의 집은 더운 여름에만 한시적으로 향을 제대로 잡고 여름이 지나면 흉방으로
전향(轉向)하므로 번거롭지만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계절성 가변 양택(季節性 可變 陽宅)”인 셈이다.
그의 집에 대한 필자의 소견을 설명해주고 베란다쪽의 출입구를 즉시 원상 복구함과 아울러 향후
주 출입문으로 실제 상용하도록 주문하였건만 그 해 여름이 다시 오기도 전에 R씨는 딸의 교통 사고
그리고 부인의 부정과 가출 등 불운에 시달리고 있다는 후문이 들렸다.
4) 사례 Ⅳ
필자의 문하생인 L씨는 지금은 생업상 도회지에 살고있지만 은퇴한 후에는 고향 시골의 옛집에서
노후를 보내겠노라고 귀거래사를 미리부터 읊조리길 즐겼다.
L씨의 고향 옛집은 자신의 조부가 터를 잡아 지은 후 그의 선친이 생몰하고 자신도 태어나서
자랄 때까지 살았으므로 3대에 걸친 삶의 터전이었던 곳이다.
L씨의 조부와 선친 당대에는 가세가 그 촌락 일대에서는 제법 번창한 편이어서 L씨 자신도
성장 과정에서나 나이 50줄에 들어선 현재에 이르기까지 최소한 경제적인 면으로는 크게 아쉬운 줄
모르고 살아온 셈이라고 자평하곤 했다.
어느날 L씨로부터 그의 고향집이 자신의 노후 생활에 과연 적당한 곳인지를 필자더러 판단해주기를
간곡히 부탁하는 바람에 며칠후 그와 동행하여 그의 시골 고향집으로 향했다.
0. L씨의 생가이기도 한 고향 옛집은 3대의 세월이 느껴지기에 충분할 만큼 제법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었는데 위의 그림에서는 “A”이다.
이 고택은 본디 그 터의 청룡 끝부분 “F”가 그 반대편으로 발을 내민 요도 “G”의 힘에 의해
암반을 형성하며 강한 응기력을 발휘하여 집을 감싸고 물도 거슬러 벼슬과 재물을 능히
예견할 수 있는 길한 터에 제대로 자리 잡고 있었다.
0. 대문 “B”는 물을 거슬러 재물을 온전히 받아 먹기에 충분한 위치와 향을 제대로 잡고 있었다.
0. 이 집터에는 처음에는 L씨의 고택 “A”만 있었으나 근간에 건물“C”와 “D”를 각각 지어 현지
주민에게 세를 주는 조건으로 고택“A”를 관리하도록 하였으니 “A”는 본채, “C”와 “D”는
행랑채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신축 건물 “C”와“D”는 위치와 향의 선정이이 모두 잘못되어 있어
재물격인 물을 설기할 뿐만 아니라 청룡맥과는 부조화를 이루어 그 응기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었다.
0. 건물 “C”와 “D”의 대문인“E”는 건물과 불배합일 뿐만 아니라 향 또한 물을 설기하고 있었다.
0. 위의 터에 처음부터 있었던 본채격의 건물 “A”는 터의 장점을 잘 살려 지어졌으나 행랑채격인
신축 건물 “C”와“D”는 터의 장점이나 특성과는 무관하게 지어져 지리적 조건을 비교적 잘 갖춘
편인 터의 가치만 떨러뜨리는 꼴이 된 셈이다.
5) 사례 Ⅴ
K씨는 중소 제조업체를 운영하는데 년간 매출액이 200억대에 이르니 지방 농공단지의 중소 기업치고는
그 규모가 제법 큰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날 K씨로부터 그의 공장이 입지한 곳과 고향 옛집에 대한 감정 부탁이 들어와 그 며칠 후 그와 함께
현지에 들러 살펴본 결과 그의 고향 옛집은 인패(人敗)를 당하기 십상인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반면에
공장 터는 꽤나 길한 곳에 들어서 있었다.
