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기장의 죽성리 마을 해안 가까이에 있는 둘레 약 960m. 면적 38,253㎡. 현재 성문과 해자(垓字) 등의 시설이 남아 있다. 이 성은 1593년(선조 26) 서울에서 후퇴한 왜군이 서생포(西生浦)에서 동래·김해·웅천(熊川)·거제(巨濟)에 이르는 해안선에다 장기전 태세를 갖추기 위하여 쌓은 것으로, 왜장 구로다(黑田長政)가 축성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는 왜장 가토(加藤淸正)의 군대가 주둔하기도 하였다. 이 성은 일본문헌에는 기장성(機張城)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조선왕조실록이나 『증보문헌비고』 등에는 모두 두모포왜성(豆毛浦倭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은 해변의 높이 50m의 산봉우리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동쪽으로 죽성만의 선창을 끼고 있어 많은 선박을 수용할 수 있는 요충지이다. 산봉우리를 평평하게 고르고 한 변이 약 50m인 정사각형의 아성(牙城)을 쌓고, 그 둘레에 한층 낮게 한 변이 약 80m인 사각형 외곽을 둘러싼 전형적인 일본식 성곽이다.
성문은 선창을 향하여 동쪽으로 설치되었으며 서남쪽의 외곽성벽 밖으로는 너비 약 10m의 깊은 해자를 파고 거기서 나온 흙을 바깥쪽으로 쌓아올려 또 한 겹의 방위선을 구축하였다. 성벽은 화강암을 재료로 5,6m의 높이로 비스듬히 쌓아올렸으며, 이곳에서 북쪽으로 골짜기를 건너 약 1,000m 거리의 높다란 언덕 위에 작은 성을 또 두었다.
이 작은 성도 사방 36m의 정사각형으로 남쪽의 본성을 향하여 성문을 두고 북쪽의 두 귀퉁이에 성벽을 높게 돌출시켜서 전투하기에 편리하도록 설치되어 있다. 서남쪽의 성벽 밖으로 깊은 해자를 두른 것도 본성과 같다. 지금 성의 대부분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서 우리나라에 남은 일본식 축성법의 표본으로 삼을 수 있는 성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