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89호 부여 석성산성

오늘의 쉼터 2008. 2. 14. 19:12



종     목 사적  제89호
명     칭부여석성산성(扶餘石城山城)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81,660㎡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충남 부여군  석성면 현내리 산83
시     대삼국시대
소 유 자국유,사유
관 리 자부여군

일반설명

연산의 황산성, 노성의 노성산성 및 금강 건너의 성흥산성, 뒤쪽의 금성산성과 연결되는 백제의 수도 사비 남쪽 외곽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산성이다.

이 산성은 안쪽에 성을 세운 후, 다시 성 밖에 2개의 골짜기를 따라 성을 쌓았다. 현재는 성문터와 성문 밑으로 개울물이 흐르게 하던 수구문, 그리고 우물터와 건물터들이 남아있다. 6세기 전반에 세워진 것으로 둘레 약 1,600m, 폭 약 5m, 높이 4m 정도로, 바깥쪽은 돌을 쌓아 올리고 안쪽은 흙을 파서 도랑(호)처럼 만들어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성벽은 모두 무너졌고, 성벽이 통과하는 계곡의 입구에 설치되어 있던 수구(水口)도 파괴되어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다. 오른쪽의 수구에 해당하는 부분은 좌우로 성벽과 연결되도록 돌덩이들을 3∼4m정도의 높이로 쌓아 올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 안의 가운데 산등성이에는 토기조각과 기와조각들이 많이 널려있어 건물터로 추정되고 있다.

이 성은 사비성이 함락된 뒤에도 당나라군과 신라 및 백제부흥군이 치열한 전투를 했던 곳으로 유서 깊은 유적이다.


전문설명


옛 석성현의 북쪽에 있는 해발 200m쯤의 파진산(破陣山)의 지맥에서 남향한 작은 계곡 두 개를 에워싼 포곡식(包谷式) 석축(石築) 산성(山城)이다. 성문터·수구문(水口門)·우물터·건물지 등이 남아 있다. 이 성의 이름은 석성현(石城縣) 이라는 옛 지명에서 유래된 것으로 백제의 수도인 사비(泗비) 남쪽의 관문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조된 산성이다.

이 산성은 테뫼형(산정형(山頂形))과 포곡형(包谷形) 산성의 두 부분으로 구분되며, 그 중 테뫼형은 높이 160m의 산봉을 중심으로 하여 그 동북에 인접한 높이 160m의 또 하나의 산봉을 포용한 뒤, 동남향한 산위의 경사면을 따라서 석축의 성벽을 둘렀다. 그러나 현재 이 석축의 성벽은 모두 무너졌는데 석괴(石塊)가 5m 정도 너비로 산 중턱의 경사면을 돌아간 것을 볼 수 있다. 이 테뫼형 산성의 둘레는 약 580m이며 성내에는 남쪽 모퉁이에 우물터 1개가 있다. 포곡형 산성은 테뫼형 산성의 동남쪽 산 아래에 있는 두 개의 깊은 골짜기를 포용하기 위하여 축조되었다. 이 두 개의 골짜기는 동남쪽을 향하여 길다랗게 병행되었으므로, 그 중앙과 좌우 양편에 각각 높은 산등성이가 형성되었다. 포곡형 산성의 성벽은 이 좌우의 산등성이까지의 넓은 면적을 포함한 뒤, 그 바깥쪽으로 훨씬 내려가서 가파른 산복(山腹)을 타고 축조되었다. 축성 방법은 자연할석을 이용하였으며 외면을 돌로 쌓았고 안쪽은 내탁(內托)을 하였으며, 내호(內壕)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수구는 성벽이 통과하는 계곡의 입구에 시설되었음이 분명하지만 현재는 파괴되어 원형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른쪽의 수구에 해당하는 부분은 좌우로 성벽과 연결되도록 석괴를 3∼4m의 높이로 쌓아올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석축부를 기초로 하고 그 위에 통수구(通水口)가 마련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포곡형 산성의 중앙에 있는 산등의 선단부에는 능선과 병행하여 약 50m의 길이에 걸쳐 약 1m의 너비로 성벽과 같은 용도(甬道)를 축조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성안의 중앙 능선상에는 토기편과 와편들이 많이 산재하여 있어 건물지로 추정되고 있다. 오른쪽 산등성이의 선단부에 동문지(東門址)로 추측되는 곳이 남아 있으며 그 너비는 약 4m이다.

백제가 도성이 함락된 후 이곳에서도 당군과 신라 및 백제부흥군이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석성현의 산성으로 존재한 것이 테뫼형 산성이고, 포곡형 산성은 국도 사비의 방위를 위하여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그 시기는 대개 6세기 전반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보아 이 산성은 연산(連山)의 황산성(黃山城), 노성(魯城)의 노성산성(魯城山城) 및 금강(錦江) 건너의 성흥산성(聖興山城), 배후에 있는 금성산성(錦城山城)과 연결되는 백제의 수도 사비의 남쪽 외곽을 방비하기 위해 축조되었던 성(城)으로 여겨진다.




부여석성산성

부여석성산성전경

부여석성산성전경

근경

부여석성산성

부여석성산성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