두 곳의 대조적인 길흉이 그대로 그의 삶에 반영되어 과연 그의 인생 여정은 마치 굴곡의 포물선상과도
같았다.
0. K씨의 고향 옛집은 터와 가상이 모두 흉하였다.
우선 집터가 산골짜기 한가운데를 뒤로 하고 있어 끊임 없는 살풍에 노출되어 속수무책인데다가
집의 대문마저 하필이면 집의 뒷쪽 즉 산골짜기와 마주 보고 있어 터와 가상의 흉함이 그야 말로
설상가상 격이 었다.
비록 집터의 오른쪽 가까이에 백호맥이 그런대로 제법 응기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터 자체의 흉을
상쇄는 고사하고 어느 정도로 경감시킬 수도 없을 정도로 역부족이었다.
이처럼 간단찮은 흉은 K씨의 어린 시절에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워 그의 부모와 형은 일찌감치
세상을 떠나 졸지에 혈혈단신의 고아가 되어버린 그는 어린 몸으로 고향을 떠나 객지를 전전하며
험난한 성장기를 보내야만 했다.
고된 세월이 흘러 나이 30줄에 들어서면서 비록 보잘 것 없는 구멍 가게 수준이지만 어엿한 자기
소유의 업체를 비로소 가질 수 있었고 그후 그의 사업은 번창일로를 달려 돈도 많이 벌어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어느 정도는 보상받았다고 볼 수 도 있을 것이 지금 그의 고향 마을에서는 그의
자수성가담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그는 이미 그곳 출신 유명 인사의 반열에 올려져 있었다.
0. K씨의 인생을 음지에서 양지로 반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경제 활동의 주무대이며 업체 운영의 기반인 공장이 자리 잡은 터의 영향에 기인하기도
한다.
K씨의 공장은 멀리서부터 생룡이 굽이굽이 치달아 오다 멈춘 야산의 7부 능선에 터를 잡고 있었는데
그 앞쪽으로는 관성(官星)이 뚜렷하게 붙어 있고 주위 사의 응기도 유정(有情)하여 공장 부지보다는
오히려 음택지로 사용해도 될 만큼 조금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길지였다.
6)사례 Ⅵ
약국을 운영하는 p 씨는 이전 개업을 이유로 기존 운영하는 약국을 인수하며 운영하려고 필자에게
감정을 의뢰했었다.
도로변의 번화가로써 잘만하면 될 곳이라 해서 강한 의욕으로 인수 직전에 있었다.
A가 약국으로 @ 가 출입문이다. 地勢는 물을 따라 向이 되었으므로 양택의 첫째 조건에서
불합격이 된다 .
약국 내부구조도 전착후관(前窄后寬)이 되지 않아 설기(洩氣)되는 형태로 지금 운영하고 있는
사람도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곳이다.
반대에 있는 B는 음식점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지세는 물을 받아 먹는 형태이며 ⓑ가 출입문이며 ⓒ의 창문은 造化들로 가려 놓아 건물구조도
좋은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7) 사례 Ⅶ
군주 국가에서 궁궐(宮闕)은 군주 자신과 후손 왕들의 군림처이자 그 자체가 왕권 즉 통치권의 표상이다.
과거 동서를 불문하고 제왕군주들이 자신들의 보금자리이자 국가 권력의 원천인 궁궐에 대한 집착은
무엇보다도 특별하여 궁궐과 관련된 일은 그야말로 국가의 중대사중에서도 가장 으뜸이었다.
특히 왕권의 전제가 심할수록 국가 운영에서 차지하는 궁궐의 비중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마지막 왕조인 조선도 예외는 아니어 태조 이성계가 개국한 후 이듬해 한양을 새 도읍지로
삼고 본격적인 천도(遷都)에 앞서 새 왕국의 역사가 펼쳐질 궁궐을 짓고자
그의 핵심 측근 인사라 할 정도전과 무학으로 하여금 그 터를 물색케 하였다.
