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실’은 전남 곡성군 석곡면을 가르키는 것으로, ‘나이’는 삼베를 짜는 일(길쌈) 또는 그러한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삼베는 ‘베’라고도 불리며, 한자어로는 마·마포·포 라고도 한다. 곡성의 돌실나이는 예로부터 품질이 우수하고 섬세하여 삼베의 대명사로 불리웠다.
삼베는 전기 신석기시대의 유적인 궁산조개더미에서 뼈로 만든 바늘에 실이 감겨 있는 것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기술이 발달하여 중국으로 수출하였고, 문물교환의 수단으로 모시와 함께 사용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면의 재배로 삼베의 생산이 약간 줄어들었다.
삼베의 제작과정을 보면 우선 재배를 해서 수확을 한 후, 잎을 훑은 삼단을 삼굿에 넣고 쪄서 껍질을 벗기고 햇볕에 말린다. 삼을 쪼개는 과정을 거친후, 실을 한올 한올 길게 잇는다. 그 후 베 한 필의 길이와 삼베에 따라 몇 올이 들어갈지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풀 먹이는 과정을 거친 다음 베틀을 이용해 베를 짠다.
오늘날 삼베의 폭은 30∼35㎝ 정도로 돌실나이가 9승, 안동포가 12승이 짜지고 있으며, 숫자가 높을수록 섬세한 포가 된다. 예전에는 북포(함경도 육진), 강포(강원도), 영포(경상도), 안동포(경북 안동)가 유명하였으나 서양문물의 유입에 따라 가내수공업으로 전락하면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곡성의 돌실나이는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는 김점순이 인정되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설명 곡성의 돌실나이는 전라남도 곡성군의 삼베짜기를 말한다. 석곡의 원래 이름이 ‘돌실’이며, ‘나이’는 길쌈을 뜻하는 말이다. 삼베는 전국적으로 생산되었으며, 길주(吉州), 명천(明川), 안동(安東) 등이 유명했다.
삼은 음력 삼월 하순에 파종하여 소서가 지나서 찐다. 냇가에서 삼솥에 넣어 삼을 찌고 냉수를 끼얹어 식혀서 삼껍질을 벗기고 상·하품(上·下品)을 골라서 따로 묶어둔다. 햇볕에 말린 삼껍질은 다시 물에 적셔 삼을 짼다. 짼 삼은 삼톱으로 훑어서 외피를 제거한다. 그런 다음 손톱으로 모시보다 굵게 다시 쪼개어 삼뿌리와 가지 끝을 서로 무릎에 대고 손으로 비벼서 잇는다. 이은 실은 채 또는 소쿠리에 둘레둘레 담았다가 이것을 다시 물에 적셔 물레에 걸어 자은 다음 돌곳에 올려 실컷(타래)을 만들어서 햇볕에 말린다. 실컷은 다시 물에 적셔 짚재에 버무려서 따뜻한 방에서 일주일 동안 띄운다. 띄운 실은 솥에 넣고 삶아낸 다음 깨끗이 빨아 2, 3일동안 담구어 놓는다. 이것을 잿물에 다시 삶아 햇볕에 말리면 희게 바래진다. 희게 바래진 실컷은 쌀뜨물에 치자물을 넣고 5∼6시간 담갔다가 건져내어 말린 다음 손으로 비벼 다시 말린다. 완전히 말린 실컷을 돌곳에 내려 실떡을 만든다. 실떡 1,800g(3근)이면 한 필을 짤 수 있다.
새와 날실의 길이를 결정하여 실을 마름질하는 과정을 베날기라 하며, 베날기가 끝난 실을 바디에 끼우고 베틀을 사용하여 베를 짠다. 베를 짜는 동안은 적당한 습도를 유지해야 한다.
삼베는 삼올의 굵기에 따라서 새가 정해진다. 가장 거친 상복용(喪服用)으로는 4새 두 번 걸이를 쓰고, 일을 할 때 입는 옷에는 5새 두 번 걸이, 5새 세 번 걸이 또는 6새를 사용한다. 7새만 되어도 고운편에 속한다. 최고 30새까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9새가 제일 촘촘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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