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31호 경주 감은사지

오늘의 쉼터 2008. 2. 8. 18:44


종     목 사적  제31호
명     칭경주감은사지(慶州感恩寺址)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사찰
수량/면적 26,807㎡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55-1
시     대통일신라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경주시
일반설명

감은사는 동해안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지금은 3층석탑 2기와 금당 및 강당 등 건물터만 남아있다.


신라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한 후 부처의 힘을 빌어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웠다. 절이 다 지어지기 전에 왕이 죽자, 그 뜻을 이어받아 아들인 신문왕이 682년에 완성하였다.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지낼 것”을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한 곳이 절 부근의 대왕암이며,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절 이름을 감은사(感恩寺)라 하였다고 전한다.


발굴조사를 통하여 강당·금당·중문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금당 앞에는 동·서쪽에 두 탑을 대칭적으로 세웠음을 밝혔다. 이 건물들은 모두 회랑으로 둘러져 있는데, 이러한 배치는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금당의 지하에는 배수시설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죽은 문무왕이 바다용이 되어 이 시설을 통해 왕래하였다고 전해진다. 금당 앞의 탑 2기는 우리나라의 석탑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석탑의 모범이 되고 있다.


감은사는 황룡사, 사천왕사와 함께 나라를 보호하는 호국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언제 절이 무너졌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전문설명

 

감은사< 感恩寺 >는 신라< 新羅 > 문무대왕< 文武大王 >이 삼국통일< 三國統一 >의 대업< 大業 >을 성취하고 난 후, 부처의 힘으로 왜구< 倭寇 >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우다 완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자 아들인 신문왕< 神文王 >이 그 뜻을 좇아 즉위한 지 2년 되던 해인 682년에 완성한 신라시대< 新羅時代 >의 사찰< 寺刹 >이었다. 문무대왕< 文武大王 >은 죽기 전에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 龍 >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 火葬 >하여 동해< 東海 >에 장사지낼 것"을 유언< 遺言 >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한 곳이 바로 대왕암< 大王岩 >이며 부왕< 父王 >의 은혜에 감사하여 사찰을 완성하고 이름을 감은사< 感恩寺 >라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현재의 모습은 1979년부터 2년에 걸쳐 전면 발굴조사< 發掘調査 >를 실시하여 얻어진 자료를 통해 창건< 創建 > 당시의 건물기초대로 노출 정비한 것이며, 아울러 금당< 金堂 >의 지하에는 바다용이 된 문무대왕< 文武大王 >의 휴식을 위한 상징적인 공간을 마련한 특수< 特殊 > 구조< 構造 >와 동쪽으로 통로< 通路 >를 만들었다고 하는 흔적도 밝혀 놓은 것이다. 우뚝 솟은 두 삼층석탑 < 三層石塔 >은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한 통일신라< 統一新羅 > 초기< 初期 >의 석탑으로서 수십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만들어 조립식으로 세운 것으로 전체 높이 13m에 이르는 신라 삼층석탑 중 최대의 것이다. 감은사< 感恩寺 >는 문무대왕< 文武大王 >이 나라를 지키겠다는 충< 忠 >의 뜻과 신문왕< 神文王 >이 부왕의 은혜를 감사해서 지은 효< 孝 > 즉 충효< 忠孝 >의 정신이 깃든 유적< 遺蹟 >이라 하겠다.




경주감은사지 전경

경주 감은사지

경주 감은사지 근경

경주 감은사지 전경

발굴시노출된유구

금당지

북회랑지

용연

감은사지 강당터

강당터

금당터 배면

금당터 유구

금당터 지하 유구

금당터

삼층석탑 몸체돌

삼층석탑 탑신부