당시 궁궐 터를 정함에 있어 정도전과 무학 양인간의 풍수 논쟁은 너무나 유명하여 지금까지도
적잖이 회자되고 있는 역사의 일화인데 사실 이는 개국초에 불가피한 과도기적 난맥상을 마치
개국의 산고(産苦)인양 후세에 일부러 암시라도 해주기 위하여 그들 스스로 역성 혁명을 단행하게 한
명분들중의 하나로서 응당 타도의 대상인 전 왕조의 즉 고려의 통치 이념이자 폐습이라 할
풍수지리까지 굳이 들먹인 것은 민심 수습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추정해 볼 수는 있겠으나
자가당착(自家撞着)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역사의 기록상으로는 두 인물을 당대의 풍수가라고
치켜세우고는 있지만 이는 궁궐 터를 결정함에 있어 초인적 고뇌의 흔적을 남김으로서
새 왕조 개창의 정당성을 뒷받침해 주는 승자에 의한 견강부회(牽强附會)적 역사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들 양인간의 논쟁에서 쓸데없는 치장이나 가식을 벗겨내고 그 쟁점을 드러내 놓고 보면
지리적 실익이 전무한데 이는 지리의 요체(要諦)에서 벗어난 채 궁궐 터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도참 논쟁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즉 실제 지리나 지기의 변화 상태나 그 힘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단견(短見)에 불과한 것이었다.
전 왕조 즉 고려에서는 국가 운영의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어 통치 이념이라 할 풍수지리는
전 왕조의 무능과 모순 구실로 이를 부정하고 역성 혁명을 단행하여 새 왕조를 개창한 핵심
멤버들에게는 그들의 새로운 사상 체계인 주자의 성리학적 대의명분과는 이념적으로나 정치
생리적으로나 맞질 않아 아무래도 반감만 가지게 할 뿐인 바 지리에 대한 그들의 안목은 새 왕조의
궁궐 터를 두고 벌어진 갑론을박의 치열한 공방 끝에 결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터의 근본적 결함을
잔뜩 품은 곳을 결국 새 궁궐 터로 삼으니 참으로 고도(高度)의 근시안적 판별안임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즉 동향을 주장한 무학이나 남향을 주장한 정도전이나 터의 자체적 결함을 간과하고 궁궐의 향(向)만을
문제 삼은 양인간의 무익한 논쟁은 터의 상은 도외시한 채 가상만으로 길흉을 따진 격과 같으니
본말의 전도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자신의 주장이 대부분 받아들여진 정도전은 스스로도 매우 흡족했던지 그 기쁨에 겨워
신도가(新都歌)를 읊었으리라.
그의 미래 비젼대로 남산을 바라보며 북악산 기슭에 터를 닦아 오늘날과 같은 곳에 자리 잡게 된
조선 왕궁은 오백년 영욕의 역사와 함께하게 된다.
한편 동향을 주장했던 무학의 의견을 받아 들였더라면
왕조의 앞날은 기왕의 역사와 달리할 수 있었을까?
오늘날의 경복궁에서 볼 수 있듯이 주향(主向)을 남으로 잡은 조선 왕궁은 거의 무방비 형국으로
트인 북동쪽으로 부터의 살풍으로 작용한 결과 장손이 많이 흉하게 되는데 조선의 건국과 국가
존립의 사상적 기반이라할 유교적 질서를 왕국의 연속성과 결부되는 왕위 계승에 직접 적용시켜
왕실에서부터 먼저 솔선수범을 보이려고 적장자에 의한 왕위 계승을 통하여 실천코자 하였으나
누대(累代) 왕들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오백년 27대를 잇는 조선 왕조에서 제대로 구현된
경우는 드물고 간혹 적장자로 대를 이은 경우마저 단명하거나 권력 다툼에 희생되는 등의 변고를
당하여 재위 기간이 비교적 짧았다고 볼 수 있다.
어찌 되었던 출발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던 조선 왕궁은 왕조의 중엽에 발발한 왜란으로 크게
소실되기도 하였으나 그 후 270여년 만에 흥선 대원군의 집념에 의해 경복궁을 중건하게 된다.
