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53호 웅천안골리성 <해제>

오늘의 쉼터 2008. 2. 9. 14:43




종     목

사적  제53호

명     칭

웅천안골리성(熊川安骨里城)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수량/면적

63,577㎡

지 정 일

1963.01.21~1997.01.01

소 재 지 경남 창원시 진해구 안골동 산27번지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국유

관 리 자

의창군

일반설명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 >』에 의하면 제포진< 薺浦鎭 >에 소속된 안골포영< 安骨浦營 >에는 수군만호< 水軍萬戶 >가 있었고, 석성< 石城 >의 둘레가 약 56m(1,714), 높이 약 3m(10척)이며 성안에 시내와 우물이 있다고 하였으므로 이곳은 옛날부터 우리 수군의 영이 있었던 곳이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 남아 있는 성축< 城築 >은 임진왜란< 壬辰倭亂 > 때 왜병< 倭兵 >들이 쌓은 일본식< 日本式 >의 것이다. 부산< 釜山 >쪽과 다도해< 多島海 >쪽을 연결하는 가덕수도< 加德水道 >의 첫머리에 위치하는 이 성은 삼면이 바다인 육망산< 陸望山 >에 의지하여 앞은 절벽이고 뒤는 안골만으로 천험과 지리를 고루 갖춘 곳이다. 왜의 수군장수인 와키사카< 脇坂 > 야스하루< 安治 >, 구키< 九鬼 > 요시다카< 嘉隆 > 등은 임진왜란 때 이 성을 고쳐 쌓아 여기를 본성< 本城 >으로 삼고, 웅포< 熊浦 > 남산에 둘레 약 300m의 석성을 쌓아 지성으로 하는 등 이곳과 웅천, 제포를 연결하여 다도해쪽으로 진출하려는 그들 수군의 본거지로 삼았다. 그러나 이순신< 李舜臣 > 장군이 이끄는 조선< 朝鮮 > 수군< 水軍 >은 왜적과의 싸움에서 연전연승을 거두고 선조 25년(1592) 7월 8일 한산도대첩< 閑山島大捷 >의 여세를 몰아 이곳으로 도망하여 숨어 있던 적들을 소탕하여 또다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웅천안골리성

웅천안골리성

웅천안골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