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가무형문화재

국가무형문화재 제34호 강령탈춤

오늘의 쉼터 2008. 2. 10. 10:31



종     목

국가무형문화재 제34

명     칭강령탈춤 (康翎탈춤)
분     류 무형문화재 / 전통 공연·예술 / 연희
수량/면적

단체

지 정 일

1970.07.22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강령탈춤보존회

관 리 자

강령탈춤보존회

일반설명

탈춤이란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가면으로 얼굴이나 머리 전체를 가리고 다른 인물, 동물 또는 초자연적 존재(신) 등으로 분장한 후 음악에 맞추어 춤과 대사로써 연극하는 것을 말한다. 탈춤은 조선 전기까지 각 지방에서 행해지던 가면놀이이다. 17세기 중엽에 이르러 궁중의 관장하에 “산대”라 불리는 무대에서 상연되던 산대도감극(山臺都監劇)의 형태로, 인조 12년(1634)에 궁중에서 상연이 폐지되자 민중에게 유입되어 전국으로 전파되었다.

강령탈춤은 매년 단오에 행해지는데 언제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밝힐만한 자료는 없으나, 늦어도 조선 후기까지는 성립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놀이는 사자춤·말뚝이춤·목중춤·상좌춤·양반과 말뚝이춤·노승과 취발이춤·영감과 할미광대춤의 7과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놀이에 앞서 탈과 의상을 갖추고 음악을 울리면서 공연장소까지 행렬하는 길놀이를 한다. 등장인물은 마부·사자·원숭이·말뚝이·목중·상좌·맏양반·둘째양반·재물대감·도령·영감·할미·용산삼개집·취발이·노승·소무 등 모두 20명이다. 파계승에 대한 풍자와 양반계급에 대한 모욕, 일부처첩의 삼각관계와 서민의 생활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 춤은 느린 사위로 장삼소매를 고개 너머로 휘두르는 장삼춤이 주가 되며, 장단에는 도드리, 타령, 자진굿거리가 주로 쓰이지만 소리의 사설이 30여 가지나 되고 소리마다 장단이 특이하다.

강령탈춤의 내용 중에서 양반 3형제가 나와 양반의 근본을 찾고 말뚝이를 부르거나 말뚝이가 재담하는 과장은 경남의 오광대와 비슷하고, 할미광대가 물레를 돌리는 장면은 가산오광대와 매우 유사한데, 이러한 유사점은 탈춤의 전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사실적인 얼굴 모습을 묘사한 인물탈을 쓰고 장삼춤을 추는 아담하고 부드러운 점이 같은 황해도 탈춤인 봉산탈춤과 다른 특징이다.


전문설명

 

황해도 옹진군 부민면 강령리에는 옛부터 탈놀이가 전승되어 왔다. '강령(康翎)'이라는 지명은 세종 10년에 설치한 강령현(康翎縣)에서 비롯되었고 인조 15년에는 해주에, 효종 4년에 옹진에 편입되었다가 다시 10년 뒤에는 강령현으로 되는 등 변화를 겪다가 근세에 이르러 옹진군 내의 지역으로 개편되었다.

강령탈춤이 언제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밝힐만한 자료는 없지만 이러한 인근 지역과의 편입과 개편 속에서 성장하여 늦어도 조선 후기까지는 강령에 탈놀이패가 정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또한 세시풍속인 단오놀이 중 탈춤이 가장 대표적인 놀이로 되었던 것도 전승의 요인으로 볼 수 있다.

매년 단오에는 주민들(특히 상업자)의 자발적인 지원과 호응을 받아 탈춤을 추었는데 음력 5월 4일에는 길놀이를 하였으며, 5일과 6일에는 저녁부터 새벽무렵까지 밤새도록 놀았었다. 이 3일간은 해주 감영(監營)에 나가서 도내 각지에서 모인 여러 탈춤패들과 경연하였는데 우승하면 감사로부터 후한 상이 내려졌다 한다.

길놀이가 끝나면 밤늦도록 마을에서는 음식잔치가 벌어졌으며, 놀이는 구경꾼들이 집으로 모두 돌아가야 끝이 났다. 놀이마당은 주로 공청(公廳)의 앞마당(미곡시장)이 이용되었고 수백 명이 모여들어 즐겼다 한다.

황해도 탈춤은 두 갈래, 즉 평야지대를 대표하는 '봉산 탈춤형'과 해안지대를 대표하는 '해주 탈춤형'으로 구분하는데 강령은 해주 탈춤형으로서, 놀이 과장의 순서나 등장인물에는 차이가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제1과장은 사자춤이다. 제2과장 말뚝이춤(일명 첫목중), 제3과장 목중춤, 제4과장 상좌춤, 제5과장 양반·말뚝이춤, 제6과장 노승·취발이춤인데 1경은 팔목중춤, 2경 취발이춤이고, 제7과장은 미얄영감과 할미춤이다.

이 내용 중에서 마한, 진한, 변한, 양반 삼형제가 나와 양반의 근본을 찾고 말뚝이를 부르거나 말뚝이가 재담하는 과장은 경남의 오광대와 비슷한 점이 느껴진다. 또 할미광대가 물레를 돌리는 장면은 가산오광대의 그것과 같다. 황해도 탈춤이 경기의 산대놀이와 끊임없이 교류하였음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와 같은 오광대와의 유사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편, 강령탈춤이 같은 지역의 탈춤인 봉산탈춤과 구별되는 점은 첫째, 봉산탈춤의 탈이 이른바 귀면형의 나무탈인데 비해, 강령탈춤은 사실적인 얼굴의 탈로 이른바 인물탈이다. 둘째, 의상에 있어 강령탈춤의 기본의상은 주로 재색 칙베 장삼을 입고 그 소매 홍태기는 길어서 팔을 내리면 땅에 닿을 정도인데 비해 봉산탈춤의 기본의상은 색이 화려한 더거리이다. 셋째, 춤에 있어 강령은 느린 사위로 긴 장삼소매를 고개 너머로 휘두르는 동작의 춤을 추는데 이것을 장삼춤이라 부른다. 이에비해 봉산은 깨끼춤이 기본이다. 강령탈춤의 배역은 마부(2), 사자, 원숭이, 말뚝이(2), 목중(2), 상좌(2), 맏양반, 둘째양반, 재물(財物)대감, 도령, 영감, 할미, 용산삼개집, 취발이, 노승, 소무 등 20명이고 이밖에 취발이 아이는 인형을 쓴다. 소무와 용산삼개집 탈은 겸용하여 모두 19개가 된다.

현재 김실자(金實子; 1928년생, 둘째양반·마부), 김정순(金正順; 1932년생, 상좌·용산삼개집), 이정석(李貞錫;1946년생, 미얄영감), 송용태(宋龍台;1952년생, 취발이)가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강령탈춤

말뚝이춤

할미춤

강령탈춤

취발이춤

사자춤

말뚝이춤

말뚝이춤

노승춤

할미춤

취발이놀이

사자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