왕국의 말기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3대에 걸친 안동 김문과 풍양 조문의 외척 세력에 의한
세도 정치로 인한 폐단 즉 피폐해진 나라를 일으켜 세우고 문란해진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간 위축되고 약화된 왕권을 신장,강화시키기는 것이 급선무인 바
왕권의 표상인 왕궁의 중건에 대한 대원군의 집념은 오히려 집착이라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로
과도한 측면도 없질 않아 무리와 잡음이 따라 급기야는 백성의 원성을 자아내기까지에 이르렀다.
조선 말 격랑의 세월답게 나라 안의 사정은 누란지세(累卵之勢)였고 나라 밖의 환경은 동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어 있어 국운이 백척간두에 처한 형국이었으나 어린 임금을
대신하여 개혁과 국방에 힘쓴 결과 대원군에 대한 역사가 주는 점수는 경복궁의 중건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후한 편이다.
이처럼 난세의 위인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그이지만 경복궁의 중건 역사(役事)는
당시 국가 재정과 백성의 궁핍보다는 왕과 왕실의 권위 회복을 우선시하여 나라 전체를
어렵게 만듦으로써 그의 치적에 흠집을 내는 결과가 되었는데 이와 같은 경제적 실책은
접어두고라도 경복궁 중건에 있어 대원군의 지리적 오판이 필자는 정작 더욱 안타깝다.
인조의 8대손으로 명맥만 왕실의 종친일 뿐 잔반(殘班)의 신세를 면하기 어려웠던 그가
실날같이 희박한 왕실 혈통의 흔적만으로 아들의 등극을 기약하기란 너무나 황당무계하고
허무맹랑하여 제정신이 아닌 취중의 망상이거나 낮잠 자며 꾼 개꿈 정도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는 것을 자신만은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남연군의 묘에 심혈의 정성을 기울인
그의 풍수적 신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원군의 이와 같은 행적을 살펴볼 것 같으면 비록 그 스스로 지리에 대한 지식이나 지리의
혜안을 가졌는지를 알 수 없으나 최소한 지리에 대한 관심만큼은 보통의 사람보다는
그 정도가 특별하였음은 틀림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복궁을 중건함에 있어서는 지리에 대한 안배를 소홀히 하여 근정전의
풍수적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백성의 원성을 뒤로 하면서까지 일로매진했던 대원군의 집념과
노력의 산물인 중건 역사는 결국 그 빛이 바래지고 만다.
당시 근정전이 처음 지어진대로 제대로 복원되었건 아니되었건간에 경복궁의 중건 역사에 있어
가히 화룡점정이라 할 만큼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했을 근정전을 이왕 재건할 바에는 개국 초
저질러졌던 풍수적 실책 즉 터의 흠결이라도 보완하게끔 국운을 염두에 둔 풍수적 고려가
마땅히 했어야 옳았음에도 그저 좌청룡,우백호의 국세만을 보고 건립되어 이후 근정전은
오백년 조선 왕조의 멸망, 일제의 강점, 국토 분단과 동족 상잔 등 오욕의 근현대사를 멀건히
바라보고 가난과 혼동에 시달리는 민초들의 신음소리를 고스란히 들으며 오늘날까지
서울 한 가운데에 역사의 무게 만큼이나 무겁게 앉아 있다.
0. 경복궁 주위의 지리
위의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근정전의 위치“C”는 위쪽에서 된바람 즉 살풍이 들기 좋은
지형인데다가 입맥조차 거의 되어있질 않고 백호 줄기마저 요도성의 지룡(A)으로 들어와 있는
곳이어 중대한 국사를 의결하고 처리하는 장소로서 그 입지 조건이 너무나 허술한 결과
지금과 같은 관광 자원으로서의 역할을 제외하고는 근정전은 재건립된 이후 제 기능을 발휘한
적이 거의 없고 간교한 음모와 계략의 산실로 또한 나라의 온갖 흉사가 이루어지는 무대로
전락하고 만다.
한편 “B”는 박 대통령 집권 당시 중정 안가가 있던 곳으로 김 재규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신의
심장을 쏘아 넘어뜨린 곳 즉 박 대통령의 시해 현장으로 유명한데 이 곳의 바로 뒤에는 요도성의
지룡“A"가 찌를 듯한 기세로 발을 뻗치고 있으니 가히 백호대살지(白虎大殺地)에 앉은 셈이라
할 것이다.
이것을 몰랐든지 아니면 아예 알 바 없었든지 얼핏 보기에 배산임수인듯한 주위 지형만을 보고
건물을 지었던 모양이다.
이와 같은 경관적(景觀的) 배산임수는 지리적 의미가 전혀 없는데도 식견이 없는 일반인들을
곧잘 현혹시키는 주범이 된다.
즉 요도나 지각 또는 요도성 지룡과 같은 것들은 진정한 의미의 배산임수에서의 배산격이
전혀 될 수 없는데도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 뒤에 있는 산이면 막연히 배산이 되는 줄 알고
함부로 쓰게 되면 이는 마치 전장에서 피아(彼我) 식별도 못하는 꼴과 같으니
그 흉은 위의 경우처럼 단지 화로 이어질 뿐이다.
“D”는 청와대 구 본관 터인데 일제 총독 관저로 지어져 이 승만 집권기에는 경무대로 제2공화국
이후부터는 청와대로 불려지면서 주인이 여럿 바뀐 대통령 관저가 있던 곳으로 한때 우리나라
현대사의 중심점이 되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헐리고 없다.
이곳은 요도성 지룡 “A”의 나쁜 기운을 앞서 말한안가터 “B”보다는 덜 받지만 이곳 역시
그 영향 범위 내에 있기는 마찬가지인 바 흉지라 아니할 수 없는데도 들리는 바에 의하면
옛날 이곳에서 천하제일의 복지라 새겨진 표석이 출토되었다는 허황된 말도 있는데
이는 필시 사기꾼 근성이 다분한 어느 지관의 농간이거나 일제의 사주에 따른 간특한 흉계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야담류(野談類)의 전설담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풍수와 관련된 곳에서는 널리 떠도는데 근거가 빈약할 뿐 만 아니라 실체도 없고 허구로만
가득찬 채 온갖 신비로운 이야기로 꾸며져 있어 혹세무민하기에는 딱 안성맞춤이다.
알맹이가 없을수록 치장은 요란한 법이어서 실제 지리를 볼 능력이 없는 자가 지리적 가치가
없는 곳을 뜻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럴듯하게 둘러대는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지리에 식견을 틔우는 수 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
대통령 관저 “E”는 앞서 말한 것들에 비하면 그런대로 괜찮은 곳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C”나“D”는 외수(외수)를 거두는 반면에 “E”는 원진수(元辰水) 즉 내수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전반적으로는 그렇게 점수가 높지 않더라도 범위가 전제되었다고 가정하여 경복궁 주위의
지리 범위내에서 가장 길한 곳을 굳이 선택할 것 같으면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E”보다는
그 아래쪽의 헬기장이나 화장실 또는 쓰레기장 아니면 민속 박물관이 있는 곳을 꼽을 수 있다.
이런 곳들은 만약“F”에 귀사(鬼砂)가 붙었더라면 더할 나위 없으련만 이는 부질없는 아쉬움일
뿐이고 비록 귀사만한 힘은 못되지만 낙(樂)이 있으므로 주춤주춤하게나마 그런대로 입맥이
되게끔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삼백년 주기의 기복(祈福)을 할 수는 있으리라.
어차피 이곳은 한 개인이나 집안 또는 한 지역의 길흉과는 비할 바 안될 정도로 거시적이며
장기적인 국운이 걸린 곳이기에 이삼백년이라는 세월도 그렇게 길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시간은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더 언급하면 TV화면상에 나타나는 곳은 "G"부위로 이곳은 청룡의 역성(逆性)으로
"E"부위보다 더욱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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